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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6회차 음악천재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어디서본듯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2.03.18 15:00
최근연재일 :
2022.04.12 16:31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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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6
글자수 :
145,362

작성
22.03.19 13:10
조회
6,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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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글자
8쪽

1화

DUMMY

회귀, 빙의, 환생.

흔히들 회빙환이라 칭하는 것들.


나는 현실에서 그런 것들을 겪고 있다.


“AP 연습생, 숱한 논란으로 아이돌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K스타 101> 하차”

“막말 파문이 남긴 상처들, AP 소속사 장지우 계약파기 결정.”

“일각에서는 악마의 편집에 희생당한 피해자라는 의견도 존재.”


다섯 번의 삶.

계속해서 반복되는 과거로의 회귀.


주어진 삶을 살게 되면 나는 어김없이 과거로 돌아와 새로운 몸에 안착하게 된다.


[지우야 전화 좀 받아봐.]

[무슨 일 있어?]


그리고 이건, 내가 건너온 삶에 대한 주마등.


[지우야, 엄마 걱정 돼. 숙소 나왔다매. 아이돌 같은 거 안 해도 되니까 집으로 돌아와. 응? 제발...]


187cm의 키.

말끔한 외모.

나올 데 나오고 들어갈 데 들어간 근육질의 얄쌍한 몸.


저건 나다. 정확히는 내 첫 번째 삶의 육체. 장지우라는 이름을 썼던 사내다.


거뭇한 수염을 쓰다듬던 남자가 스마트폰을 바라보며 히죽 웃는다. 마른 입술이 안쓰럽게 파들거리고 있다.


“엄마 말 들을걸. 나 같은 게 무슨 아이돌을 한다고.”


밀랍으로 만든 날개로 태양에 닿고자 했던 어리석은 사내.

이카로스.


장지우는 환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자 했던 사내였다. 그는 성격파탄, 이중계약 아이돌로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았었고 녹아내리는 자신의 꿈을 마주했다.


그런 그를 죽음으로 몬 건,


[ㅉㅉ 인성부터가 글러 먹었네. ]

[애미도 쟤 낳고서 미역국 먹었겠지]


미디어가 만들어낸 말도 안 되는 오명과


[꼴에 자존심 있다고 자진 하차한 거 아님? 제대로 된 사과부터 하고 나갔어야지. 선후관계가 잘못됐네.]


익명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비난들이었다.


“씨발, 다 죽어 버려...”


짐승의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질질 끄는 발걸음이 멈춘다. 통유리로 된 문이 열리고, 차가운 냉기가 흐르는 모텔 욕실이 나타난다.


그곳엔 물이 가득 찬 욕조에 들어가는 나와


“개새끼들.”


손에 들린 날카로운 칼날이 있었다.


“...”


그, 아니 과거의 내가 욕조에 몸을 담근다, 짤막한 한숨 이후 이어진 건 손목을 긋는 행위였다.


울컥하고 솟아오른 핏물,

난장이 된 손목이 물에 잠겼고


물감이 풀어헤치듯 붉은 빛깔이 욕조 안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하-.”


따갑다. 화끈거린다. 손이 벌벌 떨리던 것이 거짓말처럼 멈춘다. 힘줄까지 도려낸 탓이다. 그때의 고통이 영혼에 각인되듯 되새겨진다.


첫 번째 죽음의 순간.

하나의 삶이 끝날 때마다 나는 이 고통스러운 장면을 마주한다.


마치 나를 회귀와 빙의의 굴레에 밀어 넣은 미지의 존재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삶을 반추하라.

끊임없이 후회하며, 하나의 목표를 상기해라.


‘그래, 이제 뭘 원하는지 알겠어.’

‘이 빌어먹을 음악을 다시 해보라는 거겠지.’


♬-.


항상 이 순간이 오면 내 귓가에 들리는 음악이 있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No.1


첼로의 현이 만들어내는 깊은 울림. 영혼을 진동시키는 음들의 향연 속에서,

욕조에 걸쳐 있던 손이 스르르 물속으로 잠긴다.


‘나는 저런 걸 틀어놓고 죽은 기억이 없어.’

‘끔찍할 정도로 적막한 곳에서 죽었어야 했지.’

‘그런데 왜 하필 바흐, 그것도 첼로 곡을...’


상념에 빠질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영혼이 뒤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자살이 새로운 시작을 위해 매듭지어지고 있었다.


장지우의 눈이 몽롱한 꿈을 맞이하는 것처럼 꿈뻑꿈뻑거린다. 노곤해지는 몸. 아찔해지는 정신.


창백한 피부 위로 떠오른 것은 환한 미소였다. 그는 입을 오물거리며 짧게 웅얼거렸다. 자신의 비루한 인생을 표현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문장이 없다는 것처럼.


