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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B

함경도의 별

웹소설 > 일반연재 > 전쟁·밀리터리

조휘준
작품등록일 :
2020.05.27 22:55
최근연재일 :
2024.04.29 12:00
연재수 :
36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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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998,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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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2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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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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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게릴라 불면의 밤 6

DUMMY

게릴라 불면의 밤




총 균 쇠? 음. 몸과 쇠와 생각이 있다고 하나? 아니지. 게릴라는 몸과 쇠밖에 없어. 빛나는 강철의 쇠. 빈 몸에 강철. 날카롭고 빛나는 것! 게릴라는 이 총이 생각이야. 총이 생각하는 거야. 잡생각 많으면 산사람 자질 없다. 노래를 불러라. 즐거워라. 한 톨도 빠짐없이 긁어내 가져간다. 애가 굶는다고? 지리산은 안 굶었냐. 애 먹을 거 떼놓고 가져갔냐? 얼마나 좋냐 이 세상이. 곧이어 커다란 강철 덩어리가 궤도를 삐그적거리며 길을 따라 올라올 것이고, 그때 다시 한번 습관대로 구부리면 먹을 걸 줄 것이니라. 머지도 않았다. 조금만 지나면 완벽한 해방지구가 된다. 너희들의 위장은 남조선에 조아려야 한다.


”데리고 와.“


복잡하게 설명하면서 질문하지 않는다.

그 복잡한 설명 속에 빠져나갈 구멍이 있으니까.

산사람 말 길게 하는 거 아니다.

어렵게 묻지 않는다.


”싫어 좋아. 대답해!“


남자는 중얼거린다.

”무슨 말을 말이오.“


”뭐가 좋고 뭐가 싫은지 말해.“


남자 앞의 온화한 남자가 손총 총구를 미간에 댄다.


”이 종간나 새끼. 배신자는 끝이야!“


“오늘이 마지막인 듯, 소리 질러 저 멀리. Let’s dance the night away~~~~”


수건을 접어 이마에 댄다.


“옛 성현이 이르기를.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으라 그랬다.”


끌려온 남자, 확실히 갈등이 보인다. 오리지널이다.


“니가 저기 떨어진 공장의 총비서인 거 처음부터 알았어.”

“아니 누가. 아니 누가.”


온화한 남자는 기대한다. 화끈한 것을.

온화한 남자는 정말로 쏘고 싶다.


“어떻게 알았냐고? 여기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불었어.”


남자는 정말로 갈등한다. 오리지널 빨갛다.

어느 틈에 정보참모 소령이 와 있다.

소령은 당 간부 점퍼를 들고.


“너는 우리 것을 불었고.”


“마지막처럼. 마-마-마지막처럼. 마지막 밤인 것처럼 love.”


“아싸!”


“마지막처럼. 마-마-마지막처럼. 내일 따윈 없는 것처럼!”


노래가 그쳤다.


“대대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작고 온화한 남자는 대원과 눈을 맞춘다.


“원호야. 이런 기억은 늙은이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온화한 남자의 손은 단 0.0001mm도 떨리지 않는다.


“죽어야 기억이 끝난다고 믿을 때, 아무래도 내가 먼저 죽지 않겠니?”


대대원들이 바라본다.


‘평양보다 우리가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린 이방인이었어. 대중은 사기꾼이야.’


총구를 보라. 총은 그렇게 정밀한 물건이 아니다. 표준오차가 생각보다 크다. 그 표준오차 안에서 총열이 깎이고 총알도 제작된다. 하지만 봐라. 이 총구, 원형의 틀, 원형의 터널을 자세히 봐라. 굉장히 오돌토돌하다. 매끄럽지 않지. 총구 안쪽도 똑같아.


