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황규영 님의 서재입니다.

천하제일협객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황규영
작품등록일 :
2007.05.22 18:14
최근연재일 :
2007.05.22 18:14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328,607
추천수 :
234
글자수 :
53,435

작성
06.12.15 22:13
조회
28,365
추천
5
글자
12쪽

천하제일협객 - 10

DUMMY

그들이 산을 내려와서 고가장으로 들어설 때였다.

“어이. 거기 너희들. 나 좀 보자.”

노주광이 돌아보니 손광태가 그들에게 손짓하고 있었다.

노주광이 일그러지려는 얼굴을 억지로 펴고 말했다.

“손 사부님. 무슨 일이십니까?”

“그 바구니 그거 뭐냐?”

“아, 이거요? 소미 부탁으로 하수오 조금 캐왔습니다.”

“흥. 하수오?”

손광태가 다가와서 약초바구니를 엎어버렸다. 하수오 두 개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디. 쓸만한 게 있나 볼까? 이게 크기가 꽤 큼지막하니 돈이 좀 되겠군.”

손광태의 약초 보는 안목은 무공에 비해서 많이 낮다. 그는 오십 년 묵은 하수오를 덥석 집었다.

노주광이 놀라서 손광태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이게 무슨 짓...”

손광태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건방진 놈. 내 손을 잡기만 하면 금나수법으로 손모가지를 부러뜨려버리겠다.’

노주광은 손광태의 손을 잡지 못했다. 노주광의 손목은 이미 서흑수에게 잡혀 있었다.

“총관 아저씨. 별거 아니니까 그냥 놔두세요.”

“하지만 흑수. 이건 자네가 힘들게 캔 것 아닌가?”

손광태가 코웃음을 쳤다.

“흥. 옷에 흙도 제대로 묻지 않은 것을 보니 하나도 힘 안 들었겠는데?”

서흑수가 피식 웃었다.

‘사실이지.’

“그 말도 맞지요. 하나도 힘들지 않았지요.”

손광태의 눈에는 그 모습이 알아서 꼬리를 마는 것으로 보였다. 비웃음도 구분하지 못했다.

‘힘들지 않을 리가 없지. 흥. 이렇게 숙이고 들어오니 지금은 시비를 걸기가 곤란하군.’

손광태는 이들에게 불만이 많다. 그는 자신이 술을 가져가는 것을 말린 노주광을 좋게 보지 않았다. 그리고 금목걸이를 훔치지 못하게 만든 서흑수는 심하게 싫어했다.

하지만 그는 손에 든 오십 년 묵은 하수오를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은 취하도록 마실 수 있겠군. 기생도 한 년 품어야지.’

그는 술과 기생 생각을 하니 급해졌다. 어서 술집에 가서 놀고 싶었다.

그는 떠나기 전에 서흑수의 뺨을 툭툭 쳤다.

“계속 그렇게 해라. 지난번처럼 주제도 모르고 개기지 말고. 알았지? 그러면 내가 너를 잘 봐주도록 하마.”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본심은 달랐다.

‘다음에 적당한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박살을 내 주마. 하지만 지금은 일단 술이 고프니까.’

손광태가 떠나자 서흑수는 그 뒷모습을 보며 살기가 조금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저걸 지금 그냥 묻어버릴까?’

서흑수가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발을 한 걸음 옮기려고 했다.

다음 순간, 그는 겨우 한 명의 인간 때문에 살기가 일어나는 것을 깨닫고 깜짝 놀랐다.

그는 재빨리 마음을 안정시켰다.

‘나는 아직도 한참 멀었구나. 겨우 이 정도로 살기가 일어나다니. 요새 편하게 지냈더니 나도 모르게 방심했군.’

그는 일부러 웃음을 지었다. 그의 웃음은 살기가 통제를 벗어나서 일어나려고 할 때 효과가 있다. 어지간한 경우는 이렇게 웃으면 살기가 가라앉았다.

오히려 노주광이 뒤에서 화를 참지 못했다.

