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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 님의 서재입니다.

감정 배제의 플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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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rmquki
작품등록일 :
2021.06.21 17:15
최근연재일 :
2021.08.04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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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5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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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7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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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라웨쿠이 (1)

DUMMY

“마음에 들어?”

“어, 좋아.”

토끼의 몸에 맞게 살짝 변형된 회색 후드티와 검은색 조거 팬츠는 모두 털이 붙지 않는 특수한 효과가 있었다.

주인공은 토끼의 옷에서 시선을 돌려 주변을 둘러봤다. 활기찬 거리를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서로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대고 쑥덕대는 사람들도 있었다.

지금 주인공의 옆을 지나가는 그 사람들의 고개와 눈동자는 주인공의 비어 있는 왼 소매를 향하고 있었다. 그들은 여전히 귓속말을 나누고 있었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었지만, 아니었다. 그들의 역겨운 눈빛과 표정은 그들이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는지를 대강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한순간에 여러 감정이 느껴졌다. 주인공은 그 감정들을 일일이 상대하며 자신을 관철했다.

기분이 좋지 않다. 분노로부터 흥분이 일어나고 있는 상태다. 아마 내가 무시를 당한 것을, 아니면 비하를 당한 것을 나 자신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슬픔이 분노를 가라앉혔다. 나는 내가 저들의 행동을 기분 나빠할 자격도 없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비난할 자격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주인공이 그의 입술을 강하게 물었다.

‘저들의 행동은······ 장애인들을 뒤떨어진 자들이라 칭했던 예전의 나와 같았으니까.’

그때의 나는 진심을 담아서 그렇게 생각했었을까? 어렴풋한 기억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지만 어렴풋한 기억은 어렴풋한 그 상태 그대로였다.

주인공은 머릿속을 헤집는 기억을 떨쳐 버렸다.

‘당연했던 건가.’

변명일 수도 있었다. 아니, 변명인 게 확실했다.

그때의 튜토리얼의 분위기가, 나약한 자들은 도태되고 강한 자들에게만 앞으로 나아갈 자격이 주어진다고 생각되던 그때의 튜토리얼의 분위기가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주었던 건 맞았지만.

분위기가 마음속을 흔들 만큼 그때의 자신이 약했던 것도, 단순히 겉으로만 강했던 것도 자신의 잘못이었다.

‘저들은 약하다. 자기 자신이 분위기에 휩쓸릴 만큼 겉으로만 강한 척을 하는 자들이다. 그들이 무고한 인간 하나를 비난하는 것이 용서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그들의 비난을 신경 쓸 이유는 없다.’

주인공은 결론을 내렸다.

‘나는 강하다. 그리고 무릇 강자는 약자를 배려해줘야 하는 법이다. 내가 저들의 비난을 회피하는 것은 별다른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나는, 약자들의 어리석은 행동을 배려하는 것이다.’

주인공은 몸을 돌려 조금 전, 그를 비난했던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몸을 돌려 토끼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토끼, 이 왼팔은 어떻게 못 하겠어?”

“어. 내 실력으로는 불가능해. 상급 비약 정도는 돼야 사라진 왼팔을 자라나게 할 수 있으니까.”

“하아. 지구였다면 기계로 왼팔을 대체했을 텐데.”

“그래? 기계로 왼팔을 대체해? 신경이 다 연결되긴 하는 거야?”

“그래. 연결돼. 지구의 과학 기술은 엄청나거든.”

감탄하던 토끼는 손으로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오오······. 지구라. 좋네. 나는 어디에서 살았었을까. 예전 기억이 안 나. 사실 주인공, 너를 만나기 전의 기억도 흐릿해.”

“안 물어봤어. 따라오기나 해.”

나란히 걸어가던 주인공과 토끼의 거리가 어느새 벌어져 있었다. 토끼는 재빨리 다리를 움직여 주인공이 들어간 건물로 따라 들어갔다.

신선한 공기가 가득하고, 신선한 냄새도 물씬 나는 이곳은 몬스터 사냥에 관련된 물품들을 구매할 수도, 팔 수도 있는 상점이었다.

