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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6회차 음악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3.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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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2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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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3.23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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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DUMMY

서늘해지는 감각. 보드랍던 살결이 딱딱하게 굳어간다. 볏짚처럼 뉘어있던 솜털들이 뾰족하게 곤두섰다. 마치 겨울의 한복판에 있는 것만 같다.


이지아는 저도 모르게 팔목을 쓰다듬었다.


‘...고작 4마디야.’


쇼팽의 겨울바람은 밋밋한 단선율로 시작한다.


음울한 a단조.

느리고 무겁게라는 뜻의 렌토Lento.


많은 전공생은 이 지시어에 갇혀 중요한 것을 놓친다.


‘몇 없는 음들로 곡 전체의 리듬을 꿰뚫었어.’


쇼팽은 낭만주의 피아니즘을 개척한 작곡자이자 당대 최고의 연주자라 손꼽혔다. 그런 쇼팽의 곡을 올바르게 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종이에 적힌 지시어, 그 이외의 것을 발굴해내는 것.

악보로 표기할 수 없는 미묘한 박자감을 창조해내는 것.


‘...돌아왔구나.’


어떤 이는 그것을 호흡이라고 하며,


‘내 뮤즈.’


어떤 이는 그것을 논리라고도 한다.


장지우는 고작 4마디만으로 청중의 호흡을 자신의 세계 안에 가두었다.


이것은 본능이다. 수많은 연습으로도 체득할 수 없는 리듬감.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이 만들어낸 루바토가 발목을 휘감았다.


갑작스레 느껴지는 한기. 이지아는 깔끔하게 정리된 손톱으로 팔목을 지그시 눌렀다. 반달 모양의 압점이 새겨진다. 멈추었던 숨이 딸꾹질을 하듯 폐부로 들이켜진다.


마음속에 잔류하고 있던 음들이 채 지워지기도 전에


‘기다렸어, 지우야.’


돌풍이 몰아쳤다.


격정적이며, 숨 쉴 틈조차 주지 않고 매섭게 들이닥치는 돌풍.


그 바람을 직격으로 맞은 좌중 속, 수군대던 음성들이 갈 곳을 잃고 허공으로 흐트러진다. 어떻게든 흠결을 찾고자 했던 표독스러운 눈들은 당혹스러운 감정을 표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공통적으로 떠오른 감정은 불신이었다.


겨울바람. 이 곡은 진울학교에 올 급이라면 한 번쯤은 완주해봤을 만큼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곡이다.


만만하지 않지만, 못 칠 정도는 아닌 곡.


‘...그런데 왜 이런 생각이 들지?’


정말로 나는 이 에튀드를 제대로 쳐본 적이 있었나?


그런 자괴감이 심장을 얼어붙게 만든다. 거대한 질문이 그들에게 들이밀어진다.


과연 나는 이런 질감을 표현해낼 수 있는가.

저 타고난 재능이 보이는 가능성을 나는 가지고 있는가.


‘아니.’

‘없어.’

‘...빌어먹을.’


한편, 그런 생각으로부터 독립된 또 한 명의 천재는 입가에 잔잔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이지아.

그녀는 흥분을 가라앉히고 이성적으로 장지우의 연주를 듣기 시작했다. 살결에 파묻혀 있던 손톱이 천천히 팔뚝으로부터 멀어져 갔다.


‘지우야, 나는 너처럼은 못 해.’


저 재능은 장지우만의 것이다. 나의 것이 아니라.


그래도.


‘나는 내 식대로 할 거야.’


이지아는 그 사실을 통해 열등감을 가지기보다는 자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했다.


쇼팽다움이란 무엇인가.

쇼팽의 음울함은 대체 어떤 것이란 말인가.


‘음울함이라.’


이지아는 아직 그 가닥조차 잡지 못했다. 하지만 저 연주를 듣고 있노라면-


‘언젠가는.’


그녀 자신도, 내면의 어둠을 마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




쇼팽의 에튀드는 기본적으로 사람이 치지 말라고 만든 곡이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음계.

1초당 13.8개의 음을 연타해야 하는 빠르기.

단순한 연타로는 표현할 수 없는 예술성.


이런 건 초인이 아니고서는 칠 수 없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들은 그 초인의 반열에 든 이들이다.


쇼팽이 창작한 27개의 연습곡 중 유독 난이도가 높기로 유명한 곡.

Op.25 No.11.


‘...겨울바람.’


2000년대 초반부터이던가. 대중은 쇼팽의 연주곡들을 두고 특이한 별칭들을 붙이기 시작했다.


혁명이니, 마법사니, 추격이니 하는 요상한 것들.


‘쇼팽은 정작 이 별칭을 두고 불쾌함을 표할 게 분명하지.’


대중 사이에서는 벌써 그 별칭들이 굳어져 가는 시점이다. 음악가들은 말도 안 되는 문화라며 그 열풍을 외면하고 있지만


‘재밌잖아. 직관적으로 연상되기도 하고.’