“저, 저게 얼마짜리인데! 분명히 저걸 팔아서 술을 마시려는 게야. 젠장. 마님께 말씀 드릴수도 없고. 미치겠네.”

어느새 편안한 마음상태로 돌아간 서흑수가 말했다.

“괜찮아요. 하나는 건졌으니까.”

아직 백년하수오가 남았다. 돈으로 따지면 손광태가 가져간 것으로는 백년하수오의 잔뿌리 하나도 살 수 없다.


고소미는 철전 몇 개를 주고 삼 년 묵은 하수오 한 뿌리를 샀다.

그녀는 집에 돌아와 하수오를 노려보며 푸념했다.

“히잉. 이거 너무 작아서 효과가 없을 것 같네. 그리고 너무 바짝 말랐잖아. 얼굴에 어떻게 붙이지? 이거 갈아서 물에 반죽해 볼까?”

짜증이 난 고소미는 하수오를 집어던졌다.

“하여간 이게 다 거지 때문이야. 하나 캐다 주기만 했어도 이런 고민 안 하잖아.”

투덜대는 그녀의 앞에 백년하수오 한 뿌리가 툭 떨어졌다.

“옛다.”

신선한 하수오를 본 고소미의 얼굴이 환해졌다.

하지만 그녀는 재빨리 표정을 바꾸고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는 빽 소리 질렀다.

“이건 너무 작잖아! 소라는 삼십 년짜리 붙였다는데 이거는 겨우 십 년밖에 안 된 거란 말이야!”

서흑수가 백년하수오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싫음 내놔라.”

고소미가 백년하수오를 재빨리 움켜쥐었다.

“누, 누가 안 가지겠대? 다만, 다만 조금 작다는 거지!”

서흑수가 씩 웃었다. 고소미가 다시 소리쳤다.

“웃지 마. 정들엇!”

“내 술이나 내놔.”

“술? 술은 삼십 년 먹은 하수오를 가져왔을 때 주기로 했잖앗!”

“싫음 하수오 내놔. 약방에 팔아서 술이나 사야겠다.”

고소미는 백년하수오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품에 꼭 안으며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거 팔면 술 몇 병은 나올 거야. 거지가 이익을 보면 당연히 내가 손해인 거잖아. 그리고 이렇게 싱싱한 십 년짜리면 피부에 효과가 좀 있겠지?’

서흑수가 놀렸다.

“머리 굴리는 소리 들린다.”

“흥. 알았어. 줄게.”

고소미가 항복하고 백년하수오를 챙겼다. 그녀는 여기저기 뒤적거리는 시늉을 했다.

“이상하다. 여기 뒀는데. 왜 없을까? 야, 거지. 내가 나중에 술 찾아서 가져다주면 안 될까?”

서흑수가 웃었다.

“꼴을 보아하니 미리 준비해놓은 게 아니구나. 설마 날로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니겠지?”

“네, 네가 안 캐다준다고 했잖아! 그래서 준비 안 해놓은...”

그녀가 말을 멈췄다. 쌓여있던 짐 뒤쪽을 뒤적이던 그녀의 손끝에 술병이 닿았다. 그녀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그걸 꽉 움켜쥐었다.

‘술이 왜 여기 있지? 에라 모르겠다.’

예상외의 성과를 거둔 그녀가 의기양양하게 술병을 내밀었다.

“자, 술이야. 내가 준비 안 해둔 게 아니라니까. 단지 어디 뒀는지 까먹었을 뿐이야.”

서흑수가 술병을 받아갔다. 그의 예민한 감각이 밀봉된 술병에서 새오나오는 미약한 향을 맡았다.

“알았다. 그런데 네가 나를 이렇게 생각해 주는 줄은 몰랐다. 그냥 술도 아니고 고화주를 챙겨주다니.”

그 말에 고소미의 안색이 변했다.

“그거 정말 고화주야?”

