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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여우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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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여우
작품등록일 :
2022.05.11 23:57
최근연재일 :
2022.05.16 23:55
연재수 :
3 회
조회수 :
744
추천수 :
45
글자수 :
12,445

작성
22.05.16 23:55
조회
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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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글자
10쪽

1. 팔천만 분의 일의 드라이버 (2)

DUMMY

1. 팔천만 분의 일의 드라이버 (2)



일주일 뒤.


우혁은 강남역 부근의 한 대형 빌딩 앞에 서 있었다.


뼈의 모습이 드러날 정도로 바싹 마른 몸과 해골처럼 퀭한 눈두덩, 창백하니 핏기가 없는 피부. 나름 깔끔하게 하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도 완연한 병자의 모습은 숨길 수 없는 모습이었다.


혹시 길가는 사람들이 보기라도 할까, 얼굴이 보이지 않게 모자를 깊게 눌러쓴 우혁은 등에 맨 작은 배낭을 고쳐맸다. 얼마 남지도 않은 세간살이를 모두 정리하고, 옷가지 한 벌과 지갑 하나만 들어있는 배낭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내가 미쳤지.”


우혁은 빌딩을 올려다보며 자조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일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시한부 인생을 구원해준다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에 다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여기까지 온 꼴이라니.


어차피 머잖아 죽을 목숨이니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포자기한 걸까. 아니면 근거도 뭣도 없는 헛소리를 지껄이는 약팔이에게까지 의지할 정도로 살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양쪽 모두일지도 몰랐다.


그러나 우혁의 눈은 죽음을 앞둔 사람답지 않게, 마치 굶주린 맹수의 그것처럼 형형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다 포기하고 방구석에 처박혀서 죽을 날만 기다리는 것보다야, 뭐든 끝까지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쪽이 성미에 맞지 않겠나.


이대로 허무하게 죽고 싶지는 않다. 우혁은 빌딩의 정문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일주일 전 그를 찾아왔던 검은 정장의 사내였다.


“오셨군요.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최우혁 씨.”


마치 우혁을 기다리고 있기라도 했는지 빌딩 안에 들어오자마자 R맨이 다가와 인사를 건넸다.


“······영광은 무슨.”


R맨의 말에 우혁은 작게 혀를 찼다. 왠지 모르게 드는 확신이지만, 저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는 자신이 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만 같았다.


“정리는 다 끝나셨습니까?”

“댁 말대로 다 정리했지. 팔고, 버리고, 집주인한테 얘기 남기고.”


신변을 정리하고 오라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 든 생각은, 이 인간들이 자신을 어디 불법의료시설에 잡아가서 장기라도 빼내려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암세포가 전이된 장기를 빼서 쓴다고 해 봐야 어디다 써먹는다는 말인가. 잠깐 고민했던 우혁은 그냥 R맨의 말대로 신변을 정리하는 쪽을 선택했다. 어차피 죽기 전에 할 일을 조금 일찍 하는 것일 뿐이니 딱히 거리낄 만한 이유도 없었다.


“이제 나한테 남은 건 이 몸뚱이밖에 없수.”


다 죽어가는 몸뚱이긴 하지만. 우혁은 비식 웃으며 제 가슴께를 톡톡 두드렸다.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하긴 했지만, 숨길 수 없는 짙은 절망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R맨이 옅은 미소와 함께 말했다.


“믿어주시니 기쁘군요.”

“······하.”


우혁이 기가 차다는 듯 한숨인지 웃음인지 모를 소리를 흘렸다.


믿기는 얼어 죽을. 도무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없는 작자가 아닐 수 없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죠. 저를 따라와 주시길.”


그렇게 말한 R맨은 몸을 돌려 빌딩의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우혁은 신기한 구경거리를 보는 듯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에 모자를 깊게 눌러쓰며 그의 뒤를 쫓았다.


엘리베이터에 탄 R맨이 엘리베이터 버튼들을 꾹꾹 눌렀다. 8, 3, 4, 6, 그리고 10. 마치 무슨 마법의 비밀공간이라도 가는 양 이상한 패턴으로 버튼을 누르는 모습에 우혁이 R맨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지금 뭐 하는 거요?”

“아, 저희가 갈 곳은 이 빌딩의 최하층입니다. 평범한 방법으로는 내려갈 수 없지요.”

“그건 또 뭔 개······”


저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으려던 우혁의 말이 엘리베이터의 움직임과 함께 멎었다.


어쩔 수 없는 반응이었다. 분명 R맨이 누른 층은 지상층들이었는데, 엘리베이터는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으니까.


우혁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으로 R맨을 바라봤다. R맨이 예의 그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하지만 어쩐지 모르게, 그 미소는 이전과 달리 묘한 섬뜩함을 담고 있었다.


“말기까지 진행된 암을 치료해드린다고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지금까지의 평범한 상식들은 되도록 빨리 잊어버리시는 게 우혁 씨를 위해서도 좋을 겁니다.”

“······.”


