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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03 21:07
최근연재일 :
2024.03.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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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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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1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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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꿈은 존재하지 않는다 (1)

DUMMY

토요일 오후, 민재는 김 매니저와 홍대로 향했다.

마음 같아선 매니저도 보내고 싶었지만 장롱 면허였다.


신호등 앞에서 잠깐 밴이 멈췄을 때.


“참, 메신저 보니까 내일 생일이던데. 미리 축하할게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상품권 몇 장 준비했어요.”


조수석의 민재가 품에서 작은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이런 거 안 주셔도 되는데.”


매니저는 몇 번 사양하다가 두손으로 받았다.


“헉. 이렇게 많이?”


봉투를 슬쩍 열어 봤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넣어 둬요. 요즘 물가도 많이 올랐잖아요. 쉬는 날에 여자친구하고 쇼핑이라도 하고 와요. 근사한 데서 저녁도 먹고.”


스타가 됐어도 플렉스와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차나 명품에 관심이 없었고, 공식 행사장에 갈 때는 협찬이 쏟아졌다.


부모님도 마찬가지셨다.

효도 좀 하겠다고 목돈을 드렸더니 하시는 말.


“신성리 강만수, 아직 안 죽었다. 네가 노력해서 번 돈을 우리가 어떻게 써?”

“맞아. 우리도 어디 가서 아쉬운 말 할 형편은 아니야. 연예인은 돈 쓸 데도 많다던데. 너 필요할 때 써.”


이번에도 효도는 그의 명의로 된 계좌로 흘러 들어갔다.


결국 부모님께 해드린 건 동남아 여행.

마음 같아선 리조트를 통째로 빌려 드리고 싶었지만 그것도 저렴한 패키지를 이용하셨다.

그 외에도 옷과 건강식품을 보냈지만, 그건 야구선수였을 때도 자주 하던 일이었다.


“강 배우님은 다른 스타하고 좀 다른 거 같아요.”

“뭐가요?”

“다른 매니저들 말을 들어보면 까다로운 스타일도 많대요. 박한결만 해도 스타병이 장난 아니라고 하던데요? 그런데 강 배우님은 팬 서비스도 좋고, 저나 다른 스태프들한테도 언제나 친절하시잖아요. 계약한 다음에 제일 먼저 한 일이 보육원 요리 봉사이고. 비결이 뭡니까?”


김 매니저는 감탄 서린 눈으로 그를 힐끔거렸다.


“분야는 달라도 저는 무명 야구 선수로 오래 있었잖아요. 눈물 젖은 빵도 많이 먹어 보고. 그때 느끼고 배운 게 많아요.”


민재는 창밖을 돌아봤다.


연예인 밴은 어디서든 시선을 끌었다.

짙게 선팅돼 내부가 안 보일 텐데도 행인들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솔직히 제가 스타병 걸린 선수를 한둘 봤겠어요? 그때 스타병 걸린 선수들을 보고 다짐했죠. 아, 난 나중에 성공하면 저렇게 안 돼야지. 팬과 주변 사람을 제일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 되자.”

“······.”

“그리고 요즘은 SNS도 흔하잖아요. 예전에는 팬 서비스가 엉망인 선수가 있었지만, 요즘은 어지간하면 팬에게 싫은 내색을 안 해요. 특히 제가 있던 대전 이글스는 구단 차원에서 팬 서비스를 강조했고요. 오죽했으면 대전 이글스 별명 중 하나가 야구 빼고 다 잘하는 팀이겠어요?”


민재는 씁쓸하게 웃으며 덧붙였다.


2군을 전전하던 시절.

사인을 해주고 싶어도 아무도 그에게 사인을 요청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인기 선수의 사인을 대신 받아줄 수 있느냐는 부탁까지 들었다.


‘그때 생각하면 행복한 거지. 팬이 있으니까 스타도 있는 거고.’


이윽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홍대 근처의 허름한 빌딩 주차장이었다.


“홈런왕 박병호 선수가 감독님에게 이런 말을 했죠. 주전 자리를 빼앗길까 두렵다. 초심을 잃었다 보이거든 언제든 말씀해 달라.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들을까 두려워요. 만약 제가 초심을 잃었다 보이거든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민재는 매니저를 향해 빙그레 웃어 보였다.


“강 배우님.”


김 매니저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억지로 눈물을 참는 듯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여기서부턴 나 혼자 다녀올게요. 시간이 걸릴 테니까 근처 카페에서 쉬고 계세요.”


민재가 손을 흔들고 차에서 내린 뒤.


