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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4.02.03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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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08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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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8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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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귀 (2)

DUMMY

“아저씨라는 한국형 액션 명작 아시죠? 그걸 생각하시면 됩니다. 민대준 감독의 전작도 스타일리시하면서도 깔끔한 액션, 현란한 카메라 워크, 군더더기 없는 빠른 전개가 일품이었죠. 템포와 완급 조절도 좋았고요.”


최 대표가 작품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전작과 달리 원톱 주연이었다.

씬의 80%는 그가 직, 간접적으로 등장했다.

상대가 되는 악역은 태국에서 유명한 액션 스타가 내정됐다는데, 현재 세부 조건을 조율 중이었다.


“강 배우님은 프로야구선수 출신이시죠. 피지컬도 훌륭하시고. 어떻게 보면 배우님의 이미지에 딱 맞는 역할입니다. 액션 스쿨에서 몇 주만 연습해도 멋진 그림이 나올 겁니다.”


최 대표는 피지컬을 강조하며 웃었다.


‘나도 액션이야 자신 있지. 문제는 내면 연기인데.’


범죄 조직에게 가족을 잃은 형사.

범인을 향한 복수심과 경찰의 사명감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의 폭주를 막기 위해 수사망을 좁히고 다가오는 동료 경찰들도 문제다.


게다가 과묵한 캐릭터였다.

행동과 표정만으로 내면을 표현해야 하는데, 언뜻 생각해도 쉽지 않았다.


“대표님 생각은 어떠십니까?”

“글쎄요. 솔직히 전 반반입니다. 연기 변신은 좋습니다만, 전작들을 통해 쌓아 올린 강 배우님 이미지와는 조금 안 어울리거든요. 게다가 강 배우님은 캐릭터에 몰입하는 스타일이시잖아요. 메소드 연기가 지나친 나머지 우울증이나 약물로 고생하는 배우도 여럿 봤습니다. 정신과 치료를 받는 배우도 많고요.”

“······.”

“대신 리스크가 큰 만큼 대가도 확실합니다. 요즘은 옛날하고 달라서 악역이나 거친 역할도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거든요. 이번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시면, 분명 역대급 배우라는 칭찬이 나올 겁니다. 연기만 되는 배우와 연기에 액션까지 되는 배우는 평가가 전혀 다른 법이니까요.”


흠, 민재는 팔짱을 끼고 곰곰이 생각했다.

최 대표의 말을 들으니 더 판단이 어려웠다.


“선이 굵은 역할입니다. 잘 만든 액션물은 스토리가 빈약해도 중박 이상은 보장되죠. 물론 액션과 스토리가 모두 엉망이라 시원하게 망한 영화도 많습니다만, 민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준 역량을 고려하면 그럴 가능성은 낮습니다. 벌써 남자 배우 몇 명이 그 역을 탐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최 대표가 은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감독님을 한번 만나 뵐 수 있을까요? 시간을 갖고 천천히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민재가 고민 끝에 물었다.

감독이 원하는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알겠습니다. 민 감독과 연락해 최대한 빠른 시일 내에 미팅을 잡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는요, 뭐. 그게 제 일인데요. 그리고 미팅에 너무 부담 가지실 필요는 없습니다. 미팅했다고 다 출연을 결정하는 것도 아니니까요. 구두로 출연 계약까지 했다가 틀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합니다.”


최 대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폭력성이 짙은 액션물이라. 하긴, 연기 스펙트럼을 넓히기 위해서는 언젠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지.’


민재는 스크린에 뜬 영화 시나리오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


오피스텔에 돌아온 뒤, 창식이와 액션물 연구에 돌입했다.


“액션물이라. 경력에 비해 어려운 장르에 도전하네. 멋 모르는 초짜 연기자들은 흔히 몸만 잘 쓰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큰 오산이야. 그렇게 몸만 믿고 덤볐다가 나락으로 간 배우가 한둘이 아니지. 몸을 잘 쓰는 건 기본. 짧은 대사와 표정으로 인물의 내면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연기력도 중요해. 다른 장르보다 부상 위험이 큰 것도 감수해야 하고.”


액션 영화의 기본은 연기의 선이었다.

평범한 주먹질이나 보겠다고 영화관에 오는 관객은 없는 터. 같은 펀치라도 거칠고 생생한 타격감을 전달하는 게 포인트였다.


