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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탑 님의 서재입니다.

내가 죽지를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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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탑
작품등록일 :
2023.05.21 01:53
최근연재일 :
2023.05.24 20:32
연재수 :
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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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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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9
글자수 :
23,031

작성
23.05.21 01:59
조회
3,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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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운명 (1)

DUMMY

[신생 천강 길드, 적색 게이트 공략에 도전...]

[서울 마포구에 발생한 청색 게이트, 최소 다섯 명 넘는 시민들이 휘말려...]


슬슬 입에서 김이 피어나기 시작한 초겨울의 날씨는 오늘 유독 쌀쌀했다.


“왜 이렇게 추워, 씨...”


손이 시려워진 나는 핸드폰 보던 걸 관두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넣었다.

모자 위에 패딩 후드까지 꽁꽁 뒤집어쓰고 걸어가는데, 문득 복권판매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잠깐 멈춰섰다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복권 사본 지가 얼마나 됐더라.

그냥 왠지 기분이 땡기는 날이었다.


“쓰읍...”


번호를 고민하다가 핸드폰으로 오늘 날짜를 확인했다.


[2036년 11월 29일]


20, 36, 1, 2, 9, 3.

1 하나만 3으로 바꿔 번호를 채우고 나머지는 전부 자동으로 했다.

구매한 종이를 지갑에 접어 넣고 가게에서 나왔다.


“와, 헌터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자니, 옆에 서있던 학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건너편 거리, 손에 검이나 방패 같은 무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

근처에 게이트가 생겼었는데 그걸 공략하러 향하는 모양이었다.

학생들이 그들을 바라보는 눈빛에는 동경심 가까운 것이 느껴졌다. 그야 대단하신 헌터들이니까.


신호가 초록불로 바뀌었다.

나는 이내 관심을 끄고 성큼성큼 횡단보도를 건넜다.

이쪽도 지금부터 게이트로 일하러 가는 참이었다.

몬스터 잡으러 가는 건 아니고, 돌 파러.



* * *



약 이십 년 전, 세상은 대격변을 맞이했다.

게이트와 몬스터, 그리고 각성자들이 나타났다.

각성자들은 초인적인 힘으로 인류 역사에 지금껏 경험해본 적 없는 미지의 위기를 막아냈고, 새로운 세계의 중심이자 질서가 되었다.

비록 각성자는 아니지만 나도 그쪽 세계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긴 했다.


드드드드드.


분진과 소음, 악취가 가득한 동굴.

나는 벽에 폭발물을 설치할 구멍을 파내고 있다.

이곳은 공략이 끝난 게이트 내부의 던전이다.

던전에는 마석이나 몬스터 부산물뿐 아니라 유용한 광물들도 많다.

그걸 채광하는 일을 하는 게 나 같은 던전 광부들이었다.

벽 파고, 터뜨리고, 광물 캐고. 장소가 던전이라는 거 빼고는 보통의 광부들과 다른 건 없었다.


“후우...”


입에 씹히는 자갈들을 뱉어내고 다시 기계를 조종했다.

말할 것도 없지만, 더럽게 고단한 일이었다.

온몸에 돌가루를 뒤집어쓰고 시간에 쫓기며 주야장천 작업.

한 번 게이트를 정하고 작업을 시작하면 끝날 때까진 제대로 쉴 수도 없는 것이, 공략이 끝난 게이트가 무한정 열려있지도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던전의 지형 특성상 중장비 사용에도 제약이 많아 장비까지 빈약하다.


새삼 내 인생이 어쩌다 이렇게 흘러왔나 생각한다.

어렸을 때는 나도 각성자가 되고 싶었다.

만화나 영화에서나 봐왔던 강력한 초능력으로 거대한 몬스터도 혼자서 쓰러뜨리는 헌터가 되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할 법한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건 원한다고 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노력의 문제가 아니다.

천 명 중에 고작 한 명꼴, 각성은 오로지 운에 따른 일이었으니까.



[분류: 비각성자]

[능력: -]

[가호: -]



대격변 이후,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각자 스스로에게만 보이는 정보창이 떠올랐다.

이걸 ‘심상 정보’라고 부르게 됐다.

분류, 능력, 가호로 분류된 간단한 항목들.

날 포함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류 항목의 비각성자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전부 공백일 뿐이었다.


건덕지랄 게 없으니, 포기도 미련 없이 빠르게 할 수 있다는 게 낫다면 나은 점이었다.

