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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미 님의 서재입니다.

선인들에게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기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봉미
작품등록일 :
2023.12.19 07:48
최근연재일 :
2024.02.10 17:10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630
추천수 :
22
글자수 :
106,843

작성
24.01.25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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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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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0화 천축의 진실

DUMMY

한 번 이상함을 느끼자 무언가가 다르게 느껴졌다. 마을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위지혁과 명옥상의 눈에는 그저 어제까지와의 마을과는 달라보였다.


의심암귀(疑心暗鬼)


의심은 귀신은 낳는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러할까?


사공혜가 있던 집 근처에 다가가니 어딘가 눈물 섞인 탄식이 들려오는 것도, 얼마전까지 생생했던 여아의 빈자리도 모두 허상인 것일까?


위지혁은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발이 움직여지지 않았다.얼마나 기다렸을까.


멍하니 문을 바라보고 있던 위지혁의 눈앞에서 문이 열리고, 사공혜의 모친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


붉은 눈을 하고 있는 그녀는 눈을 돌렸다.


“......”


무엇이라고 말해야 될까. 위지혁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막연한 예감이었지만 그것이 말을 가로막고 있었다.


“어쩐 일로...”


그녀가 처연한 목소리로 물었다.


“혜는....”


“흑.”


자식의 이름을 들었을 뿐인데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흐으으으....혜는.....혜는...”


무언가 말하려고 하지만 뒤는 말이 되지 못한 채 그녀의 속에서만 흘러나왔다. 그러기를 잠시, 간신히 진정된 그녀가 눈물을 거두고 말을 이었다.


“혜를... 찾아오신건가요?”


그녀의 물음에 위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는....혜는....본존께서 거두시어 잘 지내고 있을 겁니다.”


“......”


‘본존?’


그것이 대체 무엇이기에 저리 슬픈 목소리로 말을 하는 것일까? 위지혁의 마음속에선 의문이 가득했지만, 그녀의 슬픈 눈망울에 질문을 할 수가 없었다.


한번, 한번만 더 건드리면 순식간에 사라질 것처럼 덧없이 느껴졌기에.


말을 간신히 마친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



***


그런 일이 있은 후 장이족과 위지혁은 마을을 계속해서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좀처럼 알아 낼 수 있는 것은 없었다.


본존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존칭을 쓰는 것으로 보아 분명 살아있는 존재이기는 할 터. 그럼 도대체 마을의 어디에 존재한단 말인가?


아직까지 외부인인 그들로서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한동안 고민하던 그들이 택한 길은 정공법이었다.


“본존.....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수련장에서 위지혁이 초승과 둘이 있게 되자 자연스레 말을 꺼냈다.


“음?...어디서 들은 겐가?”


“.......”


“흠......어디서 우연히 듣기라도 한 모양이군.”


“예 뭐.”


“뭐 딱히 비밀은 아니고, 곧 자네들도 알게 될 예정이었다네.”


“그러면...”


“상세한 것은 낙명님이 얘기하시겠지만.....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생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네.”


“생....불? 뭡니까.”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위지혁에겐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다.


“.....흠...자넨 알아둬야 할 것이 너무나 많군. 단어 그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은데 맞나?”

초승의 물음에 위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쯧쯧. 살아있는 부처를 일컬어 생불이라고 한다네. 쉽게 말하자면 이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라고나 할까?”


“수.....호신이라구요?”


“그래. 설마하니 마을의 결계라는 것이 자연스레 만들 수 있겠는가? 장이족들의 마을에는 그런 것이 있었다고는 들었네만....적어도 여기서나, 인간들로선 불가능한 일이지.”


“.......신이 실존한다는 겁니까?”


“글쎄.....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자네 스스로가 판단 내려야 할 것 같군. 하지만 적어도 이 마을을 지켜준다는 점에선 이론의 여지가 없지.”


무언가 걸리는 듯한 말이었다. 지켜주면 지켜주는 것인지 그것을 따로 판단을 내리라니. 애매호하지 않은가.


“그....”


위지혁이 말을 꺼내려는 순간 초승이 먼저 선수쳤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라네. 괜한 얘기를 더해서 선입견을 주고 싶지는 않군. 상세한 것은 낙명님께서 곧 얘기하실 꺼라 생각하네.”


딱 잘라버리는 초승의 태도에 더 이상 들어낼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 위지혁이 순순히 물러났다.


“알겠습니다.”


위지혁이 말을 마치고 인사를 하며 떠나려고 등을 보였다.


