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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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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2.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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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묘향산 3

DUMMY

실전. 수차례 작계 목표에 대한 타격작전이 끝나고, 그때부터 우린 내륙전술훈련이 북에서 살아남는 훈련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완파는 힘들었지만 1-2-3차가 끝난 뒤 부동의 전술명령은 적 통신 보급로 차단과 정찰감시/항폭유도의 지속. 아군이 진격해올 때까지... 작계 동안 병력은 팀 평균, 반에서 1/3로 줄었고, 어차피 우린 게릴라로 가는 길이었다.


왜? 북한이 재래식이므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우리에게 재래식 비정규전을 요구한다. 도시는 공군이 눈감고도 폭격할 수 있다. 아무리 터널을 파도 도시를 그라운드 제로로 만들면 기능은 과반 마비된다. 우린 도시로 가는 주변에서 거부작전을 펼친다. 각 도시 간의 신경선을 끊는다. 하지만 다분히 소모적이다. 여단장도 당연히 알았다. 비행장에서 마지막으로 그랬다.


“살아서 다시 만나자. 내가 맨 첫 차량에 선탑해 올라가겠다.”


어떻게든 버텨라. 끝까지 살아남아서 보자.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묘한 향이 나서 묘향산이라고?


누군지 알 것 같다. 적어도 나는 누군지 알겠다. 임중사님에게 전달할 방법이 없다. 쏘면 안 되는데! 팔을 뻗기에도 거리가 멀고, 움직이면 소리 날 것 같고, 자칫 서로 동시에 쏠 것 같다. 양쪽 다 자물쇠는 안전에 안 걸려 있다.


‘저건 아군이다!’


난 분명 감이 왔다. 임중사님 쪽 어둠을 본다.

허... 웃기네. 저건 아군이란 수기는 해 본 적이 없어.


우리 앞에 한 명이 심각하게 경계하면서 지나가는데, 발포할까봐 신호나 말을 걸 수가 없다. 말이나 소리를 낸 순간 내가 먼저 총질을 당할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스윽 나타났지? 우리를 상대하는 적도 이런 기분인가. 저 무게감을 거스르면 아군끼리 오인사격 난다. 발포는 1초도 걸리지 않는다. 거리가 가까워 지향으로 갈기면 양쪽 누구라도 맞는다.


임중사님도 의아심을 품는 게 전해온다. 내 왼쪽 아래 5미터... 등만 봐도 긴장감으로 뭐가 뭉치는 기분. 공기가 삭막하다. 내 감각이 틀릴 수도 있지만 믿고 싶다. 임중사님은 저 사람이 지나가고 뒤에 붙은 것이 없나 확인하려 한다. 그러다 놓치면 어쩌지? 이런 산에서 이 시간에 왜 저렇게 긴장하고 소리를 죽이며 가고 있겠는가. 저 사람이 중요한 지역(재집결지)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적이라면 재집결지를 알고 수색한다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아니면 배신? 설마 총까지 들고 적을 뒤에 달고 와? 아예 동료들을 찾아서 다 죽이겠다고?


우리의 불안은 지역대 1차 타격 후에 가중되었다. 그 혼란을 난 아직도 논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혼란의 총합 그 자체, 각 중대를 근간으로 만든 경계차단조 - 타격조 - 지휘조 모두 어떤 상황이 일어났는지 서로 모른다. 사방에 총성과 폭발. 설정한 타격시간 30분 전에 총성이 터졌고 기도비닉은 공포로 무너졌다. 이미 산에서 내려가기 전에, 난 저런 걸 왜 공중폭격으로 타격하지 않는지 의구심이 일었다. 북한 대공미슬 때문인가?


기도비닉과 타격 길어야 2분. 훈련 때의 정석은 깨졌다. 지역대 목표는 기간산업이나 군수공장이 아니라 에코 맘마 파파 제조 추정 시설. 알려진 도시는 아니었지만 준 도심이었고 엄청난 병력이 깔려 있었고, 목표 1km부터 잠복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전시 북한은 군인뿐 아니라 총을 들 수 있는 모든 인민이 정해진 위치로 들어간다 했다. 실제로 그랬다. 우리로 말하면 학생과 직장예비군이 엄청 깔려 있었고, 우리 숫자는 너무 적었다. 타격조 일부만 북한 군복을 입었고 나머지는 우리 군복과 장비. 그 아수라장을 떠올리면 거기 뭔가 중요한 건 확실했다. 겉으로 드러난 허름한 공장시설은 허당이다. 터널의 징후가 있었고, 거기가 진짜임을 알았다.