중학생 때 현실을 파악하고 헌터가 되겠다는 망상은 아예 접은 나는 공부나 열심히 했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이름 들으면 누구나 알 명문 대학에 붙었다.

합격을 확인하고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놀던 날, 우리 집은 게이트 재해에 휘말렸다.


성인이 되자마자 혈혈단신이 된 나는 대학은 포기하게 되었다.

이런저런 일들을 하며 돈을 모으고 새로운 꿈을 찾았다.

요리가 제법 적성에 맞아 몇 년 모은 돈과 대출로 음식점을 창업하려 했다.

힘든 일이 많았지만 앞으로는 뭔가 잘 풀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공사가 끝나고 막 가게 간판을 단 날, 또다시 게이트 재해에 내 가게가 들어선 건물이 통째로 날아가버리기 전까지는 말이다.

조건이 애매하게 안 맞는 부분들이 있어서 보상금도 얼마 못 받았다.

스물 중반, 남들 못지않게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어째서인지 남은 건 빚밖에 없는 인생이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내 삶을 두 번이나 망친 게이트로 발을 디뎠다.

몬스터와 싸우는 헌터가 아니라도 던전 관련 직종은 기본적으로 위험하다.

그럼에도 일을 선택한 건 그만큼 수당이 세다는 이유도 있었지만, 그게 다는 아니었다.

내 인생을 억까하는 이 좆같은 게이트.

정확한 원리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던전의 마력의 영향으로 던전에서 일하는 직종이 통계상 아주 조금은 더 각성할 확률이 높다는 건 유명한 이야기였다.

만에 하나 각성해서 뭐라도 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던전 광부로 이 년을 일한 지금?

나는 여전히 평범하디 평범한 인간이었다.

사실 부질없는 기대라는 걸 몰랐겠는가.

그냥 이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야, 좀만 쉬자.”


뒤에서 같이 기계를 조종하던 김현수가 앓는 소리를 냈다.

우리는 잠시 작업을 멈추고 휴식했다.


“아, 근데 냄새 진짜 심하네. 공략한 다음에 시체 좀 어디 한 곳에 모아주면 안 되나?”


안전모 안에 들어간 흙을 털어내던 김현수가 불평했다.

나는 좀 떨어진 뒤쪽을 힐끗 쳐다봤다.

그곳엔 몇몇 곤충형 몬스터들의 사체가 널브러져있었다.

헌터들이 공략을 마친 다음, 몬스터 사체에서는 필요한 부위만 수거하고 나머지는 그대로 던전 내부에 버려둔다.

필요 없는 건 던전이 소멸할 때 같이 소멸하게 내버려두면 되기 때문이다.

그 사체가 풍기는 악취를 고스란히 감당해야 할 건 뒤에 일할 사람들이었다.

물론 헌터들이 그런 사람들 사정을 신경 쓰며 수고를 더 해줄 일은 없었다.


“쿠카 맨티스 사체 냄새가 원래 더럽게 독하다더라.”

“쿠카맥... 뭐?”

“쿠카 맨티스. 저기 뒤진 몬스터 이름.”


김현수가 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 몬스터들을 잘 아냐.”

“인터넷 뒤지면 웬만한 건 다 나와.”

“그니까 말이야, 넌 그쪽에 관심이 많은 거냐? 헌터 할 것도 아니면서.”

“아닌 게 아니라 못하는 거지, 씨바.”


시답잖은 이야기에 녀석이 낄낄 웃었다.

김현수는 나이도 동갑이고 팀에서는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였다.

이놈도 나 못지않게 인생이 꼬인 놈이라 조금은 동질감 같은 것도 있었고.


“후딱 끝내자.”


휴식을 마치고 작업을 이어갔다.

구멍을 마저 뚫은 뒤에야 쉴 새 없이 돌아가던 기계가 멈췄다.

천공 작업이 끝났으니 폭탄을 설치하고 발파할 차례였다.

이쪽 구역만 끝나면 이번 게이트 작업도 다 끝난 거였다.


“쉬고 있어.”

“어, 땡큐.”


나는 사람을 불러오기 위해 통로 바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현수가 소리쳤다.


“야! 오늘 끝나고 바쁜 일 없지? 한 잔 할까?”


그에 알겠다고 소리쳐 대답하려던 때였다.


쿠구구...


진동 소리가 울렸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소리였기에 움찔한 순간, 위쪽에서 돌들이 쏟아져내린 건 순식간이었다.


“어...!”


굉음이 울려퍼졌다.

