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녹색여우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 드라이버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스포츠

녹색여우
작품등록일 :
2022.05.11 23:57
최근연재일 :
2022.05.16 23:55
연재수 :
3 회
조회수 :
725
추천수 :
45
글자수 :
12,445

작성
22.05.12 20:30
조회
156
추천
14
글자
12쪽

1. 팔천만 분의 일의 드라이버 (1)

DUMMY

1. 팔천만 분의 일의 드라이버 (1)


“최우혁 씨 되십니까.”

“······뭡니까?”


우혁은 썩은 동태 같은 눈으로 현관 앞에 서 있는 사내를 바라봤다.


새까만 검은 정장에 단정하게 정리한 머리, 짙은 선글라스까지. 영화에서 비밀요원으로 나오면 딱 어울릴 것 같은 사내는 입을 곧게 다문 채 현관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반면 우혁의 상태는 표현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초라했다.


바닥에 질질 끌리는 츄리닝 바지와 목 늘어난 티셔츠. 오랫동안 감지 않아 떡진 채 이리저리 삐쳐 있는 머리는 한층 우혁의 몰골을 지저분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오랫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은 폐인의 몰골이었다.


거기에 안색마저 초췌한 것이, 아무리 좋게 봐 줘도 병색이 완연한 병자의 모습. 조금 과장을 덧붙이면 당장이라도 죽어 나자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반송장이라 해도 될 정도였다.


그래서일까, 저도 모르게 인상을 쓴 얼굴이 더욱 어두워 보였다.


점심 때 즈음 울리는 초인종 소리에 느즈막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보니 웬 떡대가 자신을 찾는다. 일주일도 넘게 정리하지 않아 까글까끌한 수염을 짜증스럽게 어루만지며 우혁은 남자를 바라봤다.


“누구신진 모르겠지만 내가 최우혁은 맞는데요.”


퀭한 눈으로 남자를 마주하는 우혁의 눈에 빛이란 없었다.


마음이 꺾인, 죽은 자의 눈빛.


남자가 누군지 알 바 아니었고, 남자가 해를 끼칠지 말지도 알 바 아니었다.


어차피 곧 뒈질 목숨, 위험이고 뭐고 신경 쓰는 것도 웃기는 일이지 않나.


“사진과는 많이 달라지셨군요.”


그렇게 말한 남자가 대뜸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그의 손에 들린 사진을 본 우혁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건 또 뭐야.”


사진 속에는 우혁, 아니 과거의 우혁이 찍혀있었다.


레이서 슈트를 입은 채 샴페인을 터트리는 모습의 자신은 여느 때보다도 밝은 웃음을 짓고 있다.


“······.”


등 뒤의 현수막에 쓰여진 ‘다카르 랠리 3위 기념’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자 우혁의 눈이 미세하게 떨려왔다.


분명 자신이다.


인생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자신.


그리고 그렇기에 더욱 보기 싫은 사진.


“이 염병할 사진은 어디서 구했어요?”


대답 대신 남자의 입꼬리가 조금 올라갔다.


비웃는 걸까. 우혁의 눈썹이 꿈틀했다.


“팔천만 분의 일의 사나이라고 하면 아직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유명인입니다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랠리 드라이버 에이전시, R맨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오늘은 우혁 씨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하러 왔고요.”

“허.”


악수하자는 듯 나오는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우혁의 입에서 허탈한 숨이 흘러나온다.


남의 집 문 두들겨서 대뜸 옛날 사진을 보여주더니, 이제는 이름도 밝히지 않고 별 이상한 이름으로 불러 달란다.


“이런 시발. 죽을 때 되니까 별의별 이상한 것들이 다 꼬이네.”


저도 모르게 욕부터 한 우혁이 인상을 팍 쓰고 R맨이라는 남자를 노려봤다.


그는 대뜸 욕부터 얻어먹었는데도 입가의 옅은 미소를 지우지 않고 여전히 우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그리도 재수 없게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우혁이 신경질적으로 내뱉었다.


“이봐요. 내가 이래 뵈도 살날이 얼마 안 남은 몸이거든? 무슨 말이냐면, 뒈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리에요. 그러니까 이딴 말 같지도 않은 장난 집어치고 좋은 말 할 때 돌아가시죠. 응?”

“알고 있습니다.”


