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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탑 님의 서재입니다.

내가 죽지를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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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탑
작품등록일 :
2023.05.21 01:53
최근연재일 :
2023.05.24 20:32
연재수 :
5 회
조회수 :
13,799
추천수 :
289
글자수 :
23,031

작성
23.05.24 20:32
조회
2,204
추천
57
글자
10쪽

DUMMY

나는 닥치는 대로 게이트 구분 조력을 계속했다.

그리고 폐쇄형 게이트에 걸리는 일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과연 가호는 진짜였다.

그저 게이트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몇 달, 몇 년은 일해야 벌 돈이 들어왔다.


“돈 벌기 존나 쉽네!”


고작 석 달.

그 사이에 10억이 훌쩍 넘는 돈을 벌었다.

지금껏 아등바등 살았던 게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은행에서 나온 나는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며 실실 웃음을 흘렸다.


우선 남아있던 빚부터 전부 갚았다.

집도 좁아터진 원룸에서 넓은 곳으로 이사했다.

던전 광부 일은 진작에 때려쳤다.

더 이상 힘들게 돌이나 파고 있을 이유는 없었다.


사고에 함께 휘말려 죽은 김현수.

김현수가 자랐던 고아원에도 꼬박꼬박 기부금을 보냈다.

사이트에 기부 계좌가 있었기에 그곳으로 보낼 수 있었다.

내가 그 녀석하고 뭐 대단한 친구라도 됐던 건 아니지만은, 어쨌든 나만 살아남았으니까.

던전과 함께 사라져서 시체도 남기지 못한 놈이었다.

최소한 이 정도 신경은 써주고 싶었다.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았다.

놀고 싶은 대로 놀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사고 싶은 대로 샀다.

지금껏 그러지 못했던 것에 대해 보상을 갈구하듯이.

한 끼에 수십만 원이 넘는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몇 억씩 하는 스포츠카를 사서 몰아도 보고.


“자, 마셔!”


연락이 소원해졌던 친구들과 만나서 아낌없이 돈을 쓰며 놀기도 했다.

친구들이 뭔 일을 하며 지내는 건지 궁금증을 내비치면 복권 당첨돼서 졸부가 됐다고 대답했다.

그들이 언뜻언뜻 내비치는 부러움의 눈길은 내 마음의 얄팍한 욕망을 채워주었다.

매일같이 그렇게 살아도 돈이 떨어질 일은 없었다.

또 게이트를 들락거리면 그만이었고, 재산은 얼마든지 간단하게 불릴 수 있었으니.


거의 일 년을 그런 식으로 살았다.


“하암...”


기지개를 켜고 침대에서 일어난 나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제도 밤 늦게까지 노느라 늦잠을 자서 점심 때였다.

먹다 남은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하며 티비를 봤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검의 신의 가호 소유자, 샬롯 와이트가 알래스카 산맥의 몬스터 웨이브 토벌 요청을 수락했다는 속보입니다.]

[규모가 일천이 넘는 암석 골렘 군단은 현재도 계속 북상하며 진격하고 있으며...]


세상은 오늘도 혼란하고, 나는 평화로웠다.

채널을 돌리며 오늘은 뭘 할까 생각했다.


“......”


왠지 뭐 하나 땡기는 게 없었다.

일 안 하고 매일 놀기만 해도 좀 질리네.

요즘은 그런 기분이었다.

예전과 비교하면 뭐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는데 말이다.


오늘은 그냥 집에서 뒹굴거릴까 생각하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며칠 전에 같이 놀았던 친구에게 오늘도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마음이 별로 동하지는 않았지만 딱히 할 것도 없었기에.



* * *



“그래서 그 자식이 완전 눈깔이 뒤집혀가지고는...”


시답잖은 이야기들이 오고 가는 술자리.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내 반응이 시원찮다고 생각했는지 신나게 떠들던 친구가 물었다.


“야, 상철아. 너 오늘 컨디션 안 좋냐?”

“...어? 재밌게 듣고 있는데 왜. 그래서 걔가 어쨌다고?”

