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대략적인 구성과 인물들, 그들이 벌일 사건에 관한 건 대략적으로 짜여져 있는데, 전반적인 세계관의 분위기. 즉 동양풍이냐, 서양풍이냐, 그것을 뒤섞은 것이냐의 선택이 명확히 갈리지 않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글은 그 세계관에 들어간 듯 심상에 그려내며 써나가는 과정이다. 어찌 보면 여행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사실 그냥 쓰자면 세계관에 관한 설명은 두루뭉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리하면 분명 언제고 막히고 만다. 큰 바윗덩이가 물길을 막듯, 콱 틀어박혀 도저히 진행을 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고 말테지.
그렇다면 어느 것이건 확실하게 정해야 하는데, 이게 또 어거지로 정하지 않으면 마음이 동하지 않아 글이 써지지 않는다. 핑계라 해도 어쩔 수 없다. 세계관에 대한 이미지가 내 머리에 또렷이 자리잡히지 않는다면 뭘 써도 붕 뜬 느낌이 들 것이고, 아무리 많은 독자가 보더라도 나 스스로는 몰입해 쓰기보다는 물 위에 뜬 기름처럼 괴로워하며 글을 쓰겠지.
게다가 글의 시작점 또한 문제다. 차라리 뭘 모른다면 그냥 막 시작하겠지만 처음부터 시작인가, 중간부터 시작해 중간중간 과거를 암시하는 장면을 넣을 것인가의 선택이, 어설프게 아는 지금 너무도 어렵다. 둘 모두 일장일단이 있기에 올해 성과를 보지 못하면 글쟁이로서의 삶을 접어야 하는 나로선 감히 선택하기가 두렵다. 안 그래도 세계관의 대략적인 설정이 기존과 다른 모험을 하는 터라 더더욱.
사실 모든 게 고민이다. 서술을 하며 일상에서 쓰이는 외국어의 사용을 허용하느냐 마느냐. 허용한다면 어디까지 해야하나. 대화의 분위기는?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가볍게 하는가, 무겁게 하는가. 독자가 좋아할 취향과 내가 좋아하는 취향의 간극을 어찌 좁힐지.
내 앞에 많은 길이 있다. 어느 길로 가야할지 모르겠다. 모두가 정답일 수도, 모두가 오답일 수도, 단 하나의 정답이 있을지 모자란 나로선 알 수 없다.
이쯤 되어서 내가 할 일이란, 확고한 마음을 가지고 거침 없이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겠으나, 올 해가 마지막이라는 부담감은 섯불리 나서지 못하게 만든다.
꿈은 찬란하지만, 하루하루 나이를 먹어버린 나의 마음에는 어느샌가 곰팡이가 피어버렸나보다.
나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쓴다는 겁 모르던 소년은 어디로 가고, 키보드 앞에는 서른을 바라보는 겁 많은 청년이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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