첫 총성이 터지자, 잠복초와 적 경계병들은 바스락 소리에도 사방에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우리 병력이 안 들어간 지역에서도 총을 쏜다. 무릎이 깨져라 쪼그려 대기. 밤하늘을 울리는 총성에 손목이 덜덜 떨렸다. 하늘의 별은 쏟는데 총소리는 쩌렁쩌렁 울리고, 건물 넓은 벽에 반향이 일어나 더욱 귀가 멍하다.


이어지는 아군 5.56mm 총소리.

타격 캔슬, 도파탈출, 그리고 이어진 산으로의 추격.

[7과 8. 양동!]


은거지를 숨기기 위해 지역대장은 양동을 지시했다. 두 중대가 갈라지면서 적을 유도하면서 도피탈출하란 말이었다. 본부 포함 3개 팀은 도피만 주력하고, 7과 8은 현 장소에서 주력 탈출루트 좌우로 벌리면서 응사 퇴출을 시작했다. 얼마나 빨리 뛰는지 10초면 앞사람을 놓친다. 살려고 모든 걸 뛰어넘는다. 앞에 누군지 뒤에 누군지 모른다. 오직 발에 걸리는 바닥과 내 숨소리, 앞사람 질주하는 발소리. 종종 지형이 분기점에 도달하면 한 명이 남아 있다가 뒷사람에 수기로 통보하고 go! 도착한 사람은 다음 사람 올 때까지 기다리다 수기를 연계하고 뛴다. 그렇게... 동녘이 회색으로 변할 때까지 뛰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와 앞사람의 끈은 사라졌다.


사방 총소리들을 바탕으로 도주할 방향을 잡았다. 오직 지역대 재집결지만을 반야심경처럼 반복하면서. 우리 팀 재집결지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지역대 밖에 없다. 동이 트자, 이 정도면 정말로 지나가는 사람이 안 들어올 곳에 몸을 숨겨, 손바닥을 얼굴에 얹고 눈을 감았다. 혹시나 코를 골까봐. 하지만 30분을 주기로 눈이 팍팍 떠지고, 시계 보고 다시 자고의 반복.


오후가 되어 잠에서 깨고 나서, 은거지로 가면 죽는다는 감이 왔다. 거긴 끝난 거다. 하지만 가진 게 아무 것도 없다. 이제 은거지 한 곳에 하루 이상 머물지 않는다. 죽는 지름길이다. 지역대 작전을 내려가면서 팀별로 군장을 은익했고, 당연하지만 각 팀은 서로의 군장 둔 장소를 모른다. 난 고심 끝에 어둠을 이용해 우리 중대 군장 은익장소에 들리기로 결정했다. 분명 적 징후가 있는 가운데 우리 중대 일곱 명의 군장 은익장소에 도달했다. 군장 네 개가 없다. 어젯밤에 이미 들고 갔다. 남은 세 개도 열려 있고 중요한 것들을 뽑아 갔다. 식량은 단 하나도 없었다. 총과 총알은 죽이고 빼앗으면 된다. 식량이 귀해졌다. 결국 나는 남은 세 개에서 - 앞사람들이 그러했듯이, 더 이상 누가 오지 않으리란 가정으로 - 중요한 것들을 모아 내 군장에 담고 거길 긴 시간에 걸쳐 빠져나왔다.


남은 것은 하나. 지역대 최종 재집결지. 넘어와서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다.


당신은 옆에 있는 사람을 믿는가. 어느 정도 믿는가. ‘어느 정도’란 표현이 당신에게 모욕적으로 들리는가. 그럼, 재산 때문에 피 보고 등을 돌린 부모 자식 간이나 형제들 간의 불화는 원래 그 집안이 그래서 그랬다고 생각하는가. 그런 사람들은 그런 인성을 타고 나서 그럴 뿐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이혼해도 통 크게 배우자가 달라는 대로 주고 헤어질 수 있는가. 당신만 청렴결백하면 문제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가. 큰돈이 떨어졌을 때 당신은 평정을 유지하고 자선도 베풀 수 있는가. 당신은 옆에 있는 사람을 믿는가. 그 사람도 당신을 그렇게 똑같이 믿는가.


