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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왼팔 님의 서재입니다.

언더핸드로 너클볼을 숨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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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왼팔
작품등록일 :
2024.09.05 21:58
최근연재일 :
2024.09.1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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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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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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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
글자수 :
84,040

작성
24.09.1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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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12쪽

011화 피아노

DUMMY

어느덧 시간은 흘러 5월 중순.


[장점이 먼저다. 단점은 나중에.]

[근력 우선주의에 빠지지 말자.]

[지금 힘든 건 엄살이다.]

[몸이 하는 이야기에 집중해라.]

[갈 수 있다. 메이저리그!]


존슨 부부의 집 한 편 게스트 룸엔 고율이 적어 놓은 글귀들이 책상 위에 널브러져 있었고.


♩! ♩! ♩! ♩!


거실에선 투박한 피아노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당연히 그 소리의 주인공은 고율.


‘이게 진짜 맞는 건가?’


난 긴가민가한 표정을 지으며 피아노를 치고. 아니 두드리고 있었다.


서서히 바뀌어 가는 내 투구 폼.

어느 정도 적응이 끝난 뒤 공을 잡는 것까지 좋았다.

그러나 뒤이어 들리는 코치님의 한숨 소리.

손가락에 섬세함이 없다며 날 피아노 앞에 앉히셨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훈련에 시간이 흐를수록 내 의아함은 커져만 갔다.

딱히 효과라는 걸 보지 못했기에.


“집중 안 해?”


때마침 들려오는 코치님의 목소리.


“코치님 진짜 이거 효과 있는 거 맞아요?”


난 이제는 때가 됐다는 생각에 용기를 내었다.


하지만.


“내가 말했지. 조급함을 버리라고. 뛸 생각을 하지 마. 똑바로 집중해.”


집중이나 하라는 코치님.

난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건 그렇고.

응? 왜 아무것도 안 하냐고?


“어느 순간 확 달라질 거야. 네 공이 밋밋한 건 잘못된 습관 때문이야.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언더 스루에서의 릴리스를 제대로 못 배워서 그래. 섬세함이 한 스푼만 추가돼도 확 좋아질 거니까 딴 생각 하지 말고 집중해.”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코치님이 설명해줄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처음엔 코치님의 성격이 괴팍해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같이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난 자연스레 코치님과 소통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코치님의 컨디션이 좋을 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조금만 안 좋아지셔도 생각이 많아지시는 코치님.

모든 게 좋을 순 없다고 난 코치님의 병에 적응해가며 가르침을 받고 있었다.


어찌 보면 참으로 기묘한 동행.

코치님은 별이 지면 새로운 별이 떠오르는 것이라며 이 모든 것이 순리라고 하신다.

괜한 생각을 할 필요 없다는 코치님의 말을 떠올리며 난 다시 피아노에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와 코치님의 시간은 다시 빠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


알렉스 박스 스타디움.


“이거 찍어서 인터넷에 올려야 되는 거 아니야?”

“그것보다 진짜 신기하다니까. 손 다칠 거 같은데?”

“난 한 번 따라하다가 손 까졌다니까.”

“그걸 왜 따라해?”

“궁금하잖아. 그리고 저번에 너도 따라하는 거 봤는데?”

“헤이~ 티거! 허리에 부담 안 가?”


웅성~ 웅성~


‘저 별명은 어떻게 못 없애나?’


투구 폼을 바꾸면서 선수단 내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나에게 별 관심 없던 선수들도 내가 훈련을 할 때면 잠시 걸음을 멈추어 살펴보는 게 일상.

처음엔 주목 받는 게 좀 부담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나니 나름 적응을 했다.


하지만.


티거. 이 별명은 아직도 적응이 안 된다.

타일러를 포함해 1학년 무리에서 퍼져나간 내 별명 새끼 호랑이 티거.

퍼져 나가는 속도가 100마일의 포심 패스트볼보다 더 빨랐다.


어쨌든.


“괜찮아요. 아직은 나름 여유 두고 던지는 거라서요. 여기서 폼이 더 커져야 하는데 그때가 문제죠. 뭐.”

“익스텐션은 얼마나 늘릴 예정인데?”

“확실한 건 아닌데. 한 이 정도?”

“너무 무모한 거 아닌가?”

“그냥 예상인데요 뭐. 한참 뒤에나 고민할 문제라서 딱히 신경은 안 쓰고 있어요.”


팀 에이스인 루이스의 질문에 난 답변을 했다.

사이드암 투수인 루이스는 내 투구 폼에 관심이 많은지 최근 들어 나랑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것보다 공 릴리스가 문제에요. 오죽하면 피아노 치고 있다니까요.”

“응? 피아노?”

“네. 손가락에 세심함이 부족하다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대화의 화제는 어느새 최근 내 훈련으로 바뀌었고.


잠시 후.


“내 경험 상 가장 도움이 된 건 그날을 한 번 겪는 거라고 해야 하나?”

“그날이요?”

