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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여우 님의 서재입니다.

녹색여우 판타지 단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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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녹색여우
작품등록일 :
2019.10.29 20:37
최근연재일 :
2019.10.31 02:48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4,884
추천수 :
135
글자수 :
81,500

작성
19.10.29 20:47
조회
1,166
추천
28
글자
4쪽

고양이는 민들레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DUMMY

.


고양이는 느긋하게 담장 위에 앉아 앞발의 털을 고르다 말고 문득 고개를 치켜들었다. 연한 노을빛을 띄는 고양이의 뾰족한 귀가 연신 쫑긋이고, 앙증맞게 자리잡은 코가 벌름벌름 움직였다. 그날따라 예민해진 고양이의 코는 도시의 골목을 흐르는 묘한 공기를 느꼈다. 늘 맡던 도시의 냄새가 아니었다. 평소의 도시 냄새와 다를 것이 없었으나 그날의 냄새는 약간 눅눅했고, 약간 흙냄새가 묻어 있었다. 고양이는 이 냄새가 무슨 냄새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비가 오려는 것이다.


고양이는 이 묘한 흙내음이 섞인 젖은 공기를 좋아했다. 검고 숨막히는 공기로 가득한 도시에서, 이 비오는 날의 습한 공기는 언제나 고양이에게 묘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고양이는 그 느낌이 싫지 않았다. 그렇기에 고양이는 가끔가다 느낄 수 있는 이 냄새를 한껏 들이마셨다.


톡. 콧잔등에서 느껴지는 차가운 감촉에 고양이는 화들짝 놀라 일어나며 이리저리 고개를 흔들었다. 고양이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평소에도 짙은 회색으로 물을어 있던 하늘이었지만, 오늘은 그보다 더 짙은 먹구름이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었다. 금세 후두둑거리며 굵은 빗방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재빨리 미리 봐 둔 건물의 발코니 아래로 몸을 날렸다. 비가 오는 것은 좋아하지만, 비를 맞는 것은 싫었다.


어느새 굵은 빗줄기는 쏴아아 하는 소리를 내며 도시의 검고 매캐한 공기를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그 소리를 들을 때마다 털에 뭍은 지저분한 것들도 씻겨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저 멀리 사람들이 우산을 쓰고 종종걸음으로 빗속을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고양이는 비 오는 날이면 이렇게 비를 피하며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했다. 왜 비를 맞으면서 그렇게 길을 걸어갈까. 사람은 비를 맞는 걸 좋아하나? 소소한 의문을 뒤로하며 고양이는 입을 쩍 벌리곤 천천히 하품했다.


사람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는 것도 질린 고양이는 자신의 발 밑을 쳐다봤다. 거기엔 작은 화단이 있었다. 큼지막한 빗방울이 화단에 떨어지며 흙과 함께 잘게 부서져 튀어오르는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던 고양이는 문득 화단 한쪽 구석에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고양이는 조금 옆으로 움직여,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그것을 꽤 오랫동안 응시했다. 그것은 노랗고, 자그마했다. 고양이는 기억을 더듬어, 그것의 이름을 떠올리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양이는 그것의 이름을 기억해냈다. 동료 고양이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작고 노란 꽃잎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꽃의 이름은 민들레였다. 고양이는 도시 속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그 꽃을 본 적이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난생 처음 보는 꽃의 모습에 고양이는 호기심어린 표정으로 빗줄기 속에서 이리저리 춤추고 있는 민들레를 관찰했다. 샛노랗게 물든 꽃잎들이 빗방울을 튕겨내며 이리저리 끄덕일 때마다 고양이의 눈도 같이 위아래로 움직였다. 비냄새와 흙냄새 사이로 희미하게 꽃향기가 섞여들어왔다. 고양이는 그 냄새가 퍽 마음에 들었다.


한동안, 그렇게 고양이는 물끄러미 민들레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그치지 않고 계속 내릴 것만 같던 빗줄기도 잦아들고 있었다. 먹구름도 천천히 제 갈 길 찾아 흩어지고 있었다. 회색 먹구름들 사이로 따스한 햇빛이 도시 여기저기를 비추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보고 있던, 민들레에도 포근한 햇빛이 내리 앉았다. 잎사귀에 매달린 빗방울이 반짝 빛났다. 고양이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햇빛 속에서 민들레는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다시금 도심 속을 매캐한 매연이 가득 채울 때까지, 한동안 고양이는 민들레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고양이.jpg


작가의말

짧은 엽편글입니다. 길가다 고양이가 비를 피해 건물 옆에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썼네요. 삽화는 제가 직접 그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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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민들레에게서 무엇을 보았나 +3 19.10.29 1,167 28 4쪽
1 (시작) 소개 +1 19.10.29 1,209 18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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