“몰랐어? 혹시 이 술이 네 것이 아니냐? 만약 이게 남의 거라면 하수오 도로 내놔.”

“내, 내 거야. 그러니까 어서 그거 가지고 꺼져버렷!”


고소미는 백년하수오를 잘 씻은 후 얇게 썰어 얼굴에 붙였다. 얼굴이 주먹만하다보니 하수오를 많이 썰 필요도 없었다.

그녀는 그대로 드러누운 채 남은 백년하수오를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았다.

“그런데 하수오가 왜 이렇게 향이 좋지? 거지가 혹시 하수오랑 비스무리한 다른 거 캐온 거 아냐?”

그녀의 판단은 옳았다. 백년하수오와 보통 하수오의 종자는 같다. 하지만 무림인이 복용할 경우 그 약효는 차원이 다르다. 당연히 다른 것이라고 보는 게 옳다.

잠시 고민하던 고소미는 손에 든 백년하수오를 조금 깨물어먹었다.

“와. 이거 시원하고 달짝지근하네. 이거 진짜 그냥 하수오가 아닌데?”

그녀는 자기가 지금 먹어치우고 있는 것이 백년하수오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다시 백년하수오를 입에 물고 오물거리면서 말했다.

“맛있으면 됐지 뭐. 어때, 어차피 내 술을 준 것도 아닌데. 거지한테 나중에 이거나 더 캐다 달라고 해야겠다.”


그녀가 백년하수오를 다 깨물어먹고 나중에는 얼굴에 붙인 것까지 하나씩 떼먹고 있을 때 고세옥이 나타났다.

고소미가 누운 채 고세옥을 힐끗 보고 손을 휘저었다.

“야, 땀 냄새 나니까 저리 꺼져.”

고세옥은 짐을 뒤적이며 대답했다.

“내 술만 찾으면 나갈 거야.”

“니, 니 술?”

“응. 무공수련 뒤에 마시는 고화주는 아주 기가 막히거든. 방금 새로운 초식 하나를 완전히 익혔으니까 기념으로 마시려고. 이거 한 병 준비하느라고 내 남은 용돈이 다 말랐어.”

고소미는 얼굴에 붙여둔 백년하수오 조각들을 재빨리 떼먹었다. 급히 먹느라 뺨이 볼록해졌다. 그러고 나서 슬그머니 일어섰다. 미처 다 삼키지 못해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많이 찾아봐.”

그녀가 후다닥 방을 빠져나간 뒤 고세옥이 방안 여기저기를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이상하다. 분명히 여기 둔 것 같았는데. 그게 어디 갔지?”

* * *

손광태는 고급 객잔에서 옆에 여자를 끼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어느 정도 취기가 오르고 났을 때 객잔 주인이 방문을 열었다.

“저, 손님. 누가 찾아오셨습니다.”

“잘못 알았겠지. 이 동네에서 나 찾아올 사람은 없다.”

객잔주인의 뒤에서 남자 한 명이 나타났다.

“접니다.”

그 남자의 얼굴을 본 손광태의 눈이 번쩍 빛났다. 하지만 즉시 눈빛을 감추었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남자가 뒤늦게 한마디 덧붙였다.

“전노삼입니다.”

손광태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반가운 얼굴로 말했다.

“이야아. 이거 전노삼. 자네가 웬 일인가?”

손광태는 조금 전까지 주물러대던 여자를 밀쳤다.

“넌 그만 나가라. 끝까지 나를 모시지 못했으니 네게는 한 푼도 줄 수 없다.”

그 말에 여자가 항의했다.

“그런 법이 어디 있어요? 그렇게는 못 하니까 내 돈 내놔요.”

손광태가 차가운 눈으로 자신의 검집을 툭툭 쳤다.

“어르신들 중요한 이야기 하시는데 기녀 주제에 감히 설쳐? 내가 누구인지 잊었다는 말이냐?”

여자가 조금 겁을 먹었다.

‘쳇. 똥 밟았네.’

그녀는 결국 투덜대면서 방을 나갔다.