“응. 나름 가이드라인이 생긴다고 해야 하나? 꽤 도움이 됐어. 너도 잘 기억해봐. 꽤 도움이 될 걸.”

“.....”


내 훈련방법에 크게 의아함을 품지 않은 루이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감각적인 영역인 만큼 긁히는 날이라고 부르는 그날의 경험이 무척이나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니까 한 번도 없었네.’


루이스의 말에 맞장구를 치고 싶었지만 잠시 끊긴 대화의 흐름.

난 그날이란 걸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기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결국.


“그런데 요새 양복 입으신 분하고 자주 미팅하시는 거 같은데. 누구에요?”

“내 에이전트. 드래프트 얼마 안 남았잖아.”


어색함이 돌기 전 대화의 화제를 바꾸었고.


“보통 어떤 이야기해요? 이야기 좀 해주세요.”

“크게 별 건 없어. 보통은 돈 이야기지. 구단 따라 전략을 따로 가져야 하니까.”

“어떤 전략이요?”

“그게 그러니까.....”


난 루이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얼마 안 남은 드래프트. 미국에서의 처음 맞는 드래프트라 그런지 흥미가 동했기에.


어쨌든.


그렇게 일상은 다시 흘러가기 시작했고.


*****


알렉산드리아 근교에 위치한 한 농장.


휙~


“지팡이는 땅 짚는데 쓰는 거 아니에요?”

“어이가 없어서 그렇지.”

“아니. 질문도 못해요?”


난 느릿느릿한 코치님의 지팡이를 피하고 있었다.

진짜 궁금한 마음에 물어봤다.

그날이란 게 올 수 있는 특별한 방법이 있냐고.

하지만 어이없는 표정을 하시는 코치님.


“내가 그걸 알면 명예의 전당에 내 이름이 올라가있겠지. 질문 수준하고는. 쯧쯧.”

“그게 아니라 코치님이라면 혹시 알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물어본 거죠. 언제는 피칭 마스터라면서요.”


나 또한 약간은 억울한 표정을 하며 변명 아닌 변명을 했다.

답답하게 눈치 보지 말고 궁금한 게 있으면 바로바로 말을 하라고 하신 코치님.

난 그 말에 충실히 따른 것뿐이다.


“후우.. 일단 앉아 봐.”

“네.”


숨이 차시는지 의자에 앉으시는 코치님.

잠시 생각 정리를 하시는 듯 말이 없어지셨다.


그리고.


“경험상 긁히는 날 같은 건 그냥 머리가 착각을 하는 것뿐이야. 그날이라고 새로운 게 튀어나온 게 아니잖아. 그저 좋았던 기억이 다시 한번 생각나는 거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이야기하시는 코치님.


“결국 그저 운이 좋아 상황이 갖추어진 것뿐이야. 데이터 상으로만 봐도 그날이라고 생각한 경기와 잘했던 다른 경기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그리고 네가 그날을 못 겪은 건 네 심심한 성격 탓이야. 그러니까 쓸데없는 거 생각하지 말고 지금 하는 거에나 집중해.”


‘성격은 또 왜...’


나에게 면박을 주시고선 이야기를 끝내셨다.

왜 마무리에 굳이 내 성격을 언급하시는지 참.


“쉬었으면 빨리 일어나.”

“알겠어요.”


난 잠시 할아버지의 컨디션을 살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훈련은 다시 시작되었고.


“운전할 때를 생각해 봐. 저 멀리 커브길이 있었는데 막상 가면 핸들 많이 안 돌리잖아. 그저 직진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이 경우랑 비슷하다고 생각을 해. 릴리스 순간은 찰나지만 그 과정은 무척이나 긴 과정이라고.”

“...네.”


무언가 답답하신지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신 코치님.

숲을 보면서 나무를 보고. 나무를 보면서도 숲을 보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지만 쉽지가 않은 일.

그러면서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져갔다.

물론 목소리가 줄어든 이유는 주눅이 들었다기보다는.


“괜찮으세요?”

“괜찮아. 의자 좀 갖다 줘.”

“네. 잠시만요.”


코치님의 상태가 안 좋아졌다.

짚고 있던 지팡이를 놓치는 것을 확인한 난 빠르게 의자를 가져왔고.


“집으로 갈까요?”

“아니야. 잠시 쉬면 괜찮아.”

“진짜요?”

“그래. 너 때문에 답답해서 그런 거니까.”

“그러면 앞으로 답답해도 일어서지 마시고 앉아서 이야기하세요. 여기 물도 한 잔 드시고요.”

“나 신경 쓰지 말고 다시 시작해.”

“아니. 무슨 걱정도 못하게 해요?”

“내 걱정은 내가 할 테니까 네 놈 걱정이나 해.”

“알았어요.”


다시 목소리가 커진 코치님의 상태를 확인하곤 난 다시 이동식 마운드로 향했다.


‘진짜 괜찮으시겠지?’