우혁은 멍한 얼굴로 R맨의 얼굴을 바라봤다. 엘리베이터는 우우웅 거리는 소리를 배경으로 끝도 없이 아래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마치 빛 한 점 없는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는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얼마나 침묵이 이어졌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뒤섞인 말이 우혁의 입을 통해 바깥으로 나왔다.


“······댁들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는데, 나 얼마 안 가 죽을 시한부 목숨인 건 알지?”

“하하. 물론입니다.”


우혁의 말이 웃기게 들렸던 걸까. 조금 전까지 보이던 기이한 분위기가 허깨비마냥 사라지며 R맨이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시한부 인생을 굳이 더 일찍 죽이기야 하겠냐. 반쯤 마음을 비운 우혁이 아무 표시도 없이 붉은색으로 깜박이는 엘리베이터 패널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이건 언제까지 내려가는 건데?”

“조금 걸릴 겁니다.”


그 동안에 간단한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죠. R맨이 말했다.


“이야기?”


우혁의 한쪽 눈썹이 치켜올라갔다. 이 상황에서 갑자기 무슨 놈의 이야기라는 말인가.


하지만 우혁은 잠자코 R맨의 이야기를 듣기로 했다.


지금 같은 타이밍에 꺼내는 이야기다. 모르긴 몰라도 자신의 병을 치료할 방법이나, 자신이 해야 할 레이스에 대한 이야기와 관계가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양쪽 모두일지도 몰랐다.


R맨이 우력을 보고 물었다.


“간단하게 요약하는 편이 좋으십니까. 아니면 길게 풀어드리는 편이 좋으십니까.”

“요약이요.”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할 생각이길래 저런 말까지 하나 싶긴 하지만, 일단 요약이 가능한 이야기면 굳이 길게 이야기를 끌 필요는 없다. 우혁은 망설임 없이 전자를 선택했다.


“한국 분들은 언제나 요약 쪽을 선호하시더군요.”


R맨이 슬그머니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쉽고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자면, 전차의 신께서 자동차 레이스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데, 다른 신과 성좌들의 힘을 빌려 여러 세상의 전사들을 모아 랠리 레이스 대회를 열고 계십니다. 그리고 수많은 대회를 제패하고 정점의 자리에 오른 챔피언과 그의 팀은 어떤 소원이든 이룰 수 있는 권리를 손에 넣게 되고요.”


우혁은 두 눈을 꿈벅였다.


“······예? 뭐라고요?”


얼마나 지났을까. 우혁은 멍한 목소리로 R맨을 향해 되물었다. 저 자신이 생각해도 멍청하기 그지없는 목소리였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대뜸 저 근본 없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에 이해할 수 있으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신. 성좌. 소원. 전사. ······자동차 랠리 레이스? 챔피언?


중간까진 여느 판타지 영화에서든 의미 없이 지나가는 고대 신화 같은 이야기이긴 한데, 갑자기 이상한 키워드가 끼어드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차라리 사이비 종교였다면 좀 더 그럴듯하게 이야기를 꾸며냈을 것 같다. 혼란스러움을 숨기지 못하는 우혁의 표정을 보며 그럴 줄 알았다는 듯 R맨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처음엔 다들 그렇게 반응하시더군요.”

“농담치곤 좀 당황스러운데요.”

“농담이 아닙니다.”


우혁은 R맨의 진지한 목소리에 입을 닫았다. 그는 진심이냐는 듯 R맨을 똑바로 바라봤다. 선글라스 너머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그걸 믿으라고요?”

“그러면 말기 암을 완치시킨다는 말은 믿겨지십니까?”


R맨이 되물었다. 우혁의 입이 다시 다물어졌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긴 했다. 헛소리의 수준에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양쪽 다 헛소리인 건 매한가지 아니던가.


설마 저 괴상한 이야기가 진심으로 하는 소린가? 우혁은 미간을 찡그렸다. 어쩌면 저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속에 뭔가 다른 뜻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슬슬 다 왔군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머리를 싸매고 있는 우혁을 뒤로하고, R맨이 입을 열었다. 뭘 보고 다 왔다고 하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엇.”


덜컹 하는 느낌과 함께 한없이 아래로만 내려가던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우혁은 정체불명의 신화 이야기에 대한 생각은 잠시 접어둔 채, 뭐가 나올지 모르는 엘리베이터의 문을 바라봤다.


위잉-.


여느 엘리베이터와 같은 기계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뭔가 고급 호텔 느낌이 나는 제법 넓은 홀이었다.


지금까지 겪어온, 어딘가 이상한 구석이 있는 경험들과는 달리 의외로 정상적인 홀의 모습. R맨이 먼저 홀 안으로 발을 내딛으며 말했다.


“가시죠.”

“······.”


하지만 우혁은 그의 뒤를 따라가지 않았다. 아니, 따라갈 수 없었다.


그의 눈은 홀의 중앙. 정확히는 홀 중앙에 위치한 카운터에 고정되어 있었으니까.


그곳에는 한 노인이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을 길게 기른 채 해리포터에나 나올 법한 요상한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


노인의 길게 늘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삐죽 튀어나온 귀의 모습에, 기어코 우혁의 입에서 욕설이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아니 미친,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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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데드맨 랠리 +2 22.05.11 459 19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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