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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탑 님의 서재입니다.

내가 죽지를 않음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하늘탑
작품등록일 :
2023.05.21 01:53
최근연재일 :
2023.05.24 20:32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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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0
추천수 :
289
글자수 :
23,031

작성
23.05.21 02:01
조회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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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글자
18쪽

운명 (2)

DUMMY

정신을 차렸더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나는 몽롱한 정신으로 몸을 일으켰다.

주위를 둘러보다 곧 이곳이 병원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척 봐도 병원 침대고 내 팔에는 링거가 꽂혀있었기 때문이다.


‘뭐지...’


기억을 더듬었다.

갑자기 굴이 무너져서 암석에 갇혔던 게 떠올랐다.

또 돌이 무너져서 그 다음 기억이 없는데... 그때 정신을 잃었나?

어쨌든 무사히 구출된 것 같았다.

몸을 살펴보니 좀 뻐근할 뿐이지 아픈 곳 하나 없이 멀쩡했다.


...아, 그것보다도 가호!

나는 곧장 심상 정보를 확인했다.


[분류: 비각성자]

[능력: -]

[가호: 운명의 신]


가호 항목에 똑똑히 있는 운명의 신의 가호.

기억대로 나는 분명 가호를 받았던 것이 맞다.

그래, 그건 그런데...

가호에 대한 설명을 다시 확인했다.


[운명의 신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2079년 12월 1일 오후 12시에 당신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당신은 잔병 하나 없는 건강한 삶을 삽니다.]


“......”


이게 도대체 뭐지?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즉, 내가 2079년까지 건강하게 살다 죽도록 운명이 정해졌다는 말이 아닌가.

그뿐이었다.

이게 운명의 신의 가호라고?


‘이딴 게...?’


정말 이게 전부면, 고작 무병장수하는 능력으로밖에 안 보였다.

근데 2079년이면 내가 몇 살이야?

대충 70살쯤이다.

심지어 그렇게 장수하는 것도 아니었다.

어이가 너무 없어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검의 신의 가호를 가진 영국의 샬롯 와이트.

명실상부 최강의 헌터, 칼질로 산조차 갈라버릴 수 있다.

자애의 신의 가호를 가진 스위스의 요한 로드리게스.

많은 정보가 베일에 쌓여있지만, 죽은 사람도 살려낼 수 있다는 소문은 유명하다.

지금은 죽었지만 전투의 신의 가호를 가졌던 안드레이.

그의 가호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알려진 바는 없었으나, 한때 정점이었던 헌터인 만큼 엄청난 능력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나, 한국의 김상철.

운명의 신의 가호로 70살까지 건강하게 살 예정.


...이게 뭐란 말인가?

형용할 수 없는 허망한 기분이 들었다.

세상에 단 몇 명, 가호라는 건 원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대단한 게 아니었던가?

그게 이딴 쓰레기인 게 말이 되냐고.

이럴 바에야 차라리 각성을 시켜주지, 개 같은...


드르륵.


그때 커튼이 걷히며 간호사가 들어왔다.


“아, 깨셨네요!”


간호사가 내 기색을 살피며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환자 분께서는 사흘 동안 의식을 잃고 계셨어요.”

“아... 그래요?”


사흘이나?


“지금 몸 상태는 어떠세요? 외상은 없는데, 어디 불편하신 곳이 있으세요?”


침울해있던 나는 대충 고개를 저었다.

몸은 아주 멀쩡하기만 했다.

잠시 뒤에 의사도 와서 내 상태를 확인했다.

별다른 문제는 없으니 원하면 바로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시간이 좀 흐른 뒤, 또 찾아온 사람들이 있었다.

작업 반장과 다른 한 사람은 회사 측 사람이었다.


“김상철 씨, 우선 이번 사고에 대해서는 유감이며...”


뭐라 말이 많지만, 이번 사고에 사측의 과실은 없다고 전하러 온 거였다.

그래도 입원비 포함해서 소정의 위로금은 지급한다는 말과 함께.


“...현수는 어떻게 됐어요?”


그에 대해 묻자 반장의 표정이 안 좋았다.


“상철아, 안타깝지만... 현수는 못 구출했다. 네가 통로 입구에 가까이 묻혀있어서 운이 좋았던 거야.”


게이트는 무한정 열려있지 않다.

