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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니 님의 서재입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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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니
작품등록일 :
2022.09.16 22:57
최근연재일 :
2023.04.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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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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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D의 사이에 서

DUMMY

“그럼 그건 됐지만···.”

리트라이도 아무도 없을 주변을 두리번거린다. 이 자매 특징인가 보다. 위치가 위치라 그런지 보는 눈을 평소에도 많이 의식··· 한다기엔 리세마라는 좀 문제가 있지 않나?

“리터너.”

“어?”

내게 다시 다가오더니 고개를 꾸벅 숙인다.

“우리 자매 일에 리터너를 끌어들인 것 같아서 미안해! 의심한 것도 사과할게.”

이렇게 깍듯하게 나오는 건 좀 의외다. 리트라이는 정말로 신분 의식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무래도 저런 애가 평민들한텐 더 인기를 끌겠지.

“아냐. 무슨 그런 걸 갖고. 나도 잘못했는데 뭐.”

그러고 보니 팬티를 훔쳐본··· 아니 어쩌다 보여서 우연히 본 거에 대해선 아무 지적도 없나?

“아얏!”

“고개를 더 숙이거라. 무엇을 잘했다고 꼿꼿이 세우고 있는 것인가.”

고개를 들려는 리트라이의 목덜미를 후려쳐 제지한다. 리세마라답게 가차없다. 그런다고 또 순순히 고개를 더 숙이는 리트라이도 대단하다.


“아니··· 정말로 내가 그렇게 사과받을 처지는 아닌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다. 추측을 내세워 실컷 무례하게 굴었으며 리터너를 꾀어내려는 짓까지 일삼았으니 말이다.”

원인 제공은 대부분 너랑 나 아니냐.

“정말로 미안해. 그래도 별일 없었다니 다행이야.”

별일··· 은 아니었지? 그래. 아니었어.

“이런 언니지만, 앞으로도 리세마라 잘 부탁해.”

따지고 보면 내가 리세마라한테 거두어진 상태인데 왜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 하는 건지.

“그런 수식어가 붙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도 그런 부탁이면, 저런 동생의 부탁이면, 이런 웃음을 짓는다면 거절하기 어렵다.

“나야말로 잘 부탁해.”

어째 이 말 매번 하는 것 같다.

“그럼 이제 나가자! 배고프지? 아직 시간 조금 있어.”

쾌활하게 먼저 나간다. 솔직히 식욕은 이미 싹 달아났는데.


“그럼 우리도 갈까.”

문 앞으로 향하자 리세마라가 조용히 나를 부른다.

“리터너.”

“응?”

“종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가? 나의··· 속옷을···.”

······.

아니 당장 들어가기 전에 네가 한 짓을 생각해 봐라. 딱히 생각할 필요도 없지 않냐? 바로 눈앞에 속옷 차림으로 있었던 주제에.

“···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종일 그거만 생각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후후···.”

천사와도 같은 미소를 짓는다. 진심인지 아닌지 모르겠다.

“가도록 하자.”

그런 흐름이다.


“그런데 그건 뭐야?”

자연스럽게 같이 돌아가는 흐름이 된 리트라이가 묻는다.

“이것은 컵이라는 것이다.”

놀리는 걸까, 진심일까.

“누가 그걸 몰라서 물어? 왜 가져오냐구! 심지어 쓰던 거 아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그럴 만한 가치가 뭔데?”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 설명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넌 진짜 동생보다 힘 약했으면 어쩔 뻔했냐?

“··· 허락은?”

“필요 없는 것이다.”

“그걸 왜 리세마라가 정해!”

“그렇게 주장하고 싶다면, 그것이 왜 필요한지 어디 설명하여 보았으면 한다.”

“······ 그냥 나중에 내가 얘기해둘게.”


자포자기한 것 같다. 다른 때 같았으면 어떻게 붙어보려 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많이 피곤할 거다.

“리트라이답지 않은 빠른 이해와 순응이구나. 현명한 처사라 생각한다.”

제발 입 좀 닥치고 있으라 할 수도 없고··· 얘를 어쩜 좋냐.

“리세마라··· 너무 그러지 마.”

“무언가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드물게도 리트라이와 평화로운 결말을 맺은 듯하였는데 말이다.”

그래 뭐 티격태격할 때보단 평화로워 보이지. 겉으로만.

“됐어, 리터너. 리세마라 말이 맞아. 다아 맞아!”

삐졌구만.

“웬일로 그런 말을 하는 것인가? 무슨 속셈이라도 있는 것인가?”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효과가 없고.