“민 감독은 허술한 액션을 CG로 떡칠해서 메꾸는 스타일이 아니야. 액션물의 장인이랄까? 특히 근거리 격투씬에 일가견이 있지. 배우 간의 정교한 합이 상상 이상이야.”


창식이의 말대로였다.

너튜브에서 민 감독의 작품 중에서 격투씬만 모아놓은 게 있었다.

액션의 역동성, 스피드, 타격감은 물론이고 시각과 음향 효과도 대단했다. 몇 분만 봐도 온몸에서 아드레날린이 넘치는 기분이었다.


“내 이름을 왜 묻지? 어차피 우리가 친구가 될 사이도 아닌데, 굳이 통성명이 필요할까?”


거울을 보며 민 감독의 작품 속 대사를 따라 해 봤다.


“아니야, 너무 가벼워. 시니컬하면서도 내면의 살기를 억누르는 느낌이어야 해.”


톤을 바꿔서 몇 번이고 반복.

창식이가 현실에서도 메소드 연기를 한다고 웃었는데, 언제부턴가 그도 현실에서도 연기를 연습하고 있었다.


사흘 뒤, 소속사 사무실에서 민 감독을 만났다.

최 대표와 임 이사, 민 감독과 캐스팅 디렉터가 참석했다.


그새 자신이 위상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처음 뵙겠습니다. 민대준입니다.”


감독이 먼저 인사하고 악수를 청했다.

피와 폭력이 난무하는 시나리오라 무섭게 생긴 사람인 줄 알았는데. 첫인상은 옆집 아저씨처럼 평범했다.


“안녕하십니까, 강민재입니다. 제가 감독님 사무실로 갔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물론 민재도 초심을 잃지 않고 깍듯이 존댓말을 썼다.


“참, 인사가 늦었지만 축하드립니다. ‘봄날을 노래하다’가 곧 300만이라면서요? 데뷔작부터 홈런이라니. 대단합니다.”

“김 감독님과 선배 배우님들 덕분이죠. 저도 감독님 전작들 잘 봤습니다. 액션도 액션이지만, 함축적이면서도 강렬한 대사가 인상적이더군요.”


······굳이 통성명이 필요할까?

그는 민 감독의 작품 속 대사를 재현했다.


단순히 흉내 낸 정도가 아니었다.

내면의 분노를 억누르는 느낌으로 바꿔 표현했다.


“그것까지 보셨습니까? 말 사이에 짧은 쉼표를 넣으니까 색다른데요.”


민 감독은 바로 민재의 의도를 알아채고 반색했다.

같은 대사라도 어떻게 연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는 법이었다.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칭찬이 오간 뒤.


“강 배우님의 장점은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하고 재현하는 일체감입니다. 제가 강 배우님께 제일 먼저 시나리오를 보낸 것도 그 때문이고요. 한대수 연기를 봤을 때부터 감이 왔습니다. 반항기와 선함이 공존하는 마스크. 분노와 사명감 사이에서 갈등하는 형사에 딱 맞는 이미지였죠.”


민 감독은 정색하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형사 캐릭터는 트리트먼트의 묘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본래 유머러스한 사람이었지만, 가족의 죽음 이후 무서울 정도로 과묵해진다고 했다.


“저도 연기를 준비할 때 캐릭터 분석에 공을 많이 들입니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로 했으면 가급적 그 주변 인물들까지 만나 보고요. 그런 의미에서 드리는 말씀인데, 이번 시나리오와 캐릭터를 구상하실 때 참고하신 게 있으십니까?”


민재가 감독의 눈치를 살피며 넌지시 물었다.


한대수를 연기하면서 보육원을.

김준현을 연기하면서 피닉스 밴드를.

그가 다양한 주변인을 만나는 건 영화 관계자 사이에서 유명했다.


“물론이죠. 이건 제가 대학생 때 접한 신문 기사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고등학생 때부터 신문이나 책을 읽으며 이런저런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게 취미였거든요.”


감독은 백팩에서 낡고 두꺼운 파일철을 꺼냈다.


***


미팅은 한 시간쯤 걸렸다.

시나리오 외에도 영화 관련 대화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검토해 보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저도 오늘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이번 작품이 아니더라도 다음엔 꼭 강 배우님과 함께하고 싶습니다.”


