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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니 님의 서재입니다.

단 한 사람을 위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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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니
작품등록일 :
2022.09.16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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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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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2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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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와 D의 사이에 서

DUMMY

리세마라는 내가 그 컵의 가치··· 아니 가치라 하는 것도 웃기긴 한데 아무튼 그걸 몰라보는 게 도통 이해가 안 가는 눈치다.

“잘 듣거라. 씻어낸다는 것은 곧 나와 리터너가 입을 댄 흔적이 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되면 의미를 상실하지 않는가. 이것의 가치는 리터너와 나의 첫···.”

“첫?”

“첫···.”

얼굴만 봐도 알겠다. 첫 간접키스 기념이라는 말은 차마 못 내겠지. 애들도 아니고 그런··· 아, 얘는 애 맞지. 학생이니까. 근데 그런 것까지 기념할 가치가 있나? 얘도 참 이상해.

“처, 첫 공동 컵이다. 그··· 음료를 마신 것 말이다. 파가를 말이다. 같은 음료를 말이다. 알겠는가?”

모르겠는데.

“그걸 굳이 기념할 필요까지야···.”

“하여야 한다!”

저거 안 씻고 저대로 놔두면 나중에 냄새 진동하는 거 아니려나 몰라.


“그래. 그럼 잘 챙겨서 가져가자.”

마치 트로피라도 되는 듯 양손으로 꼭 잡고 있다. 뭐··· 자기가 좋으면 그만이지. 리세마라가 좋다는데 내가 굳이 반대할 이유도 없다.

“후후··· 국보로 삼겠다고 하여도 내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정신 나간 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관리가 있거든 바로 내쳐라. 나라 좀먹는 무리다.

“아··· 그렇지만 가보로 삼겠다고 하면 그것은 다소 고민이 되는구나.”

가문에서 쫓겨나고 싶은 건가.

“그런데 국보는 안 되는데 가보는 괜찮아?”

“그렇다. 7가문은 매우 위대하다. 베라 가문은 그중 하나로서 나는 그 가문의 일원이라는 것을 매우 영광스럽고 소중하게 여긴다. 감히 가보로 삼을 가치가 있다.”

대체 어디에 그런 가치가?

“그렇지만 미드미아는 다르다. 허울 좋은 울타리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것에 이 중요한 컵을 맡길 수는 없다.”

애초에 달라고도 안 하겠지만··· 좀 위험한 발언 아닌가? 국가보다 제 가문이 우선이라는 얘긴데 상층부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 거야?


그런 생각으로 옆을 바라보니 어느새 혀를 살짝 내밀어 컵에 갖다 대고 있다. 내 시선을 알아채고는 황급히 혀를 집어넣는다.

“크흡.”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고 그걸 억지로 참는다.

“보, 보, 보았는가?”

당황한 리세마라가 황급히 묻는다.

“못 봤어. 미안··· 계속해.”

“그, 그런가? 다행이구나.”

엥? 지금 흐름은 “여, 역시 보았잖는가!” 같은 말이 나와야 될 때 아냐? 내가 의도한 건 그거였는데.

“그럼 계속하겠다. 이 컵의 가치는···.”

아, 계속하라는 걸 그렇게 받아들였나.

“그전에 빨리 마저 씻고 나가자. 그렇게 여유 있는 건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구나.”

다행히 동의했는지 순순히 물러난다.

그나저나··· 설마 방금처럼 평소에도 핥으려는 목적으로 가져가는 건 아니겠지? 그럴 바에는 그냥 직접 요구해라. 까짓거 비싼 것도 아니고 얼마든지 대줄 테니까.


“우메테라.”

리세마라가 갑자기 상태창을 불러낸다.

“썩 내키는 행위는 아니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수 없겠구나. 잠시만 기다리거라.”

손가락이 쉼 없이 움직이는 걸 보니 열심히 스크린을 눌러대는 것 같다.

“뭐 하는 거야?”

“리트라이에게 연락을 넣고 있다. 속옷을 가져와 달라고 말이다.”

자기 필요할 때는 그래도 부르고 보는구나. 필요할 때만··· 부르는 거겠지, 아마.

“내친김에 리터너의 몫까지 챙겨 달라 하는 것은 어떤가?”

엥?

“내가 그걸 어떻게 입어?”

“한 번도 입지 않은 새것을 준비하도록 하겠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건 무리지. 여자 거잖아.”

“겉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큰 문제는 없지 않겠는가?”

없지 않아.


