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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의 서재입니다.

헌터들의 정신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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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채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4.21 10:49
최근연재일 :
2023.04.29 23:1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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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85
추천수 :
139
글자수 :
82,527

작성
23.04.22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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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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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마비증 강혜원 (2)

DUMMY

빛이 비치는 동굴의 끝에 다다랐다.

그 끝, 김원이 서 있는 곳은 드높은 절벽 위였다.

원이 혀를 내둘렀다.


“던전이··· 이럴 수도 있는 건가?”


절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것은 놀랍게도 전형적인 한국의 도심이었다.

조금 찌그러져 있거나, 흐릿하거나, 비율이 이상하기도 했지만 평범한 주거지 건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기이한 진풍경이었지만, 김원은 금방 납득했다.


‘하기야, 무의식이라면 이쪽이 더 잘 어울리지.’


아무리 종잡을 수 없는 무의식이라지만, 그 토대는 현실에서의 경험이다.

그런 무의식에서 비롯한 심상던전이니, 일상적인 풍경이 등장하더라도 아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현실적이지만은 않았다.


‘···기괴하네’


유치원, 초등학교, 마지막으로 그 중간에 놓인 고등학교까지.

정확히 세 개의 건물만이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저건··· 강혜원 씨?’ 


교복 차림의 그녀가 운동장을 질주하고 있었다.




***




김원은 아등바등 절벽을 내려왔다.

대부분 계단이 놓아져 있었지만, 이따금 끊어진 구간이 있어 추락할 만한 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학교로 향하는 길은 제법 까다로웠다.

순회하는 스트레스 늑대(?)들의 시선을 피해 골목을 빠져나왔다.


마침내 도착한 학교 앞.

정문이 내다보이는 수풀에 몸을 숨기자, 혜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운동장을 가로질러 정문을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하지만··· 결코 정문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우뚝.

귀신에 홀린 듯, 정문에 다다른 그녀가 멈춰섰다.


삐이이-

그녀의 왼쪽 다리가 붉게 빛났다.

[증상탐지]는 말하고 있었다.

이 상황이 그녀가 가진 증상의 원인이라고.


상황은 반복됐다.

다리가 마비된 그녀는 홀연히 학교 안쪽으로 되돌아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차 운동장을 가로질렀다.

시시포스의 형벌과도 같은, 고통스러운 무대였다.


이제 김원이 개입할 차례였다.


터벅터벅.

그를 발견하자마자, 교문에 선 혜원이 화들짝 놀라 물었다.

잠이 덜 깬 것 같은 표정이었다.


“선생님, 여기서 뭐 하세요?”

“혜원 씨, 지금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기억하겠어요?”

“같이 상담을··· 잠깐만, 이게 다 뭐예요?”


혜원은 혼란스런 표정이었다.


“여기 제가 다니던 고등학교예요. 그리고 제가 왜 교복을 입고 있죠? 선생님은 또 왜 여기에 있고요?”

“설명하자면 길어요. 혜원 씨, 우리 분석 치료 중이던 것 기억해요?”

“그야, 기억하죠. 방금 전인데.”

“간편히 말하자면··· 제 각성 능력을 이용한, 일종의 최면 치료 같은 거예요. 경황이 없는 중에 미안하지만, 나중에 자세히 설명해 드릴 테니, 지금은 치료에 집중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니··· 그런 것도 할 줄 아셨어요?”


최면.

실제로는 정신분석에서 사용하지 않는 방법이다.

치료 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증상탐사]는 달랐다.

숨은 기억을 고스란히 재현하면서도, 대화치료의 장점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다.

분석 치료의 도구들의 장단점이 보완되고, 통합되는 순간이었다.


다음은 혜원의 차례였다.

첫걸음은 그녀의 기억을 끌어내는 것부터.


“이곳은 혜원 씨의 기억 속의 한 장면이에요. 운동장을 전력으로 뛰어나오다가, 정문에서 갑자기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죠.”

“아···”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기억나요. 게이트 사태가 벌어진 날이었어요.”


지금으로부터 8년 전.

지구에 처음으로 게이트와 던전이 출현한 날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단 하루 안에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날.

그날 그녀 또한 긴박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죠?”

“···학교에서 뉴스를 보자마자 동생들 생각이 났어요. 일단 교실을 뛰쳐나왔죠. 그런데 정작 정문을 나서려고 보니··· 누구에게 먼저 가야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어요.”

“그때 기분은요?”

“그게···”


쿠구구···

땅이 흔들렸다.

