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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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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스퍼
작품등록일 :
2023.08.31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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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8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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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8.31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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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좋은 아침입니다 (1)

DUMMY

[박아인 경위님, 좋은 아침입니다. 현재 시각은 오전 6시 20분입니다. 외부 온도는 19도, 습도는-]


머릿속을 직접 휘젓는 알람보다 지랄맞은 하루의 시작이 또 있을까.

BDM을 통해 직접 사용자의 아침을 통제하려는 홈AI와의 연결을 끊으며 아인은 습관적으로 욕을 씹었다.

저 ‘통제’시스템을 가만 냅뒀다간 집을 나서는 순간까지 몸의 청결, 아침 식사의 적정 칼로리, 출근 전 운동의 필요성 등등 일일이 간섭해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친근한 인공지능의 바람과는 달리 그의 모닝루틴은 실로 인간적이다.

대충 샤워하고, 대충 머리를 말리고, 식사는 대충 멸균우유에 눅눅한 시리얼로 끝.

그러나 제복을 입는 순간만큼은, 그의 표정을 비롯하여 몸짓, 시간의 배분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기계적으로 바뀐다.

후보생 시절부터 이어져 온 습관의 연장선이기도 했지만, 그에게 있어 ‘정복’을 입는 행위는 단순한 출근 준비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


2주 전 있었던 일로, 다시는 이 정복을 입을 수 없게 될 줄로만 알았다.

아인의 파트너는 실제로 그를 징계위원회에 고발하였고, 조사 중 아인이 멋대로 BDM 부서로 갔어야 할 증거를 빼돌린 사실까지 드러나면서 그는 곧바로 전담팀에서의 보직해임과 동시에 대기발령 조치를 받게 되었다.

말이 대기발령이지, 증거 빼돌리기에 파트너를 위험에 빠트린 행위, 거기에 ‘그전에 있었던 사건’까지 생각해본다면 그의 경찰간부로서의 커리어는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경찰’로서의 마지막을 기다리고 있었던 아인이었기에, 갑작스러운 전출 통보는 그로선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러나 ‘혹시-?’했던 희망도 잠시, 발령지가 서울의 종로경찰서임을 확인한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오피스텔을 나서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였다.


“박아인 경위님?”


“아, 예.”


도보로 5분 만에 도착한 종로경찰서 본관. 회전문을 통해 로비로 들어서자마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아인은 고개를 돌린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근무복에 더할 나위 없이 자연스러운 미소.

그러나 눈썹 위에 그려진, 새파란 색의 일자 무늬.

아인은 상대가 안드로이드임을 확인함과 동시에 입가의 미소를 말끔히 지워낸다.


“서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




“들어와.”

문 너머에서 생소하면서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4년 동안 아예 연을 끊고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아버지-, 선택권이 사라진 자신의 상황을 이용하여 이곳에 불러들인 바로 그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인은 문고리를 돌리기 위해 심호흡을 크게 해야 했고, 문을 밀기 위해 숨을 삼켜야 했다.


그런 그를 맞이한 것은 ‘서장’의 흐트러짐이라고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 제복과 몸가짐.

‘아버지’로서가 아닌 ‘상사’로서의 그 모습은 역시나 아인이 느슨하게 받아들이기엔 다소 높은 벽이었다. 굳이 4년이란 시간이 아니었더라도 저 사람과 이쪽의 공백은 채워지기 어려웠을 터.

“앉아.”


“아닙니다. 서 있겠습니다.”


“······.”

얕은 반항임을 눈치챈 것일까. 권위를 내세운 두 번째 권유까지는 나아가지 않는다.

아인은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더 먼 거리를 둘 수 있게 됐음에 안도했지만, 곧 거대한 불편함에 직면해야 했다.

어쨌거나 상대는 아득한 상급자. 눈을 마주치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갈 수는 없는 법.

아인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미간을 바라보았다.


염색을 한 것인지, 새로운 유닛으로 교체한 것인지, 아버지의 풍성한 먹색 머리카락과 짙은 눈썹은 아인의 기억 속 마지막 모습과 전혀 달라진 바가 없었다.

오히려 날 선 눈매와 입술의 굳건함은 그 농도가 더욱 짙어진 것이 아닐까 싶은 정도였다.

“함양에서 있었던 일은 들었다.”


“예.”


“그 전에 있었던 일도.”


“······.”


