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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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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최근연재일 :
2023.11.28 18:31
연재수 :
3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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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67,278

작성
23.09.01 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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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좋은 아침입니다 (2)

DUMMY

본의가 어떻든 낙하산 인사다.

공식적으로는, ‘사고 쳐서 잘릴 위기에 처한 아들을 서장이 직접 빼내서 본인 서에 꽂아준 것’이다. 대우를 바라거나 불평을 뱉을 입장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은가.


‘하, 지하주차장이라니.’


계단을 내려가는 아인의 발걸음은 진창에 빠진 듯이 무거웠다.

어쩌면, 아버지 박인배가 표면적으로나마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는 것처럼 대우해준 게 그나마 마지막 배려였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면, 이쪽의 ‘약점’과 낙하산인사라는 굴욕적 상하관계를 통해 처음부터 주도권을 쥐려는 상급자로서의 의도일 수도 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본다면 이번 전입은 아인에게 있어 구원이자 출세였다.

아버지-, 인배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아인은 함양에서의 사건을 마지막으로 옷을 벗게 됐을 터. 하지만 인배의 예상대로, 아인에게 경찰복은 그 정도로 얕은 미련이 아니었다.

결국 처음부터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다. 만약 자신이 정말로 아버지의 손길을 철저하게 거부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시골을 벗어난 순간, 그는 이미 선택을 한 것이다.


종로경찰서장의 의도대로 움직이겠다는 선택을 말이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지하주차장 관리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조금은 망설이지 않았을까.


“······하아.”


아인의 쓸데없는 망상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못했다.

계단이 끝나고 이어진 주차장, 그 주차장의 가장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현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로겨차서 지하주차자 과리시」


누가 의도적으로 떼어낸 것인지, 아니면 긴 세월 방치의 결과물인지, 허름한 문짝에 걸린 더 허름한 팻말에는 받침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거기에 비틀린 경첩과 문짝은 문지방과 제대로 아귀조차 맞지 않아 반쯤 입을 벌리고 있는 상태.

아인의 불안이 더욱 짙게 스멀스멀 피어올랐지만, 그는 역시나 망설임 없이, 헛기침과 함께 문을 두드렸다.


“······.”


노크에 힘이 덜 실렸던 걸까. 다시 한번 분명한 소리를 내며 문을 두드렸으나 안에선 여전히 대답이 없다.

애초에 이격된 탓에 제대로 닫히지도 않은 문. 초면의 예의를 갖출 의도는 증발하고, 아인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어 녹슨 철문이 내지르는 비명을 귀에 담았다.


우려대로, ‘관리실’의 내부는 그야말로 관리실 그 자체였다.

태양의 직무를 대신 책임지고 있는 형광등은 당장이라도 생을 다할 것처럼 칙칙했으며, 그렇지 않아도 좁아터진 관리실의 안쪽 벽면엔 용도를 가늠하기 어려운 기계들과 구형 모니터들이 포도 넝쿨처럼 유선으로 주렁주렁 얽혀있었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기울어진 의자에 반쯤 누워 키보드를 배 위에 올려놓은 청년이 가장 먼저 아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언제 씻은 건지 가늠하기 어려운, 푸석푸석 아무렇게나 기른 먹색의 머리칼과 그 아래 얼핏 보이는 하얀 헤드폰유닛. 아마 노크 소리를 듣지 못한 이유가 저것일 테지.


“응?”

아인이 다시금 의도적인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보는 청년이었다.

머리카락만큼이나 지저분하고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낡은 반바지. 그러나 뜻밖의 손님을 맞이하는 커다란 눈동자는 아인의 예상과는 달리 청년보다 소년, 혹은 소녀에 훨씬 가까웠다.

“뭐야, 누구야?”


귀를 덮고 있던 헤드폰을 끌어내리며 청년, 아니 소년이 물었다. 이에 아인은 순간 경어와 반말의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이내 굳은 얼굴로 한걸음 소년에게 다가서며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 이곳에 팀원으로 합류하게 된 박아인이라고 한다.”


“이잉? 팀원?”


