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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노다노

내 시스템이 미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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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노다노
작품등록일 :
2023.12.03 23:24
최근연재일 :
2023.12.05 17:49
연재수 :
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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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707

작성
23.12.04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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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 계란을 키워 봉황을 만들어라.

DUMMY

아저씨는 물론 돌아오지 않으셨다.

나에게 떠넘긴 요물은 생명을 위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였다.

나는 어쩌자고 처음 보는 엽전을 짜맞췄을까.

묻지도 않고 강제등록이 되다니, 불공정 거래가 아닌가!

물건이니 해가 없을 거라고 별 생각이 없이 행동했던 나의 패배다.


그렇다고 무력하게 생기를 빼앗길 수는 없었으므로 길을 좀 돌아 4킬로 정도를 달려가기 시작했다.

얼마 달리지 않아 숨이 턱턱 차오르기 시작했다. 직장생활로 그간 운동하지 않은 여파가 온몸으로 느껴졌다.


‘아, 내가 어쩌다가! 저딴 엽전 때문에 이 고생을 해야 하지? 왜?’

괜히 운동이 싫은 마음에 짜증이 나면서 화가 치밀었다.

프로젝트 어떻게든 살려보자고 3주 내내 이틀 빼고 야근 했는데 허대리가 공은 빼먹고 과만 나에게 던졌을 때부터 분노는 나를 이루는 전부나 다름 없었다.

분노의 화신이 별 거 있나? 3주 내내 야근한 직장인이 분노의 화신이지.


아무튼 몸이 고달프다 보니 점점 퇴사한 회사로부터 눈앞의 답답한 엽전에 나의 분노가 옮아갔다.


달리는 동안 분노 5단계를 3배속으로 진행했다.


헉헉...헉헉...

1단계/분노: 아저씨가! 나에게! 빗엿을! 주었다! 내 생기 사수해!!

2단계/타협: 그래도 일퀘 잘 하면 불로장생의 꿈을 이룰 수도 있다잖아. 저게 뭔진 몰라도 먼치킨 루트도 열릴 것 같아 보였다.

3단계/우울: 그러다가 감당 못하는 일퀘 받으면 난 미라가 되어버릴 거야. 엄마 미안해요. 버리고 싶은데 이 목소리는 어딜 가든 따라올테니 버려도 소용 없겠지...

4단계/수용: 에라 모르겠다. 계약파기 하려면 그걸 손으로 찢든가 해야하는데 어차피 지금으론 글렀고 먼치킨 가즈아!


아...? 5단계인데 왜 4개지?

아 맞다. 1단계 부정을 빼 먹었네.

아, 몰라. 부정은 아침 숙취와 버무려서 했다고 치자.


뛰느라, 잡생각이, 자꾸만 떠오른다.

헉...헉...2년을 사무실에 앉아만 있었더니 4킬로 뛰는 게, 너무, 힘들다.


“지금, 얼마나 뛰었어? 헉..헉...”

[ 달음박질을 개시한 지점으로부터 8리하고 277보입니다. ]


산책할 때는 가깝고 친근했던 거리 풍경이 가쁜 숨 너머로 야속하게 스쳐간다. 하필이면 마지막 코스가 오르막이다. 

마지막 집앞 횡단보도를 건널 즈음에는 목표치를 달성해서 축 늘어져 걷는데도 숨이 잘 다듬어지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도착해 원룸 도어락을 누르는데 절로 욕이 나온다.


“어으...날 죽여라.”

[ 본체는 사용자에게 해를 끼치거나 생명을 거두는 행위를 하는 것이 불가합니다. 다만, 성장을 위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난해하여 불쾌를 느끼는 것은 부득이하오니 감안하시옵소서. ]


아, 또 그 ‘옵소서’냐? 딱 하옵나이다만 고쳤나.


“근데 진짜 왜이리 죽을 거 같이 힘드냐...”

- 그것은 초회의 구동을 위하여 사용자님으로부터 받은 생기가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기!!!”


무서운 엽전같으니라고.

10리면 약 4km다. 5km가 넘는다는 견해도 있지만 내가 지금 그걸 존중할 겨를이 없다.

나에게 10리는 무조건 4km인 걸로.

군대 체력검정도 3km였건만, 잔인한 엽전같으니.

그래도 다행히 신병 훈련 받듯 선착순 10명 제외 3바퀴 추가같은 것은 없었다.


한바탕 씻고 냉장고에서 시원한 탄산음료로 수분과 당분을 보충하니 기분도 한결 낫고 머리도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목표달성 보상은 뭐야?”

- 초회의 목표임을 감안하여 금일 일회의 목표를 제시하였고, 통과에 1점을 드립니다. 그와 더불어 신체단련 효과에 추가로 근소한 체력 증가의 효율을 보탭니다.

“운동효율증가? 그건 괜찮네. 그런데 점수는 어디다 써?”

- 일일목표를 달성하였으므로 생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본체의 활동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으며, 점수를 이용하시면 본체 또는 사용자의 추가적인 능력을 개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게 됩니다. 