뭐? 우혁은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안다고? 시한부 인생인 걸 알면서 이렇게 찾아왔다고? 우혁은 황망한 표정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대체 이 작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R맨의 다음 말. 그 말이 우혁의 생각을 단번에 날려버렸다.


“우혁 씨가 가지고 계신 병. 그것을 고치는 것이 계약금입니다.”


처음에는 남자가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가 꺼낸 말의 의미를 알게 된 우혁의 뱃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확 끓어올랐다.


시야가 하얘지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우혁은 R맨의 멱살을 잡아 올리고 상처 입은 맹수처럼 고함치고 있었다.


“-네가 뭘 알아, 이 새끼야!”


우혁은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진 몸에서 뿜어져 나오리라곤 믿기 힘든 힘으로 자신보다도 커다란 거구의 남자를 단번에 들어 올려 벽에 처박았다.


“암이야! 그것도 말기! 길어야 두 달도 안 남았어! 네가 신이라도 돼? 어? 돈이 필요한 게 아니라고! 치료를 해도 가망이 없어! 이미 온 장기에 다 퍼져서 뒈지는 것만 기다리는 인생인데, 뭐? 병을 고쳐?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스물여덟 살, 가벼운 마음으로 간 종합건강검진에서 받은 췌장암 판정.


이미 치료가 의미 없는 시기라는 말을 들었다.


- ······길어야 삼 개월입니다.


의사가 하는 말은 건조했다.


사실상의 사망선고였다.


가족에게는 말도 꺼낼 수 없었다.


아무리 가망이 없어도 부모가 자식을 버릴까. 빚을 내서라도 치료하자고 하실 것이 뻔한데.


집안 형편이 많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가망성도 거의 없다는 항암치료에 들어가는 돈은 결코 적은 편이 아니다.


암이 두려운 것은 그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서서히 말라죽이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어차피 죽어야 할 거면 깔끔하게 혼자 죽자.’


고작 몇 달 더 연명하자고 죽어가는 길까지 가족 발목 붙잡고 죽는 짓은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같이 죽느니 혼자 죽는 게 낫다. 그렇게 생각했다.


가족에겐 알리지 말아 달라고 의사에게 신신당부를 하고 애써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행동하며 적당한 핑계를 대고 집을 나온 게 한 달 전이다.


처음에는 마지막 남은 인생, 하고 싶은 것 다 하며 즐기다가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간 하고 싶었는데 못해본 일들도 해보고, 주위의 인연도 정리했다. 그렇게 마지막 미련들을 다 털어버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모든 걸 다 놓고 포기하면 편해질 줄 알았건만, 오히려 삶에 대한 갈망이 꺼지질 않았다.


당장에라도 부모님한테 달려가서 살려달라고, 죽고 싶지 않다고 빌고 싶다는 충동이 하루에 수십 수백 번씩 찾아온다.


그래 봐야 결국 다 같이 절망 속에서 몸부림칠 것을 알고 있는데도, 자신이 죽고 난 뒤 가족들은 자신 때문에 더 힘들어할 것을 아는데도 도저히 이 고독을 이겨낼 자신이 없었다.


고독하게 죽음을 기다리는 것.


그것은 우혁이 겪은 그 어떤 일보다 끔찍한 일이었다.


매일 아침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죽음이 가까워지는 것을 실감한다. 그것은 도저히 멀쩡한 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하루종일 술에 절어있어도 시한부의 끝이 다가오는 것만큼은 더욱 선명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을 잊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술조차도 잊지 못하게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자살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다. 처음에는 너무 괴롭고 괴로워서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하기도 했었으니까.


하지만 이대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희망이라곤 한 톨도 보이지 않는 미래였지만, 살고 싶었다.


삶에 대한 열망은 커져가고, 그만큼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재차 깨달으며 우혁의 가슴 속 상처는 늘어만 갔다.


그렇게 절망의 늪 빠져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던 때, 갑자기 나타나선 하는 얘기가 그깟 병 고쳐줄 테니 스카웃을 하고 싶다고 한다.


악질도 이런 악질적인 장난이 없지. 우혁이 이성을 잃고 악다구니를 쓴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다.


“후우, 후우. 어디서 병 얘길 주워듣고 사기 치려고 왔나 본데, 그딴 식으로 살지 마라. 응? 시한부 선고받은 사람 등쳐먹으면서 인생 살고 싶냐?”