“변호사도 선임하지 않고 징계를 받아들이다니, 뭐 하자는 짓이냐? 다 포기한 거냐?”


부드러웠지만, 아들을 걱정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목소리는 결코 아니었다.

아인은 이 사실을 알고 있었고, 또한 저 남자가 안부나 묻기 위해 자신을 여기까지 끌고 올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마땅한 처분을 받아들였을 뿐입니다.”


“내가 손 쓰지 않았다면 넌 그대로 그 시골구석에서 옷을 벗게 됐을 거다.”


“감사드려야 합니까?”


“네 선택에 달렸지.”


‘종로경찰서장 박인배’라는 명패 위로 서류철 하나를 건네는 ‘아버지’.

요즘 세상에 시각 데이터가 아닌 실물 서류로 무언가를 준비해놓았다는 것은, 저 안의 내용물이 전산상으로 존재하지도, 존재해서도 안 된다는 뜻임을 아인은 잘 알고 있었다.


“뭡니까?”


“‘쌍문 사건’은 들어봤겠지?”


“예.”


쌍문 사건-.

일주일 전부터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야기를 모를 리 없다.

표면적으로는 두 마피아조직 간의 충돌사건으로, 서울 쌍문동 어느 골목에 주차되어있던 ‘랙돌 마피아’의 트럭이 ‘레키프 마피아’ 일당에게 탈취당하는 과정에서 랙돌의 운전자와 선탑자를 포함, 양측 10여 명의 마피아 단원들이 사망한 사건이었다.

단순하게 보면 두 마피아 조직 간의 흔한 힘 싸움으로 끝났을 이 사건이 크게 주목받은 이유는 따로 있었다.

바로 트럭에 실려 있던 신종 마약, ‘NC’가 증발해버렸다는 점이었다.

트럭에 실려 있던 NC의 가치는 경찰 추정 약 600억 원. 물리적으로 이십만여 명이 동시 투약할 수 있는, 실로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문제는, 수사국이 이 엄청난 규모의 마약이 도대체 누구에 의해, 어디로 사라졌는지 갈피조차 잡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그 일은 조사 시작부터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어째서 랙돌은 그 정도의 마약을 달랑 두 명의 호위만으로 골목에 방치해놓았던 건가, 그리고 레키프는 어떻게 그 정보를 입수하여 그 트럭을 습격했던 건가, 마지막으로 무장이라곤 권총밖에 없었던 랙돌의 두 조직원을 처리하기 위해 레키프는 10여 명이나 희생시켜야 했나.”


“정작 마약을 가져가지도 못했죠.”


‘레키프 마피아’가 마약을 탈취하지 못했다고 추측되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사건 직후 신종 마약 NC의 시장가격이 대폭락했다는 점이었다.

만약 레키프가 탈취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장물을 곧장 한꺼번에 시장에 풀어버린다는 건 실로 멍청한 짓이다.

금전적 이득을 최소화하는 최악의 수단이기도 하거니와, 라이벌 조직의 시장 영향력을 줄이는 데에도 전혀 효과가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처음엔 당연히 레키프에게 물건이 있을 줄 알고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에 몇 차례 급습까지 진행해봤지만, 레키프에선 사라진 NC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어. 놈들은 변호사까지 동원해서 억울함을 토로했지. 하지만 분명 노상 가격은 폭락했고, 이는 누군가가 엄청난 물량을 한꺼번에 풀었다는 이야기다.”


“언론에서 초기 증거확보에 실패한 게 원인이라고 보도했었죠.”


검색된 기사의 제목을 주관적인 필터를 거치지 않고 그대로 읊은 아인이었지만, 인배의 얼굴에 별다른 불편함은 떠오르지 않았다.


“증거확보에 실패한 것은 맞아. 사건 현장, 주변의 CCTV는 물론이고 모든 차량의 블랙박스까지 해킹당했으니까. 문제는 중앙 클라우드 서버에 기록된 CCTV마저 담당 AI가 사건을 빠르게 감지할 수 없도록 영상과 시간대가 조작되어 있었다는 거다.”


“조작?”

아인의 눈썹이 살짝 일그러졌다.


“레키프가 자신들의 급습을 감추기 위함이었다면 자기들 모습이 찍힌 CCTV정도만 처리했으면 됐을 일이다. 사건담당AI가 우리에게 경고, 특공대가 출동한다고 해도 도착하기 전에 약을 챙겨서 내빼면 그만이니까. 그런데 중앙 클라우드 서버까지 해킹했다는 건-”


“모든 게 처음부터 랙돌이나 레키프가 아닌, 제3자가 의도했다는 뜻이군요.”