혜원의 심리 상태의 영향이었다.


“기억이··· 잘···”


억압이 작동하고 있었다.

질문이 버거웠는지, 혜원이 급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다행히 막내 유치원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긴급 대피소로 이동 중이니 유치원으로 오지 말라고요. 그래서 초등학교에 있는 둘째를 찾아러 갔었죠.”


혜원이 반색했다.


“이제 알겠어요. 그래서 제 다리가 멈췄던 거였군요? 그러고 보니 두 달 전에도 상황이 비슷했어요. 팀원 두 명이 딱 비슷한 위치에서 지원을 기다리는데··· 누구 앞에 먼저 방벽을 소환해야 할지 혼란스러웠거든요.”


그러나 원은 고개를 저었다.

원인을 발견했다면 증상은 즉시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분석 치료의 해결법이니까.

하지만 그녀의 왼쪽 다리는 아직 붉게 물들어 있었다.


억압은 교묘하게 속인다.

‘내가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느끼도록.

하지만 김원은 놓치지 않았다.


“선택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에요. 오히려 쉽게 선택했기 때문에 다리가 멈춘 거였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쁜 생각이잖아요. 가족 중 한 명의 생명을 선택한다는 게.”


쿵-

혜원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녀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라고요?”


싸아아-

일순, 소름끼치는 음산함이 김원을 휩쓸었다.

주변으로는 다이어울프를 닮은 스트레스 늑대들이 조금씩 무리 지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의 억압을 건드린 대가였다.


하지만 원은 멈추지 않았다.


“다리를 멈춘 건 혜원 씨의 무의식이에요. 단, 무의식은 그 방법으로 혜원 씨를 지켜주려 했어요.”

“······”


억압과 무의식은 정신의 기능이다.

주인을 보호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다.

때론 그 결과가 더 끔찍한 결과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증상의 역할은 간단해요. 두 동생 중 하나를 선택했다는 끔찍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다리를 멈추어주는 거죠. 그럼 혜원 씨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돼요. ‘나는 선택하지 않았어. 발이 차마 떨어지지 않았어’라고.”

“···"


혜원이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주어질 것은 잔혹한 진실만이 아니었다.


“다리에 생긴 마비증은 혜원 씨 자신에 대한 처벌이기도 해요. ‘감히 동생 중 하나를 선택하다니. 나는 혼쭐이 나야해’라며 스스로에게 되뇌고 있는 거죠.”


이대로라면 그녀는 한 달 뒤 두 다리가 잘리는 부상을 입게 된다.

어쩌면 그건 그녀의 무의식이 의도한 결과였을지 모른다.

감히 두 동생의 목숨을 저울질한 자기 자신에게 내리는 가혹한 형벌.

결국, 그녀의 증상은 두 가지 심리적 기제가 얽힌 이중적인 성취였다.


“하지만 그건 정당한 처벌이 아니에요.”


원이 칼을 뽑아 들었다.

늑대들이 사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그가 혜원에게 물었다.


“저거 보여요?”

“저건···?”


멀리 떨어진 골목의 끝자락, 거대한 흑색 거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까아아아아아!


놈이 맹렬한 울음소리를 내뱉었다.

원은 거인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가 혜원에게 말했다.


“인간의 정신에는 초자아라는 것이 있어요. 우리가 나쁜 일을 할 때, 양심의 가책을 주는 기능을 하죠.”


콰아앙!

타앙!


거인이 차츰 다가오고 있었다.

놈이 팔을 휘두를 때마다 건물이 토막 났고, 나무가 뿌리째 뽑혀 나갔다.

혜원도 차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잘못했어요··· 잘못했어요···”


원이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혜원 씨.”

“네···?”

“초자아는 정신의 재판관이지만, 언제나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건 아니에요. 밑도 끝도 없이 벌을 주려 달려들 때가 있죠. 그럴 땐 스스로를 변호할 줄도 알아야 해요.”


원이 그녀를 변호하고 나섰다.


“동생 중 하나를 선택했던 것, 그렇게 무심코 품은 생각이 혜원 씨의 모든 것을 설명해주지는 않아요. 당신이 그 선택에 괴로워했다는 사실이 백번은 더 중요하죠.”


내밀한 속마음을 아는 것이 무용할 때가 있다.

거기엔 아무런 의미도 없기 때문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대하는 태도에 달려 있다.


“스스로를 용서하세요. 혜원 씨, 그때는 못 했더라도 지금은 할 수 있어요.”