“엄마 미안.”


순간 찾아오는 암전.


그것이 내 첫 번째 죽음이었다.


아니,

25살의 장지우는 그렇게 죽었다.




=




25년.

매번의 삶마다 내게 주어진 기한.


한 번의 삶이 끝나면 나는 타인의 몸뚱이에 빙의된다. 2007년의 그때. 내가 아이돌 연습생 제의를 받았을 그때로.


‘이번엔 어떤 몸이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던 나는 한국 수영계의 유망주로 살아가기도 했으며


‘지병이 없는 몸이었으면 좋겠는데.’


재벌가의 서자로 살아가기도 했다. 초반엔 이게 웬 횡재나 싶었다. 나를 나락으로 떠밀었던 음악, 정확히는 연예계로부터 멀어지게 되었으니까.


이후 나는 주어진 삶을 제대로 만끽했다. 해보지 못했던 것을 즐기며, 후회 없이 현실에 충실한 삶을 살았다.


완벽한 인생들. 한때는 평범한 삶이 그리워 공무원으로 살기도 했다.


비트코인으로 번 돈으로 강남 아파트를 사들인 순간부터 평범한 삶과는 조금 거리가 있었긴 했지만, 나름 만족스러웠던 삶이었다.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고, 도란도란 곱게 늙으며 동반자와 함께 노을을 바라보는 노년의 생활.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인생 잘살았다 싶은 그런 모범적인 삶. 내가 겪지 못했던 것은 그런 것뿐이었다.


‘그건 불가능했지.’


내게 주어진 기간은 25년이었으니까. 죽음은 필연적으로 찾아왔다. 전용기 엔진이 터지거나, 맨홀 뚜껑이 쑥 내려앉거나, 그냥 이유도 없이 심장마비로 죽거나.


3번째 죽음에서부터 깨달았다. 아, 신이라는 새끼가 나한테는 인생 체험판을 줘놓고, 클리어까지는 못 가게 하는구나.


그때 생각했다.

이 새끼는 진짜 악질이라고.


‘아직은 몸의 주도권이 안 돌아왔군. 눈꺼풀도 안 움직이는데, 설마 또 병실에 누워있는 건 아니겠지.’


5번째 삶은 병실에서 눈을 떴다. 그때 느낀 건 인생이란 코미디에 가깝다는 것이었다. 당시 몸의 주인은 추석맞이 기념으로 송편을 씹지도 않고 한입에 삼켜보겠다고 객기를 부리다가 응급실에 실려 왔었다.


‘이번 삶은...’


눈꺼풀이 겨우 떠졌다. 껌껌하던 시야로 방안의 풍경이 들어온다. 아직 몸은 움직여지지 않는다. 나는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려 가며 주변 상황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격대가 나가는 가구들과 가전제품들.

야마자키라는 글자가 박힌 업라이트 피아노.


전반적으로 때깔이 곱다. 돈 나가는 물건들이 그득하다.


‘제법 있는 집에서 태어났군.’

‘익숙한 느낌이 드는데.’


익숙한 천장. 익숙한 체크무늬 이불. 뭔가 낯이 익는데 기분 탓이겠지. 교복이 걸려있는 걸 봐서는 학생이다. 나는 시선을 돌려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흔한 얼굴 사진 하나 없고, 먼지 한 톨 없이 말끔한 모습이다. 책장에는 문제집들이 아닌....


‘Chopin Etude(쇼팽 연습곡)?’


피아노의 연습곡집들로 그득하다. 거기에 그 위 선반. 빼곡히 꽂힌 스프링 노트들. 이건 작곡과 입시생이라면 끼고 살아야 하는 오선 노트임이 분명하다.


‘...이건 뭐, 대놓고 음악을 하라 이거구만.’


꿈틀거리는 손가락. 나는 몸을 일으켜 손을 쥐었다 폈다. 솥뚜껑만 한 손바닥이 나를 맞이한다.


‘이제 반복되는 삶은 지겨워.’


인간에게 있어 망각은 저주가 아닌 축복이다. 나는 그 격언을 뼈저리게 실감한 사람이다.


다섯 번의 삶.

존재하지 않을 삶들을 반추하며 25년이라는 시한부 인생을 도돌이표처럼 살아낸 나는


‘음악을 해보라 이거지?’


이제 더 이상 타인의 인생을 살아가고 싶지 않았다.


완전무결한 삶. 나는 그런 것을 원치 않는다.


내가 원하는 건

예측하지 못하는 미래를 맞이하며 불완전한 인간으로서 죽는 것.


그래서 이 여섯 번째 삶은.


‘음악을 하면, 죽을 수 있는 거냐?’


끝까지 천수를 누리고 죽고자 한다. 음악을 하면서.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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