더욱 자세히 봐봐. 많이 쿨렁클렁해. 그게 이 총의 표준오차야. 여기서 표준오차에 맞는 실탄이 들어오고, 공이가 실탄 엉덩이 뇌관을 때리고, 실탄 안의 화약이 폭발해 총알이 나간다. 앞으로 나가는 총알의 탄두는 매번 총열의 강철과 마찰하며 서로를 깎아 먹는다. 많이 쏘면 총은 폐기되지. 총열의 안쪽이 마모되고 넓어져. 정밀기계산업으로 보면 이런 권총, 북조선 공화국에서 만든 이 권총은 굉장히 원시적인 무기면서 엄청나게 넓은 표준오차를 가지고 있지.


우린 화살에서 조금 발전한 것을 들고 싸운다. 쏜다. 사살한다. 골통을 날려버린다. 죄책감 가질 필요 없어. 칼이나 총이나 광선검은 아니야. 돌조각, 금속조각으로 몸을 찌르는 정도야. 알렉산더 시대에 비하면 빨리 많이 죽이는 건 분명 향상되었어.


“니가 가장 경애하는 사람을 욕해봐. 1분 동안. 쉼 없이.”


아무도 기억하지 못해. 나중에는 그게 정말 있었는지 나 자신조차 의심하게 돼. 배신은 없어. 우린 항상 처지에 맞게 어느 편에 들 뿐. 정신 차리고 보면 다 배신자야. 불의는 항상 잊어왔고 모르는 체했어. 불의는 일상이었고, 우린 매일 불의를 저질러. 용감하려면 매일 대놓고 자신조차 인식하면서 불의를 계속하는 거야. 여긴 그래도 되는 땅이야.


바람이 분다. 왜 이렇게 좋냐. 곧 비도 내리고 번개가 번쩍일 거야. 어느 여단이더라? 번개대대도 있지. 번쩍번쩍. 우리 대가리의 뇌도 번쩍번쩍.


왜 이래, 친구. 언제부터 우리 서로 제정신이었다고.


우리의 오늘은 아무도 믿지 못하게 될 거야. 여기 널 보는 우리 쪽과 너희 쪽 빌빌거리던 사람들도 결국 잊어. 아무리 떠들어도 다음 세대부터 안 믿기 시작할 거고, 그 다음 세대면 공갈로 생각해. 이런 일은 없었어. 그런 일은 없었어. 누가 지리산을 기억해! 누가 지금을 기억해!


피. 눈물.

딱 그거만.

딱 그거에만 죄책감을 느끼지 마.

그러면 행복해질 거야.


그래. 피. 눈물. 없는 거야.

죽음이 무슨 문제야!


피. 눈물. 그것에 젖어 미련이 생겨서 힘든 거지.

그래서 떠나기 싫으니 죽기도 싫은 거지.


넌 그런 척 해왔어. 총폭탄 정신!

기억 안 나? 이제 진짜로 해봐.


이 총구를 봐.

그 깊은 안쪽 어두운 곳을 봐.

이게 우리 세상이야.


어머나. 피. 눈물에다 땀까지 섞으시네.

오, 나에게 이런 창작력까지?


새끼야, 팔운동 시키냐.


착각하지 마. 곧 들릴 소리는 인공의 소리가 아니야. 자연의 소리야. 지구란 행성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자연의 소리야. 화약이 뭘로 만들었더라? 뭐 황. 그런 거. 그게 있는 행성에서는 언제나 날 수 있는 소리야. 니가 이 총구를 보면서 마지막으로 – 아주 짧게 – 들을 소리는 이곳 자연에서 나는 평범한 소리야. 총과 대포와 천둥을 어떻게 구별해. 그건 우리의 귀에서 들을 수 있는 가청주파수의 진폭일 뿐이야. 다른 동물들은 구별 못 해.


자, 자연의 소리를 들어.

Death Sentence는 끝났어.

이 평범한 자연의 소리를 들어!


우르르 쾅 쾅. 우르르 쾅 쾅.

포성이 또 울리기 시작한다.

포성은 어서 북상하라고 떠미는 것 같다.