퉷. 우혁이 뱉은 침이 R맨의 정장 앞자락에 붙었다.


하지만 R맨은 그런 우혁의 행동에도 화가 나지 않는지, 묵묵히 손수건을 들어 침을 닦아내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부분도 전부 알고 있습니다. 저희 제안은, 우혁 씨의 암을 완치시킨다는 뜻입니다.”


그 말에 집 안으로 들어가려 몸을 돌렸던 우혁의 몸이 딱 굳었다.


지금 내가 잘못 들었나. 우혁은 뒤통수를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암. 그것도 여기저기 전이돼서 치료가 불가능한 말기 암을 완치시킨다고 한다.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오히려 머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이봐. 미친 양반아. 내가 가진 암을 치료할 수 있었다면 노벨상 감이야. 댁들이 무슨 신이라도 돼?”

“저희가 말하는 것은 의학적인 치료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뭐?”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우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무슨 사이비 종교 같은 내용일까. 우혁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거나 말거나 R맨은 무덤덤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희가 신은 아닙니다만. 글쎄요, 오히려 악마의 거래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 그래요. 계속 해 보시죠.”


그래 말이나 해 봐라. 이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말하는 우혁의 눈에는 여전히 생기가 없었다.


하지만, 어째선지 모르게 작은 희망의 불꽃이 그도 모르는 그의 마음속 한구석에서 천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희가 필요한 것은 당신의 능력입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삼 년 전 다카르 랠리. 아르헨티나 북서부의 안데스 산맥.


R맨의 말에 우혁의 몸이 움찔 떨린다.


잊었을 리가 없다.


그의 인생을 통틀어 가장 위험했던 순간.


그리고 그에게 가장 큰 영광을 가져다주었던 순간.


“안데스 산맥의 가장자리를 지나던 중, 낙석을 동반한 갑작스런 산사태가 랠리 중이던 차량 한 대를 덮쳤지요. 그 누구도 그 차량의 드라이버가 살아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헬리콥터로 그 장면이 중계되었을 때, 생존을 떠올린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만큼 그 순간은 희망이란 걸 가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기적과도 같이, 그 산사태를 모두 피해내고 흙먼지 속에서 뛰쳐나왔죠. 단순한 운이 아닌, 삶에 대한 집념과 스스로의 능력으로.”


R맨은 잠시 뜸을 들이듯 말을 멈추고 우혁을 바라봤다. 여전히 죽은 자와 같은 눈빛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최우혁 씨. 당신의 이야기입니다.”

팔천만 분의 일.


그 극한의 상황에서 살아남을 확률.


그날 이후로 우혁의 타이틀은 ‘팔천만 분의 일의 드라이버’가 되었다. 고작 삼 년 전의 일이다.


잠시 침묵을 지키고 있던 우혁이 입을 열었다.


“······뭐 일단 댁들이 말하는 게 사실인지는 제쳐두고서라도, 난 아마추어에 불과해.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돌발상황에 잘 대처하기는 하는데, 랠리 드라이버로서의 능력은 일류가 못 된다고.”


랠리에서 가장 중요한 건 결국 드라이버로서의 재능이다. 우혁은 냉정하게 스스로를 평가할 줄 알았다.


“다카르 랠리에서 3위에 들어간 것도 반쯤은 그 산사태 덕분이지. 내 입으로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랠리에 승리하고 싶으면 다른 사람을 알아보는 게 좋을 거요.”


임기응변 능력은 단순히 부수적인 것일 뿐, 지난 랠리의 경우가 특별 케이스였을 뿐이다. 우혁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분명 그의 말은 정론이다.


만약, 보통의 랠리였다면 말이다.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R맨은 깔끔하고도 단호하게 일축했다.


“최우혁 씨. 다시 말하지만,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당신의 능력입니다.”


선글라스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한 눈빛으로 우혁의 죽은 눈을 마주보며, 한 치의 흔들림 없이 그가 선언했다.


“당신이 달려야 할 랠리는 목숨을 걸어야 하니까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포칼립스 드라이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 1. 팔천만 분의 일의 드라이버 (2) 22.05.16 122 12 10쪽
» 1. 팔천만 분의 일의 드라이버 (1) 22.05.12 157 14 12쪽
1 0. 데드맨 랠리 +2 22.05.11 447 19 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