우리의 주저... 저 사람은 인민군 복장. 총도 AK, 아군 것으로 추정되는 것이 몸에 하나도 없어 보인다. 두상과 골격의 특징도 가늠을 못하겠다. 지역대 규합부터 모든 지역대원들 얼굴 피부가 비닐처럼 얇아지고 광대뼈가 튀어나오고 수염을 깎지 못했다. 면도는 사치, 세수도 어쩌다 생각날 때 물이 보이면 한다. 맹물에 칫솔질로 끝. 작전 내려갈 때 산사람으로 식별될까 남은 면도기를 돌려가며 물도 크림도 없이 밀어버린다. 의무주특기 가위가 수염 깎는데 사용된다. 첨병으로 서기 위해 대검으로 머리칼을 자른 사람도 있다. 머리까지 자르면 북한군복을 입은 지역대원이 그냥 북한군 같다.


‘저 사람은 누군가.’


임중사님도 예상은 하겠지만, 80% 이상, 7중대 폭파 유중사님이다.


컴컴해도 지역대원들 옆모습 뒷모습까지 감으로 온다. 특히 화기는 총 때문에 금방 알아본다. 유중사로 추정되는 그림자가 구부린 발걸음으로 계속 지나간다. 난 뒤에 달린 게 없나 주시한다. 이제 잡아야 할 것 같은데 계속 지나가고... 숫자 암구호나 야! 소리 한 마디 했다가 바로 주황색 섬광이 터질 거 같다. 어떤 상황이든 이동 - 모두 탄창 확인! - 1발 삽탄해서 자물쇠 안전 - 이동하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스위치를 사격으로, 문제가 아니면 다시 안전으로 돌리고를 무수하게 반복했다.


바스락 소리로 1-2초 안에 내 총에서 충격이 오고 화염이 터진다. 내가 언제 당겼는지 모른다. 넘어온 초기는 ‘사격’이란 단어가 ‘사고방지’라는 버릇에 막혀 수상한 소음이 나도 몇 초간 머뭇거렸다. 그리고 그 몇 초의 주저에 팀원이 쓰러진다. 항상 상대가 우리를 겨누고 있다는 가정이 없으면 내가 위험하다. 이제 틱! 하면 탁! 이다. 저기 지나가는 아군이, 그리도 반가운 7중대 고참이 건드리기 무섭다. 잘못 소리 냈다간 아군에게 맞는 거다. 그래서 재집결 과정이 무척 신중해졌다. 또한 어느 때부터, 누가 투항하거나 잡혔고 자의든 타의든 무엇을 불어버렸다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우린 옆 중대 목표를 공식적으로 모른다. 실제로도 잘 모른다. 지역대장 엄명으로 서로 작계 묻는 것이 격리구역 동안 엄격히 금지되었다. 하지만 섹터는 안다. 백지시험으로 암기한 약도는 도시와 산을 구심점으로 한다. 그 산들을 연결하면 루트가 나오고 그 안에 재집결지들이 걸린다. 돌아선 자는 적이다. 정보를 불어버린 사람은 아군이 아니다.


여기까지 놈들을 끌고 왔다면 정보누설 정도가 아니라 배신 배반 행위. 묵과할 수 없다. 그 주제가 나왔을 때, 우리 팀원끼리도 싸늘한 공기가 엄습하던 순간이 있었다. 나 살기 위해 팀원 지역대원을 죽여? 몇 되지도 않는 사람들에 감돌던 그 싸늘한 공기 ‘배신은 사살 처형’... 우린 상식에 걸맞은 지성인이라고 생각하지만 내 목숨 건드리면 누구도 없다. 싸늘한 공기에 주고받던 눈들. 안면위장을 지우는 행위가 사라지고 계속 덧칠만 하는 가운데, 수염과 눌린 머리, 악취 풍기는 아가리와 몸,


넌 아니지? 난 아니다! 하지만 니가 배신하면 두 번 생각 없다. 모두 살고 싶다. 돌아서지 마라. 그럼 이전에 내가 아니고, 너 역시 이전의 니가 아니다. 날 도울 때 나도 널 막아주는 거다.


[우리를 재물로 삼아 살려는 인간은 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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