나는 내심 그 별칭들을 마음에 들어 하던 차였다. 그중 몇몇은 정말로 곡의 분위기를 딱 알맞게 서술하고 있었으니까.


지금 내가 선보이는 겨울바람처럼 말이다.


개별의 독립된 손가락은 사람이 치지 말라고 만든 곡을 기어코 연주해낸다. 테크닉이 돌아온 상태는 아닌지라 자잘한 미스터치가 발생한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음 하나를 놓치는 건 어쩔 수 없다.


중요한 건 ‘이 연주가 말이 되느냐’이다.


‘쇼팽이 이 곡을 칠 즈음, 파혼을 당했었지.’


27세의 나이. 약혼녀로부터 받은 일방적인 파혼 통보. 폐결핵. 조국 폴란드의 난.


쇼팽의 음울함은 개인의 비극과 당대의 혼란으로부터 비롯됐다. 특히 이 겨울바람을 작곡할 시기에 쇼팽은 실연의 아픔도 모자라 연례 행사라 할 수 있던 겨울 감기를 심하게 앓고 있었다.


봄이 찾아오고, 겨우 몸을 추스를 무렵.

그는 전 약혼녀였던 마리아에게 편지를 보낸다.


[지금 당장 당신 곁에 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곳에는 완연한 여름이 찾아왔겠죠··· 마리아, 당신이 없는 파리는 너무도 암울하군요.]


이 겨울바람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폐병의 고통과 실연의 아픔을 담은 곡.


때문에 겨울바람의 악랄함은 연주자를 한계까지 몰아붙이고, 그 한계에 도달할 무렵에서도 끊임없이 오른손을 괴롭힌다.


지금의 나는 이 극악무도함을 감당할 수 없다. 나는 내 한계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고, 합리적인 선택을 했다.


‘빠르기를 포기하면 돼.’


한국 입시가 바라는 쇼팽의 템포를 포기하고, 나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


바람은 반복되는 패턴으로 흐른다. 경직될 수 있는 손목에 힘을 풀고 유연한 반동을 주며, 널뛰듯 움직이는 왼손으로 다양한 변주를 준다.


때로는 바람의 줄기를 꽉 쥐어짜듯이.

때로는 바람의 줄기를 한순간에 풀어내듯이.


폭풍은 눈으로 뒤덮인 앙상한 나뭇가지들을 뒤흔든다.


‘무겁게, 하지만 힘은 비축해두어야 해.’


클라이맥스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쇼팽은 늘 이렇다. 힘이 들어서 더는 못 칠 거 같을 때, 더 어려운 것을 들이민다.


‘지금.’


폭풍이 나선의 방향으로 몰아치더니 순식간에 자취를 감춘다.


한바탕 쏟아낸 나는 뻐근해진 손을 쥐었다 피고는 고개를 돌려 청중이 있는 쪽을 바라봤다. 멍한 눈들, 질시에 찬 눈들이 적절하게 섞여 있다.


‘괜찮았나 보네.’


조용한 적막. 혼란스러운 눈빛들이 저들끼리 무언의 의사를 교환한다. 제법 마음에 드는 반응이었다.


그건, 내 연주가 꽤 괜찮았다는 뜻이었으니까.




=




그날 저녁, 서울 종로구의 오피스텔.


진울학교의 선생 유상진은 서류를 뒤적이며 잔업을 처리하는 중이었다. 오늘 있었던 상승음악회. 그 결과가 바로 여기에 담겨 있었다.


연주자의 이름 석 자, 그 아래는 학생들의 피드백이 쫘르르 나열돼 있다.


올해 졸업 예정자들 중에 주목해야 하는 인재는 단연 두 명이다.


이지아와 장지우.


이 둘은 좁은 한국에서 갇혀 있기에는 너무 큰 그릇들이다. 이번 상승음악회를 통해 유상진은 그 사실을 명확하게 깨달았다.


특히 장지우의 연주는...


‘...기대하라고 하더니 정말이었군.’


예상치 못한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내놓은 자식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온 느낌이랄까.


‘순록이 이놈, 새끼 선생 주제에 안 될 애를 왜 그렇게 붙잡고 있나 했더니.’


장지우의 새끼 선생인 최순록.

그 당근 머리가 우쭐해 할 생각을 하니 바람 빠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그래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장지우의 연주는 새끼 선생이 자부심을 가질 만한 연주었으니까.


[감사합니다.]


그의 연주가 끝나고, 살얼음 같던 적막을 깨뜨린 건 이지아의 박수 소리였다.


잘 들었다, 최고의 연주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찬사. 그 덕에 유상진도 정신을 차리고 박수 행렬에 동참할 수 있었다.


‘무슨 말을 먼저 할지 모르겠어서 다들 얼어있었지.’