추가 능력이라면...이능력? 새로운 재능? 그래. 만수무강 하나뿐일리가 없지!


“능력치. 올리고 싶어. 지금 바로 쓸 수 있어?”

- 추가적인 능력 증가를 위해서는 최소 10점부터 1점 단위로 사용이 가능합니다. 매일의 목표를 채우시기를 당부드립니다. 1점 이상의 점수를 보유하신 오늘 이후로는, 일일목표를 달성치 못하신다면 목표의 중요도에 따라 1점에서 3점을 감할 것이옵니다.

- 본체가 성장함에 따라 일부 사용조건이 완화되오니 가급적 점수를 본체의 성장에 사용하심을 추천드립니다.


그 와중에 성장 욕심도 있구나.

아무래도 이거, 그냥 시스템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의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웹소설로 생긴 선입관 때문에 당연히 시스템이란 것들은 기본적으로 전능한 줄 알았는데.

현재 파악된 바로는 퀘스트를 주고 포인트 모아 성장을 돕는다지만 과연 그런 퀘스트만 줄까?

조금 어두운 생각에 걱정이 들었지만 차차 알아가면 되리라.


계기야 어찌 됐든, 간만에 운동을 하니 생각보다 훨씬 상쾌하다.

매일 퀘스트가 이 정도 수준이라면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다. 달리다 보면 체력도 붙어 더 수월해지겠지.

차분히 생각하다 보니 거지 아저씨를 원망하던 마음이 조금은 사그라들었다.

이것이 바로 운동의 스트레스 해소 효과일까.


“그럼 앞으로도 육체단련을 시키겠다는 거야?”


[ 금일 과정을 지켜본 바, 달성에 들인 시간이 산정 범위를 다소 초과하여 사용자의 정확한 신체조건을 파악할 필요가 발생하였습니다. 본체를 양손을 합하여 잡고 잠시 부동자세를 취하시옵소서. ]


시키는 대로 손바닥으로 동전을 잡고있자니 아주 약한 전류같은 느낌과 함께 알 수 없는 열기가 퍼져나갔다가 발끝까지 따뜻해지고 나서 사그라들었다.


[ 측정이 완료되었습니다. 사용자의 수준은 대통-통-약통-조통 중 약통이옵니다. 신체의 활성화가 다소 저조하나 이를 꾸준히 단련하여 점수를 누적하다 보면 낙숫물이 돌을 뚫듯 능히 초인에 이를 수도 있음입니다. 물론, 계란을 품어 봉황을 키우는 마음으로 난관을 극복하실 결심을 하심이 옳습니다. ]


약통이 뭐고 조통이 뭐지? 아무튼 낙숫물이며 계란 얘기로 보자니 좋은 말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살짝 기분이 나빠졌다.

내가 사무실에서 프로젝트 뒤치다꺼리로 운동할 틈이 없어서 그랬지 나름 우리 부대에서 처지는 편은 아니었건만. 사람조차 아닌 네가 감히 깔보는 것이냐?


여기까지 생각하다 보니, 자꾸 이 엽전이랑 대화를 해서 그런지 괜히 사극 말투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 대체 거리 단위가 리/보/척인 게 말이 되냐. 아무래도 각 잡고 현대를 주입해야 앞날이 한결 편안해지겠지.


아까는 달리는 중에 심심해서 재미있는 이야기라도 해달라고 했더니, 조상님 맙소사.


[ 어느 한 옛날, 시골의 고을에서 새로 며느리를 들였더니, 이 며느리가 입만 떼면 문자(한자로 된 어려운 말)요, 사자성어 없이는 대화를 하지 않아 무식한 시어미가 질색하여 나무라며 이르기를, “얘, 아가. 그 문자를 좀 안 쓰면 아니 되겠느냐?” 그러자 며느리가 답하기를, “예, 어머님. 更不用文字(갱불용문자: 다시는 어려운 말을 쓰지 않겠다는 뜻)하오리다.” 라고 하였더랍니다. ]


아니, 조선시대 유머가 저세상 센스였다...100여 년 지났을 뿐이건만 세상이 이렇게 다를 수가.

이걸 듣고나니 차마 노래를 부르라고는 할 수 없었다.


어떤 방법으로 현대 패치할 지 좀 고민해 보고 내일부터 당장 개선을 시도해야겠다.


“그럼 멀리 떨어져 있을 때는 이름을 부르라 이거지?”

- 예. 그렇습니다. 현재 ‘곡두잽이야’ 또는 ‘기물아’ 하고 부르시면 제가 응답할 것입니다.

“아냐. 이름, 지어줄게. 오키로 하자.”

- 옥희...말씀이십니까? 옥같이 귀한 계집아···

“아니 오-키. 영어로 알았다, 괜찮다라는 뜻이야. 갱불용 문자하시라고, 좀.”


사실 계란소녀 목소리가 비슷해서 옥희로 지으려다 기출변형을 시도해 봤다.

밖에서 허공에 대고 말해도 창피하지 않게 혼잣말인 척 할 수 있을거라는 다소 비겁한 의도가 없다고는 않겠다.