“자네 덕분에 마을의 식량 사정도 한동안은 괜찮을 것이고, 낙명님께서 시간이 나면 자연스레 말씀해주실 것이네.”


초승과 멀어져가는 위지혁의 등 뒤로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



위지혁은 그날 이루 낙명과의 만남을 기다렸지만, 낙명은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마을 안에 들어와서도 얼굴을 본적이 거의 없었다. 그가 마을의 수장임을 생각해보면 좀 이상한 일이었다. 그만큼 바쁜 것일까?


그가 간신히 낙명을 마주할 수 있었던 것은 낙명의 부름이 있고 나서였다. 사공혜가 실종된 날부터 헤아려보면 한 달 째의 일이었다.


부름에 응해 위지혁은 낙명이 있는 곳으로 안내받았다. 천축에 들어왔을 당시 컸던 그 건물의 지하를 계속해서 내려가자 밀실이 나타났다.


‘이런 곳이 있었나?’




“마을은 지내기에 어떤가?”


대면하자마자 위지혁의 귀에 들려온 것은 낙명의 질문이었다.


얼마 전이었다면 바로 좋다고 대답했을 것이나, 의구심을 품은 지금 그런 말이 나올리는 없었다.


"......."


낙명은 위지혁의 침묵을 불편함의 의미로 받아들이고, 말을 이었다.


“흠.....왜 그러나? 혹 하운 녀석 때문이던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가? 그럼 더 이해가 가지 않는군.”


“.....본존이란 무엇입니까?”


“흐음. 누군가에게 들었나?”

낙명의 목소리가 한층 깊어졌다.


“......우연히 들었습니다. 초승 그분에게도 한 번 물어보았습니다만...”


“클. 그래 뭐라던가?”


“선입견을 주지 않다고 하시더군요.”


“.....쯧쯧. 아직도 미망(迷妄)에 사로잡혀있군.”


“......”


“자네가 오해할 수도 있겠군. 그래 본존께서 이 마을을 수호하신다는 것은 들었나?”


“예.”


“그래? 초승 녀석.....”


낙명은 말을 잠시 흐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흠. 들은 그대로라네. 본존께서는 이 마을을 수호하시는 분이시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혜를 받는 입장에서 그것을 판단을 내리다니 말이 되지 않는 일이지.”


얼핏 들으면 타당한 말이었다. 하지만 위지혁의 머릿속에서는 마치 누군가가 속삭이는 듯 했다.


정말 그러할까?


한 번 생겨난 의구심이 사라지질 않는다.


위지혁의 마음과는 달리 낙명은 마치 신들린 것처럼 말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결계는 자네도 오가며 두어 번 봤을 테니 말은 쉬워지겠군. 그런 신통력을 뉘라서 인간의 마을을 향해 베풀어주신단 말인가. 그뿐 인줄 아는가? 본존께서는 이런 보패까지 만들어주신다네.”


낙명이 손을 뻗자, 그의 뒤편에 있던 무언가가 날아올랐다.


홱. 획획획.


수 자루의 보검이 공중을 수놓았다. 낙명과 위지혁을 주위를 빠른 속도로 돌던 보검들이 검광을 토했다. 그것을 감상하던 낙명이 손짓하자 검들의 움직임이 변했다.


“질!”


낙명의 기합과 손짓에 검들이 위지혁과 낙명 사이에서 멈추었다. 공중에서 떠 있는 그대로 말이다.


“어떤가? 선인들이나 갖고 다니는 보패라네. 영성을 띈 무기라고 할까? 자아를 가지고 있어 말 그대로 살아 있는 무기나 다름없고, 일반 도검들과는 파괴력 자체가 틀리지.”


찌링. 띠링.


그 중에 하나의 보검이 미약하게 검명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위지혁에게 다가가면서.


“응?”


그 광경에 낙명이 신기함을 표했다.


“희한한 일이군.”


검이 서서히 다가오자, 위지혁이 손을 들어 검에게 내밀었다. 왠지는 모르지만 그래야만 할 것 같기에.


검등과 손이 마주하자 무언가가 위지혁의 뇌리에 봇물처럼 마구 흘러들어왔다. 단편적인 장면, 감정의 파편,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것들이 해일처럼 전해져왔다.


“우........우웨엑.”


“자네 왜 그러나.”


낙명은 검과 접촉 후 갑작스레 토하기 시작한 위지혁을 염려하며 말을 건넸다.


“....다....당신.”


“응?”


위지혁이 검지를 낙명에게 들어올리며 외쳤다.


“아...이....아이를 바쳤군!!”


“......자네 설마 검과 소통하는 것인가?”