“아, 그래서 말이야, 걔 때문에 결국은 경찰까지 와서...”


한창 자리에 취기가 오르고 있을 때였다.

가게 한편에 달려있던 티비가 켜졌다.

홀이 넓은 술집이라 티비 스크린도 그만큼 컸는데, 술을 마시고 있던 손님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하나둘씩 집중되었다.

우리도 이야기를 멈추고 티비를 쳐다봤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건 눈으로 덮인 산맥이었다.


“어, 저거...”


헬리콥터에 타고서 산맥 한편에 펼쳐진 광경을 송출하고 있는 기자.

그곳에 보이는 건 엄청난 숫자의 골렘 몬스터들이었다.

저게 순간 뭔가 싶었다가, 낮에 봤던 뉴스가 떠올랐다.

샬롯 와이트가 알래스카 산맥의 몬스터 웨이브를 처리하기로 했다는 뉴스.

그걸 지금 방송에서 생중계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알래스카의 몬스터 웨이브는 며칠 전부터 사태가 심각하니 어쩌니 하며 떠들썩했다.

알래스카 산맥에 생성된 거대한 자색 게이트.

게이트는 제때 공략하지 못하면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밖으로 쏟아져나오는데, 그걸 몬스터 웨이브라고 한다.

이번 알래스카의 게이트도 때가 늦어 웨이브가 발생한 것이었다.


“저거 그거네! 샬롯 와이트가 싸우는 거 생중계하나 보다!”

“샬롯 와이트? 뭔 소리야?”

“야이씨, 넌 뉴스도 안 보고 사냐? 샬롯 와이트가 알래스카 웨이브 토벌하기로 했다고 오늘 나왔잖아.”


최강의 헌터이자, 세상에 단 둘뿐인 가호 소유자 중 한 명.

아, 이제는 셋인가.

어쨌든 그런 인물이 자색 게이트의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러 직접 나섰으니, 당연히 세계의 이목이 집중될 대형 이벤트였다.

생중계를 할 줄은 몰랐었기에 나도 흥미롭게 티비를 시청했다.


카메라 줌에 설원 한가운데 서있는 사람의 모습이 잡혔다.

샬롯 와이트였다.

굉장히 멀리 떨어진 거리에서 카메라가 계속 확대되며 초점을 잡았다.

그러자 이내 그녀의 모습이 거의 눈앞에 있는 듯 선명하게 보였다.

요란한 프로펠러 소리와 기자가 영어로 뭐라 바쁘게 떠들고 있는 소리가 배경음이었고, 거기에 겹치는 뉴스 앵커들의 목소리는 덤이었다.


샬롯 와이트는 한 손에 검을 들고 서있는 것처럼 보였다.

전방에서 서서히 가까워지는 거대한 골렘 군단을 응시하며.

그중에는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산처럼 거대한 골렘도 한 마리 있었다.


언제 시작되는 건가 생각한 순간, 샬롯 와이트가 검을 뽑아들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였다.

그녀를 확대하고 있던 카메라가 바쁘게 골렘 군단을 향해 돌아갔다.

거대한 눈보라와 함께, 일제히 반으로 갈라진 골렘들이 우수수 쓰러지고 있었다.


“......!”


어마무시한 광경.

한편으로는 장엄함마저 느껴지는 그 광경에, 웅성거리며 떠들던 사람들도 모두 입을 다물고 가게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방금의 일격에서 살아남은 건 보스 골렘 하나뿐으로 보였다.

다시금 거대한 파동 같은 게 울렁거렸다.

그러자 보스 골렘마저도 끝내 세로로 갈라져서 무너져내렸다.

더 이상 남아있는 골렘은 보이지 않았다.


“...미쳤다.”


누군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가게 내부는 묘한 열기에 휩싸여서 사람들이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말 그대로 신의 힘이네, 진짜.”

“그냥 한 번에 끝나버렸는데?”


친구들이 희희낙락 떠들었다.

