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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 님의 서재입니다.

감정 배제의 플레이어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gurmquki
작품등록일 :
2021.06.21 17:15
최근연재일 :
2021.08.04 19:10
연재수 :
4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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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글자수 :
258,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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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7.23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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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4)

DUMMY

조금 전만 해도 골목에 가득했던 인파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투기장 측에서 손을 쓴 것이 분명해 보였다.

몇몇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거리를 지나, 투기장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비어 있는 로비가 보였다. 몇몇 사람들이 로비의 곳곳에 있는 의자에 앉아 있거나 그곳 근처에 서 있기는 했지만, 사람이 로비를 가득 채웠던 전과 비하면 도대체 어떻게 그 많던 사람들을 처리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줄어든 숫자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었기에 한가롭게 의자에 앉아 떠오른 의문을 풀 여유는 없었다. 셉은 곧장 데스크로 걸어갔다.

“레이.”

“오셨습니까 셉 님. 경기장으로 가는 건 전에도 해보셨으니 별로 어렵지 않을 겁니다. 시간이······ 3분이나 남았군요. 미리 가서 대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렇군. 고맙다.”

“부끄럽게 뭘 말입니까. 저는 데스크의 직원이 해야 할 기본적인 접대를 한 것일 뿐입니다. 아, 그리고 마음 단단히 먹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뭘?”

“투기장에서 가장 많은 경기를 치른 플레이어 후보의 첫 모습. 대중들에게 비치는 첫 모습이, 얼빠져 놀라는 것이기보다는 무덤덤한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셉은 레이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레이가 말하는 대중들에게 비치는 첫 모습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셉은 대충 고개를 끄덕인 뒤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29번의 경기를 치른 그의 발걸음과 몸짓은 서투르고 허둥대는 다른 플레이어 후보들과는 달랐다.

29번 동안 그래왔듯, 자연스럽게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르고 기다리는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레이는 아니었다. 레이는 여전히 카운터에서 사람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셉은 고개를 돌려 그의 옆에 선 사람을 봤다.

‘동양인?’

그의 옆에 선 사람은 동양인 남자였다. 셉은 동아시아 느낌이 물씬 나는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자 자신이 이 남자의 얼굴을 한 번도 본 적 없이 없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때문에 셉은 당황했다. 자신을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옆에 서다니. 그러나 그는 곧 헛웃음을 지었다. 원래 엘리베이터는 여러 명이 함께 타는 거였다.

‘혼자 지내더니 머리가 이상해졌군.’

이상한 세계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 확실히 사고 자체가 달라진 것 같았다. 물론 누군가와 같이 지낼 생각은 없었다. 애초에 그럴 사람도 없었고 말이다.

만약 그럴 사람이 생기더라도 혼자 지내지 않을까? 셉,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자신은 그런 사람이었다.

띵.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셉이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자 그의 옆에 있던 남자도 엘리베이터에 들어갔다.

‘뭐지?’

E-2라 적힌 버튼을 눌렀을 때도 동양인 남자는 여전히 구석에 기댄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내려가기 시작했음에도 남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가.’

셉은 이해했다. 이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과 목적지가 같았던 거였다. 우연이었지만 그럴 수 있었다. 지금은 E-2 경기가 이루어지는 시간이니 E-2 경기장으로 가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많을 수밖에 없었다.

셉이 생각에 잠겨 있는 그때, 갑자기 남자가 입을 열어 말했다.

“안녕.”

갑작스러운 인사에 셉은 당황했다. 그의 굳은 사고는 남자의 인사에 유연하게 답할 수 없었고, 결국 셉은 남자의 인사를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때 남자가 다시 말했다.

“나 기억 안 나?”

남자의 말에 셉은 고개를 돌렸다. 남자의 얼굴을 다시 자세히 바라봤지만, 그의 기억 속에 이런 동아시아 쪽 남자의 얼굴은 존재하지 않았다.

셉은 팔짱을 낀 채 남자의 얼굴을 보며 말했다.

“모르겠군. 내 기억 속에 너란 남자의 얼굴은 없다.”

“당연하지. 셉.”

“······.”

셉은 또다시 당황했다.