상점에서 플레이어 후보가 전리품을 팔 수 있는 장소는 1층의 카운터 밖에 있지 않았다. 주인공은 물건을 사는 것이 아닌, 팔러온 입장이었기에 1층에 있는 카운터로 직진했다.

“아, 반갑습니다. 전리품을 팔러 오신 겁니까?”

“그래.”

주인공은 인벤토리를 열고 그곳에 손을 집어넣었다. 그리고 인벤토리 안에 있는 것을 한 움큼 쥐고 카운터에 올려놓는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주인공이 인벤토리에 있던 모든 전리품을 카운터에 옮겼을 때, 카운터에는 흰색의 토끼 발, 귀, 가죽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다.

직원이 푸른 창을 띄우고 그것을 몇 번 두드리자, 산더미같이 쌓여 있던 전리품들은 한순간에 사라지고 말았다. 직원은 어딘가에서 동전을 꺼내 카운터의 위에 내려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다.”

직원이 카운터에 둔 동전들은 정확히 10동 4개와 1동 5개였다.

‘45동인가. 당분간 먹고 자는 건 문제없겠네.’

“토끼,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

키가 작아 카운터 위의 상황을 볼 수 없었던 토끼는 무슨 상황인지는 잘 몰랐지만. 소파에 앉아 기다리라는 주인공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주인공은 그런 토끼를 1층에 놔둔 채, 상점의 4층에서 [상점의 기본 롱소드]를 구매하고 다시 1층으로 돌아왔다. 그는 그대로 토끼를 데리고 한껏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상점을 떠났다.


* * *


한참을 걸은 후에야 토끼와 주인공은 남쪽 중앙 거리가 끝나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전히 게이트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다. 가만히 멈춰 있는 사람들을 본 토끼는 주인공에게 물었다.

“왜 여기에 이렇게 사람이 많은 거야?”

“게이트의 앞이니까.”

“게이트의 앞? 그게 왜? 여기 사람들은 도대체 뭐를 하고 있는 건데?”

“그런 거 없어. 그냥 서 있는 거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없으니까. 구경이나 하는 거지.”

“그럼 이 사람들은 뭐야?”

“음. 게이트의 너머로 갈, 용기가 없는 겁쟁이들이지.”

토끼는 주인공의 대답에 만족스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해서 고개를 끄덕이는 토끼에게 주인공이 말했다.

“따라와.”

주인공은 앞으로 걸어가, 게이트의 근처를 둘러싼 사람 중 하나의 어깨를 두드렸다.

“어, 왜요?”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하기도 귀찮았다. 주인공은 옆으로 비키라는 간단한 손짓을 했고, 여자는 알겠다며 옆으로 비켜 주었다.

토끼는 인파의 중심으로 걸어가는 주인공을 따라갔다. 자신에게 집중되는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았지만 주인공의 옆에 붙으니 마음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남쪽 게이트의 앞에서 게이트를 지키는 경비병들. 경비병들은 게이트의 왼쪽 끝 앞과 오른쪽 끝 앞에 서 있었다. 주인공은 경비병들이 서 있는 장소에서 한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췄다. 주인공은 게이트의 중앙이자, 두 경비병의 가운데에서 말했다.

“누구지?”

주인공의 왼쪽에 있던 경비병이 반응했다.

“음? 뭐가?”

“내게 라웨쿠이를 가져오라고 했던 녀석이 누구지?”

“나는 아닌데?”

“······.”

“크흠, 사실 내가 맞다. 그냥 사소한 장난을 해본 건데 그런 표정을 지을 것까지는 없지 않나. 라고 조심스럽게 생각해보지만. 으음······.”

“······.”

경비병은 주인공의 시선을 회피하며 물었다.

“라웨쿠이는 어디 있지?”

주인공은 인벤토리에서 라웨쿠이를 꺼내 경비병에게 보여 주었다. 경비병은 두 눈을 크게 뜨고 한참을 멍하니 라웨쿠이를 쳐다보더니 믿지 못하겠다는 듯 손으로 눈을 비볐다. 그리고 계속해서 라웨쿠이를 쳐다봤다.

