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제일협객 - 1
천하제일협객이 되고 싶었다.
나는 정말 열심히 수련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최고의 무공을 수련했다.
사부님은 걱정하셨다. 내 무공이 너무 빨리 강해진다고 걱정하셨다.
나는 웃었다. 하늘이 무너질까봐 걱정이시냐며 웃었다.
사부님이 옳았다.
나는 그걸 너무 늦게 깨달았다.
제기랄......
* * *
이년 전.
무림맹 전투부대 서열 오 위의 적호대와 마교 전투부대 서열 칠 위의 흑룡대가 정면으로 충돌했다.
싸움이 벌어진 곳에서 피가 강이 되어 흘렀고 땅이 폐허로 변했다. 서로를 잡아먹기 위한 치열한 싸움은 양측 모두 전멸하고 나서야 끝났다.
그 전투에서 생존자는 아무도 없었다.
그것이 세상이 알고 있는 거짓이다.
* * *
일년 전.
무림맹은 전멸했던 적호대를 다시 만들기로 결정했다.
새로운 전투부대는 과거의 적호대처럼 강력한 고수들로 채워지지 못했다. 고수가 모자랐다. 하지만 누군가 그 이름을 이어야 했다. 때마침 새로 편성된 부대에 그 영광이 떨어졌다.
일련의 부대 창립 행사가 끝나고 나서 무림맹주와 적호대장이 따로 만나 환담을 나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무림맹주 검왕 혁천세가 질문했다.
“그런데 자네 광마를 아는가?”
무림맹의 수장이 하는 질문이다. 신임 적호대장은 이 말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느라 머리를 열심히 굴렸다. 딱히 걸리는 것은 없었다.
“혹시 이백 년 전에 무림을 피로 물들였다는 그 광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삼백 년 전의...”
“내가 뭐 하러 그런 옛날 사건을 들먹이겠는가?”
나름대로 머리깨나 돌아간다는 소리를 듣는 적호대장이다. 그의 얼굴빛이 조금 변했다.
“그럼 그 이후에도 광마라 불리는 자가 있었다는 뜻이신지요?”
“자네. 적호대가 어떻게 전멸했는지는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일년 전에 마교의 흑룡대와 결전을 벌여 놈들을 전멸시키고, 장렬히 산화했습니다.”
무림맹주가 씁쓸하게 웃었다.
“그렇지. 세상에는 그렇게 알려져 있지.”
적호대장은 깜짝 놀랐다.
“헛! 사실은 다르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는 엉뚱한 걱정이 들었다.
“그럼 제 적호대는 적을 속이기 위한 임시 위장 부대입니까? 혹시 진짜 적호대는 비밀 임무를 받아 은밀히 작전을 하고 있습니까?”
무림맹주가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아니. 무림맹에 적호대는 자네 부대가 유일하네. 그건 안심해도 좋아.”
“휴우. 그럼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알려진 것 중 하나는 거짓이거든. 적호대가 전멸한 것은 흑룡대 때문이 아니라네.”
“예?”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는 무림을 이끄는 사람 일부만 알고 있는 일이네. 우리 무림맹에서도 전투부대 대장 이상이 아니라면 알아서는 안 되는 일이지. 그러니 비밀을 지키게.”
“꿀꺽. 알겠습니다.”
“일년 전에 적호대는 마교의 흑룡대와 우연히 접촉했다네. 우리의 전투부대와 마교 놈들의 전투부대가 만나면 어떻게 됐겠나?”
“시비가 붙어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당연합니다.”
“맞네. 실제로 두 부대는 교전에 들어갔다네. 하지만 양측의 실력은 백중지세. 전쟁이 터진 것도 아닌데 바보가 아니라면 서로 전멸할 때까지 싸울 이유가 없지. 적당히 겨뤄서 피만 조금 보고 끝내는 것이 정상이지.”
“하지만 적호대는 실제로 전멸했습니다.”
“그래. 적호대와 흑룡대는 전멸했어. 광마 단 한명에게.”
적호대장의 턱이 툭 떨어졌다.
“허억!”
그는 빠지려는 턱을 겨우 끼워 넣으며 급히 질문했다.
“무,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건이 벌어진 후, 우리 무림맹의 조사단이 현장을 뒤졌네. 마교의 조사단 놈들도 비슷한 시점에 도착했지. 서로 내린 결론은 일치했네. 단 한 명에게 양측의 부대 전부가 전멸했다고 결론 났네.”
적호대장은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과거의 적호대는 엄청나게 강력한 부대였다. 한 명에게 당할 리가 없다. 거기에 마교의 흑룡대까지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다면...’
정말로 단 한 명이 한 짓이라면 그게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깨달은 적호대장이 침을 꿀꺽 삼켰다.
“무림인에게 원한이 있는 고수의 짓입니까?”
“아니. 현장에는 민간인들의 시체도 있었네. 흉수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에 있던 사람 전원을 죽였네. 손속에 전혀 사정을 두지 않았더군. 그 엄청난 무공과 잔악함으로 볼 때 광마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지. 이백 년 전에, 그리고 그 이전에 등장해 광마라 불렸던 자들처럼 이번 놈도 완전히 미친놈이네.”
“그럼 그 놈은 그 후에 어떤 짓을 저질렀습니까?”
“단 한번. 그때 그 일을 저지른 이후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네.”
“어떻게 그걸 확신하십니까? 무림은 넓습니다. 그 이후에도 누군가를 죽였지만 알려지지 않은 건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놈이 사용한 무공은 그 특징이 명확하네. 마치 살기 그 자체로 만들어진 듯한 무공. 그런 무공을 사용하는 자는 지난 일 년 동안 발견되지 않았네. 놈은 그 사건 이후 적어도 광마로서 활동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언제 다시 등장할지 모르지.”