촉박한 시간 속에 나만 간신히 구출되고, 녀석은 살아있었다고 해도 그대로 던전과 함께 소멸했다는 이야기였다.


김현수.

나처럼 게이트 재해에 부모형제 다 잃고, 빠듯해도 지 자랐던 고아원에 지원금까지 꼬박꼬박 보태며 살았던 놈이다.

그런 녀석이 눈 감았다 뜨니 허무하게 죽었단다.

덧없다, 진짜.

나는 속이 막힌 듯 답답해지는 걸 느끼며 한숨을 내뱉었다.



* * *



병원에서 나와 터덜터덜 거리를 걸었다.

뭘 먹을 생각은 안 들었기에 일단 집으로 돌아가려 역으로 향했다.

던전에서 떨궜는지 지갑을 잃어버린 상태라 반장이 오만 원 한 장 줬다.


되는 게 없네, 씨발.

나는 액정이 다 나간 폰을 꺼내들었다.

카드하고 민증 재발급은 어떻게 해야 되는지 알아보려 인터넷에 접속한 때였다.

포털 사이트 메인에 떠있는 복권 당첨 번호.

그냥 지나치려다가 반사적으로 시선을 멈췄다.

1, 2, 3, 9, 20, 36

잠깐만, 내가 전에 샀던 번호가...


“...어?”


그날 날짜로 했었기에 확실히 기억하고 있었다.

나는 번호를 몇 번이나 다시 확인했다.

맞다.

분명 내가 골랐던 번호와 전부 일치하는 여섯 숫자. 일등 당첨.


‘내 종이.’


황급히 품을 뒤지려다 이내 깨닫는다.

복권 용지를 지갑에 넣어뒀었다는 것을.

그리고 지갑은 잃어버렸다.

나는 우두커니 굳은 채 서있다가, 번호를 눌러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 어, 상철아. 뭐? 지갑?


내 다급한 물음에 반장이 느긋하게 대답했다.


- 던전에서 잃어버린 모양이라며. 그럼 던전이랑 같이 사라졌겠지. 별 수 있냐.

“누가 주웠다는 사람 없어요? 진짜?”

- 나야 모르지. 그 난리통에 누가 그걸 주웠겠어. 야 인마, 근데 그까짓 지갑이 문제냐? 안 죽고 목숨 건진 것만 해도...


전화를 끊었다.

나는 넋이 나간 채로 일등 당첨금을 확인했다.

151억. 당첨자 단 두 명.

정신이 혼미해진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래고래 소리쳤다.


“아오, 씨바아아아아알!”


지나가던 사람들이 놀라서 쳐다봤다가 갈 길들을 갔다.

나는 얼빠진 헛웃음을 흘렸다.


“흐허, 허허허...”


내 인생은 늘 이런 식이었다.

뭔가가 될 것 같으면 날 조롱하듯 코앞에서 전부 무너져버린다.

대학에 붙었을 때도, 가게를 차렸을 때도, 가호를 받은 것도, 복권 당첨도.


‘좆같다.’


온 세상이 나를 억까하고 있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죽을까?’


아, 그래.

그냥 죽자.

아슬아슬하게 당겨져있던 무언가가 툭 끊어진 느낌이었다.

더 이상은 버티기 지쳤다. 아니, 버티기가 싫었다.


하염없이 걸음을 옮긴 나는 어느 다리에서 멈춰섰다.

다리 아래를 내려다봤다.

강물에 햇볕이 반사되어 반짝였다.

주위에 사람은 없다. 차도에 지나가는 차들뿐.


난관 위로 올라섰다.

아찔하거나 무서운 느낌은 이상하게 들지 않았다.

아무래도 다 상관없어지면 이런 기분이 드는 건가.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중얼거렸다.


“간다, 개같은 세상아.”


운명의 신의 가호?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게 될 거라고?

지랄하고 있다.

그냥 지금 죽을 거야.

막 허공으로 몸을 기울이려던 순간이었다.

급정거 소리와 차문이 다급히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려는데 갑자기 몸이 확 기울었다.

웬 사람들이 날 난간에서 당겨 끌어내린 것이었다.


“뭐, 뭐야!”


차에서 내린 남자 몇 명이 날 붙잡고 반쯤 바닥에 깔아뭉갰다.

그들이 소리쳤다.


“선생님! 일단 진정하시고!”

