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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여우 님의 서재입니다.

녹색여우 판타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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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여우
작품등록일 :
2019.10.29 20:37
최근연재일 :
2019.10.31 02:48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882
추천수 :
135
글자수 :
81,500

작성
19.10.31 01:41
조회
116
추천
5
글자
7쪽

산 중턱 산장에서 만난 어떤 남자의 이야기

DUMMY

.


그날은 평소보다 안개가 깊었던 날이었지요. 마치 오늘처럼.


나는 원체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서, 눈이 오는 날에도 산을 오른답니다. 비가와도 어지간히 심한 비바람이 아니라면 그냥 산에 오르는 편이지요. 덕분에 죽다 살아난 적도 꽤나 됩니다. 하하.


어쨌든 그날도 저는 산을 오르려 했었더랬지요. 방금 말했던 것처럼 그날은 안개가 무지하게 깊었어요. 어지간하면 안개가 조금 끼어도 산을 오르는데, 등산로에 발을 딱 들여놓자마자 아, 오늘은 날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니까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온통 희뿌연 색이었어요. 그냥 사방에 잡히지 않는 커튼을 둘러댄 것 같았다니까요. 눈앞에선 뭔가 아른거리는데 팔을 죽 뻗어도 아무 것도 잡히지 않으니 내가 길 위에 있는지, 절벽 위에 서 있는지 알 턱이 없지요.


그러고 보니 지금도 그런 안개군요. 안개 치고는 좀 심하지요? 이 근처는 지형이 워낙 특이한 곳이라 그렇게 안개가 짙게 낀다더군요.


처음에 입구의 경비가 안개가 심상찮다고 올라가지 말라 했을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저는 산 중턱에 와서야 그 경비의 말을 무시한 것을 후회했지요. 댁도 경비 말을 무시하고 몰래 들어온 건가요? 역시 그렇군요.


솔직히 그 경비 인상이 별로 안 좋잖아요? 늙어서 고집스런 얼굴도 그렇고. 이상하게 그 경비 말을 들으면 더 올라가고 싶어진다니까요. 하하. 꼭 올라가지 말라면서도 사람을 겁먹은 사람 취급하는 말투니까 말입니다. 오기로라도 올라가고 싶어지지요. 당신도 그랬나 보군요?


하여튼 점점 올라갈수록 안개가 짙어지는데, 이게 보통 안개와는 다르게 조금 끈덕진 느낌이 들더란 말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저기 바깥의 안개도 똑같을 텐데. 안 그래요?


저는 산장 근처까지 와서야 뭔가 심상찮다는 걸 느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이 부근이 인적이 좀 뜸하고 으스스하긴 하잖아요. 하지만 전 그냥 계속 올라왔지요. 이래 뵈도 제가 기가 좀 강한지라, 그땐 별 일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산 중턱, 그러니까 산장이 있는 곳까지 올라왔지요. 그런데 산장 안으로 들어오니 뭔가 싸한 기분이 드는 겁니다. 뭐, 그 때는 사람이 없어서 그러려니 하고 난로를 틀고 몸을 녹였습니다. 안개가 낀 날이 으레 그렇지만, 그날따라 더 습하고 추웠더랬지요.


한 두어 시간쯤 지났을까요? 안개도 심한데 그냥 내려갈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난로를 쬐고 있으려니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리는 겁니다. 처음에는 그냥 바람소리겠지 하고 앉아있었는데, 그 소리가 계속 들리니까 뭔가 이상하더랍디다. 그냥 바람소리랑은 다르게 무척이나 거슬리던 소리였지요.


그건 숨소리였어요.


그것도 사람 숨소리가 아니라 무슨 짐승의 숨소리마냥 약하게 가르릉 거리는 소리 말입니다. 그르르르- 하고.


저는 처음에 무슨 산에 짐승이 돌아다니나 했습니다. 그런데 그 소리가 꼭 귓가에서 울리는 것처럼 가까이 들리더군요. 순간 오싹 하고 소름이 돋는데, 솜털 하나하나가 빳빳하게 일어나는 것 같더라고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산장 안이 희뿌옇더군요. 세상에! 온통 희뿌연 안개가 산장 안까지 들어와 있었습니다. 닫힌 문틈으로 스믈스믈 기어 나오는 안개를 본 적 있어요? 그건 제 평생 한 번도 본 적 없는 괴상한 모습이었습니다. 살아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던 안개라니. 아 물론 믿기 힘든 건 알겠지만, 허깨비를 보거나 한 건 아니라니까요.