“엄청난 놈이군요. 하지만 그런 자가 우리 정파의 무림인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지금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큰 도움이 됐을 텐데 아깝습니다.”
“미친 마두가 우리를 도울 리가 없지. 마교 쪽에 붙는다면 모를까. 꿈도 꾸지 말게.”
그는 무림맹주가 왜 이 이야기를 해 주는지 그 이유를 넘겨짚었다.
“어차피 한 편을 만들 수 없다면, 반드시 죽여야 하는 자이군요. 알겠습니다. 만약 놈이 다시 나타난다면 우리 적호대가...”
“광마를 만나면 도망치게.”
“예?”
“내가 무림맹 전투부대 대장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은 경고하기 위함이네. 광마는 신설된 적호대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자가 아니네. 천라지망이라도 깔지 않는 한 잡을 수 없으니까 꿈 깨게. 놈과 싸우면 자네의 적호대 정도는 전멸이라네.”
적호대장이 당황하며 땀을 닦았다.
“아, 알겠습니다. 절대로 함부로 교전하지 않겠습니다.”
“살고 싶으면 그래야지.”
검왕이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말하자 적호대장은 자존심이 상해야 한다는 것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대신에 다른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여쭤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말해 보게나.”
“광마가 등장했음을 왜 비밀로 하시는지요?”
“체면이 있지 어떻게 그걸 알리나?”
“예?”
“우리 무림맹에서 명성이 자자하던 적호대가 단 한 명에게 당했네. 무림맹의 체면 때문에라도 소문낼 수 없네.”
* * *
마교에도 똑똑한 사람들이 있다. 그들 역시 흑룡대의 이름값을 그대로 버릴 생각이 없었다. 당연한 결과로 새로운 흑룡대가 만들어졌다. 그들은 무림맹의 적호대보다는 좀 더 실력 좋은 고수들로 구성되었다.
마교 교주는 신임 흑룡대장에게 광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무림맹주가 적호대장에게 경고삼아 말한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이야기를 다 들은 흑룡대장이 긴장했다.
“혹시 정파 놈들이 몰래 키운 고수가 아닐까요?”
교주가 피식 웃었다.
“현장에서 일반인들의 시체가 여럿 나왔다. 더구나 전멸한 적호대는 진짜였다. 따라서 정파 놈들의 짓은 절대로 아니야. 틀림없이 미친놈 짓이다.”
“아깝습니다. 그런 자가 우리 교에 들어온다면 큰 도움이 될 텐데요.”
“맞아. 탐이 나는 자야. 하지만 너무 위험한 자이기도 하지. 미친놈이 힘까지 세면 정말 다루기 힘들거든.”
“그런데 교주님. 이 사실을 왜 비밀로 하시는지요?”
마교 교주가 인상을 팍 썼다.
“쪽팔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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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
제 다섯 번째 이야기입니다.
보시다시피 이번 이야기는 무협입니다.
의도했던 것은 아니지만 쓰고싶은대로 쓰다보니 무협과 판타지가 교대로 나오고 있습니다.
나중에, 잠룡전설과 같은 방향의 글을 또 쓸 생각입니다. 즉,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다시 쓸 생각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지금은 다른 것을 원합니다. 다른 방향에 욕심이 생겼습니다.
천하제일협객은 잠룡전설과 다릅니다. 잠룡전설 2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물론, 표사 2를 기대하셔도 안 됩니다. 판타지인 소환전기나 가즈블러드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건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가즈블러드는... 그건 잠룡전설에서 단지 몇 가지만 적용한 글입니다. 언뜻 보면 비슷한 느낌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방향 자체가 다릅니다. 오히려 판매량이 안 좋았던 소환전기의 필이 강한 글입니다. 대박이 목적이 아니라, 제 문제점을 찾기 위한 글입니다.
거기서 잠룡전설의 맛이 안 난다고 뭐라고 하시면 곤란합니다. 잔치국수에 짜장 소스를 부었다고 해서 짜장면 맛이 나는 건 아닙니다. 뭐, 비슷한 냄새야 나겠지요. 가즈블러드는 그런 성격의 글입니다. ^^;;;;;
천하제일협객 역시, 표사나 잠룡전설과는 방향이 다릅니다.
기존의 것과 비슷한 냄새가 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다른 방향으로 가게 하려고 신경쓰고 있습니다. 같은 맛이 안 난다고 뭐라 하지 마시기를. ^_^
'너의 방향은 어느 쪽이냐'라고 물으신다면, '길을 찾아 방황하는 중입니다'라고밖에 대답을 못 드리겠습니다. ^_^
천하제일협객의 출판속도는 기존과 비슷할 겁니다.
글에 대한 조언(비난이 아니라)은 일찍 해 주실수록 좋습니다. 글이 많이 진행된 후에 해 주시면 문제를 알아도 적용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저는 대부분의 조언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립니다. 어떤 것은 복선 때문에 앞뒤가 안맞아보이는 것이고, 어떤 것은 제가 옳다고 믿기 때문에 그대로 놔둡니다.
'아차' 하는 생각이 드는 것만 받아들입니다. ^___^;;
처음에는 '광마'라고 제목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제목으로 쓰는 분이 계시지요.
그 다음 제목은 '천하제일'. 하지만 이건 다른 사이트에서 두 분이나 사용하셨더군요.
그래서 나온 것이 '천하제일협객'. 포스가 2% 부족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이 글에 딱 맞는 제목은 남들이 다 쓴 후라...
제목 짓기. 참 쉬운 일이 아닙니다. ^_^;;
재미있게 읽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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