“아무리 힘들어도 이러시면 안 되죠!”

“...놔요! 놓으라고, 좀!”

“진정하고 가족 생각을 해보세요!”

“없어, 이 새끼들아!”


갑자기 난입한 행인들 때문에, 나는 경찰이 올 때까지 제압당해 있다가 서로 이송되었다.

몇십 분을 경찰서에서 보호자가 누구냐 왜 그랬냐 훈계를 듣다가, 다시는 안 그러겠다고 몇 번을 말하고서야 풀려났다.

어쨌든 경찰도 날 계속 붙잡아두고 있을 권한은 없었기에.


“후...”


이제 죽는 것도 마음대로 못 하나?

나는 다시 적당한 자리를 찾아 돌아다녔다.

또 사람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인적이 없는 곳으로.


그렇게 찾은 장소는 폐건물 옥상이었다.

20층이 넘는 높이의 아득한 아래를 내려다봤다.

땅에 처박히면 내 몸은 산산히 박살날 것이다.


‘끝내자.’


이번엔 정말 말릴 사람도 없었다.

나는 두 눈을 감고 그대로 허공에 몸을 맡겼다.

몸이 아래로 추락하는 감각.

순식간에 속도가 붙는 것이 느껴질 때였다.


퍼억!


몸이 무언가 푹신한 것에 부딪혔다.


“어펍...!”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떴다.

간신히 몸을 가누고 고개를 드니, 거대한 새였다.

내가 거대한 새의 등 위에 파묻혀서 비행하고 있었다.

...이게 뭐야, 미친?!


키에에에에에엑!


괴조가 찢어지는 울음을 내뱉으며 휘청거렸다.

괴조는 이미 다친 상태인지 온몸에 피를 흘리고 있었다.

곧 서서히 아래로 떨어졌다.

땅에 충돌하기 직전 괴조가 필사의 날갯짓을 하더니 속도를 늦추었다.

착지의 충격으로 나는 붕 떴다가 땅바닥으로 튕겨나가 굴렀다.


“컥...”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괴조는 힘이 다했는지 몸을 못 가누고 꿈틀거리고 있었다.

그때 몇몇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가장 선두에 선 남자가 검을 휘둘러 단번에 괴조의 목을 베어버렸다.

나는 멍하니 그 광경을 지켜봤다.


“됐어. 끝났어.”


검을 거둔 남자가 뒤따라온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듯 손짓을 했다.

그가 내게로 시선을 돌리고서 물었다.


“놀라셨죠. 괜찮습니까?”


헌터들이다.

근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인근 지역에서 게이트 역류가 발생해 몬스터가 빠져나왔습니다. 다른 몬스터는 더 없으니 안심하시고, 다친 곳이 있으면 바로 병원으로 가십시오.”

“......”

“이보세요? 제 말 듣고 있습니까?”

“네, 네.”


그는 멀쩡해 보이는 내게 금방 관심을 끄고는, 귀에 낀 이어폰으로 무전을 했다.


“여기는 5팀. 목표 처치했고 상황 종료. 확인된 사상자는 없음.”


그들이 사체를 둘러싸고 대화를 나눴다.

나는 주춤주춤 현장에서 벗어났다.


[경기도 수원시 장안구에서 청색 게이트 역류가 발생했습니다.]

[B급 몬스터 자이언트 빌이 게이트에서 30KM 가량 떨어진 거리까지 비행하여... 인근 협회 지부의 헌터들에 의해 토벌돼...]


시간이 좀 지난 뒤, 뉴스에서 긴급 보도하고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집어넣고 중얼거렸다.


“어이가 없네, 진짜...”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지?

우연히 내가 떨어지는 순간에, 우연히 게이트 역류에서 빠져나온 몬스터가, 우연히 바로 근처를 날아가다가 떨어지는 나를 받아들었다.

어처구니없는 우연이 아닐 수가 없었다.

20층에서 떨어지고 심지어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다.

왜 이럴 때나 쓸데없이 운이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번에야말로 진짜 죽겠다고 생각하며.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장소를 찾았다.

아까 전과는 다른 건물 옥상.

난관 위에 서서 괜히 주위를 둘러봤다.

어디서 또 뭐가 날아들기라도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우연은 한 번이면 충분했다.


“좀 죽자.”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몸을 기울였다.