시간은 흐르고, 낙엽은 떨어지고, 돌은 바닥에 쿵 떨어지고, 천지가 갑자기 진동한다. 땅이 떨리고 가지들이 눈을 깔고 추스른다. 눈이 더는 보지 못하고 손은 더 이상 쥐지 못한다. 음식물은 소화되었다. 눈은 마지막으로 별을 담는다. 그렇게 태어나서 스치듯이 우린 다시 사라진다. 아무도 기억 못 한다.


차분한 사나이는 옆 사람을 향해 뒤집힌 V-를 그리고,


옆 사람은 거기 담배 하나를 끼워 넣는다.


“우리가 물이고 너희가 물고기다.”


하얀 연기.

인간이 담배를 피웠나,

총이 피웠나.

잠시 멈췄던 공기가 다시 부산해진다.


“으구구구구구. 떨어진다.”


“떨어져?”

“음. 빗방울.”


“난 모르겠는데?”

“내 이마에 떨어졌다고.”


“몰라. 무슨 소리야.”

“손바닥을 하늘로 펴봐.”


“애냐?”


담배 뿜는 사람...


“저기 골프장 불러와.”

“옙.”


“정작장교랑 정작 있지?”

“예.”


“아니 소텍 말야.”

“예. 있습니다.”


“대대장님. 말슴하십쇼.”


”하나 골프. 앞에 인민군 복장 위주로 도로 정찰대 내보내고, 길을 가능한 탈만큼 타다가 산으로 간다. 96이랑 소텍 둘 다 가져가. 목표 5km 이상. 호출부호 일반명칭. GO!“

”단결.“


“소달구지에 다 실었어?”

“거의 다.”


“그만 실어. 정찰대 뒤로 붙어서 소 끌고 먼저 출발해!”


”솥 하나 징발해. 낮에 쏘고깃국 끼리 묵자.“


”경계. 경계! 이리 와!“

”예!“


”저 사람들 해산하라고 해. 1분이 지나도 눈에 보이면 쏜다고 해.“

”옙.“


”진짜 쏴.“

”옙.“


”동무들. 거, 징징대지 마라. 공화국의 청야작전이다.“


빵!!!


군관 복장이 하늘에 공포를 쏘고 소리친다.


“자! 이제! 빠사라! 질러라!”


오늘처럼 편안한 날이 있었던가.

발들이 나간다.


무거운 군장과 륙색.

얼핏 보니, 어디 중남미 반군 같다.

군장도 복장도 각양각색.

총도 각양각색.

인민군 복장에 남조선 릭샥.

튀어나온 RPG와 RPD 경기.


발들이 서두른다.


“어휴. 중심 잡혀!”


역시 군장을 지어야 행군하는 것 같다.


정찰대는 어둠 속에 북쪽으로 사라지고,

그 뒤로, 본대 첨병이 빠른 걸음으로 나가자

모두 발을 털고 땅에 다진다.


걸을 때 안정적이다. 게릴라는 걷고 있어야 마음이 편하다. 쉬고 있으면 어디서 불쑥 무엇이 올 것 같다. 튀어나올 것 같다. 멈추면 불안하다. 게릴라에 숙달된 적은 조용히 접근한다. 톡 건드리면 사방으로 분산해 사라질 것을 알기에 조용히 온다. 게릴라는 첫 사격에 많이 잡아야 한다. 게릴라는 자고, 먹고, 가만히 있을 때 불안하다.


‘뽑아. 최대한 뽑고 산으로.’


걷고 있으면 적을 만나도 좋다. 이미 몸은 달궈졌고, 쏘고 다시 걸으면 된다. 뛰면 된다. 발바닥에 불이 난다. 밑창이 너덜거리고 발바닥에 굳은살이 물러지지 않는다. 칼로 도려내도 계속 딱딱한 살이 생긴다. 걷기 위해 발가락이 좌나 우로 휜다.


어둠.

가벼운 저벅저벅 소리만...

길에서 먼지가 풀풀 올라온다.


눈앞의 나무와 수풀이 천연색 주황으로 울렁거린다.


소돔과 고모라.