“근데 리세마라는 내가 그··· 여성복을 입어도 괜찮아? 아까 옷 가게에서는 남성복, 여성복 철저하게 분리했잖아.”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지만 리터너가 입고 있던 의복이 신경 쓰이는 것도 있고···.”

역시 아직 의심하고 있구만. 가능한 한 빨리 처분하든 밝히든 해야겠어.

“그리고···.”

“그리고?”

얼굴이 또 살짝 발그스름하게 물든다.

“리터너와 내가 같은 옷을 입는다고 하면 너무도 낭만적이지 않은가. 상상만 하여도 황홀하여 머리로는 숙지하고 있는 지켜야 할 도리도 다분히 고의적으로 망각하게 되고는 한다.”

아··· 커플룩? 뭐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애초에 입어본 적도 없고. 어쨌든 그 자체가 문제인 건 아닌데···.

“후후··· 나를 이렇게까지 바꾸다니 리터너는 참으로 기적적인 존재다.”

“그런 거라면 부디! 다음 기회에 좀 더 평범한 옷으로!”

첫 커플룩이 여자 속옷이면 여러 측면에서 너무 문제가 많다.

“평범한 옷이라니! 그럴 수는 없다! 엄격한 인선과 절차를 거쳐 가장 빼어난 의복을 선출하여야 하지 않겠는가!”

얘는 옷으로 오디션이라도 볼 생각인가.


“아···.”

힘껏 내뱉고는 갑자기 뭔가 생각이 떠올랐는지 잠시 고민하는 모양새다.

“리터너. 내가 먼저 말을 꺼낸 주제에 미안하지만 역시 안 되겠구나.”

“··· 안 된다니, 뭐가?”

이제 리세마라랑 말을 하다 보면 대체 뭔 말이 나올지 불안할 지경이다.

“속옷 말이다··· 여, 역시 입지 말아 주었으면 한다!”

야, 애초에 입겠다고도 안 했다. 내가 입고 싶어 했던 것처럼 말하지 마라.

“어차피 그럴 생각도 없었어··· 근데 갑자기 왜?”

“리트라이에게 조달을 명하였으니 그것은 리트라이의 속옷일 것이다. 나는 감수할 수 있지만 리터너는··· 안 된다! 비록 한 번도 착용하지 않은 물건이라 하여도 리트라이의 손길에 물든 물건이 리터너에게 닿는다니, 생각만 하여도 불쾌하기 짝이 없다!”

뭐 내가 말하기도 전에 알아서 의견을 물려준 건 다행이긴 한데··· 너도 진짜 너무한다. 부탁이 아니라 명하였다고 말하는 것부터 지 동생을 어떻게 취급하는지 잘 알겠다.


“그런데 리트라이 게 리세마라한테 맞아?”

“······.”

눈치 없이 던진 질문은 아니다. 리트라이가 불쌍해서 좀 골려주고 싶은 마음에 하는 말이다. 그리고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 것도 있다. 리트라이 쪽이 키도 더 크고 몸매도 훨씬 잘 빠졌으니 아래는 몰라도 위는 확실히 맞지 않을 거다.

“그것은 몰라서 묻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가?”

··· 그 표정이다. 처음에 내가 보고 쫄고 말았던 그 싸늘한 표정이다. 이 표정이 나오면 아직도 조금 쫄린다.

“순수한 걱정이고 궁금증인데···.”

“······.”

아까 크게 상심한 것처럼 보였던 리트라이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의 풀죽은 모습이다.

“짓궂구나··· 그대의 순수함이 이리도 아플 정도로 차갑게 와닿을 때도 있구나.”

그 정도까지야···.


“···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다. 방에 돌아가서는 내 것으로 갈아입을 것이다.”

“그런 거라면 처음부터 리세마라 걸 가져와달라 하는 게 낫지 않아?”

“아아, 리트라이는 내 방에 멋대로 들어갈 수 없다. 오직 나만이 자유자재로 출입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방이라는 의미가 퇴색되지 않는가.”

듣고 보니 그건 당연하네. 기숙사니까 마스터키 같은 건 있겠지만 학생회장이 그걸 가지고 있다면 이상하고.

“그렇구나. 그럼 됐어.”

“하지만 리터너가 걱정할 정도라니···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심히 복잡한 기분이구나.”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살짝 짓눌러보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한다. 이 모습도 언니바라기인 리트라이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꽤 귀엽다.


조금 어색한 분위기로 입구 근처로 돌아가니 리세마라가 말문을 연다.

“한데 리터너는 머리와 얼굴을 씻는 데 있어서도 액체를 선호하는가?”