여전히 의자에 반쯤 누운 채, 무의식적으로 악수에 화답하면서도 소년의 미간은 의문으로 일그러져있었다.


“서장님께서 이곳의 감독관으로 임명하셨어. 잘 부탁한다.”


“아아, 새 감독관이구나. 생각보다 빨리 구해왔네.”


‘새 감독관?’


아버지에게서 전임자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중요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의도적인 누락이었을까.


“여기가 진짜로 지하주차장 관리실이 아니라는 건 알고 온 거지?”


“그래.”


“흐으음.”

어색한 악수를 마치고 떠나간 소년의 손은 그대로 주인의 턱을 매만지며 얕은 신음을 위로 받는다.

그 순간 아인은 알 수 있었다.

지금 소년이 품고 있는 건 의심이 아니라, 그저 ‘이해 불가’라는 시선이었음을.

“아, 미안. 난 오블리라고 해. 여기서 전산업을 맡고 있지.”


“전산업······?”


본명을 대신하여 BDM ID를 말하는 사람을 처음 접하는 건 아니었기에 이에 대해선 별다른 생각이 없었으나, 아인이 신경을 쓴 쪽은 바로 ‘전산업’이라는 단어였다.

보기만 해도 어지러울 정도로 난잡하게 시각적 구현화 된 각종 커뮤니티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게시판들로 가득한 수많은 모니터. 이들을 단순히 ‘전산업’이라고 치부하기엔 악의적인 냄새가 범상치 않았다.


“그리고 저 소파에 널브러진 사람이 크리스.”


“아.”


아인은 그제야 관리실에 드리워진 다른 이의 그림자를 눈치챌 수 있었다.

오블리가 있는 벽면의 반대편, 관리실의 입구에서 가까운 벽면으로 낡은 소파 하나가 좌식탁자와 가까이 붙어있었고, 그 위에 노란 머리의 서양인이 세상모르고 꿈속을 여행하는 중이었다.

흘러내리는 듯 부드러운 금발에 오뚝한 콧날과 깊은 눈두덩이. 어딘가 인조적인 냄새가 나는 듯한 분위기와 함께, 아무렇게나 누워있음에도 탄탄한 몸과 긴 다리를 예상할 수 있을 정도로 바디밸런스가 훌륭한 여성이었다. 얼굴로만 보자면 아인과 비슷한 연배일까.


“크리스! 그만 쳐자고 좀!”


기울어진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채 목소리만으로 크리스를 깨우려는 오블리. 그러나 이미 금발 아래 새파란 눈이 흐린 조명을 받으며 빛을 내뿜고 있었다.


“으우움······, 왜?”


“일어나봐. 손님 오셨잖아.”


“손님?”


긴 하품을 끝마치고 나서야 크리스는 자신과 오블리 사이에 있는 존재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인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반갑다. 내 이름은 박아-”


“박아인, 27세, 2049년 5월 3일생. 9세 때 2세대 BDM 주입 시술, N 초등학교, N 중학교, N 고등학교 출신. 제9공수특전여단에서 <비취인가2급기밀>. 중사 전역 후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4년간 함양에서 경위로 근무. 아버지는 현 종로경찰서장 박인배 총경. 어머니는 5년 전 울산에서 에고 바이러스에 감염된 안드로이드가 벌인-”


“지금 뭐 하는 거야.”

아인은 위협이 담긴 목소리로 오블리의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 이 소년은 단순히 친절을 베풀기 위해 대신 소개글을 읽어주고 있는 게 아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자신의 장난감을 자랑하듯이, 눈을 마주치고 악수를 나눈 그 짧은 몇 초 동안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노골적으로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아인은 이런 유치한 장난질에 감탄해줄 생각이 없었다.

“경찰청 DB를 해킹한 거냐? 아니면 내 BDM을? 어느 쪽이든 중범죄라는 사실을 모르진 않겠지?”


“미안한데, 난 너랑 파워싸움같은 거 할 생각 없어. 여기서 일하려면 그 븅신같은 공용방화벽부터 갈아치웠으면 해서 말해주는 거야.”