바닥에 쓰러진 나는 엎어진 채 힘겹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눈앞에 암석 더미가 쌓여있었다. 옆으로도 뒤로도.

상황을 파악하고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소리쳤다.


“김현수! 괜찮냐?!”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녀석은 나보다 안쪽에 있었다.


“...여기 갇혔어! 누구 없어?!”


소리치는 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에, 나는 계속 소리쳤다.


“도와줘! 사람 살려어어어어어!”


한참을 소리쳤지만 들려오는 대답 같은 건 없었다.

소리치다 지쳐서 욕을 뇌까렸다.


“씨발...”


붕괴 사고.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본 만큼 드문 사고도 아니었지만, 설마 나한테 일어날 줄은 몰랐다.

얼마나 깊게 묻힌 거지?

사람들이 와서 금방 발견이야 할 테지만 구조될 수 있을까?

이 게이트는 닫히기까지 시간이 그리 오래 남지도 않은 것으로 안다.

설마 이렇게 죽나 불길한 상상이 머릿속을 스친 순간이었다.


화아악!


갑자기 시야에 터진 강렬한 빛.

나는 깜짝 놀랐다.


[운명의 신의 가호가 당신에게 내렸습니다.]


머릿속에 그런 문장이 떠올랐다.

운명의 신? 가호? 이게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알 수 없는 와중, 내 심상 정보에 변화가 생겼다.


[분류: 비각성자]

[능력: -]

[가호: 운명의 신]


공백이었던 가호 항목이 채워져있었다.


‘가호...?’


설마 지금 내가 가호를 받은 거야?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얼떨떨해졌다.


가호.

아직까지 밝혀진 바가 거의 없는, 마력을 근원으로 한 각성자들의 능력보다도 훨씬 불가사의한 이능.

대격변 이후 가호라는 걸 받은 인간은 알려진 바로 세 명뿐이었다.

그리고 현재는 세상에 단 두 명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은 또한 S급의 각성자들과도 차원이 다른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가호를 지금 내가 받은 듯했다.

역사상 네 번째 가호를 말이다.

꿈이라도 꾸고 있나? 아니, 그럴 리가.


나는 잠시 처한 상황조차 잊고 떨리는 마음으로 계속 심상 정보를 살폈다.

운명의 신의 가호라는 게 뭘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일까?

한때 인류 최강의 헌터가 가졌었다는 전투의 신의 가호.

현 인류 최강의 헌터가 가지고 있다는 검의 신의 가호.

죽은 사람도 소생시킨다는 소문이 있는 자애의 신의 가호.

분명 그런 가호들 못지않게 엄청난 것일 터였다.

설명을 원하자 자연스레 가호에 대한 설명이 떠올랐다.


[운명의 신이 당신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2079년 12월 1일 오후 12시에 당신은 죽음을 맞이합니다.]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까지 당신은 잔병 하나 없는 건강한 삶을 삽니다.]


“......?”


설명을 모두 읽은 나는 다시 읽었다.

하지만 몇 번이나 다시 읽어도 갸우뚱한 건 마찬가지였다.

가호에 대한 설명은 그게 전부였다.

이게 도대체 뭔가 싶어서 어이가 없었다.


“이게 뭔...”


쿠구구구!


흠칫 놀란 나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머리 위에서 다시금 돌덩이들이 무너졌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 작성자
    Personacon 밀랍초
    작성일
    23.05.21 02:22
    No. 1

    127시간 찍는 건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현우
    작성일
    23.05.21 11:02
    No. 2

    어차피 안 죽을 거 아니까 막 사는 주인공 나오나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겜판소조아
    작성일
    23.06.21 21:26
    No. 3

    "왜 이렇게 추워, 씨..."
    라는 맛깔난 대사만 봐도 재밌다 ㅠㅠ
    초기작들은 설명을 재미없게 쥴쥴 늘어놓으면 쥰내 자루하고 스트레스받고 졸려웠는데, 작품들을 많이 써서 내공이 쌓였는지 이제는 설명을 딱 집중할만큼만 재밌게 적당히 쓰고 대사들이 딱딱 나와서 드라마처럼 상황 연출해주고 너무 재밌다 ㅠㅠ

    찬성: 0 | 반대: 3

  • 작성자
    Lv.16 람베
    작성일
    23.06.25 00:12
    No. 4

    보법이 다르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8 yj***
    작성일
    23.07.15 01:23
    No. 5

    글 더럽게 못쓰네

    찬성: 2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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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명 (1) +5 23.05.21 3,008 5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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