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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의 서재입니다.

헌터들의 정신의학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구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4.21 10:49
최근연재일 :
2023.04.29 23:15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2,887
추천수 :
139
글자수 :
82,527

작성
23.04.27 07:50
조회
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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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글자
12쪽

첨단공포증 차시명 (3)

DUMMY

이곳은 시명의 심상던전.

이제는 퍽 익숙해진 동굴 속이지만, 유독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살벌하네···”


동굴을 이루는 암석들은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고, 천장에 매달린 종유석 또한 송곳 같은 아찔함을 자랑했다.


어김없이 나타난 스트레스 늑대들은 성난 고양이처럼 털끝이 곤두서 있었다.


날카로운 것에 공포증이 있는 시명이다.

던전은 그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다 괜찮았다.

이것에 비하면.


“뭐야 이 흑색 밤송이는···?”


성게처럼 생긴 검은 덩어리가 자꾸만 다리에 들러붙었다.

산행을 방해하는 도깨비바늘처럼.

억지로 몇 개를 떼어내니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차시명의 고착을 제거했습니다]

[차시명의 고착을 제거했습니다]


“스트레스에 이어서 이번엔 고착이냐.”


고착.

성적 에너지인 리비도(libido)가 특정하게 쏠리는 현상을 말한다.

시명의 경우엔 뾰족한 사물에 고착이 형성돼 있었다.

뾰족한 것에만 유달리 공포증적인 성향을 보이고 있었으니.


“좀 떨어져라···”


다리에 고착이 달라붙을 때마다, 걸음 또한 차츰 느려졌다.

나른하고, 지친 감정이 슬그머니 찾아들었다.

그때마다 마음을 다잡으며 고착을 떼어내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차시명의 고착을 제거했습니다]


앞으로 나아가다 보니 시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검은 밤송이에 온몸이 뒤덮인 채, 원을 마주 보고 있었다.


“선생님···”


차아앙!

추가적인 고착이 들러붙지 않도록 한쪽에 방벽을 세웠다.

그리고 그에게 달라붙은 검은 성게들을 모조리 떼어냈다.

떨어진 고착은 그 즉시 연기처럼 자취를 감췄다.


[차시명의 고착을 제거했습니다]

[차시명의 고착을 제거했습니다]


옴짝달싹할 수 없던 그에게 숨을 틔워주었다.

이곳 심상던전에서도, 또 외부의 현실에서도 그럴 터였다.

원이 나침반을 꺼내 들었다.

나침반의 바늘은 좌측 언덕 너머를 가리키고 있었다.


“가시죠. 더 깊게 들어가야 해요.”


깨앵!


[차시명의 스트레스를 해소했습니다]

[차시명의 고착을 제거했습니다]


장애물을 처리해가며, 차츰 목적지에 다다랐다.

시명이 말했다.


“이상하게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 같기도···”


동굴 청소가 확실히 도움이 되는 모양이었다.

이번에는 원이 질문을 던졌다.


“혹시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까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없어요. 제가 두 살 때 두 분이 갈라섰다고 들었는데··· 그때 아예 연락을 끊으셨거든요.”


예상대로, 아버지의 흔적은 그리 많지 않았다.


“전해 들은 사실이라도 괜찮아요. 인상 깊은 것일수록 더 좋고요.”

“인상 깊은 거라···”


골똘히 생각하던 시명이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두 분의 독특한 러브 스토리인데··· 듣고 싶으세요?”

“좋죠.”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어머니는 이미 유망한 패션 디자이너였어요. 영국 유학파에 집안도 굉장했죠. 딱 한 가지 예외적이었던 게 있었는데···”

“시명 씨의 아버지였군요?”

“맞아요. 아버진 시골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던 별 볼 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지방 행사 중 급하게 옷을 맡기다가 눈이 맞았다고 하더라고요. 집안에서 뜯어말렸지만, 막무가내로 혼인신고부터 해버렸다고 해요.”


잠시 숨을 고른 원이 물었다.


“그렇군요. 꽤 로맨틱한 이야기인데··· 어째서 갈라섰는지도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세탁소 때문이라고 들었어요. 아버지가 물려받은 가업이었는데, 어머니는 시골에서 살 생각이 없었으니··· 장거리 주말 부부 노릇도 한계가 있었던 모양이죠.”


시명이 허무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이야기는 잠시 숨을 골랐다.

어느새 통로까지 도착한 두 사람이었으니.


서걱!

원이 통로를 감싼 막을 익숙하게 베어 넘겼다.


[억압(B)을 제거했습니다]

[위험이 증가합니다. 탐사에 유의하세요]


짧은 통로를 걸었다.