“미쳤어. 당신은!!!”


“미쳐? 내가?”


격앙되어 외치는 위지혁과 차분한 낙명의 모습은 너무나 대조적이었다.


“자네가 뭔가를 오해하고 있는 것 같네.”


“오해는 무슨 오해!!!!!!”


위지혁의 성난 노성이 밀실을 뒤흔들었다.


“이런 이런. 진정하게. 평화롭고 평온한 마을에 괜한 소동이라도 일으킬 셈인가?”


“평화롭고 평온?..... 어디가!!!!!!!!”


“허어......본존께서 힘을 행사하신다고 하지만 그 힘이 어디 거저 나오는 것이던가? 우리 인간이 먹지 않으면 살 수 없고 힘을 쓸 수 없는 것처럼 그분도 먹어야 힘을 행사할 것이 아닌가.”


낙명은 진심으로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사람을. 그것도 아이를 바쳐?”


“쯧. 너무 어려서 그런 것인가? 자네도 바깥에서 그 나이까지 살아왔으니 본 것이 있지 않은가. 몇 개월, 몇 년에 어린 아이 한명이라면 결계도 없이 살아가는 것보다 훨씬 적은 희생이라는 것을 왜 모르나!!”


그 말에 분명 위지혁이 떠오르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분명 그랬다. 바깥에서의 삶이란 처절하기 그지없는 것. 항상 쫓기고 죽음과 삶을 오가는 줄타기.


그렇다곤 하나 사람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존재했다. 잠시 고민하던 위지혁이 떠오른 하나의 의문을 입에 담았다.


“그 희생에 당연히 당신은 들어가 있지 않겠지?”


“나? 허. 허허허허.....”


낙명은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하다 외쳤다.


“아직 힘도 없는 아이와 이 마을을 꾸려나가는 나. 어느 쪽이 중요한지 말을 해야 아는 것이냐!!!!!!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선 나라는 존재가 필수불가결이거늘.”


“으......우......”


위지혁의 입에서 짐승과도 같은 소리가 흘러나왔다. 징조였다. 분노를 토해내기 위한 징조이자 전조.


“죽어!!!!!”


순간 하얀 섬광이 공간을 가로질렀다. 어느 사이엔가 위지혁의 손에 들어가 있는 검으로 낙명의 목이 달아났다.


추오의 사냥에 나가기 전, 초승이 가르쳐준 구법보(求法步)를 위지혁이 필사적으로 닦아왔기에 가능한 속도였다. 말 그대로 신기(神技).


철퍽!


텅. 채앵!! 치이잉!!


머리가 떨어지고 이어 공중에 늘어서 있던 검들 또한 땅으로 떨어졌다.


오랜 세월 마을 다스려왔던 이의 머리가 갈라졌다. 마을의 그 누구보다도 오래 살아왔으며, 현재 마을의 사는 이들의 부모와 조부모 때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살아왔던 낙명이 이렇게 머리가 상하로 분리 될 줄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천축이라는 마을을 끝장내버릴지도 모르는 일을 벌였음에도, 위지혁은 그 같은 생각은 없었다. 그저 아직도 식지 못한 가슴의 덩어리를 마저 토해내고 싶을 뿐.


그가 발걸음을 바삐 옮겼다. 초승이 거하고 있는 곳으로.


이제는 시체만이 남아있는 밀실 속에선 엉겨 붙은 피들이 불길하게 흐르고 있었다.


작가의말

재미있게 보셨다면 선작 추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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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16화 단(丹) 24.02.03 43 0 12쪽
16 15화 분열 24.02.01 84 0 11쪽
15 14화 최후 24.01.31 68 0 12쪽
14 13화 대결 24.01.30 42 0 11쪽
13 12화 되살아나는 자 24.01.28 37 0 14쪽
12 11화 살아간다는 것 24.01.26 52 0 12쪽
» 10화 천축의 진실 24.01.25 40 1 11쪽
10 9화 이상(異常) 24.01.24 60 1 11쪽
9 8화 사냥 24.01.23 72 1 12쪽
8 7화 천축에서의 일상 24.01.21 60 1 11쪽
7 6화 무공입문 24.01.20 69 2 13쪽
6 5화 천축 24.01.12 74 2 16쪽
5 4화 제천대성 24.01.10 128 2 11쪽
4 3화 혼세암주 24.01.07 125 3 12쪽
3 2화 장이족 24.01.06 149 2 11쪽
2 1화 혈원불사 24.01.06 169 3 12쪽
1 서(序) 24.01.06 241 4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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