민 감독과는 악수하며 웃는 낯으로 헤어졌다.

그가 준비한 자료는 회사 직원에게 부탁해 복사본을 받았다.


두 시간쯤 무대 인사 일정을 소화한 뒤.

민재는 오피스텔에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앉아 관련 자료를 정독했다.


형사의 복수극.

가십을 주로 다루는 ‘일요일 서울’의 자투리 기사였는데, 오른쪽 상단에 ‘2000년 3월 26일’이라고 작게 쓰여 있었다.


“지난달 2일 자정, 경기도 광주시에 거주하는 김모(36세) 씨는······.”


커피를 홀짝이며 기사를 소리 내어 읽었다.


형사의 집에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형사의 부인은 난자돼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상태.

다행히 3살 된 딸은 안방 장롱 안에 숨은 채로 무사히 발견됐다.

처음엔 단순 강도 살인인 줄 알았는데, 현장에서 발견된 용의자의 혈액에서 마약 성분이 검출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용의자의 신원은 곧 파악됐다.

차로 10분 거리에 사는 25살 무직 남성.

마약 관련 사건으로 전과가 화려한 놈이었다.


범행 동기는 없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시체 옆에 서 있었다고 했다.


“······용의자는 K 그룹 회장의 숨겨진 아들이라는······.”


심신 미약으로 인한 우발적 범행.

장문의 반성문과 전관으로 구성된 스타 변호인단.


이런 공식으로 적당히 빠져나오는 건 당시에도 유효했다. 그룹에서 힘을 쓴 덕분에 주요 언론에도 안 안 나왔다.


- 형사는 범인을 잡는 사람이지 범인을 처벌하는 사람이 아니다.


가족을 잃은 형사는 이걸 받아들일 수 없었다.


형사는 본인과 관련된 사건에서 배제되는 게 원칙인 터.

그는 내부 정보망을 통해 불법으로 범인의 신상을 알아냈다.

그리고 놈이 집행유예로 풀려난 날, 룸살롱에서 파티 중이던 놈을 찾아갔다.


부인을 죽인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놈을 죽이고 자수.

스타 변호인단을 구할 수 없고 심신미약도 인정되지 않은 탓에 징역 30년을 받았다.


이걸 시나리오에서는 보다 극적으로 했다.

재벌가 사생아는 범죄 조직의 보스로, 형사의 복수를 조직의 후계자가 체포되기 전으로 바꾼 것이다. 여기에 형사를 막기 위한 동료들의 갈등과 추격을 추가했다.


마지막 씬은 형사와 조직 보스의 대치.

형사는 조직원들을 쓰러뜨리느라 만신창이가 됐어도 눈빛이 살아있다.


“사, 살려줘. 자수할게. 넌 명색이 형사잖아.”

“사직서 던진 지 며칠 됐다.”


형사는 악귀처럼 웃으며 보스에게 총을 겨눈다.

잠시 후, 긴 총성 두 방이 들리고 화면이 흑백으로 어두워진다.


형사는 최후의 순간까지 복수심과 사명감 사이에서 갈등했다.

보스를 죽였을까? 보스를 죽이고 자살했을까? 혹은 허공에 쏘고 복수를 포기했을까? - 사이렌이 길게 울리는 가운데, 엔딩은 열린 결말로 처리했다.


“정말 비슷한 사건이 있었구나. 그래도 미친 살인마가 모티브는 아니라서 다행이네.”


민재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파일을 덮었다.

사정은 십분 이해했지만, 형사도 어쨌든 사람을 무참히 죽인 살인자였다.


“미안하지만 거절하자. 내가 무슨 정의의 사도도 아니고. 연기에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더 좋은 액션물을 하면 되잖아?”


민재는 남은 커피를 단 모금에 비우고 일어났다.


아니, 일어나려고 했다.

철그렁, 어디선가 쇠사슬 끌리는 소리가 울렸다.


‘악귀?’


뒷골이 뻣뻣해지는 한기.

이젠 익숙해진 귀신의 느낌이었지만, 이전의 귀신들과 조금 달랐다.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무거운 고통이 서려 있었다.


- 제발······.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


쇳소리처럼 갈라진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사건이 안 끝났다고?’


민재는 멈칫하고 주위를 둘러봤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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