“존경합니다, 강 배우님!”


김 매니저는 허리를 구십도로 숙이고 외쳤다.


“내가 무슨 조폭도 아니고. 쪽팔리니까 하지 마세요.”


민재가 짐짓 화난 척 말해도 소용 없었다.


***


“실례합니다.”


민재는 방음 처리된 두꺼운 문을 열고 안에 들어갔다.


‘요즘도 이런 데가 있네.’


신기한 눈으로 내부를 훑어봤다.


지하 창고를 개조한 밴드 연습실이었다.

벽과 창문이 싸구려 방음재로 둘러싸인 가운데 악기와 마이크, 간단한 음향 장비가 놓여 있었다.


마침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녀가 기타와 건반을 조율하고 있었다.


“누구십니까?”


남자가 하던 일을 멈추고 물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제 전화드린 강민재입니다.”

“장난 전화인 줄 알았는데, 정말 강 배우님이시네.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어요. 나대세요!”


발랄하게 생긴 여자가 끼어들어 호들갑을 떨었다.


“감사합니다.”


우선 여성 팬에게 사인.

핸드폰으로 다정하게 기념사진도 찍었다.


연습실 구석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다.

간단한 인사. 여자는 건반을 맡고 있는 신지윤, 남자는 베이스를 맡은 박철민이라고 했다.


“5인조 밴드라고 들었는데. 다른 분들은 안 보이시네요.”

“다 일하고 있죠. 낮에는 일하고 밤에만 잠깐 모여 연습하거나 공연하는 게 현실이에요. 솔직히 음악만으로 먹고사는 건 불가능하거든요.”


신지윤이 인스턴트 커피를 가져오며 대답했다.


그녀도 일을 마치고 온 모양이었다.

모 커피 프랜차이즈의 검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영화배우가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박철민이 경계의 표정으로 물었다.


“곧 밴드와 관련한 영화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거기에서 리드 보컬 겸 기타리스트 역할을 맡았는데, 촬영에 앞서 속성으로 배우고 싶어서요. 부분 대역을 쓰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배우가 직접 하는 편이 더 실감 나죠.”

“민재 씨 정도면 다른 유명한 밴드가 줄을 설 텐데요. 왜 하필 우리 같은 무명입니까?”

“너튜브에서 여러분의 공연 영상을 봤습니다. 음악에 대한 진심이 느껴지더라고요.”

“이상하네요. 영상은 몇 년 전에 올렸고, 조회수도 형편없었는데. 정말 그것 때문입니까? 다른 이유는 없으십니까?”


녀석의 취조 같은 질문이 이어졌다.


“대스타한테 무슨 말버릇이야?”


신지윤이 옆구리를 찌르며 입술을 달싹거렸다.

녀석은 모른 척하고 민재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영화제작이 아직 정식으로 발표된 게 아닙니다. 기자나 다른 사람 몰래 배우고 싶습니다.”


민재는 여유로운 미소를 머금고 받아쳤다.


“우선 다른 멤버들과 얘기를······.”


다시 박철민이 말하는 도중이었다.


“인간아, 적당히 좀 해. 연습실 월세가 몇 달이나 밀렸는지 알아?”


듣다 못 한 신지윤이 녀석을 타박하고 나섰다.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저희야 강 배우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환영이죠. 다만 레슨비는 어떻게 하실 건지.”


신지윤은 눈을 반달형으로 뜨고 말끝을 흐렸다.


“당연히 드려야죠. 섭섭하지 않게 챙겨 드리겠습니다. 현금으로.”


민재는 현금을 강조하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현금. 캬, 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입니다. 쾌적하게 모시겠습니다, 강 배우님.”


역시 신지윤과 얘기가 잘 통했다.

그녀는 과장된 몸짓으로 손바닥을 비볐다.

박철민은 여전히 뭔가 불만인 눈치였지만, 레슨비라는 현실 앞에 꼬리를 내렸다.


“참, 저 뒤에 있는 건 뭡니까? 부엉이?”


민재는 모르는 척 드럼 뒤에 붙은 대형 휘장을 가리켰다.


“부엉이라뇨. 우리 밴드의 상징인 피닉스예요, 피닉스.”


신지윤이 섭섭하다는 듯 목소리를 높여 대답했다.


***


그날부터 바로 레슨에 들어갔다.

귀신에게 배울 수도 있었지만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부르지 않았다.