그 순간, 한편에서 빛이 번쩍인 것 같았다.

떨어지는 내게로 무언가가 섬전처럼 날아들었다.


“......?!”


또 뭐야?!

나는 충격에 잠시 정신을 못 차리다가, 어느새 날 안아들고 있는 사람을 올려다봤다.

운동복 복장에 모자를 쓴 여자였다.

허공을 유영하듯 날던 그녀가 사뿐히 땅으로 내려섰다.

그리고는 품에서 날 내려줬다.

나는 얼떨떨한 얼굴로 정체불명의 여자를 쳐다봤다.

그녀가 삐뚤어진 모자를 벗어들고서 내게 말했다.


“죽지 마세요.”


그녀의 얼굴을 확인한 나는 왠지 낯이 익다는 생각부터 들었다가, 곧 떠올릴 수 있었다.


‘...S급 헌터 신아연?’


다시 봐도 분명 신아연이 맞았다.

한국에 단 둘뿐인 S급 헌터.

뉴스와 인터넷에 밥 먹듯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몰라볼 리가 없었다.

신아연이 갑자기 왜 튀어나오는데?

놀라서 굳은 채 입을 다물고 있는 내게, 신아연이 다시 말했다.


“근처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봤거든요.”

“......”

“무슨 일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죽지 마세요. 소중한 목숨이잖아요.”


나는 입을 뻐금거리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냥 몸을 돌렸다.

신아연이 따라와서 말을 걸었다.


“저기, 죽지 마세요.”

“...안 죽어요.”

“또 죽으러 가는 거 아니에요?”

“아니에요. 진짜 정신 차렸어요. 감사합니다.”


그제야 신아연은 따라오기를 관두었다.

나는 터덜터덜 걸어가다가 힐끗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제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멍한 얼굴로 계속 가던 길을 갔다.


‘...뭐지?’


기이한 느낌이 몸을 휘감았다.

이쯤 되니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이럴 수가 있는 건가?

세 번 째였다.

뭔 말도 안 되는 우연이 연달아 일어난 게.

행인들은 그렇다고 쳐도, 몬스터가 날 구하지 않나, 그 S급 헌터 신아연이 구해주질 않나.

떨어지려고 할 때마다 자꾸 뭐가 튀어나와서...


“위험합니다. 접근하지 마세요.”


바닥을 보고 걷던 내게 누군가 손을 내밀었다.

경찰들이었다.

거리에 생긴 거대한 적색 게이트와, 그 주위에 쳐져있는 바리케이드.

공략이 시작되기 전까지 행인들이 게이트에 접근하지 않도록 통제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근처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생각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문득 떠오르는 게 있었다.


‘...설마?’


[2079년 12월 1일 오후 12시에 당신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당신은 잔병 하나 없는 건강한 삶을 삽니다.]


운명의 신의 가호.

내가 70살쯤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죽을 거라는 운명.


나는 그걸 그냥 있는 그대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닐 수도 있었다.

70살에 죽음을 맞이한다.

만약 그게 다르게 말해서, 70살까지는 뭔 짓을 하든 죽지 않는다는 의미가 되는 거였다면.

그래서 자꾸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 내 죽음을 막는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 들었다.

...말이 되나, 그런 게?


콰아앙!


그때 폭발음이 울려퍼졌다.

생각에 잠겨있던 나는 흠칫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가 이쪽을 향해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눈에서 푸른 안광을 뿜어내고, 몸에도 회로처럼 줄기줄기 뻗은 푸른빛의 선들이 새겨져있는 괴인이.


‘...마인!’


그 기괴한 꼴을 보자마자 놈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거리의 행인들이 혼비백산 도망쳤다.


“꺄아악!”

“으, 으아아아!”


마인이 양손에 착용한 대포 같은 무기를 사방으로 난사했다.

공격에 휩쓸린 행인들이 끔찍하게 죽어나갔다.

마력 포탄 하나는 바로 내 옆을 스쳐 날아가서 터졌다.

순식간에 피로 물든 거리에서, 마인이 미친놈처럼 웃으며 소리쳤다.


“모조리 죽여주마, 역겨운 벌레 놈들아!”


게이트 근처에 있던 경찰들이 다급히 총을 발포했다.

하지만 각성자에게 총이 통할 턱이 없었다.