나는 멍하니 티비를 계속 쳐다보고 있다가, 목이 타서 술을 들이켰다.


“저런 힘을 가지고 살면 무슨 기분일지가 궁금하다. 칼 한 번 휘둘러서 무슨 자연재해를 일으키니까.”

“저 사람이 인류 편 아니었으면 지금쯤 세상 멸망한 거 아니냐.”

“아, 어디 나한테도 신이 가호 안 내려주나?”

“지금 한번 바닥에 무릎 꿇고 기도해보든가.”


좀 취한 놈이 웃으며 떠들었다.


“사는 세계가 다르잖아, 그냥. 저런 사람은 세상 구하면서 영웅이라 칭송받는 거고, 우리 같은 소시민은 이렇게 술이나 퍼마시면서 하루하루 소소하게 사는 거고. 다 그렇게 자기 주제에 맞게 사는 거 아니겠냐?”

“......”

“안 그러냐, 상철아? 이 자식은 왜 아까부터 조용하기만 해.”


나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이 놀란 눈으로 쳐다봤다.


“나 집에 가야겠다.”

“...어? 갑자기 왜?”

“급한 일이 생각나서. 미안. 술값 계산하고 갈 테니까 재밌게들 놀아.”


나는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왔다.

불도 키지 않은 채 어두운 방 침대에 몸을 던졌다.


머릿속에 아까 봤던 광경이 아른거렸다.

수천의 몬스터 군단이 단번에 전멸해버린 광경.

과연 검의 신의 가호였다.

샬롯 와이트는 그런 대단한 헌터였다.


어렸을 적에는 나도 헌터가 되고 싶었다.

이룰 수 없는 꿈이라 금방 포기했었다.

그리고 현재.

뜻밖에도 나는 각성이 아니라 가호를 얻어 그 능력으로 편하게 살고 있다.

이 가호라면 죽을 때까지 돈이나 건강 같은 걸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근데 그걸로 됐나?

일 년을 원하는 대로 살았다.

평생을 시달렸던 돈 걱정 없이 사니까 살맛이 났다.

하지만 마음의 한 줄기 허전함은 채울 수가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절대로 죽지 않는 운명의 신의 가호.

기껏 이런 대단한 능력을 얻었는데 그렇게 사는 것만으로 만족하나?

어차피 죽을 일도 없는 몸, 다시 한 번 헌터가 되는 걸 꿈꿔봐도 되는 거 아닌가.


“......”


게이트의 위험 등급은 여섯 개로 나뉜다.

녹색, 청색, 적색, 자색, 흑색, 그리고 백색.

일반인도 헌터 일을 하는 건 가능했다.

가장 낮은 등급의 녹색 게이트, 그 안의 가장 낮은 등급의 몬스터들은 일반인도 무장을 갖추면 충분히 사냥이 가능한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게 녹색 게이트를 공략하는 일반인들을 E급 헌터라고 한다.

사실 나도 던전 광부 일을 하기 전에는 E급 헌터 일을 잠깐 했었다.

몇 번 공략에 참여했다가 한 번 제대로 죽을 뻔한 뒤로, 제 명에 못 살겠다 싶어서 금세 때려치고 갈아탄 거였지만.


‘해볼까.’


각성을 원한다면 던전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각성 확률을 높일 유일한 방법이었으니.

내가 그것을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는 없었다.


취기로 나른해진 몸에 왠지 활기가 돋는 기분.

헌터 자격증은 예전에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 함께 잃어버렸었는데, 쓸 데도 없기에 지금까지 재발급 받지 않고 있었다.

당장 내일 협회에 방문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대로 눈을 감았다.



* * *



“안녕하세요. 어떤 용무로 오셨나요?”

“헌터 자격증을 분실해서 재발급 받으려고요.”

“아, 네. 주민등록증은 가지고 계시죠? 주민등록증 여기 주시고 등급 말씀해주시겠어요?”


데스크 직원이 물음에, 나는 민증을 내밀며 씩 웃고서 대답했다.


“E급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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