“아니. 선호한다 할 정도는 아니야. 그쪽은 그냥 빨리 끝나는 게 편해.”

머리 말리는 거 귀찮기도 하고.

“특이하구나. 액탕을 선호하는데 거기선 또 아니라니 말이다.”

“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있는 그 느낌이 좋은 거라서. 머리랑 얼굴은 좀 다르달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만 리터너가 좋다면 문제는 없겠구나.”

아냐, 잠깐만.

“그렇다면 이번에는···.”

“그래도 역시 물을 쓰는 쪽이 좋겠어.”

“리터너가 좋다면 상관은 없다만··· 갑자기 의견이 바뀐 이유라도 있는가?”

네 젖은 머리가 보고 싶어. 그걸 말리는 모습도 보고 싶어. 아무리 상대가 리세마라여도 이렇게 솔직히 말하는 건 좀 그렇겠지?


“물을 쓰는 쪽이 더 오래 걸리지?”

“욕의를 착용하는 탕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무래도 그렇다. 그렇다곤 하여도 유의미한 차이라 일컬을 것까진 아니지만 말이다.”

“됐어. 그거로 충분해.”

“충분하다니 무엇이 말인가? 나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구나.”

“그렇게 하면···.”

최대한 멋쩍고 쑥스러운 표정으로 하나. 평소에도 짓곤 했으니 큰 무리는 없는 주문이다.

“리트라이가 오기 전까지, 리세마라랑 조금이라도 더 오래 같이 있을 수 있잖아.”

“······.”

말문이 막힌 것 같지만 적어도 어이가 없어서 막힌 것 같진 않다. 다행이다. 이번엔 머리 위로 느낌표가 뜨는 것만 같은 표정이다. 말없이 내 품에 다가와 또 끌어안는다. 역시 리세마라한테는 이 오글거리는 컨셉이 먹힌다. 효과 만점이다. 근데 그 와중에도 컵을 놓지 않는 손이 용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구나.”

가능하면 그 대사는 안 했으면 좋겠다. ··· 근데 가능하긴 하다는 게 웃기다.

“무엇을 하다가 이제야 왔는가. 나의 인고의 세월은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였는가. 놀랍게도··· 그것이 납득이 될 정도로 기쁘다.”

게임하다가 왔는데··· 이건 말하지 말자.


입구 근처로 돌아와 옆으로 빠지자 이번에는 우리로 따지면 샤워실 같은 공간이 보인다. 샤워 부스처럼 칸막이 구조로 구분되어 있고, 전체적인 사이즈는 지금까지 워낙 큼지막한 데만 봐서 그런지 아담하다.

“들어가서 가만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음성 안내가 있으니 지시에 따르기만 하면 알아서 될 것이다.”

리세마라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긴 머리를 손으로 감싸 올린다. 하지만 한 손만으로 애써 그렇게 하려 하고 있기에 계속해서 머리가 풀린다.

“컵을 어디 한쪽에 잠깐 내려놓지 그래?”

“누군가 가져가면 어떡하는가.”

관리 직원이 아니고서야 가져가라 해도 안 가져가.

“아무도 없는데?”

“지금은 그렇지만 이후는 모르는 일이 아닌가.”

하긴 뭐 아까 옷 갈아입을 때도 들어왔었다고 하니···.

“그럼 내가 들고 들어갈까?”

“리터너는 믿음직스럽지만 구조상 컵이 세척되고 말 것이다. 아까도 이야기하였지만 그렇게 되어서는 우리의 첫··· 컵이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만다.”

첫 다음은 또 얼버무리네.


“근데 그런 거면 리세마라가 들고 들어가도 똑같은 거 아냐?”

“아···.”

얘도 보면 은근히 중요한 데서 나사가 빠지더라.

“하아···.”

리세마라는 한숨을 쉬며 컵을 한쪽 바닥에 내려놓는다.

“부디 안위에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나로선 네 정신머리 안위가 더 걱정이지만.

리세마라는 서두르려는 모양인지 냉큼 일어나 양손으로 머리를 훅 싸매어 올린다. 와··· 이 자세 좋다. 평소와는 다르게 포니테일처럼 묶여 올라간 머리카락, 그를 잡고 한껏 팔을 올리는 바람에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겨드랑이, 자세 자체에서 우러나는 전신의 곡선미를 자랑하는 듯한 느낌까지 이대로 그냥 감상하고 싶을 정도다. 그러니 조금 감상하자.

.

.

.

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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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7 33 0 13쪽
120 식사 목욕 아니면 너 23.02.06 44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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