경비병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입을 열었다.

“분명히 이 책에서······.”

경비병은 품속 어딘가에서 두꺼운 책을 꺼냈다. 한눈에 봐도 정말 오래된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책의 표지는 심각하게 낡아 있었다.

경비병은 그 심각하게 낡은 표지의 책을 펼치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초도 되지 않아, 경비병은 그가 원하는 것을 찾은 듯 손가락으로 책의 글자를 짚으며 말했다.

“이거, 이거다. 어딘가 녹슬어 있는 열쇠를 라웨쿠이로 여기는 자는, 미친 자이거나 사기꾼이다. 라웨쿠이는 절대 녹슬지 않는 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게 어쨌다는 거지?”

“어쨌다는 거기는,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열쇠는 하나도 녹슬어 있지 않으니 진짜 라웨쿠이라는 거다.”

“진짜 라웨쿠이라는 거긴요. 당연히 진짜 라웨쿠이죠. 그건 선대 연금술사들이 후대 연금술사들에게 남겨준 가보와도 같은 건데. 가짜일 리가 없잖아요?”

“너는 누구지? 음, 토끼? 말하는 토끼라면 숨겨진 토끼 마을의 토끼들밖에 없을 텐데······. 아, 네가 숨겨진 토끼 마을에 있던 마지막 토끼 연금술사인 건가.”

토끼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가 움직일 때마다 토끼의 귀도 위아래로 덜렁거렸다.

“귀를 보니 토끼가 맞네. 그런데 플레이어 후보.”

토끼의 덜렁거리는 귀를 가만히 지켜보던 주인공이 고개를 돌려 경비병을 쳐다봤다. 주인공과 눈이 마주친 경비병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너. 도대체 뭔 생각으로 이곳까지 토끼 연금술사를 데려온 거지? 토끼 왕이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게다가 토끼 왕이 잠에서 깰 때가 됐는데─”

“─토끼 왕은 없다. 내가 죽였거든.”

경비병의 눈동자가 주인공의 비어 있는 소매를 훑고 지나갔다. 경비병은 그가 느낀 여러 감정을 얼굴에 드러내지 않기 위해 서둘러 입을 열었다.

“잡담은 그만하고 자, 여기.”

경비병은 그의 품속 어딘가에서 반듯하게 접힌 네모난 종이를 꺼내 주인공에게 건넸다. 주인공은 종이를 받은 뒤 펼쳤다.

봉인된 문의 장소를 대략적으로나마 나타난 지도. 경비병이 준 종이의 정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이 봉인된 문이 위치한 장소가 어디인지 전혀 감이 잡히질 않았다.

고개를 갸웃거리는 주인공을 예상했다는 듯, 경비병은 중요한 사실을 말해주었다.

“남쪽 사냥터의 지상이 아니다. 지하다. 지하로 가는 법은 너도 알겠지. 통통 지렁이가 멋대로 파놓은 구멍을 이용하면 된다.”

주인공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번에 말했던 그 히든 던전은 이걸 말하는 거였나. 하지만 그 구멍으로 들어간다면 수도 없이 많은 통통 지렁이들만을 만나게 될 거다. 결국 바다와도 같은 통통 지렁이들에 묻혀 죽어 버리고 말 텐데. 아닌가?”

“보통은 그렇지. 하지만 모든 통통 지렁이들이 지상으로 나오고, 지하에 커다란 동굴만이 남을 때가 있다. 통통 지렁이들이 알에서 부화하고 지상으로 올라올 때의 기간, 30일. 그 30일이 지난 뒤의 일주일이 지하에 커다란 동굴만이 남을 때지.”

주인공은 경비병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꼈다. 그리고 곧바로 물었다.

“왜? 왜 그 일주일 동안은 통통 지렁이가 없는 거지?”

“간단하다. 그때 동안은 지렁이들이 알을 생산하지 않아서다. 물론 그때 무엇을 하는지는 모른다. 이상한 취미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그 일주일이 지금이다. 정확히는 일주일의 두 번째 날이지. 지금 들어가면 봉인된 문으로도 충분히 갈 수 있을 거다.”