앞으로 약 열흘 동안은 할 일도 적당히 정해진 것 같으니 이제 다시 퇴사자의 현생을 신경쓸 때가 된 것 같다.

퇴사한 보람도 없이 종일 바쁘게 보내다 어느덧 저녁때가 되었으므로, 2년째 공무원 시험공부하는 선철이에게 내 퇴사를 고백하기 위해 치맥으로의 초대장을 보내기로 했다.


톡을 보내야 해서 무음으로 돌려 엎어둔 스마트폰을 아침 이후 처음으로 확인했다.

과연 조부장과 허대리의 저주문자와 부재중 전화가 야무지게 쌓였다.

그 둘도 분노의 5단계를 착실히 밟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무사히 수용까지 도달하기를 바란다.

해탈하세요들. 승진을 하시든가.


솔직히, 아무리 잘 한 선택이었다고는 하지만 오늘 엽전과 실랑이하지 않았다면 퇴사의 여파로 하루가 우울했을 것이다. 폭풍같이 몰아친 사건으로 암울하던 머릿속이 훨씬 개운하게 개였다. 직장으로 인해 쌓였던 분노가 새 분노와 부딪혀 해소된 기분이다. 

새삼 아저씨께 감사를···.

저는 은혜를 아는 검은머리 짐승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나쁜 사람에 절대로 넘기지 말라던 아저씨 당부는 꼭 지켜드릴게요. 

나쁜 사람에게 넘기지 말라고 한 말씀에 기대어 오키를 좀 더 믿어보기로 했다.


***

불금까진 아니지만, 목요일의 호프집도 사람이 꽤 많았다. 

선철이를 마지막 만났을 때는 시험에 떨어진 직후라 사람꼴이 아니었는데, 그때에 비하면 여전히 초췌하지만 한결 사람같은 몰골로 나왔다. 이 친구가 나름 자신의 지력에 믿음이 있는 타입이었는데, 시험에 떨어진 게 쇼크였던 모양이다. 그래도 이대로라면 다음 시험에는 붙지 않을까? 아님 말고.


“공부 잘 돼가?”

“쉿. 매너요. 그런건 언제 장가가냐, 취업은 언제 하냐와 비슷한 수준의 질문 아니겠냐.”

“그건 그렇지. 그래도 오늘의 나는 최소한 저걸 물어도 될만한 자격이있을 것만 같다.”


나는 선철이의 얼음잔에 맥주를 따르며 거만하게 말했다.


“그게 뭔 헛소리야. 야근 오래 하더니 미쳤냐?”

“어제 사표냈거든.”


캑...! 쿨럭쿨럭!  첫잔을 시원하게 들이키던 선철이가 목에 맥주가 걸려 거센 기침을 했다.


“야!! 너 프로젝트 그거 거의 끝...!”

“끝까지 말아먹진 않았는데 막판에 허대리 발주 실수로 윗선에 깨질 것 같으니까 조부장이 공만 허대리한테 쏙 발라주고 나에게 과를 몰아주더라.”


말하다 보니 간신히 가라앉힌 화가 좀 끓어오르려 해서 거의 꽉 차 있던 맥주를 원샷했다.

아차, 2연술은 안 되는데. 내일은 죽겠구나.


“크...뒷수습을 차마 내가 하진 못하겠어서 반쯤 정신나간 채 사표를 던졌더니 조부장이...”

“돌아오래? 잘 해준대? 니가 경력은 짧아도 일 머리가 좋으니 놓치기 싫을텐데?”

“프로젝트 끝내고 가야하지 않겠냐며, 이러고 가면 허대리는 어쩌라는 거냐던데.”

“이런 미친 개자식이 다 있냐! 와 족같은 조부장! 프로젝트 망해서 쫓겨날 놈!”


대학교 때 만났는데도 고등학교 동창보다 각별한 선철이가 내 일에 나보다도 격하게 화를 내준다. 그 사실이 나를 갑자기 기분 좋게 만들었다.

그래. 너한테라면 엽밍아웃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용기가 났다.


“선철아.”

“어. 너 사표 잘 냈다. 어디든 부르는 데가 있을거야!”

“아니, 선철아. 잠깐만.”

“응? 아, 어. 내가 괜히 흥분했네. 휴...내가 다 열 받아서.”



나는 좀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넌 어느날 내가 헛것 보고 헛소리 하면 나 버릴거냐?”

“너무 심각하면 당근 버려야지...?”


아, 아직 조금 이른가?

용기가 사그라들었다.


그래도 좀 기다려 봐 친구야.

혹시 아니? 내가 먼치킨 되고 돈 많이 벌면 너를 외면치 않을 것이다.


작가의말

계란소녀: 아저씨 닭알 좋아하우? ㅎㅎㅎ


어머니는 왜 아저씨께 닭알을 주었는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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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계란을 키워 봉황을 만들어라. 23.12.04 14 0 12쪽
1 1. 썼다, 사표. 주웠다, 엽전 +2 23.12.03 25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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