“몰라!”


한동안 묵묵부답인 채로 걸었다. 리트라이는 앞장서 걸어 표정이 안 보이고 리세마라는 딱히 신경도 안 쓰는 듯하다. 나만 사이에 껴서 아주 죽겠다. 이 자매가 아주 진지하게 틀어질 것 같진 않지만, 리세마라가 너무 시한폭탄 같은 존재라 확신은 못 하겠다.

“저···.”

나가기 직전에서야 리트라이가 몸을 돌린다. 리세마라의 옷깃을 식당 쪽으로 잡아끌며 말한다.

“··· 먹고 가.”

“무엇을 말인가?”

그 말엔 대꾸 없이 내 옷깃도 잡아끌며 말한다.

“리터너도 아무것도 못 먹었잖아? 배고프지?”

“식사라면 이미 마친 것이다.”

“에?”

천연덕스러운 대답을 하는 리세마라.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리트라이. 그리고 옆에서 답답해 죽겠는 마음의 나. 참 병신 같은 삼각관계다.

“먹을게!”

“어, 언제?”

내 필사적인 끼어들기는 이렇게 쉽게 무용지물이 되는구나.


“식당을 나섰을 때부터 욕탕에 들어가기까지 사이의 어느 때인 것이다.”

존나 당연한 말을 하고 있다. 존나 당연해서 빡친다. 혼자만 두고 나가서 밥까지 먹고 왔다고 하면, 리트라이가 얼마나 소외감을 느낄지 모르는 걸까? 모르겠지. 몰라서 이러는 거니까 차라리 다행이지. 그렇다고 내가 여기서 변호한답시고 그건 식사라 할 만한 게 아니라··· 따위 말을 했다간 리세마라가 난리를 칠 게 뻔하다. 첫 식사라는 거에 그렇게 의미를 뒀으니까.

“근데 난 아직 배고파. 먹을게. 리세마라도 먹을 거지?”

“그렇게 허기졌던 것인가? 그렇다면 리터너와 함께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리터너가 있는 곳이 곧 내가 있을 곳이며, 리터너가 향하는 곳이 곧 내가 향할 곳이니 말이다.”

“리트라이도 같이 갈 거지?”

“··· 나 방해잖아.”

제발. 리세마라. 그렇다고 말하지 마. 부탁이다.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어? 통했나?

“이제 와서 말이다.”

······ 뭐 대놓고 그렇다 하는 것보단 낫긴 한데.

“그, 그래? 하긴 그렇지?”

어라? 의외로 싫진 않나 보네. 길들여졌나?


“그런데 무엇을 먹으라는 것인가? 이제 와서 조리를 한다면, 시간이 촉박할 것이다.”

“일단 들어와 보라니까.”

식당에 들어가서는 리세마라의 팔을 한사코 조리실까지 질질 끌고 간다. 리세마라가 정말로 싫었다면 힘으로라도 안 갔을 거다. 이럴 때 보면 또 동생을 아주 생각하지 않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평소에 좀 잘해주면 안 되나 싶다. 뭐 그리 어려운 일··· 이긴 하다.

“리터너도 얼른!”

내 손을 잡아 끌려고 하자마자 탁 소리와 함께 리세마라가 그 손을 쳐낸다.

“아얏! 말로 해! 왜 자꾸 때려!”

“몇 번을 말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내가 이 꼴을 벌써 몇 번을 보았다고 생각하는 것인가. 한결같은 것들이다.

그래도 저 억울하게 처맞는 심정은 이해가 가네.


조리실 안에 들어가자마자 리트라이는 안쪽으로 쏜살같이 달려온다. 곧 양손에 무언가 하나씩 들고 뿌듯한 얼굴로 돌아온다.

“헤헤··· 이거 먹어.”

자랑스럽게 팔을 뻗어 우리에게 하나씩 내민다.

“이게 뭐야?”

생긴 걸 보고 가장 비슷한 걸 꼽으라면··· 어이없게도 사각형 쟁반··· 아니 그렇다 하기엔 두께가 좀 있다. 컴퓨터 모니터 정도가 더 비슷하려나? 정사각형에 가까운 모양에 나름대로 두꺼운 두께, 칙칙한 검은색. ··· 진짜로 먹는 거 맞아?

“두금탁으로 만든 주푀레야.”

“주푀레?”

“주푀레라는 생각은 들었으나 색상은 무엇인가 하였더니··· 그랬던 것인가.”