“그런가. 그런데 봉인된 문이 도대체 뭘 봉인하고 있는 거지?”

주인공의 물음에 팔짱을 끼고 고민하던 경비병은 고개를 숙인 채 말했다.

“그건······ 미안하다. 나도 모르겠군. 연금술사들이 아주 위험한 동시에 아주 중요한 것을 봉인했다고는 하는데, 나도 모른다. 무엇을 봉인했는지는 이 책에도 적혀 있지 않아.”

“그래, 뭐. 상관없다. 토끼, 가자. 너 먼저 들어가.”

토끼를 먼저 게이트의 안으로 들여보낸 주인공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한 번 둘러봤다.

‘용기 없는 자들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눈동자가 사람들을 훑는 것도 잠시, 주인공은 먼저 게이트를 들어간 토끼를 생각해 생각을 그만두었다.

그는 걸음을 옮겨 게이트의 너머로 향했다.


* * *


“에잇. 뒤져라.”

“······.”

토끼는 인벤토리에서 보라색 물약이 담긴 유리병을 꺼내, 그것을 지렁이에게 던져 버렸다. 유리병이 지렁이와 부딪혀 깨지면 유리병의 안에 있던 보라색 물약이 지렁이의 몸에 쏟아졌다. 그리고 동시에 지렁이의 몸을 녹여 버렸다.

“아까 녹아 버린 그 녀석의 친구냐? 에잇, 너도 뒤져라.”

지렁이를 만날 때마다 그 보라색 물약을 마구잡이로 던져 대는 토끼의 행동에 주인공은 의문이 들었다.

“그 보라색 물약을 다 쓰면 어떻게 하려고?”

토끼는 아주 간단하게 대답했다.

“물약을 다 쓰게 될 리가 없어. 언젠간 토끼 왕한테 쓰려고 200개가 넘게 만들어 놨었거든.”

토끼의 대답은 간단했고, 주인공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토끼가 비속어를 사용하며 보라색 물약을 던질 때도 주인공은 입을 열지 못했다. 선택적 침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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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흑마법사 (1) 21.08.03 12 0 12쪽
44 라웨쿠이 (7) 21.08.02 16 0 13쪽
43 라웨쿠이 (6) 21.08.01 18 0 13쪽
42 라웨쿠이 (5) 21.07.31 16 0 12쪽
41 라웨쿠이 (4) 21.07.30 16 0 11쪽
40 라웨쿠이 (3) 21.07.29 13 0 11쪽
39 라웨쿠이 (2) 21.07.28 13 0 14쪽
» 라웨쿠이 (1) 21.07.27 15 0 13쪽
37 강해질 수 있는 방법 (3) 21.07.26 15 0 13쪽
36 강해질 수 있는 방법 (2) 21.07.25 16 0 12쪽
35 강해질 수 있는 방법 (1) 21.07.24 18 0 12쪽
34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4) 21.07.23 16 0 11쪽
33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3) 21.07.22 18 0 11쪽
32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2) 21.07.21 19 0 12쪽
31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1) 21.07.20 21 0 12쪽
30 주인공과 토끼 마을 (7) 21.07.19 15 0 12쪽
29 주인공과 토끼 마을 (6) 21.07.18 16 0 13쪽
28 주인공과 토끼 마을 (5) 21.07.16 19 0 12쪽
27 주인공과 토끼 마을 (4) 21.07.15 22 0 12쪽
26 주인공과 토끼 마을 (3) 21.07.15 16 0 13쪽
25 주인공과 토끼 마을 (2) 21.07.13 21 0 11쪽
24 주인공과 토끼 마을 (1) 21.07.12 18 0 12쪽
23 건 리브스 (3) +1 21.07.11 24 1 12쪽
22 건 리브스 (2) 21.07.10 19 1 17쪽
21 건 리브스 (1) 21.07.09 21 0 13쪽
20 최상급 비약 (3) 21.07.08 23 0 15쪽
19 최상급 비약 (2) 21.07.06 19 0 13쪽
18 최상급 비약 (1) 21.07.04 18 0 10쪽
17 부서진 정신 (3) 21.07.03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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