‘심지어 나조차도 벙쪄 있었어.’


그런 주제에 장지우의 연주에 달린 피드백들은 신랄함 그 자체였다.


[장지우]

[템포가 아쉬웠습니다. 입시에 있어서 에튀드 곡은 빠르기도 중요한데 이렇게 자의적으로 빠르기를 조절하는 건 감점요인이라 볼 수 있는 것 같...]

[미스터치가 잊을 만하면 나와서 몰입에 방해되었...]


유상진은 그 피드백을 비웃듯 조소 섞인 눈으로 바라봤다.


다들 느꼈을 것이다. 빠르기나 사소한 미스터치가 중요한 연주가 아니었음을.


‘빛나는 재능 앞에서 절망하지 않기 위해 남을 까 내리는 청춘이라.’


안타까운 말이지만, 이런 식의 자기 위안은 결코 앞으로의 인생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훗날 이 어리석은 학생들이 음악가로서 활동을 이어 나간다 할지라도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과 남을 비교하고 비참함의 늪을 헤매게 될 터였다.


‘그런 학생들이 이 한국에 몇 트럭이나 있다는 게 안타까울 따름이군.’


유상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종이를 넘기려는 찰나.


전화 왔어요!


멀찍이 떨어져 있던 폴더 폰에서 앙증맞은 벨소리가 들렸다.


[박현무 교수님]


그 이름을 보자마자 유상진은 침을 꿀꺽 삼켰다.


박현무. 한국종합예술원의 교수인 그는 한국 클래식 음악계에서 목소리를 쩌렁쩌렁 울릴 수 있는 위인이다. 일개 진울 학교 선생인 자신이 그와 통화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울 정도다.


목을 가다듬은 유상진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아 예. 선생님. 예예. 저야 잘 지냈죠. 무탈하시죠?”


형식적인 안부가 있었고


[어떻던가.]


장지우의 큰 선생. 박현무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상승음악회의 결과를 묻는 질문이다. 그에 대한 대답은 단순했다.


“걱정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안도의 한숨이 스피커 너머로 들린다.


[...그 녀석. 방황은 끝낸 거 같지.]

“예. 그런데 좀 이상했습니다.”

[이상했다고?]

“연주 말입니다. 몇 년 전에 지우가 쳤었던 쇼팽하고는 달랐습니다. 한창 쇼팽에 빠졌을 때 나왔던 자유로움이 없어요. 물론 그 나이대 애들이 표현할 수 없는 음울함이 있었다는 점에서 저는 100점 만점에 120점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긴 합니다만...”

[자네도 느꼈나?]

“예? 아- 쇼팽의 음울함. 예. 그게 있었습니다.”


중년은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녹음 파일이 잘못됐나 했더니 다행히 그런 건 아니었나 보군. 하루라도 빨리 이놈 연주를 직접 귀로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구만.]

“아직 최순록 선생한테 레슨을 일임하고 계시는 겁니까?”

[지우 이놈 변덕이 하루 이틀이 아니라서 말이야. 당분간은 멀찍이서 지켜볼까 싶긴 하네. 큼. 솔직히 말해보게. 미스터치. 약간 거슬릴 정도로 있던데, 어떻게 생각하나.]

“...조금 걱정되긴 했습니다. 미스터치의 유무로 입시의 당락을 결정하는 선생들도 있어서요. 물론 지우가 고작 예고 입시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은 안 듭니다만.”

[그럼 됐네. 중요한 건 수석이냐, 차석이냐이니까. 나중에 밥이나 한 끼 하자고. 예당(예술의 전당)에 순두부집 알지? 오랜만에 삼삼하게 몸 건강도 챙기면서... 아, 그나저나 이거 나중에 말 나오는 거 아닌가 몰라. 내가 전화했다는 건 비밀일세?]

“저는 일개 학교 선생일 뿐인데요. 궁금해하시는 것도 당연하십니다.”

[유상진 선생. 말은 바로 하자고.]

“예?”

[지우라서 궁금한 거지. 내가 다른 애한테 이런 식으로 주접떨은 적 있었나?]

“...전화 주신 건 따로 없으셨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러니까. 아니 그래서 어떻게 보나. 지우 이놈, 수석 가능하겠지?]


입을 달싹이던 유상진이 답했다.


“저는 될 거라 생각합니다.”


원했던 답변이다. 너털웃음이 잠시간 둘 사이의 공백을 채운다.


[다시 돌아오는 데 2년이나 걸렸어. 그만큼이나 웅크려있던 놈이 어떤 음악을 펼칠 것 같나.]

“...”

[졸업 전까지 옆에서 잘 케어해주게.]


박현무 교수가 말했다. 오랜 시간 묵혀왔던 기대를 듬뿍 담아서.


[지우 이놈은 세계로 뻗어나가야 하는 놈이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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