마인은 총에 맞아도 아무렇지 않게 날뛰며 경찰들까지 죽여버렸다.


“모두 도망치세요!”


누군가 마인에게 달려들며 소리쳤다.

검을 들고 있는 남자는 각성자처럼 보였다.

각성자와 마인이 잠시 전투를 벌였다.

그러나 마인 쪽이 훨씬 강했는지, 각성자는 순식간에 마인의 발 아래 깔려서 제압당했다.


“고작 C급쯤 되려나. 약해빠진 벌레가 왜 덤비는 거냐아?”

“끄윽...!”


마인이 각성자의 머리에 대포를 겨누었다.

그대로 머리를 터뜨려버릴 생각인 듯했다.

나는 그때까지도 도망가지 않고, 의자에서 엉덩이만 뗀 채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순간 무슨 생각이었을까.

나는 마인에게 버럭 소리쳤다.


“야!”


멈칫한 마인이 고개를 돌렸다.

놈이 이쪽을 빤히 쳐다봤다.

서슬 퍼런 눈빛에 순간 오금이 저렸다.

하지만 어차피 포기하려고 했던 삶이기에 아무래도 좋았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손으로 날 가리켰다.


“나 좀 죽여봐.”


마인이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뭔 미친놈이야, 저건.”


마인이 손을 들어올려 대포를 내게 겨누었다.


콰앙!


그리고 폭음이 울린 순간.

포탄이 날아드는 대신 터져나간 건 대포였다.


“크아아악!”


마인이 피가 철철 흐르는 팔을 붙잡고 비명을 질렀다.

나는 입을 헤 벌리고 서서 그 모습을 지켜봤다.

정신을 차린 마인이 사납게 일그러진 얼굴로 달려들었다.


“뭔 짓을 한 거냐, 이 새끼가아아아!”


마인이 내 코앞까지 다다른 순간이었다.


푸확!


이번엔 옆쪽에서 날아든 무언가가 놈의 몸을 꿰뚫어버렸다.


“......!”


이건... 또 뭐야?

거대한 줄기 같은 것에 꿰인 마인의 몸이 허공에 떠올랐다.

나는 시선을 돌렸다.

줄기가 튀어나온 근원지는 거리에 있던 게이트였다.


그오오오.


게이트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길쭉한 몸통에 머리 쪽에 수많은 촉수가 꿈틀거리는, 말미잘처럼 생긴 거대한 몬스터.


“게이트 역류가...!”


쓰러져있던 각성자가 창백하게 질려서 중얼거렸다.

마인 테러에 더해 게이트 역류까지. 그것도 적색 게이트의 몬스터였다.

사람들을 벌레처럼 죽이던 마인을 역으로 벌레처럼 찢어죽여버린 몬스터가, 촉수들을 활짝 펼쳤다.

그러자 놈의 머리 위에 주황빛의 거대한 구체가 떠올랐다.

나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충동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망치지 않고 오히려 놈을 향해서.

그 순간, 구체가 강렬한 빛을 터뜨리며 분열했다.

엄청난 숫자의 마력탄들이 유성우처럼 사방으로 쏟아졌다.


콰과과과과과광!


고막이 터질 것 같은 폭음이 끊이지 않고 울려퍼진다.

나는 충격에 중심을 잃고 넘어지고 말았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융단 폭격이라도 맞은 듯 일대에 수많은 구덩이가 파여있는 가운데, 내가 서있는 자리만은 멀쩡했다.


공격을 멈춘 몬스터가 몸체를 돌렸다.

놈은 눈이라고 할 게 달려있진 않았지만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마치 이 벌레가 어떻게 살아남은 건가 의아해하기라도 하는 기색이다.

나는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양팔을 활짝 펼치고 소리쳤다.


“...니가 날 죽여볼래?!”


그오오오오!


거대한 촉수들이 나를 향해서 쇄도한 순간이었다.

하늘에서 한 줄기 빛이 몬스터의 위로 떨어졌다.


쿠우웅!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졌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정신을 차리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몬스터가 완전히 짓뭉개진 채 죽어있었다.

그 사체 위에 서있는 건 좀 전에 봤던 여자였다.

S급 헌터 신아연.


“하, 하하...”


충격파에 걷혀나간 흙먼지 사이로 햇볕이 내리쬐었다.

나는 우두커니 서서 실소를 흘렸다.


“진짜 안 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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