새하얀 형광등 빛으로 가득찬 공간에 들어서자, 시명이 탄성을 내질렀다.


“이건···”


그곳은 거대한 크기의 세탁소였다.

실타래들이 아찔한 바늘과 함께 사방에 매달려 있었고, 날카로운 바늘 장식으로 이루어진 가죽옷들이 비닐에 싸여 걸려 있었다.


칙! 치익!

스팀 연기가 곳곳에 피어올랐고,


두두두두두두두!

재봉틀 몇 대가 미친 듯이 바늘을 찌르며 기차처럼 굴러다녔다.

자동차만한 크기인지라, 자칫 다가갔다간 바늘에 도륙이 날 것 같았다.

원이 말했다.


“여기가 시명 씨가 말한 세탁소일 수도 있겠네요.”

“세탁소··· 그럼 여기에 아버지가 계신 건가요?”

“아마도요, 제 생각에는···”


챙! 채앵!


날카로운 파공음이 들려왔다.


“어머니도 계실 겁니다.”


원이 나침반을 꺼냈다.

나침반의 바늘은 파르르 떨리며, 파공음이 들리는 곳을 가리켰다.


목적지가 가까웠다.

세탁소 중앙에 위치한 다림판.

그곳이 시명의 환상이 존재하는 메인 스테이지였다.


두 사람은 위태롭게 솟은 바늘, 데일 듯한 스팀 연기, 맹렬한 재봉틀을 피해 가까스로 다림판 근처에 다다랐다.

유난히 길쭉한 다림판의 양 끝.

그 위에는···


채잉! 티잉!


두 명의 펜싱 선수가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시명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어머니···?”


우측에 선 선수는 시명의 어머니였다.

새빨간 입술, 날카로운 선글라스가 협회에서 보았던 그녀의 얼굴과 닮아 있었다.

세탁소의 사물들은 하나같이 거대했지만, 그녀의 몸집에 비할 순 없었다.


쿵! 쿵!

거인이 된 그녀의 스텝에 따라, 다림판의 지축이 흔들렸다.


반면, 왼쪽의 선수는 빈약하게 짝이 없었다.

원에게는 익숙한 형상이었다.


검은색의 초자아.

혜원과 길용의 던전에서 거인 같은 체구를 자랑하던 녀석이 어쩐지 어린아이만도 못한 빈약한 체구를 갖고 있었다.


당연히 싸움이 될 리가 없었다.


채앵! 팅!

시명의 어머니가 휘두른 칼날이 매섭게 몰아쳤다.

초자아는 급급히 방어를 이어갔지만, 이어지는 공격에 속수무책이었다.


원은 [증상탐지]에서 보았던 문구를 기억해냈다.


[부권적 은유가 충분히 형성되지 못했습니다]


부권적 은유란 쉽게 말해, 어린아이의 성장 과정에 필요한 아버지의 상징적 역할이다.

정신분석에서는 갓난아이를 반쯤 어머니와 연결된 존재로 본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에도 불구하고, 그 강렬한 애착 관계가 고착되면 되레 아이의 성장에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아이의 독립적 세계 자체를 지워버리는 것이다.


이때 필요한 것이, 바로 아버지의 중재다.


‘다 큰 놈이··· 언제까지 엄마 치마 속에 들어가 있을 작정이야?’


아버지는 아이를 어머니와 떼어놓는다.

어머니가 자신의 모든 세계였던 아이는, 그제야 냉혹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어머니와 단둘이서만 살아갈 수는 없다는 걸.


하지만 시명에게서는 그런 아버지의 흔적이 부족했다.

아이처럼 쪼그라든 초자아의 모습이 바로 그 증거였다.

시명이 두려움에 떨었다.


“선생님··· 저희 그만 나가면 안 될까요? 좀··· 무서워서···”


그때였다.

시명의 어머니가 홱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입술이 끈적하게 열렸다.


“시··· 명···아···”


쿵! 쿵!

그녀가 시명을 향해 다가섰다.


두두두두두두!

재봉틀이 원진을 그리며 포위망을 형성했고, 한껏 풀어헤쳐진 실타레가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선생님!”


시명은 완전한 패닉 상태에 접어들었다.


차아앙!

원이 어머니를 향해 방벽을 전개했다.

잠시 발을 묶는 듯했지만,


쨍그랑!

어머니의 강력한 작인이 방벽을 종잇장처럼 찢고 나왔다.

하지만···


그녀를 막아 세우는 존재가 하나 더 있었다.


“아버지···?”