차츰 늑대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었다.

혜원이 고개를 들었다


“제가··· 어떻게 하면 되나요?”


그녀의 표정에서 일말의 용기를 읽은 원이었다.

이제부터는 그의 전매특허였다.

분석치료의 진가는 각성 능력을 강화하는 데 있었으니.

원이 말했다.


“방벽을 세우죠. 놈에게 적당한 선이 있다는 걸 알려줘야 하니.”


초자아는 정신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기능이다.

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면 또 곤란하다.

적절한 선에서 바로잡아줄 필요가 있었다.


쿵··· 쿵···


학교 운동장에서 벌어진 ‘선택 장애’의 불안.

그 불안을 노린 초자아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막아요!”


차아앙!

혜원이 세운 투명한 유리 방벽이 놈의 진로를 막았다.

그녀는 거친 숨을 내쉬며 거인을 향해 손을 펼치고 있었다.

이내 버티는가 싶었지만,


쩌적··· 챙강!

금이 가며 곧 깨져버렸다.


첫술에 배부를 순 없었다.

혜원이 재차 방벽을 전개했다.

하지만···


와장창!

이번에도 가차 없었다.

혜원의 얼굴에 절망이 물들었다.


“선생님, 방벽 소환은··· 두 번이 한계에요.”

“그때와 똑같이 생각하면 돼요. 놈을 막을 수만 있다면 동생 중 누구도 선택하지 않아도 돼요. 문제는 여기서 해결될 거니까요.”

“그래도···”

“그런 선택은 무력하기 짝이 없을 때나 하는 거예요. 혜원 씨에게는 이제··· 직접 동생들을 지킬만한 능력이 있고요.”


성큼 다가오는 거인을 바라보던 혜원이 질끈 입술을 깨물었다.


“알았어요.”


혜원이 한계에 도전했고,


차아아앙!


새롭게 나타난 세 번째 방벽이 거인을 막아 세웠다.

첫 번째, 두 번째 것보다 두껍고, 넓은 거대한 방벽이었다.


타앙! 탕!

놈이 몸부림쳤지만, 방벽은 건재했다.

탄성으로 충격을 튕겨낸 방벽이 흔들흔들 움직였다.

놈의 발버둥이 한참 동안 이어졌지만, 그럼에도 혜원의 벽을 넘어설 순 없었다.


“선생님··· 저, 저거···”


놀라 혜원이 녀석을 가리켰다.

거인의 몸은 차츰 줄어들기 시작했다.

녀석이 애처롭게 울었다.


“까아··· 까···”


이제는 사람만 한 사이즈였다.

그게 ‘초자아’가 가져야 할 적당한 크기인 모양이었다.

마음의 법의 집행자인 초자아다.

하지만 사람 나고 법이 났지, 법 나고 사람 날 순 없는 법이었다.


몸이 작아진 녀석은 그새 얌전해졌고, 골목을 배회하며 천천히 멀어져갔다.


메시지가 떠올랐다.


[강혜원의 증상을 해소하였습니다.]

[탐사 보상이 주어집니다.]


슈슉.

원의 손 위로, 묵직한 선물이 쥐어졌다.


‘탐사 보상이라고?’


마나석도, 아이템도, 몬스터의 부산물도 얻을 수 없는 심상던전이다.

하지만 증상을 치료할 때마다 나름의 보상이 주어지는 모양이었다.


보상은 손바닥 크기의 흉상 조각상이었다.

꽤나 앤틱한 생김새였지만, 혜원을 모델로 하여 만들어졌다는 걸 어렵잖이 알아볼 수 있었다.


“선생님···”


그간의 불안을 깨끗하게 씻어버린 혜원이 원에게 다가왔다.

신기하게도 그녀에게는 조각상이 보이지 않는 듯했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조각상의 얼굴은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으니.

이런 오묘한 물건은 보여주지 않는 편이 나았다.


[증상탐사를 종료하시겠습니까?]


더 이상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았다.


원은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두 사람의 의식은 다시금 빛으로 돌아갔다.


.

.

.


혜원이 흰 가운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잠이 덜 깬 듯한 벙벙한 표정.


그 몽롱함이 남아 있는 건 원 또한 마찬가지였다.


혜원이 부스스 머리를 긁으며 물었다.


“끝··· 난 건가요?”

“예···”


그렇게, 첫 분석이 마무리되었다.

1년도, 10년도 아닌, 한나절 만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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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터 전문 분석가 김원 (1) +1 23.04.21 454 14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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