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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노다노

내 시스템이 미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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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노다노
작품등록일 :
2023.12.03 23:24
최근연재일 :
2023.12.05 17:49
연재수 :
3 회
조회수 :
48
추천수 :
1
글자수 :
17,707

작성
23.12.05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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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 그런 사이 아닙니다

DUMMY

아름다운 음악 사이로 여성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금 시간은 오전 여섯 시 사십 분입니다. 오늘 날씨는 쾌청하고...”


아, 알람 설정 끄는 걸 잊었네? 어우, 머리 깨져.

어쩐지 데자뷰가 느껴지는 아침이었다.

다만, 눈을 떠보니 내 방이 아니었을 뿐.


낯선 천장이었다. 

낯설기는 하지만, 이세계 천장은 아닌 것 같은게, 천장에 거울이 큼지막한 것이 모텔인 듯 하다.

천장에 비치는 나의 꾀죄죄한 얼굴과 풀어진 셔츠, 반쯤 벗다 만 양말···, 그리고 옆에는 선철이가 모텔 가운을 입은 채 코를 골고 있었다.

 잘 생각해보니, 어제 홧김에 평소 주량을 넘겨 마셨던 것 같다.


“에이, 내일 어차피 회사 안 간단 거잖아, 마셔!!”

“야야, 선철아, 내가 진짜 너 믿고 마신다? 나 버리고 가면 안된다?”

“오늘 아니면 언제 마시냐, 마쎠~!”


그렇구나.

우리 의리남 고시생 선철이는 나를 버리지 않고 모텔로 데리고 왔구나. 네가 무슨 돈이 있어서···.

폰을 확인해 보니 역시나 내 필름이 끊긴 사이의 흔적이 있다.


[선철: 너는 진짜, 그거 마시고 맛이 가냐? 술값은 내가 낸다.]

[선철: 그러니까 모텔비는 니가 내라. ㅋㅋㅋ]


과연 카드 결제문자가 찍혀 있었다. 이 알뜰하게 다정한 자식.


2연술로 뻗었던 무거운 몸을 일으켜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는데, 어쩐지 어제보다는 머리가 아프지 않다. 분명 내 주량을 넘겼고, 이틀 연속이면 지금쯤 지옥일텐데, 왜 그냥 평범하게 힘들지?

500밀리 생수병을 단숨에 비우고 한결 개운해진 기분으로 곰곰이 생각을 해 봤다.


선철이가 깰세라 조용한 목소리로 오키를 불렀다.

“오키야...?”

- 기침하셨사옵니까. 금일의 목표를  들으시겠습니까?

“혹시, 니가 뭐 했니?”

- 잘 못 알아들었습니다. 무엇을 했다는 말씀이신지요?

“아니, 내가 술을 잘 못 마시는 편인데, 이틀 연속으로 마셨거든? 지금쯤 죽도록 고생해야할 것 같은데, 의외로 버틸만 한 게 이상해서 그래.”

- 어제의 목표 달성을 위해 뜀박질을 하시며 신체 능력의 미미한 향상이 이루어진 영향일 것으로 사려됩니다.

“보통 인간은 하루 잠깐 뛰었다고 해독능력이 올라가지는 않잖아.”

- 저와 계약을 체결한 바, 목표 달성의 영향으로 사용자께서는 일반적인 인간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향상을 득하실 것입니다. 금일의 목표를 들으시겠습니까?


하루 목표를 달성했는데, 술 해독이 잘 된다면, 10일, 100일이면 초인도 될 수 있겠는데?


“그래. 무슨 목표인지는 몰라도 밖에 안 나가고 할 수 있는 걸로 해줄 수 있다면 좋겠는데.”

- 금일의 목표는 팔굽혀펴기 80회, 윗몸 일으키기 80회입니다. 작일의 목표였던 10리 뜀박질의 달성 수준을 감안하여 사용자의 전반적인 운동능력을 약통이라 지정한 바, 금일의 목표를 달성하심에 있어 각각을 최대 2회에 걸쳐 나누어 달성함을 허용하겠습니다.


팔굽혀펴기를 마지막으로 했던 건 역시 군대 다닐 때였다. 체력검정 때 몇 번을 했지? 62번이었나? 그때는 그래도 체력 좀 좋았을 땐데, 지금은 영 자신이 없다.


“3회...안될까?”

- 2회 분할시도로도 목표를 달성 실패시, 자시가 되기 전까지 재시도를 허용하겠습니다. 하오나 그 또한 2회 내에 성공하지 아니하면 실패로 간주하여 생기를...

“그건 아니지!! 해내겠어, 지금!”


나도 모르게 생기라는 말에 목소리가 커져 흠칫 놀랐지만, 선철이는 우렁차게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바로 바닥에 손바닥을 대고 자세를 잡았다.


“시작할테니까, 회수는 니가 세라.”


하나.

둘.

···

30회가 넘어가면서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아, 지금 관두면 남은게 50회인데 2회엔 절대 못 하겠지. 45회 즈음 되니까 팔이 후들후들 떨리고 땀이 바닥에 비처럼 떨어진다. 자연히 엉덩이는 내려가고 팔도···.