기억 속에 없는 얼굴을 가진 남자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는 건 굉장히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고, 이름을 불렀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는 셉에게 남자가 말했다.

남자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셉 요르. 나는 네게 내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었어.”

남자의 말이 끝난 순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남자는 복도로 걸어가, 배치되어 있는 지도를 보더니 어디론가 걸어가 버렸다.

셉은 잠시 멍하니 팔짱을 끼고 있다가 다급히 정신을 차리고 엘리베이터에서 나갔다. 셉은 남자가 봤던 지도를 가볍게 훑어본 뒤 E-2의 두 번째 선수 대기실로 향했다.


* * *


선수 대기실의 복잡해 보이는 기계로 이루어진 문 앞에 다가가자 눈앞에 창이 떠올랐다. 셉은 창에 적힌 글자로 시선을 돌렸다.


[투기장에 등록된 정보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뒤 눈앞에 있던 창을 덮으며 다른 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후보: 셉 요르. 전적: 2승 27패.]

[오후 3시, E-2 경기장이 예약되어 있습니다.]


띠링!

[입장하시겠습니까?]


‘그래.’

철컹. 기계로 이루어진 문이 그 복잡한 형태를 더욱 복잡하게 꼬아가더니, 이내 반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이미 이 과정을 29번째나 겪고 있던 셉이었기에, 그는 문에 대해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문을 지나쳐 선수 대기실로 들어갔다.

선수 대기실의 안은 문과 마찬가지로 여러 기계적인 장치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에는 에르키루스 레이가 말했던 ‘부활’을 하게 만들어 주는 기계도 존재했다.

물론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정말로 부활을 시켜 주는 기계인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단지 느끼기에는 지금 보고 있는 기계만이 죽었던 뇌를 다시 활동하게 만들어 주고, 멈추었던 심장을 되살려 다시 혈액을 공급하게 만들어 줄 것 같았다.

게다가 선수 대기실은 사람 한 둘만이 쉴 수 있을 정도로 작은 크기를 가지고 있었기에, 지금 보고 있는 장치를 제외하면 큰 장치들도 별로 있지 않았다.

셉은 손을 뻗었다. 그리고 만졌다.

‘차갑다.’

부활을 시켜 준다고 생각했던 기계의 일부분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그는 사람이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동시에 절대 열리지 않을 것만 같이 복잡하게 얽혀 덮여 있는 곳의 안을 보고 싶었다.

손으로 기계의 차가운 부분을 계속 만져 보던 셉은 결국 포기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지금의 그는 이 기계의 복잡하게 얽혀 덮여 있는 부분을 절대로 열 수 없었다. 애초에, 그것을 열 만한 방법이 없었다.

기계에서 한걸음 물러난 그때, 셉은 절대 열리지 않는 고철 덩어리보다는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3시가 지나가기 전까지 경기장에 도착하기 위해 재빨리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셉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경기장으로 내려가면서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는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조금 전의 기계라도 부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지금 시스템을 이용해 확인한 시간은 정확히 3시였기 때문이다.

띵.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셉은 서둘러 걸음을 옮겨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자신을 환호하는지, 야유하는지 모를 거대한 함성이 귀를 때렸기 때문이다.

셉은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 파악하기 위해 고개를 들어 주변을 살폈다. 천장은 여전히 높이 뚫려 있었지만 그 천장 아래를 밝히는 환한 빛들은 새롭게 보는 것들이었다. 그 환한 빛들 때문에 이전과 달리 경기장은 매우 밝았다.

‘더럽게도 시끄럽군.’

그 밝은 빛들 아래에서 관람석에 앉은 수많은 사람이 서로 대화를 나누며 함성을 질러 댔다.

29번의 경기 동안 어둡고 우울했던 경기장이 이렇게나 밝을 수도 있었던 건가. 셉은 눈앞의 광경을 색다르게 느끼며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그 기억은 그와 처음 만났던 레이가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해주었던 때의 것이었다.


-여기는 뭐 하는 곳이지?

-플레이어 후보들끼리 경기를 펼치는 곳입니다. 그리고 경기에 돈을 걸고 이득을 취할 수도, 취하지 못할 수도 있는 곳입니다.