그 안개는 언뜻 느린 것 같아 보였지만 무척이나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안개가 다 그렇듯이, 제 눈앞까지 와 있는 것도 느끼지 못했지요. 손목에서 느껴지는 싸늘한 느낌에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치 사람 같은 모습을 한 안개가 제 손목을 잡고 있었습니다. 저는 너무 놀라서 비명도 지를 수 없었어요. 사람 모양을 한 희뿌연 뭔가가 자기 팔목을 잡았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건 헛것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했습니다.


그 안개. 아니, 그건 이미 안개가 아니라 괴물이었습니다. 제 손목을 꽉 잡고 놓아주질 않는데, 저를 보고 입을 쩍 벌리더군요. 전 눈앞까지 그 안개의 입이 다가와서야 정신이 들어서는, 비명을 지르며 손을 뿌리쳤지요. 사람이 죽음 직전의 상황에 몰리면, 괴력을 발휘한다고 하더니 제가 그랬었나 봅니다.


저는 무작정 산장 밖으로 뛰쳐나와서는 산 아래로 달렸습니다. 짐이요? 그런 거 생각할 틈이 있었겠습니까? 끈적거리는 안개 때문에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지만, 기억을 더듬어가며 거의 감으로 뛰고 또 뛰었지요. 글쎄 등 뒤에서 그 가르릉 거리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오는데, 목 뒤를 살살 간질이는 느낌이 등 뒤에서 절 잡으려는 그 안개의 손처럼 느껴져서 다리를 멈 출 수 없었다니까요.


산을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더군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는 어느 새 경비실 근처까지 내려와 있었고, 온 몸은 땀으로 흥건했습니다. 몇 번이나 넘어져서 옷은 엉망인데다 몸은 자잘한 생채기로 가득했지요.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지나 턱 밑으로 흘렀지만 저는 닦을 생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심장을 간신히 진정시키고 나니 모든 게 다 꿈같더군요. 한바탕 악몽을 꾸고 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무슨 손자국마냥 시퍼렇게 멍든 팔을 보는 순간 그런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경비실로 간신히 들어가자 예의 그 늙은 경비가 놀란 눈으로 절 쳐다보더군요.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니 늙은 경비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합디다. 이 산에는 안개 귀신이 산다고.


안개가 자욱한 날, 등산하러 올라온 사람들을 홀려서 잡아먹고는 그 사람 모양을 한 안개를 산 밑으로 내려 보낸답디다. 그리고는 얼마동안 평소처럼 행동하다가 그 사람은 안개처럼 사라져 버린다고 하더군요. 그러고는 절 보고 혹시 그 안개가 아닌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는데, 정말이지 소름 돋는 이야기 아닙니까?


그런 무시무시한 괴물한테서 살아 돌아왔다니. 저는 안도감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지요. 그날 이후로 너무 무서워서 며칠 동안 집 밖으로 나가질 못했었습니다.


그 좋아하던 산도 그런 일을 겪고 난 이후로는 도저히 갈 엄두가 나질 않더군요. 그래서 십 년이 넘게 다닌 등산동호회도 전부 탈퇴하고 산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습니다.

·

·····예? 그런데 지금 이 산장엔 왜 와 있냐고요? 글쎄요?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팔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고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어라? 이건······.


······안개?




그르르르르······.


작가의말

이것도 09년도쯤에 썼던 글이네요. 당시에 이래저래 단편글을 많이 썼었더랬죠. 네이버 소설카페에서 활동하면서 썼었을 겁니다.

으스스한 납량특집 같은 글인 걸 보건대 아마 이 글을 쓰던 당시에 여름이었을 것 같네요 :)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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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여우 판타지 단편집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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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끝) 후기 19.10.31 257 8 2쪽
14 혁명의 열쇠 19.10.31 174 8 32쪽
13 바람이 태어난 곳 19.10.31 122 5 16쪽
12 인간,악마,인간,괴물 19.10.31 161 5 17쪽
11 우상과 향수의 굴레 19.10.31 95 5 3쪽
10 도를 아십니까? 19.10.31 131 5 15쪽
9 당신에게 향하는 편지 19.10.31 98 5 9쪽
8 나를 이끌어 주었던 그 손의 온기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19.10.31 108 4 9쪽
» 산 중턱 산장에서 만난 어떤 남자의 이야기 19.10.31 117 5 7쪽
6 휴머노이드 테러 19.10.31 122 5 6쪽
5 시선 가득히 19.10.29 140 5 12쪽
4 마법은 위대해! +3 19.10.29 362 10 32쪽
3 불꽃을 빚는 노인 +2 19.10.29 621 19 14쪽
2 고양이는 민들레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3 19.10.29 1,166 28 4쪽
1 (시작) 소개 +1 19.10.29 1,209 18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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