- 자세가 올바르지 않은 회수는 달성하지 않은 것으로 칩니다. 마흔 일곱.


오키의 청명한 말소리가 너무 얄밉다. 이대로 바닥에 허물어져 다시 자고 싶다. PT 트레이너보다도 더욱 목소리에 흔들림 없이 세어나가는 저 숫자가 원망...스럽...다!

나는 결국 54회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그래도 남은 숫자는 30회 안쪽이니까, 내 생기는 아직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 1차 시도에서 54회를 이뤄내셔서, 잔여 회수는 36회가 남았습니다. 곧 이어서 윗몸 일으키기를 하시겠습니까?

“아, 안돼. 나 조금만 쉬자. 죽을 것 같아.”


마침, 선철이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우, 물, 물···어? 넌 거기서 뭐하냐?”

“어, 운동.”

“니가? 운동을?”


바닥에 뺨을 대고 뻗어있는 나를 보는 선철이의 눈빛이 매우 불손하다. 나는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땀이 접착제인 양 바닥에 들러붙은 몸을 일으킬 수 없어 조금 더 엎어져 있기로 했다.


“...너 팔굽혀펴기 몇 번 가능한데?”


고시생인 선철이의 운동량이 나보다 많았을 리가 없겠지 하는 저열한 발상에서 나오는 질문을 참을 수 없었다.


“나 디스크 판정받은 이후로 매일 운동하잖아. 팔굽혀펴기는 따로 안 해봤지만 70번은 할걸?”


망할, 고시생을 이기지 못하는 체력이었다니 충격이다. 어쩐지 저놈이 그렇게 먹는데 살이 안 찌더라.

나는 잠시의 휴식에 힘입어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되어 의자에 앉았다.


“선철아. 내가 질문이 있다.”


선철이가 갑자기 진지해진 내 말투와 눈빛을 보더니, 생수병 하나를 따갖고 테이블에 마주앉았다.


“그래. 안 그래도 나도 질문이 있었지.”

“그래? 그럼 너부터 말해봐. 내 얘긴 좀 길어질 것 같으니까.”

“너 여자 생겼냐?”


음? 이건 갑자기 무슨 소린가 싶어 갸웃거렸다.


“아니, 옥희가 누구길래 술 꼴아서 이름을 그렇게 불러대. 요새 그런 이름 쓰는 여자도 있나? 생기를 빨리네 뭐네 하는 거 보니 벌써...그...?”

“아, 그, 크흠. 그거 아냐. 그 얘긴 나중에 해줄게.”


어둑어둑한 모텔방에 테이블 조명 아래서 얘기를 하자니 쓸데없이 진지한 분위기다. 여긴 왜 중앙등도 없어?


“너, 소설 많이 봤지?”

“어. 지난번 시험 망한 게 웹소설 건드렸다가 그랬잖아.”

“그런 데 보면 막, 기연 얻고 그러잖아. 그런 힘 얻으면 넌 뭐 할거야?”

“뭐, 일단 공무원 시험 때려치우고 돈 벌어서 부귀영화 얻어야지.”

“뭘 해서 돈을 버는데?”

“특수능력이 뭐냐에 따라 다른데, 육체계 능력이면 뭘 해도 되지 않겠냐? 노가다를 해도 특급이요, UFC 나가도 날아다니겠지. 아, 순간이동이랑 은신능력 갖고싶다. 차원이동도 좋고 회귀도 좋아! 로또 가즈아!! 이 빌어먹을 고시공부만 빼면 솔직히 다 좋아, 흑.”


갑자기 과몰입한 선철이를 달래주며 생각해 보니 과연 그렇다. 일퀘 좀 깨면서 육체 능력만 좋아져도 돈 벌 일은 쌔고 쌨으며, 혹시 지적 능력이 올라가거나 외모마저 업그레이드 되면 연예인은 못 하겠나. 아니, 거지 아저씨는 그 능력 가지고 왜 산 속에서 자연인 하셨지?


“그러면 현대사회에서 뭔가 능력이 생기면 어떤 걸 하면 제일 좋을까?”

“왜? 너 퇴사하더니 웹소설 쓰려고? 야야, 웹소설 작가가 벌써 20만 명이라더라.”

“그냥 생각만 해 두려고. 일단 구직할 생각이지만 혹시 모르잖아.”

“하긴, 투잡을 할 수도 있겠네. 아무튼 현대사회에서라면, 용병? 그건 군대 다시 가야해서 싫어? 그럼 골프선수? 그거 돈 많이 번대. 배 타도 돈 버는데, 그건 또 싫냐? 아 뭐 싫은게 많아. 웹소설이면 저런거 해야 스토리 나오지 않겠냐?”


그건 또 그러네? 하지만 난 지금 웹소설을 쓰려던 게 아니란다.


“그건 그렇고, 이번엔 다른 설정인데, 과거에서 온 우렁각시가 막 조선 상식밖에 없는거야. 얘를 현대 패치하려면 뭘 해야할 것 같아?”