초자아가 어머니의 경로를 막아 세웠다.

그리곤 다시 칼싸움을 벌였다.

아니, 칼이 아니었다.

얇고 뾰족한 바늘이었다.


밀리는 건 여전했지만, 초자아는 사력을 다하고 있었다.

원이 시명을 채근했다.


“시명 씨, 바늘과 관련한 기억을 떠올려봐요. 분명 아버지와 어머니를 둘러싼 기억이 떠오르는 게 있을 거예요.”

“기억이 있을 리 없어요. 아버지는 두 살 때 저를 떠났다고요.”

“상상이라도 좋아요. 자꾸 떠오르곤 했던 어떤 한 장면이 있을 거예요.”

“장면이라면···”


벼락이라도 친 것처럼, 그가 멈칫 고개를 세웠다.


“맞아요··· 어느 날 어머니가 이런 시골 촌구석에서는 도무지 못 지내겠다고 으름장을 놨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아무런 대답 없이 재봉틀을 굴리고, 손바느질을 할 뿐이었죠. 화가 잔뜩 난 어머니가 아버지의 어깨를 잡아끌었어요. 그러다가···”


싸아아···

서늘한 감각이 정수리를 타고 내렸다.


“어머니가 바늘에 찔렸어요.”


카아앙!

두 개의 바늘이 부딪쳤다.

놀랍게도, 초자아의 몸집이 그새 불어나 있었다.

미미한 차이였지만, 확연한 변화였다.


시명의 장면은 오래된 기억일 수도, 단순한 상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그 장면이 시명을 지켜주고 있었다는 사실이니까.

그의 어머니의 욕망으로부터.


원이 마지막 해석을 내어놓았다.


“짐작했겠지만··· 시명 씨가 진짜 두려워하는 건 바늘이 아니에요. 보다 근본적인 원인은 어머니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는 불안에 있었죠. 오히려 첨단공포는 그 불안을 잠재워 주는 역할을 했을 거예요. 왜냐면··· 시명 씨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니까요.”


카앙!

시명이 사투를 벌이는 초자아를 망연히 쳐다보았다.

그 손에 바늘이 들려 있었다.


“뾰족한 물건은 어머니가 바늘에 찔렸던 때를 상기시켜요. 막무가내였던 어머니가 유일하게 멈춰 섰던 때를. 달리 말하면···”


“아버지가 어머니의 뜻을 꺾었을 때를.”


놀랍게도 초자아는 끈질기게 서 있었다.

위태롭게 다리를 절뚝이며, 마지막까지 바늘을 휘둘렀다.

원이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아버지에게 기댈 순 없어요. 시명 씨가 직접 해야죠.”

“제가요···?”


원이 바닥에 떨어진 바늘을 주워 시명에게 건넸다.

검처럼 크고 긴 바늘이었다.


“가서 도우세요. 시명 씨는 각성자잖아요. 이길 수 있어요.”

“하지만···”


망설이던 시명이 토해내듯 원의 말을 반박했다.


“제게는 결코 좋은 아버지가 아니었어요. 아니, 차라리 제 삶에 아버지란 존재는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죠. 그런 아버지를 도와야 한다고요?”

“물론 최악의 아버지였죠. 하지만··· 한 가지 물려받을 만한 건 있어요.”


원이 다시 바늘을 내밀었다.


“세탁소를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것. 시명 씨도 헌터를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지 않았나요?”


시명은 대답이 없었다.

하지만···


탁!

바늘을 잡아 들었다.

천천히 내려온 바늘이 둥근 호를 그렸다.


뒤돌아선 그는 완연한 검사의 모습이었다.

더 이상 그는 그 뾰족한 끝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타앗!

시명이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초자아와 함께 그의 어머니를 막아 세웠다.

세찬 공방이 그녀의 공세를 철통같이 막아 세웠다.


츠츠츠···

검은 초자아의 형상이 어른의 모습을 갖추었다.

그와 반대로, 시명의 어머니의 몸집 또한 서서히 줄어들고 있었다.

날카로운 선글라스와 붉은 입술이 녹아 흘러내렸고, 결국 남은 것은··· 흰색을 띤 사람의 형상이었다.


검은 초자아와 흰색 사람은 싸움을 멈췄다.

그리곤 이내 훌쩍, 무대에서 사라져버렸다.

시명이 말없이 그 흔적을 되짚는 동안, 원에게는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차시명의 증상을 해소하였습니다.]

[탐사 보상이 주어집니다]


“앗 따가.”


원이 손을 움츠렸다.

손에는 머리털이 바늘처럼 솟은 차시명의 흉상이 주어져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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