- ······조심해. 사람 욕심은 끝이 없다고 하잖아. 자꾸 몸을 빌려주면 귀신도 욕심이 생겨. 네 젊고 싱싱한 몸뚱이를 영원히 차지하고 싶다는 욕심이.


할머니의 경고를 절대 잊지 않았다.


‘단순히 코드만 익히는 게 아니었네. 뭐가 이렇게 어려워?’


기타도 종류가 다양했다.

처음은 기본적인 운지만 해도 손끝이 아팠다.

나흘이 지나고 굳은살이 조금씩 생기자 익숙해졌다.


“······레가토는 해머링 온, 풀링 오프, 트릴 등을 활용해 음을 연결하는 주법이에요. 다양한 주법을 연속해서 구사하는 건데 우선······.”


박철민이 옆에 붙어 손가락을 하나씩 짚어 줬다.


‘한대수의 밴드 버전인가?’


민재는 내심 웃음이 터져 나왔다.


처음엔 다시 안 볼 사람처럼 쌀쌀맞더니.

막상 레슨이 시작되자 박철민이 제일 열심히 가르쳤다.

신지윤이 보컬 레슨을 맡았고, 밴드의 다른 멤버들도 시간이 날 때마다 들러 합주를 도와줬다.


“빈말이 아니라 정말 재능이 있으시네요. 이번 기회에 진지하게 음악 활동을 해볼 생각 없으세요?”


옆에서 구경하던 신지윤이 엄지를 치켜세우고 감탄했다.


‘당연하지. 명색이 프로야구선수였는데.’


매년 드래프트 지원하는 선수 중에서 프로에 가는 건 10% 남짓.

드래프트를 신청하기 전에도 초, 중, 고교에서 엄청난 경쟁을 거쳐야 했다. 운동신경과 센스가 일반인과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화 제목이 뭐예요?”


연습을 마칠 무렵, 신윤하가 슬그머니 물었다.

원래 비밀이라고 할수록 호기심이 커지는 법이었다.


“비밀입니다. 내일 제작발표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민재는 웃음으로 얼버무리고 연습실을 나왔다.


지하 주차장.

밴이 깜빡이를 켠 채 대기 중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김 매니저가 눈치 빠르게 달려와 뒷문을 열어 줬다.


“이렇게 안 해도 된다니까요. 나도 손이 있어요.”


민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조수석에 올랐다.

매니저는 넓은 뒷자리에 앉으라고 성화였지만, 그는 매니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가는 게 편했다.


“하나 궁금한 게 있는데요.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김 매니저가 주차장 밖으로 차를 몰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뭔데요?”

“왜 하필 여길 선택하셨습니까? 실력파 밴드라면 얼마든지 있는데요.”

“잊어버렸어요? 김 감독님 영화에 나오는 밴드의 이름이 뭐였는지.”


민재는 빙그레 웃으며 되물었다.


“밴드요?”


매니저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멈칫했다.

아, 뒤늦게 생각났다. 피닉스라는 촌스러운 이름이.


“김준현이란 캐릭터도 연구하고 싶었어요. 모티브가 되는 인물의 지인을 만나 보는 것도 캐릭터 연구에 도움이 되거든요.”

“과연. 강 배우님은 자나 깨나 연기만 생각하시는군요. 존경합니다.”

“존경은 무슨. 나이 차도 별로 안 나는데.”


민재는 피식 웃으며 사이드미러를 바라봤다.


‘이번엔 연기만 필요한 게 아니야. 영화를 완성하려면 저들의 도움이 절대적이야.’


인디 밴드 피닉스.

간판도 없는 연습실이 점점 멀어졌다.


***


- 촬영장에서 귀신을 보면 대박이 난다.


드라마와 영화판에서 흔한 미신 중 하나였다.


‘이 미신이 진짜라면 이번 영화는 분명 대박이다. 귀신을 본 정도가 아니라 귀신이 아예 같이 있으니까.’


다음날, 제작발표회를 갖고 고사를 지냈다.


명장 김준승 감독의 신작.

탄탄한 연기력을 보증하는 배우들.

그리고 ‘강민재 월드’라는 밈까지 만든 괴물 신인까지. 


모든 언론사가 민재와 영화 소식을 톱뉴스로 다뤘고, 관련 키워드가 실시간 검색어를 점령했다.


“벌써 대박 조짐이 보입니다. 언론사 대응하느라 홍보팀도 난리예요.”


최 대표도 전화해 흥분을 감추지 못 했다.


하지만 언론 플레이는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그날 저녁, 너튜브의 소속사 채널에 짧은 동영상 한 편이 기습적으로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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