아들의 대답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 나간다.


“누군가 레키프가 랙돌의 트럭을 습격하는 걸 미리 알고 있었고, ‘굳이’ 그런 레키프의 뒤통수를 쳐서 조직원들을 몰살하고 랙돌의 약까지 털어갔다-.

그 와중에 ‘굳이’ 중앙 클라우드 서버를 해킹해서 경찰의 개입까지 사전에 차단했다는 말은, ‘제3자’의 목적에 약의 탈취뿐만이 아니라 랙돌, 레키프 조직원들의 몰살까지도 포함되어있었다는 뜻이겠지.”


“두 조직끼리의 소모전을 원하는 다른 마피아조직일 가능성은 없습니까?”


“모르지. 하지만 아까 말했듯이, 정말로 제3의 마약조직이 범인이라면 훔쳐낸 약을 곧바로 푸는 짓은 하지 않았을 거다. 제 살을 깎아먹는 짓거리니까.”


“······.”

흥미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마약수사팀이라고는 하나, 함양에 내려간 뒤 줄곧 그가 맡았던 업무라고는 마약쟁이들의 인도와 말단딜러들의 체포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그랬기에 오랜만에 찾아온 대규모 소탕 작전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고, 흥분했기에 ‘그런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눈앞의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욕심을, 그리고 그 욕심이 시골 경찰서에서의 좌천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아인은 미끼를 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저에게 왜 이 이야기를 하시는 겁니까?”


“네가 맡아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서.”


“‘쌍문 사건’말입니까? 이미 전담수사팀도 있을 텐데 제가 뭘-”


“공식적으로 네가 뭘 하라는 게 아니야.”

아들의 말끝을 낚아채는 인배의 목소리는 날카로웠고, 동시에 그의 손끝은 아인이 들고 있는 서류철을 향해 있었다.

“용의자가 중앙 CCTV서버의 방화벽을 뚫고 데이터를 변조하여 경찰 출동을 방해했다는 사실을 공표하지 않은 건, 그게 생각보다 매우 치명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 방화벽이 털렸다는 건, 교통국의 중앙방화벽이 털렸다는 뜻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요.”


대답과 동시에 마침내 서류철을 펴보는 아인이었지만, 그가 그 첫 문단의 내용을 읽기도 전에 다시금 인배의 목소리가 그의 이성을 끌었다.


“한낱 마피아 따위에게 공용 방화벽이 뚫릴 일은 없다. 즉, 해당 보안 코드가 내부에서 유출되었을 가능성도 있다는 뜻이지.”


경찰서장의 입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충격적인 내용을 마치 인사말처럼 가볍게 뱉어버린 아버지 덕분에, 아인은 눈썹 위로 경악을 넘겨야 했다.


“그 말씀은······, 지금 전담수사팀을 신뢰하지 못하시겠다는?”


“이곳에서 나에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따위는 없다. 내가 널 꺼내 온 이유? 간단해. 어쩌면 네가, 유일하게 신뢰할 수 있는 ‘연결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야.”

직무에서는 철저한 원칙주의자인 아버지가, 굳이 낙하산 인사라는 논란을 무릅쓰면서까지 혈육인 자신을 이곳에 부른 이유.

아인은 마침내 머리와 가슴에 드리웠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었다.

“내가 예전부터 사적으로 운용해오던 ‘팀’이 있다. 네가 그 팀의 일원이자, 팀과 나 사이의 중재자, 동시에 팀의 ‘감독관’을 해줬으면 한다.”


“사적으로 운용하는 팀······? 지금 여기 종로경찰서에 비인가, 비공식 수사팀이 있다는 말씀이십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한-”

아인의 의문이 이어지기 전에, 인배가 다시금 아인의 서류철로 손끝을 향한다. 그제야 비로소 아인은 그 종이들을 망막 정보에 담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아니,

그 ‘이름들’은,

아인에게 거대한 혼란을 던져준다.

“······이건, 수감자 목록입니까?”


“아니.”

아버지, 인배의 표정과 목소리는 단호했다.

경악스럽게도,

아인은 눈앞의 서장이 이어 내뱉은 대답에서

그 어떠한 농담기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네가 담당할 팀원들 목록이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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