등 뒤가 불타고 있다.


뒤에서 간지러운 조명이 날아온다.

너희도 굶고 너희도 노천에서 잠을 자라.


[하나둘. 하나둘. 태풍. 태풍. 선두 이상 무 보고!]


훨씬 낮고 차분한 목소리가 응대한다.


[완료. 선두를 더 빼서 멀리 가봐.]


[완료. 출발점에서 2km 진출. 상황 발생 시 보고하겠음. 이상.]


[수고해, 하나 골프장.]


[음성 불가 시. 위험 스켈치 네 번. 4회!]


[완료. 대기.]


[대기.]


칙~~~


걸음이 빨라진다.

하지만 좋다.


길.

언제 이렇게 길을 타봤나.

걸으면서 밤하늘을 본다.


“이거 오인해서 때리는 거 아니겠지?”


“야. 몇이나 된다고!”


“요즘 움직이기만 해도 상공에서 대려!”


‘소를 산에 어떻게 끌고 올라가?’


오랜만에 무거운 걸 짊어져 열이 오른다.

하지만, 등에 따끈따끈한 쌀밥의 재료가 있다.


곡식은 제 놈이 빈틈을 채워 군장 안 흔들리고 좋다.

쌀과 옥수수가 촘촘하게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저마다 필수로 챙긴,

과거로 회귀하는 듯한, 성냥.


“댐이 왜 그런데?”


“작전장교 하는 소릴 누가 들었는데, 3일 버팄단다.”


“3일? 뭔 3일?”


“잡히고 길에서 당할 때까지. 강하게 안 당했겠나. 거의 고문이지. 1지역대는 대비하고 이동해서 역매복 깔고 대기했는데 아무도 안 왔다. 개미 새끼 하나. 잡힌 사람들이 안 불었어. 군인이 복수가 뭐 있노. 내려와서 면상을 봐드려야지.”


“군인이 아니라 게릴라지.”


“까는 소리 말고 빨리 가!”


RPG와 RPD를 어깨에 얹기 시작한다.

손에 들고 가던 탄통들을 군장과 짐 위에 얹기 시작한다.


특유의 작은

찌그덕~

달그락~

터벅 터벅

행군 소음이 이어진다.


계속 빨라진다.

등 뒤에서 포성이 민다.


가라. 가라.

북으로 가라.


“저기 봐.”

“빨리 가, 그냥.‘


”보라고! 뒤를 보라고!“

”왜.“


아,

소리만이 아니다.


저 밤하늘 남쪽 끝이 작게 빛난다.

불규칙하게 빛난다.


그리고,

소리와 빛이 일치한다.


우르릉. 쾅. 쾅. 우릉...


”오, 마이, 갓!“


”다 왔어. 아군 다 왔어.“


”쳐진다. 빨리 가자.“


”오, 마이, 갓!“


여기는 피가 끓는

젊음의 고향

용감한 사나이가

함께 뭉쳤다...


북으로.

북으로.

물이 얼기 전에

압록강 물 뜨러!



승리의 쟁취를 위해 적의 중심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

- 폰 클라우제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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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릴라 불면의 밤 6 23.05.22 298 8 12쪽
322 게릴라 불면의 밤 5 23.05.15 272 8 11쪽
321 게릴라 불면의 밤 4 23.05.08 247 9 11쪽
320 게릴라 불면의 밤 3 23.05.01 270 11 11쪽
319 게릴라 불면의 밤 2 23.04.24 292 13 11쪽
318 게릴라 불면의 밤 +1 23.04.17 325 11 11쪽
317 인터메쪼 - 오컴의 면도날 5 +2 23.04.10 272 12 11쪽
316 인터메쪼 - 오컴의 면도날 4 23.04.03 264 9 11쪽
315 인터메쪼 - 오컴의 면도날 3 23.03.27 263 8 11쪽
314 인터메쪼 - 오컴의 면도날 2 23.03.20 264 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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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7 Hand to Mouth 비망록 4 23.02.13 228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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