“그게 뭔-”

제멋대로 활성화되는 메일 계정. 곧이어 발신인 불명의 메일이 열리며 첨부된 뉴럴앱이 설치된다. 제작자 미상의 어플에 공용방화벽이 악성코드의 위험성에 대하여 경고를 울렸지만, 저항은 찰나-, 곧 아인의 머릿속은 평화를 되찾는다.

아인으로서는 자신의 경고를 무시한 것도 모자라 더 과감하게 머릿속을 헤집은 소년의 만행에 경악스러울 따름이었다.

“너 지금 장난하냐?”


“왜 화를 내는 거야? 이제 적어도 눈 마주친 지 3초 만에 신상 털리는 일은 없을 텐데? 오히려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퉁명스럽게 헤드폰을 다시 쓰려는 소년의 팔을 아인은 거칠게 낚아챈다.


“지금 네가 몇 개의 정보통신법을 위반했는지 알고는 있냐? 지금 이 자리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도 있어.”


“뭔 개소리야. 난 이렇게 해도 된다고 해서 여기 있는 건데. 못 들었어?”


“뭐? 누가?”


“네 아버지가.”


아인은 목소리를 삼켰다.

더 이상 소년의 위법행위는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자신이 ‘범죄’가 당연한 듯한 오블리의 태도로부터, 그는 잠시 잊고 있었던 중요한 사실 하나를 떠올릴 수 있었다.


‘팀 전원 아버지가 고용한 용병.’


즉, 이들은 처음부터 가장 확실한 면죄부를 안고 일을 시작한 거다.

‘비공식’이면서도 이 경찰서 안에 있는 그 누구보다도 확실한 지원을 받는 팀.

이 모순에 아인의 입가가 뒤틀리기 직전, 잠자코 실랑이를 지켜보던 크리스의 태평한 목소리가 긴장을 흩뜨려 놓는다.


“오블리의 태도는 대신 사과드릴게요. 스스로 사회성이랑 공감능력, 도덕관념을 머리에서 잘라낸 녀석이라 직접 얘기하다 보면 답답하실 거예요.”


“······.”


헤드폰을 쓰기 위해 붙들렸던 팔을 내빼고, 자연스레 다시금 자신의 세계로 몰입하는 소년을 내려다보며 아인은 미간을 구겼다.


“뭐어, 쉽게 말하면 자발적으로 소시오패스가 된 거죠. 알아요. 저도 이해하기 힘드니까.”

어깨를 으쓱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크리스.

그 신장은 아인보다도 머리 하나는 높게 솟아있어서, 아인은 그녀의 푸른 눈동자를 바라보기 위해 고개를 들어야 했다.

“그나저나-, 경위님은 어쩐 일로 오셨나요? 그냥 인사만 하려고 들르신 건 아닌 거 같고.”


“서장님께서 ‘팀’이 이 사건을 맡아주길 바라시더군.”


손동작을 통해 크리스의 시각정보로 사건 파일 하나를 전송하는 아인. 그러나 크리스가 파일을 읽기도 전에 오블리의 목소리가 먼저 튀어나온다.


“쌍문 사건이야.”


‘쌍문 사건’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크리스의 입가가 살짝 씰룩인다. 그러나 거듭된 오블리의 무례함에 집중하고 있던 아인은 이 미묘한 온도의 변화를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내가 받은 팀원 파일엔 다섯 명이 있었는데, 나머지 셋은 어딨어?”


“한 명은 출장, 한 명은 개인 볼일, 한 명은 딸내미 데리러 잠시 나갔어요.”


‘딸내미······?’


“딱히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요. 지금 가용한 현장 인원은 저뿐인데, 어떡하실래요? 그쪽에 한번 가보긴 해야죠? 아, 물론 경위님이 괜찮으시다면요.”


“그쪽?”


아인의 의문에 뿌드드득- 기지개를 켜는 여인.

동시에,

그녀는 자연스럽고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쌍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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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좋은 아침입니다 (1) 23.08.31 59 1 12쪽
1 프롤로그 - 시퍼런 피 23.08.31 88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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