“드라마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아니면 유튜브?”

“내가 티비 잘 안 보잖아. 추천할 만한 거 있냐?”


과연 현직 고시생은 야근에 찌들었던 나보다 훨씬 풍성한 문화 상식을 지니고 있었다. 선철아, 너 이러다 서른돼, 자식아. 공부해야지.

과연, 백짓장도 맞들면 낫다더니, 선철이의 헛소리를 한참 듣는 것이 의외로 큰 도움이 되었다.


“기왕 잠도 깨고 시간도 남으니까 하나만 더 도와주라.”

“뭔데?”

“윗몸 일으키기도 할 생각인데 다리 좀 잡아줘.”

“아 진짜, 너 퇴사만 아니었으면 내가···. 누워봐봐.”


그렇게, 베프의 도움을 받아 윗몸 일으키기는 62번을 했다. 오키가 세는 숫자와 선철이의 보조, 그리고 떨려오는 복근이 이룬 쾌거였다.


“후우 후우, 고맙다. 아, 죽겠네. 80번이 목표인데 18번 더 해야해. 이따 한 번만 더 잡아주면 안 돼?”

“횐(회원)님, 1분 이상 휴식하지 않으십니다.”

“아, 뭐래. 1분 갖고 다시 못 한다고! 넌 어떻게 운동을 매일 하냐. 대단하네.”

- 사용자께서도 매일의 목표를 달성하시어 신체 능력과 지적 능력을 향상하심이 마땅합니다. 칠주야만 목표를 달성하셔도 친구이신 선철님의 신체 능력을 추월하고도 남음입니다. 다만, 저 신체에 사용자가 접촉했을 당시 신호를 참고하노라면, 위장과 식도에 중등도 이상의 장애가 파악되었습니다.


음? 위장장애? 위염같은 건가?


“선철아. 너 근데, 건강검진은 하냐?”

“내가 그래도 고시 생활중에 병원 한 번 안 간 건강체잖냐! 건강검진이 왜 필요해?”

“속 쓰리고 그런 거 없어?”

“쓰리긴 한데, 술 마시고 매운 거 들어가면 누구나 속 쓰린 거지.”

“미친. 너, 속 쓰린데 술을 마시고 앉았냐? 내시경 한 번 받아봐야 하는 거 아냐?”

“뭐 이런걸 갖고 검사를 해. 잘 쉬고 술 며칠 안 마시면 또 괜찮아.”


건강을 자신하는 선철을 내시경의 길로 인도하는 것은 현재로서 좀 어려울 것 같이 보였다. 몇 번 더 실랑이를 했으나, 병원가는 것을 꺼리는 선철이었다. 내가 보기에는 병이 나오면 술 못 마실까봐 무서워하는 것 같다.

잠시 화장실에 들어간다고 자리를 피했다.


“오키야. 선철이를 병원에 가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사용자께서 선철님과 접촉한 상태를 유지하시는 동안, 위를 자극하여 강한 통증을 유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 건강에 문제는 없을까?”

- 현재 선철님의 위장 상태를 악화하지 않는 한도에서 자극을 가하겠습니다.


강한 통증이라. 미안하다, 선철아.

화장실에서 나와 남은 윗몸 일으키기를 채우기 위해 선철에게 보조를 부탁했다. 오키가 미리 말한대로 선철의 위에 자극을 주기 시작했다.


“칠···십···구···, 팔···십!!”

“어? 어어? 건도야, 나 속이 이상해.”


윗몸 일으키기를 마치기 무섭게 선철이가 헛구역질을 하며 화장실에 뛰어들어가더니 한참 속을 게워냈다.


“헉! 야! 나 피 토했어!!! 아, 나 어지러워. 왜 이러지?”


오키야, 강한 통증만 주랬더니 토혈을 시키면 어떡하니. 선철은 화장실에서 나오자마자 침대에 힘없이 늘어졌다. 


“야, 정신 차려! 선철아!! 내가 119 부를게! 정신 놓지 말라고!”


그렇게 생각 없이 구급차를 불러 현재 위치를 설명하다가 문득 깨닫고 말았다.


‘맞다, 여기 모텔이지···.’


흐트러진 침대보와 피 묻은 가운을 입은채 쓰러진 친구(남), 변기와 화장실 바닥에 떨어진 피, 바닥에 뚝뚝 떨어진 땀, 그리고 그 옆에서 상기된 얼굴로 아직 땀을 씻어내지 못한 나(남).

그리고 그것을 말 없이 비춰주는 천장의 대형 거울.


‘얼굴, 가려야 하나.’


선철아.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다. 그래도 속옷은 입고 있구나.

내가 돈 많이 벌어서 맛있는 거 많이 사줄게. 아니다, 내가 능력 고를 수 있으면, 꼭 너 얼굴 잘생기게 할 능력을 찾아볼게.


나는 셔츠를 고쳐입고 화장실의 피를 닦으러 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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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 계란을 키워 봉황을 만들어라. 23.12.04 14 0 12쪽
1 1. 썼다, 사표. 주웠다, 엽전 +2 23.12.03 25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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