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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여우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드라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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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여우
작품등록일 :
2022.05.11 23:57
최근연재일 :
2022.05.16 23:55
연재수 :
3 회
조회수 :
733
추천수 :
45
글자수 :
12,445

작성
22.05.1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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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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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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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쪽

0. 데드맨 랠리

DUMMY

0.


온 몸을 울리는 엔진의 박동. 숨 막히는 열기. 중력. 스피드. 삐걱이는 서스펜션의 울림.


오로지 승리만이 가치 있는 세계에서, 드라이버는 살아간다.


정상을 향해. 그리고 그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과 투쟁하기 위해.





쿠구궁.


폭력적인 진동이 핸들과 시트를 통해 온몸으로 전해진다.


깨진 앞 유리창 사이로 매캐한 매연과 함께 빗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고글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와 빗줄기가 시야를 가렸다.


계기판의 바늘은 시속 120km를 가리키고 있었다.


포장도로라곤 하지만 수많은 잔해와 장애물로 오프로드나 마찬가지인 길을 달리는 속도로서는 미친 수치나 마찬가지였다. 진도 7.5의 강진이 수시로 이어지는 도심 속이라면 더더욱.


수 초에 한 번씩 손가락만한 잔해조각이 본넷 위로 튀어 우혁의 몸에 상처를 냈다.


하지만 우혁은 아무 것도 느끼지 못했다. 초인적인 집중력과 드라이버로서의 본능, 그리고 초능력에 가까울 정도의 육감을 모조리 달리는 데 쏟아 붓고 있었으니까.


철저하게 기계적으로 핸들과 기어를 움직이는 손놀림에는 빈틈이 없다. 붉은 피딱지가 묻어있는 고글 사이로 보이는 맹금 같은 시선은 눈앞의 길을 노려보았다.


무너진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조각,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는 자동차의 잔해들.


가로등은 부러진 지 오래고, 간간히 원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붕괴한 건물들의 모습도 보인다.


쿠구궁.


다시 한 번 진동이 울린다. 저 멀리서 수십 층짜리 거대 빌딩이 모래성처럼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동시에 길거리에 붙은 표지판이 가리키는 방향이 반전한다. 이제 저쪽으로 향하는 길은 없다.


이제 어느 쪽으로 가야 하는 거지? 본능적인 판단으로 표지판을 쫓아 핸들을 돌리지만 그 앞에 뭐가 나올지는 모른다.


인컴으로 오퍼레이터의 무전이 이어지고 있을 테지만 양쪽 귀의 고막이 나간 우혁으로서는 알 길이 없었다. 한참 전부터 그의 귓가에 들리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길을 안내해 주는 내비게이터 역할을 해야 할 보조드라이버는 피투성이가 되어 안전벨트에 매달린 채 덜렁거린다. 얼굴 한가운데 팔뚝만한 철근이 꽂힌 상태에서 살아있을 순 없으니 길안내도 해줄 순 없을 것이다.


우혁은 그저 본능만을 따라 차를 몰았다.


여기만 지나면 골 지점까지 직선코스다.


액셀을 밟은 발을 떼지 않은 채 거칠게 핸들을 비틀어 코너를 돈다.


우악스러운 관성 드리프트에 차체가 삐걱이며 비명을 지르지만 우혁은 상관하지 않고 액셀을 더 강하게 밟았다. 속도를 떨어트리는 순간 그의 뒤를 따르는 이들에게 금세 추월당할 테니까.


운전석에 붙은 패널에는 1/16라는 숫자가 깜박이고 있다. 출발선을 떠난 57대 중 살아남은 이는 고작 열여섯뿐이었다.


두웅.


지진과는 다른, 묵직한 진동이 느껴진다.


등 뒤에서부터 스물스물 올라오는 불안감. 천천히 그를 쫓듯 따라오는 진동의 크기가 커져갔다.


우혁은 반쯤 깨져 너덜거리는 백미러를 보았다.


그곳에는 괴물이 있었다.


사람 키를 훌쩍 넘는 거대한 바퀴를 가진 검은 몬스터 트럭. 위협적으로 그려진 해골 무늬 도색은 섬뜩한 붉은 색이었다.


레이스가 시작하자마자 네 대의 차량을 뭉개면서 출발한 바로 그 놈이었다.


불길한 무광의 검은색으로 칠해진 놈의 앞쪽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차량 파편이 매달린 채 마구 흔들린다.


우혁에게는 그 모습이 마치 자신을 향해 흔드는 사신의 손처럼 보였다.


놈은 자신을 노리고 있다.


니트로차져를 켠 채 불꽃을 뿜으며 다가오는 몬스터트럭의 모습이 점점 커져왔다.


"괴물 같은 새끼."


우혁은 망설임 없이 니트로차져를 작동시켰다.


한계를 한참 뛰어넘은 혹사에 강화 V8엔진이 굉음을 내질렀지만 우혁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극도로 올라간 열과 압력에 엔진 채로 터져버리든, 등 뒤를 달려오는 몬스터 트럭의 바퀴 밑에 깔리든 살 방법은 없을 테니까.


단지 믿을 뿐이다.


이 머나먼 이면세계까지 그를 데려와서,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운명이라는 놈을.


핸들이 부서질 듯 꽉 쥐고, 더 이상 밟을 수 없을 때까지 액셀을 밟는다.


이곳까지 온 이상 곱게 죽어줄 생각은 없다.


죽음은 한 번으로 족하니까.


계기판의 바늘이 미친듯이 치솟기 시작한다.


“이미 한 번 죽었던 놈들에게까지 죽어줄 순 없지.”


이놈이고 저놈이고 결국은 다 죽었던 패배자들. 그런 놈들에게 죽느니 차라리 장렬하게 폭사하는 쪽이 성질에 맞다.


당장이라도 터져버릴 듯한 엔진을 눈앞에 두고 깊게 숨을 들이쉰다.


타버린 엔진오일 냄새. 폐허의 냄새. 죽은 자들의 냄새.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혁은 죽은 숨결을 내쉬었다.


이곳은 데드맨 랠리(DEADMAN RALLY).


죽은 자들의 레이스다.


작가의말

결정장애가 와서 둘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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