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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니 님의 서재입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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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니
작품등록일 :
2022.09.16 22:57
최근연재일 :
2023.04.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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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25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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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D의 사이에 서

DUMMY

“기다리게 하였구나.”

눈을 감고 잠시 아무 생각도 않고 있으니 리세마라의 목소리가 들린다. 눈을 뜨니 두 사람이 내 앞에 서 있다. 리트라이는 못 보던 주머니 같은 걸 들고 있다. 아마 저 안에 리세마라의 젖은 속옷을 넣었나 보다. 그걸 왜 네가 들고 있어야 하는지는 참으로 불쌍하기 짝이 없다.

“참으로 불쾌하기 짝이 없구나. 왜 이런 날 하필 하얀 속옷이란 말인가.”

난 하얀 것도 좋은데.

“대체 그런 걸 요즘 누가 따진다는 거야···.”

그러게 말야.


“드레스 코드도 모르는 것인가.”

속옷에 웬 드레스 코드?

“누가 속옷까지 적용하냐구! 그리고 교복이나 예복 아니면 평상복은 다들 신경 안 쓰고 입잖아.”

어?

“그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잠깐만. 지금 그게 무슨 소리야?”

“리터너는 모르는 것인가? 우리는 일 단위로 착용하는 의복의 색상이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것을 드레스 코드라 하는 것이다.”

드레스 코드가 뭔지는 당연히 알지만, 날짜보다는 상황에 맞추는 걸 텐데?


“우리는 7일을 1주라는 단위로 묶어서 세고, 그 7일은 하루하루 드레스 코드가 달라. 7가문의 상징색을 그날의 드레스 코드로 정해두었거든. 매일 각 가문을 기리는 의미랄까.”

6가문, 8가문 그런 거 아니라 7가문이라 다행이다. 그러니까 일주일을 7일로 잡았겠지. 그건 운이 좋네.

“말이 나온 김에 리트라이는 각 가문의 상징색은 알고 있는 것인가?”

“아무리 그래도 그 정돈 알아! 어쨌든 리터너, 오늘은 우리 베라 가문을 기리는 날이야. 우리 가문의 상징색은 빨강. 그래서 지금 빨간 속옷이 아니라고 저렇게 생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아아. 그러고 보니 종일 빨간 속옷이었지.”

“종일?”

어라?

태연하게 리세마라를 놀리듯이 말하던 리트라이가 다짜고짜 내게 달려든다.

“리터너. 지금 그 표현 이상해. 지금이야 리세마라가 벗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이해하지만, 종일이라는 건 이전에도 그렇게 입었다는 확신이 있으니까 나오는 말 아니야?”

얘네 자매는 왜 이렇게 말꼬리를 잘 잡아?


“떨어지거라, 너무 가깝단 말이다!”

그러나 리트라이도 웬일로 순순히 물러서지 않고 나를 똑바로 응시한다.

“리터너는 분명 내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다고 했어. 그렇게 말했어. 그래서 믿고 있었어. 하지만 전부터 리세마라의 속옷 색깔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면··· 나는 그럴 수 있는 상황이 하나밖에 연상이 안 돼. 어떻게 된 거야?”

“소, 속옷이라면 보통 하루 정도는 계속 입고 있으니 리터너가 그렇게 생각하였어도 무리는 없는 것이다.”

평소처럼 싹싹하지 않다. 그 기세에 리세마라도 좀 눌렸는지 당황하는 게 보인다. 평소에 화 안 내는 사람이 화내면 무섭다더니··· 아니, 그냥 화내면 무서운 건 이 자매 종특인가.

“하지만 리세마라는 중간에 방에서 옷을 한 번 갈아입었지? 그때 속옷도 갈아입지 않았어?”

“갈아입긴 하였지만 갈아입지 않는다는 경우의 수도 있는···.”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거야. 오히려 그런 경우의 수가 있으니까 방금 리터너처럼 확신에 찬 표현은 나오기 어려워야 하는 거 아냐? 하지만 리터너는 마치 리세마라는 반드시 속옷을 갈아입었을 거라는 확신이 있는 것처럼 말했어. 그렇다는 건··· 그런 확신을 가질 만한 행위를 하고 나왔다··· 나는 그렇게밖에 생각이 안 드는데.”


솔직히 반쯤은 뭔 말하는 건지도 모르겠고··· 왜 겨우 그 한마디 했다고 이렇게 몰려야 되는 건지도 모르겠네. 갈아입었을 거란 확신이야 뭐 있을 수밖에 없지만··· 뭔 단어 하나 잘못 썼다고 이렇게까지 추론이 되나?