“플레이어 후보들끼리 경기를 펼치는 곳임과 동시에, 경기에 돈을 걸고 이득을 취할 수도, 취하지 못할 수도 있는 곳이라는 것은 이런 뜻이었나.”

경기를 펼치는 플레이어 후보는 자신과 앞에 있는 또 다른 사람이다. 그리고 경기에 돈을 걸고 이득을 취할 수도, 취하지 못할 수도 있는 자들은 관람석에 앉아 있는 수많은 관람객이었다.

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기억 속 레이의 설명은 정확했다.

“······손을! 손을 들어주십시오! 셉 요르가 맞다면 오른손을 높이 들어주십시오!”

경기장의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목소리의 높이와 말투로 보기에 아마도 경기를 진행하는 사회자인 것 같았다.

오른팔을 높이 들자 관객들의 함성이 더욱 커졌다.

“셉 요르가 맞습니다! 기권패가 처리되기 단 3.4초 전에 경기장에 들어오다니! 기다렸을 관객분들을 생각해, 경기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셉 요르! 그리고 건 리브스의 경기! 시작하겠습니다!”

순간 몸의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했다. 셉은 높이 들었던 고개를 내려 반대편에 서 있는 남자를 봤다.

남자는 로비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 E-2층까지 같이 이동했던 동아시아 쪽의 얼굴을 가진 동양인 남자였다.

그리고 사회자가 말했던 것이 사실이라면, 저 남자는 ‘건 리브스’였다.

몸이 열로 달아오르고 심장이 마구 뛰었다. 수많은 관객이 자신을 보고 있었음에도 느끼지 못했던 긴장과 흥분이 셉의 온몸을 덮쳐 왔다.

셉은 인벤토리에서 롱소드를 꺼내 양손으로 쥐었다.

지구에서 싸웠다면 절대로 이기지 못했을 것이다. 건 리브스의 총을 다루는 기술은 그를 정상까지 올려놓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할 수 있을 것이다. 존 윌리엄스와의 경기로 나는 4의 레벨을 찍었고, 이곳에 총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눈앞에 떠오른 창을 거칠게 치워 버리며 셉은 앞으로 달려갔다.

쿵, 쿵, 쿵!

열로 달아오른 심장이 뜨거운 혈액을 온몸으로 뿜어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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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라웨쿠이 (4) 21.07.30 16 0 11쪽
40 라웨쿠이 (3) 21.07.29 13 0 11쪽
39 라웨쿠이 (2) 21.07.28 13 0 14쪽
38 라웨쿠이 (1) 21.07.27 14 0 13쪽
37 강해질 수 있는 방법 (3) 21.07.26 15 0 13쪽
36 강해질 수 있는 방법 (2) 21.07.25 16 0 12쪽
35 강해질 수 있는 방법 (1) 21.07.24 18 0 12쪽
»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4) 21.07.23 16 0 11쪽
33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3) 21.07.22 18 0 11쪽
32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2) 21.07.21 19 0 12쪽
31 투기장의 플레이어 후보 (1) 21.07.20 21 0 12쪽
30 주인공과 토끼 마을 (7) 21.07.19 15 0 12쪽
29 주인공과 토끼 마을 (6) 21.07.18 16 0 13쪽
28 주인공과 토끼 마을 (5) 21.07.16 19 0 12쪽
27 주인공과 토끼 마을 (4) 21.07.15 22 0 12쪽
26 주인공과 토끼 마을 (3) 21.07.15 16 0 13쪽
25 주인공과 토끼 마을 (2) 21.07.13 21 0 11쪽
24 주인공과 토끼 마을 (1) 21.07.12 18 0 12쪽
23 건 리브스 (3) +1 21.07.11 24 1 12쪽
22 건 리브스 (2) 21.07.10 19 1 17쪽
21 건 리브스 (1) 21.07.09 21 0 13쪽
20 최상급 비약 (3) 21.07.08 23 0 15쪽
19 최상급 비약 (2) 21.07.06 19 0 13쪽
18 최상급 비약 (1) 21.07.04 18 0 10쪽
17 부서진 정신 (3) 21.07.03 23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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