투구 플레이트에 발을 올려놓자 가슴이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코치님의 건강도 건강이었지만.

코치님의 기대감을 충족 못 시키면 어떡하나 하는 부담감이 느껴진다.

기대라는 게 처음엔 기뻤는데 점점 불안함도 증가하는 것 같다.


어쨌든.


‘집중하자. 고율. 지금 내가 해야 할 건 이 순간을 놓치지 않는 거야.’


난 다시 눈에 힘을 주며 공을 잡고 있던 손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

.....

.......


착~

착!


‘이상하단 말이야.’


조용히 꼬맹이가 공을 던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던 토마스.

침침한 눈을 비비며 최근 들어 고민하고 있던 일을 생각 중이었다.

나름 수월하게 투구 폼 교정이 끝났을 때까지만 해도 큰 걱정은 없던 토마스.

그러나 빠르게 지나갈 줄 알았던 부분에서 시간이 지체되어가고 있었다.

기본기가 나쁘지 않은 꼬맹이었기에 요령만 조금 가르쳐주면 언더스루 특유의 릴리스는 금방 배울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예상과 달리 전혀 감을 잡지 못하는 꼬맹이.

노력을 한다고는 하는데 성과가 너무 안 좋다.

자신의 경험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

그렇다고 꼬맹이 탓을 하기엔 크게 모난 부분이 없다.


결국.


‘차라리 변화구를 먼저 던지게 할까? 아니지. 기본이 아예 안 잡혀있는데 무슨.’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정도가 아닌 사도의 길을 잠시 생각한 토마스.

생각이 너무 멀리 나갔다는 생각에 잠시 헛웃음이 나온다.


‘뭐가 문제지?’


그렇게 토마스는 기력 없이 앉아 있는 모습과 다르게 머릿속은 빠르게 여러 생각을 하기 시작했고.


잠시 후.


♩! ♩! ♩! ♩!


‘응? 왜 피아노가?’


문뜩 떠오르는 꼬맹이의 모습.

기억 속에 있던 소리와 인상을 쓰며 피아노를 쳐다보고 있는 꼬맹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너무나 갑작스러운 기억.

평소라면 무심코 넘길 일이었지만 토마스는 그 기억을 잠시 잡아두었다.

자신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는 토마스.

그러나 자신의 직감은 아직 살아 있었다.

분명 이유가 있어 자신에게 알려주는 것이다.

자신의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기억이라고.

느릿느릿한 속도로 기억을 헤집기 시작한 토마스.


“그만!”


꼬맹이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 괜찮으세요? 집. 아니 병원 갈까요?”


자신의 소리에 깜짝 놀라는 꼬맹이.

놀란 표정을 하며 자신에게 뛰어 온다.

그러나 호들갑을 떠는 꼬맹이와 달리 아무 말 없이 꼬맹이의 손을 잡은 토마스.


“이놈의 몸뚱어리는 정말...‘


손을 확인하곤 황당한 표정을 지으며 꼬맹이를 쳐다보았다.

크기도 크고 기다란 손가락을 가진 꼬맹이.

자신처럼 투수로서 좋은 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의 손과 무언가 미묘하게 다른 꼬맹이.

중지가 유독 길다.


“공 가져와. 공 잡는 게 틀렸어.”


그리고.


착!

착!


어느새 네트를 향해 용을 쓰며 공을 던지고 있는 꼬맹이.


‘하아.. 계획을 수정해야겠네.’


토마스는 다시 한번 황당한 표정을 하며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면에서 출발한 꼬맹이의 공.

한번 꿈틀거리더니 방향을 바꾼다.

문제는 방향.

왼쪽이 아닌 오른쪽이다.


‘컷 패스트볼이라니..’


참 보면 볼수록 신기한 꼬맹이라 생각하는 토마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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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014화 계획은 그저 계획일 뿐 NEW 11시간 전 214 4 12쪽
14 013화 용병 고율 +2 24.09.17 376 5 11쪽
13 012화 할아버지의 너클볼 24.09.16 581 9 11쪽
» 011화 피아노 24.09.15 670 6 12쪽
11 010화 본격적인 시작 +3 24.09.14 778 7 14쪽
10 009화 사나이 고율 +3 24.09.13 799 9 11쪽
9 008화 지팡이의 용도 +2 24.09.12 821 8 14쪽
8 007화 잔디 깎는 소년 +1 24.09.11 848 11 15쪽
7 006화 인연의 시작 +1 24.09.10 879 12 16쪽
6 005화 도대체 마이크가 누구야? +2 24.09.09 916 12 15쪽
5 004화 LSU Tigers +1 24.09.08 946 15 12쪽
4 003화 삼촌은 언어 인류학자다 +2 24.09.07 991 19 13쪽
3 002화 두 마리 토끼 +3 24.09.06 1,036 16 12쪽
2 001화 허치 상(The Hutch Award) +3 24.09.05 1,160 16 13쪽
1 000화 프롤로그 +5 24.09.05 1,244 16 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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