그러고 보니 그 두금탁이란 것도 칙칙했었지.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지만. 중간에 태워먹었나?

“쉽게 말하면 안감으로 소스가 될 것을 넣어 묶고 겉은 겉감으로 둘러싸 포장한 음식인 것이다.”

소스를 어떻게 묶는다는 거지? 그리고 뭔 음식에 겉감이니 안감이니. 번역 문제 아냐?


“조리법이 간단한 것은 장점이지만, 그 외의 특색은 딱히 없는 것이다. 맛은 주로 안감이 좌우하기 때문에 겉감은 희소성 낮은 재료를 쓰는 것이 보통이건만··· 두금탁을 사용하였단 말인가.”

“아··· 두금탁은 귀한 재료라 했었지?”

그럼 낭비잖아. 캐비아로 알밥 만들어 먹는 그 경운가?

“어찌 이런 것이 리트라이의 손에 있는 것인가?”

“내가 만들었는데?”

당연하겠지.

“리트라이가 요리를 하였다는 말인가? 언제부터 그런 가치 없는 행위에 손을 대었단 말인가.”

이 세계로 온 게 요리사였다면 펄쩍 뛸 발언이다. 나도 자취해 봐서 아는데 물론 메뉴와 조리법에 따라 다르겠지만 절대로 만만하게 볼 일은 아니다.


“꽤 됐는데? 재밌잖아. 먹어봐. 맛있을 거야.”

“누가 이런 것을···.”

“난 먹을게.”

“응, 여기.”

“어어?”

“난 아까부터 먹겠다고 했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통수 맞은 표정으로 보지 마.

“그럼 남은 건 그냥 내가 먹을게.”

“이리 내놓거라.”

얘는 염치란 말을 알까?

“안 먹는다며!”

“지금 그 주푀레의 가치가 바뀐 것을 보고도 그런 어리석은 발언을 하는 것인가.”

“칫. 그냥 처음에 줄 때 먹지.”

그러면서도 주는 리트라이는 대체···.

“받아들일 용의는 본래 없었단 말이다.”

받으면서도 까는 리세마라는 대체···.


“리터너에게 감사하거라. 원래라면 이런 것 따위···.”

또 막말을 내뱉을 기세였던 리세마라가 웬일로 말끝을 흐린다.

“··· 하지만 두금탁을 겉감으로 삼은 것은 리트라이치고 퍽 훌륭한 처사가 아닌가. 이 정도는 되어야 주푀레 수준의 음식이라도 리터너에게 걸맞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리세마라가 칭찬을?

“리세마라가 칭찬을?”

너나 나나 생각하는 건 똑같구나.

“칭찬이라 할 것은 아닌 것이다.”

“치. 그냥 좀 해주면 어때서.”

“감사다.”

어?

“어?”

“리트라이··· 고맙다. 덕분에 잘 먹겠다.”

헐. 미친.

“어··· 어?”


얼음장이 된 나와 어 소리만 내뱉는 리트라이를 번갈아가며 쳐다본 리세마라가 당황하여 말한다.

“무, 무언가 반응이라도···.”

“리세마라!”

분명 다른 델 보고 말하고 있었는데도 격하게 달려드는 리트라이를 가볍게 피한다.

“왜 피해!”

“기분이 나쁜 것이다.”

좀 곱게 안겨줘도 되는 흐름이었을 텐데.

“그리고 옷을 또 더럽힐 셈이란 말인가. 이제는 씻을 여유도 없는 것이다.”

“아, 그렇지.”

“그러니··· 다음이라면···.”

이게 웬 장족의 발전?

“언제? 다음 언제?”

“그런 것 따위 모르는 것이다. 안감은 무엇을 사용한 것인가?”

“안감? 파가로 했어. 그냥 뭐로 할까 찾아보니까 있길래 그거로 했는데? 리세마라, 파가는 싫어하진 않잖아?”

“좋아하잖아?”가 아니라 “싫어하진 않잖아?”라는 말이 나오는 거냐. 평소 식습관이 대체 어땠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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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7 B와 D의 사이에 서 23.03.07 3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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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21 23 0 12쪽
131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20 41 0 12쪽
130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9 38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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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4 38 0 11쪽
126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2 37 0 12쪽
125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1 42 0 10쪽
124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10 41 0 12쪽
123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9 67 0 11쪽
122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8 36 0 11쪽
121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7 32 0 13쪽
120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6 44 0 13쪽
119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5 35 0 12쪽
118 밥 한번 먹자 23.02.04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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