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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필 님의 서재입니다.

이물사냥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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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한필
작품등록일 :
2020.05.11 15:06
최근연재일 :
2021.06.07 15:25
연재수 :
3 회
조회수 :
955
추천수 :
59
글자수 :
53,613

작성
21.05.13 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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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쪽

프롤로그

DUMMY

불쾌한 기분이 들었다.

피부는 뜨겁고, 몸은 더 없이 차가워지는 느낌.

그 기괴한 감각에 남자는 눈을 떴다.

정확히는 정신을 잃은 동안 감긴적 없는 망막에 담긴 풍경을 인식했다.


붉고, 흐리고, 끈적였다.

불쾌하나 있어야할 그런 감각이었다.

남자는 굳이 더 생각하지 않았다.

대신 안구를 타고 흐르는 이물감에 눈을 감으려 했으나 눈꺼풀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다른 방법을 궁리하기위해 다른 곳도 점검에 들어갔다.


앞으로 푹 숙여진 그의 목은 누군가 석고로 만든 목도리를 씌운 듯 움직이지 않았다.

남자는 잘 보이지 않는 눈에 신경을 모았다.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와

그에 어울리는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이용해 필사적으로 자신의 몸통을 보았다.

역시나 어울렸다.

어떤 의미에서든지.


가슴의 명치는 흐릿한 눈으로도 보일만큼 뭉개져 움푹 들어가 음영을 드리웠고,

수직에 가까운 사선으로 쪼개진 갑옷이 그 위를 덮여있었다.

얼추 반반으로 나뉜 갑옷의 균열에서 쉴 새 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남자는 눈을 왼쪽으로 굴렸다.

그곳에는 자신이 쏟아낸 피웅덩이밖에 보이지 않았다.

있어야할 팔대신 붉은 생명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


남자는 눈을 오른쪽으로 굴리며 양 다리를 살폈다.

다리 하나는 있을 수 없는 방향으로 뒤틀려 있었고,

반대쪽 다리는 하얀 것이 삐져 나와있었다.


여태까지 나온 절망적인 패는 뒤집어 놓고 마지막 패를 확인했다.

가죽 장갑은 커녕 살가죽마저 벗겨지고 드러난 힘줄과 근육이 움찔거리며

손가락은 경련하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패였다.

그 몰골이 되어서도 도끼를 꼭 쥔 점에서 확실한 합격패였다.

역시 마지막 패까지는 확인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면서.


패를 확인한 남자는 녹아내리는 사고속에서

다시금 기억의 요람을 파헤치기시작했다.

어째서 이 넝마같은 몸뚱이를 쓰려고 했는지.

무엇을 잊고 있었는지.


남자는 오른팔을 움직이라고 몸에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격통과 함께 손 끝이 잠시 경련하듯 움직였다.

긍정적인 신호였다.

다른곳은 아예 몸뚱이가 아니라 걸리적거리는 짐덩이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쉴 새 없이 자기 최면을 걸면서 오른손을 들어 얼굴을 긁어내듯 쓸어내렸다.

도끼를 쥔 불편한 손으로 일을 마치고 풍경을 눈에 새겼다.

그러나 바닥으로 쳐박힌 고개로는 제대로 보이는 것이 있을리가 없었다.


남자는 내버려뒀던 손을 다시 얼굴에 덮었다.

그리고 숨을 내쉬며 얼굴을 밀었다.

척추를 타고흐르는 격통은 무시하며 들어올리자

남자의 눈은 조금 꺾인 세상을 마주하게 되었다.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그의 발치에 떨어진 자신의 투구였다.

사선으로 중앙에 파여있는 고랑과 검고 진득한 액체...


남자는 안구를 위로 굴렸다.

투구를 따라서 만든 검은 길을 따라서.


검은 피가 만든 길의 종점에는 목없는 시체가 있었다.

시체는 잘 보였으나 잘 보이지 않았다.

눈이,감각이 저 몸뚱아리를 담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형언할 수 없는...


저 흉물을 보고 든 감정은 만족감이었다.

마지막으로 놈을 저렇게 만들었다는 만족감.

그리고 어째서 만족감이 들었는지에 대한 모든 기억이 저 아래에서부터 올라왔다.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호흡은 가빠졌으나 들이내쉬는 숨은 점점 줄어들었다.

남자는 생각했다.

곧 죽을거라고.

자신도 별다른 이견은 없었다.

눈꺼풀이, 얼굴 가죽이 멀쩡히 있었다면 눈을 감고 싶다는 생각도.

여태까지 살아온 인생을 통틀어 가장 피곤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생을 밖으로 내보내던 중 이었다.

눈이 맞았다.

비어있는것 같기도, 가득차 흘러넘치는 것 같은 눈두덩이였다.

그 아래로 쭉 찢어진 입을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아직도살아있었나?]

[그한번을휘두르기위해서목숨을버리다니역겨운놈]


놈의 사념이 고장난 귀를 뛰어넘어 머리속에 파고들어왔다.

그러자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흐려지던 눈에 초점이 잡히고 잊혀지던 통각이 온몸을 쑤시기 시작했다.


"흠."


남자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서 오른손을 앞으로 내질렀다.

그리곤 입을 악 다물었다.

무게중심이 바뀐 몸뚱이는 붉은 웅덩이에 고꾸라졌다.

엄청난 격통이 허리부터 머리까지 타고올랐다.

이번에는 척추뿐 아니라 복부에도 불을 지지는듯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자기 피에 익사할 순 없던 남자는 숨을 멈추며 목을 비틀었다.

고꾸라진 세상이 그를 맞아주었다.

피웅덩이는 보이지 않았다.

고꾸라지면서 아래쪽 안구가 터진 모양이었다.

준비는 끝났다.


남자는 고꾸라진 채 아직 움직이는 오른손을 뻗으며 천천히 기어갔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한때는 그의 생명이었던 짐을 하나 둘 흘리면서.

오히려 좋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휘두를 팔과 생각할 머리 그리고 한줌의 생명이었으니까.

실시간으로 가벼워지는 목숨을 질질 끌었다.


[멈춰라멈추란말이다멈추라고이역겨운...]


놈의 사념이 끊임없이 머리를 휘저었으나 오히려 환영했다.

사념이 짙어진다는 것은 옳은 이정표란 뜻이었기 때문이다.

혹여 잘못된 방향으로 갈지 모른다는 생각은 없었다.


남자의 팔에는 힘이 넘쳤고, 머리는 그 어느때보다 맑았다.

딱 이곳이라 생각이 든 남자는 팔을 뻗은 채 멈췄다.

동시에 목에 남은 모든 힘을 쏟아 뒤로 당겼다.

물밖에 던져진 생선의 버둥거림 정도였으나 충분했다.

그의 손과 도끼는 정확히 직각으로 떨어졌다.


[멈ㅊ..]


사념과 도끼의 저항은 동시에 사라졌다.

둔탁한 느낌은 오지 않은 것을 보아 완전히 쪼개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남자는 만족하기로 했다.

어쩌면 살았을지도 모를 마지막 생명과 도끼질 한번.

분풀이.

충분히 합리적인 거래였다.

모든 목적을 마친 남자는 춥고 피곤해졌다.

그래서 남자는...눈을 감았다.


작가의말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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