둘만 남게 되자 손광태가 정색을 하고 질문했다.

“네가 여기 무슨 일이냐?”

전노삼이 대답했다.

“구가장이란 곳에 취직했습니다.”

“구가장? 알지. 거기도 돈 많은 곳이지. 너는 무슨 명목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 딸의 경호무사입니다.”

손광태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아, 구소라 그년? 이 동네의 양대 예쁜이 중 하나지. 그렇군. 그년의 경호무사라... 네가 나보다 팔자 좋구나. 예쁜 것과 어울리다 운이 좋으면... 흐흐흐.”

전노삼도 웃었다.

“흐흐흐. 하지만 그년에게 손댈 수 없는 것 잘 아시잖습니까? 여기 있는 동안은 다른 년이나 알아봐야지요.”

손광태가 술병을 기울였다.

“하긴 그렇지. 내가 그 기분 잘 알지. 나도 고소미라는 년한테 침만 삼키고 있으니까. 그래서 다른 년으로 대신하고 있지만 영 아쉽지. 어쨌든 한잔 받아라. 여기 있는 동안은 술이라도 즐겨야지.”

“감사합니다. 그런데 일은 잘 되시는지요.”

“물론이지. 내가 하는 일인데 잘 못될 리가 있나. 조만간에 손봐줘야 할 놈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어떤 놈입니까?”

“서흑수란 놈인데 말이야. 이 놈이 어찌나 건방지던지...”

손광태가 침을 튀겨가며 서흑수의 욕을 하기 시작했다.


----------------------------------------


어느새 10회. 참 빠르지요? ^^


서흑수가 처음 고가장에 왔을 때 못 먹어서 ‘쓰러진’ 건 아닙니다. 다만 굶어서 배고픈 배를 움켜쥐고 잠을 자고 있던 거지요. 주인공은 누운 채로 ‘아, 배 고프다’ 같은 소리나 하고 있었죠. 하지만 쓰러진 것이 아니기에 밥 소리에 벌떡!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돈 쉽게 벌 수 있는 놈이 도대체 왜 밥도 제대로 못 챙겨먹고 있느냐? 말이 안 된다...’ 라고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도대체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 꼴을 하고 있었을까?’ 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체를 숨긴 주인공에게 사연이 없을 리가... ^^;;

패 넘기는 과정의 실수는 리플 보자마자 재빨리 수정했습니다. ^^;;

한 편당 양이 적다니요. 다른 분들이랑 비슷합니다. ^_^;;;;;;;;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68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천하제일협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6 천하제일협객이 완결됐습니다. +39 07.05.22 6,045 5 2쪽
15 천하제일협객 6권이 배본됐습니다. +31 07.04.24 4,134 14 1쪽
14 천하제일협객 5권이 배본됩니다. +35 07.03.30 3,848 3 1쪽
13 천하제일협객 4권이 나왔습니다. +35 07.03.16 4,407 2 1쪽
12 천하제일협객 3권이 나왔습니다. +47 07.02.10 7,210 24 1쪽
11 천하제일협객 1, 2권이 배본됐습니다. +82 07.01.15 15,052 12 1쪽
» 천하제일협객 - 10 +68 06.12.15 28,366 5 12쪽
9 천하제일협객 - 9 +56 06.12.14 24,220 32 13쪽
8 천하제일협객 - 8 +68 06.12.13 24,668 20 12쪽
7 천하제일협객 - 7 +63 06.12.12 26,417 25 11쪽
6 천하제일협객 - 6 +62 06.12.11 25,533 7 12쪽
5 천하제일협객 - 5 +64 06.12.10 26,393 15 12쪽
4 천하제일협객 - 4 +77 06.12.09 27,336 26 11쪽
3 천하제일협객 - 3 +53 06.12.08 27,889 7 11쪽
2 천하제일협객 - 2 +61 06.12.07 30,593 7 10쪽
1 천하제일협객 - 1 +87 06.12.06 46,497 30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