“리트라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든 리터너를 그렇게 추궁할 권리는 없는 것이다. 하물며 그런 주제로··· 게다가 마치 리터너가 중죄라도 지은 듯이 몰아가는 그 태도는 심히 거슬린단 말이다!”

“나는 지금 리터너한테 묻고 있어.”

평소에도 이렇게 굽히지 않는 태도를 좀 보여주지 그랬냐. 그랬으면 조금은 동생 대우가 달라졌을지도 모르는데.

“내 지나친 기우일지도 몰라. 단순히 말이 헛나왔을 수도 있고, 리터너는 기억이 온전치 않은 상황이니 표현이 익숙하지 않아 나온 실수라고 해도 납득이 돼. 리세마라 말처럼 별생각 없이 그냥 종일 같은 속옷을 입고 있었겠거니, 그렇게 생각해서 말한 거라도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혹시나 그런 게 아니라면···.”

리세마라를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내게 시선을 돌린다.

“나는 정말로 리터너를 걱정해서 물어보는 거야! 확실히··· 확실히 아무 일도 없었어? 내가 우려할 일이, 내가 생각하는 일이 정말로 없었어?”

피곤하다.


“아예 없었어··· 라고 말하면 좀 거짓말이 되려나.”

“그게 무슨?”

“학교에서 나가고 리세마라랑 열차? 그걸 탔었는데 거기도 여기처럼 2층 구조였거든. 리세마라가 위로 올라갈 때··· 봐버렸어. 팬티. 그래서 생각한 거야. 종일 같은 색이구나. 혹시 빨간색을 좋아하나. 그런 식으로.”

“그··· 그 외엔?”

“그 외엔 딱히 없었어.”

리트라이를 완전히 속이는 꼴이 되어 심경은 복잡하지만, 그렇다고 리세마라가 떡하니 보고 있는데 가게 만들었다느니 지리게 했다느니 그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다. 뭐··· 안 보고 있었어도 차마 못 했겠지만.

“그, 그런 거였어? 정말이지? 믿어도 되는 거지?”

고개를 끄덕인다. 뭐 방금 얘기한 내용 자체는 사실이고, 아직 거사를 치른 것도 아니니 믿어도 된다.

“다행이다··· 아! 무례하게 굴어서 정말 미안해!”

“참으로 그렇다.”

웬일로 얌전히 말로만 변호하던 리세마라가 기다렸다는 듯 리트라이의 뒷덜미를 휙 잡아 내친다.


“조금은 기대하였거늘 달라진 것 하나 없구나.”

“각오하고 한 일이야. 그런 게 싫었으면···.”

“허튼소리 말라고 하였다.”

오늘 저 표정 꽤 자주 보인다. 하지만··· 그 어떤 때보다도 세다.

“리터너가 듣는 앞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없어야 오히려 싸우지 않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분위기가 안 좋다. 자주 말이다.

“허튼소리 말라는 것은 두 번째인가. 아까 그것은 그저 지나가는 말로 한 소리가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럴 수 있다.”

“··· 그렇게 되면 나가게 되는 쪽은 리세마라야.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7가문, 베라 가문 모두 끝이라고.”

“상관없다.”

“자매의 연도··· 가족의 연도··· 그렇게 쉽게 내칠 수 있는 거야? 나도, 리스펙트도, 메소프로스며 메인트까지! 전부?”

근데 그거 자기가 그렇게 하고 싶다고 쉽게 할 수 있는 건가?


“쉽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평소에 그렇게나 가문을 소중히 했으면서··· 그것도 전부 거짓말이었던 거야?”

“거짓이라 한 적은 없다.”

“그럼 왜?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

“오해가 있는 것 같구나.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많지만, 그것은 피차일반일 터가 아닌가. 겨우 그런 것만으로 그런 결정을 쉬이 하진 못한다.”

내 손을 고이 잡는다. 내 시야에선 보이지 않지만 아마도 유약한 비주얼에 안 어울리게 퍽 강직한 표정을 짓고 있을 것 같다.

“나는 그저 가치 있는 길을 걸을 뿐이다.”

그 가치 있는 길이 연애를 향해 뻗어 있다면, 너무 고행길이다.


“리터너는 나로서도 분명 흥미롭기도 하고··· 무엇보다 좋은 사람이라 생각해.”

아니야. 그 정도로 착하진 않아. 너흰 제발 그 편견 좀 버려. 아··· 막상 버리면 곤란하긴 하네.

“리세마라의 사정도 있고 해서··· 리세마라의 태도도 이해할 수 있었어. 하지만 이상하잖아! 나는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리트라이도 왜 리세마라가 이러는지까진 모르는 건가. 참고로 나도 몰라.

“그렇다면 몰라도 충분하지 않은가. 가치를 알아보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굳이 알릴 필요가 있는가.”

“확실히 나는 리세마라만큼은 모르겠지만···.”

당연히 그렇겠지. 막상 그 대상인 장본인부터 모르고 있거든. 그보다 너희 언니는 대체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혼자 뭔가 단단히 착각해서 나를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 생각하는 거 아냐? 확실히··· 그런 이상한 데서 튀어나온 인간이니 이세계물을 생각하면 평범한 존재가 아닌 건 맞아. 그래, 나도 평범한 존재는 아니긴 해. 근데 그렇다고 딱히 비범한 존재인 건 또 아니다? 멋대로 기대하고 나중에 실망하지 마라, 너희.

그런 푸념은 당연히 닿을 리가 없고, 리트라이는 뭔가 굳게 마음먹은 듯 말을 잇는다.


“하지만 리세마라가 그렇게까지 한다는 건··· 그것도 평소와는 전혀 다른 행동들을 하면서 그런다는 건··· 그만큼 리터너가 가치가 있다는 거겠지?”

자꾸 옆에서 가치 가치 거리니까 뭔가 경품 취급 같아서 기분 나쁘네. 실상은 꽝입니다요 이것들아.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아니 그냥··· 그런 거라면 나도 진지하게 다가가볼까 해서.”

엥?

“무, 무슨?”

“나는 잘 모르겠지만 리세마라가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 유망할 거고···.”

“그런 당치도 않은 이유로!”

“그리고 동생은 원래 언니 것을 탐내는 게 당연하거든.”

소악마처럼 히죽 웃는다. 진심은 아니고 딱 봐도 일부러다. 그런 흐름이다.


“뭣···.”

“그러니 리터너. 나···.”

“안 돼! 내 거야!”

조금 전까지 위엄을 뽐내던 언니는 어디 가고··· 그저 바보 같은 여자 하나만이 남아 나를 있는 힘껏 껴안고 있다.

“풋··· 아하하!”

“무, 무엇이 우스운가!”

“후후···.”

리세마라는 웃을 때마다 저렇게 웃지만 리트라이가 그렇게 웃는 건 처음 본다. 그 모습을 보니 역시 자매는 자매구나 싶다.


“이렇게 터놓고 얘기할 날이 앞으로 더 많아지면 좋겠다.”

“어어?”

온화한 웃음을 지으며 리세마라의 물기가 말라가는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리세마라조차 그 분위기 변화를 못 따라가고 퍽 당황한 것 같다.

“안 뺏어가. 그보다 리세마라, 이성으로서 리터너를 좋아하는 거야?”

이 타이밍에 그런 질문을 했다간···.

“내, 내 생각이 어떻든 그 물음에 답할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되겠지. 그래도 리트라이는 좋은 조력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거라면 내가 예상한 거랑은 좀 달라도 이해했을 텐데.”

“리트···.”


“그럼 리터너는? 어때?”

그래. 이 흐름이면 화살은 나한테 돌아오겠지. 리세마라도 뭔가 따지려다 흥미를 갖는 눈치고. 근데 어쩌겠냐.

“글쎄···.”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잖아.

“뭐야, 싱겁게···.”

맥빠진 목소리와 표정이다.

“······.”

언니 쪽은 목소리도 표정도 없다.

나도 어쩔 수 없어. 그러니까 그런 얘기는 나 없는 데서 하란 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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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B와 D의 사이에 서 23.03.10 27 0 12쪽
137 B와 D의 사이에 서 23.03.07 30 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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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3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24 32 0 12쪽
132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21 23 0 12쪽
131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20 41 0 12쪽
130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9 38 0 12쪽
129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8 33 0 11쪽
128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5 38 0 11쪽
127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4 38 0 11쪽
126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2 37 0 12쪽
125 둘 사이의 거리는 좀 더 23.02.11 42 0 10쪽
124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10 41 0 12쪽
123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9 67 0 11쪽
122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8 36 0 11쪽
121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7 32 0 13쪽
120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6 44 0 13쪽
119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5 35 0 12쪽
118 밥 한번 먹자 23.02.04 34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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