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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소 님의 서재입니다.

저격병과 장미와 늑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비르소
작품등록일 :
2020.11.27 23:39
최근연재일 :
2021.02.13 22:25
연재수 :
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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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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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5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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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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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아린 - 1

DUMMY

오마딘이 차를 끓이는 동안 레빈은 둥근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공방에서 유일하게 가구처럼 보이는 물건으로 식탁으로 쓰기도 했다.


“도제들이 많이 없네요.”


“많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없지.”


“전쟁 때문인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단다.”


오마딘이 차를 끓여 내오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 보니 오면서 젊은 사람을 거의 못 봤다는 느낌도 들었다.


“그래, 그동안 어찌 지냈니?”


“그때 그렇게 도망친 뒤로 무작정 벨마덴으로 갔어요. 완전 무일푼이었으니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했어요. 집 짓는 공사장에서도 일해보고, 노점 단속원도 해보고요.


그러다가 체르펠에 있는 아이템 상점에서 잡화배달을 했어요. 없는 거 없이 다 만져봤지요. 신의 축복이 깃든 검부터, 포션이며, 반지, 저주받은 접시에 애완용 들소도요.”


“들소? 벨마덴 사람들은 들소를 애완동물로 키워?”


“그렇다니까요. 신기한 사람들 많아요.”


그 순간 레빈은 모리스를 생각했다.


“하지만 일이 너무 고되었어요. 한 달에 15만빌 밖에 안 주는데 밤낮 공휴일 가리지 않고 배달을 시켰거든요. 사실 그때 좀 돌아오고 싶은 마음도 들었는데······. 광장에 붙은 징병 모집 공고를 봤어요. 법이 바뀌어서 저같은 미성년자도 입대가 가능하단 내용이었어요.”


“베르그 법 말하는구나.”


“이제는 베르그-타우 법으로 바뀌었죠. 여성과 노약자도 입대가 가능한······.”


“그래······.”


“그렇게 입대하고 펄필드에서 훈련받고 첫 투입 된 전장이 포말하우트였어요. 포말하우트······.”


레빈이 말끝을 흐렸다.


“아저씨 제 보직이 뭔 줄 아세요? 저격수에요. 참나, 예전에 하던 가락이 있어서 엔지니어를 지원했는데 떡 하니 저격수 보직을 주지 뭐에요.”


“왜 그랬지? 너라면 엔지니어해도 충분한 몫을 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엔지니어 보직이 경쟁률이 무척 치열했어요. 아무래도 전장에 직접 투입되지 않는 보직이니 그럴 만도 했죠. 아마 비공함에 타는 보직들은 전부 미달이어서 다른 보직의 불합격자들을 그리로 옮겨버린 것 같아요. 기관포병이나 저격병, 비공통신병 같은 거요.”


“내 생각도 그렇구나.”


“그리고 전장에서 정신없이 싸우다 깨어보니 병원이었고, 거기서 이렇게 되었죠.”


레빈이 오마딘에게 자신의 의수와 의족, 의안을 보여주었다. 오마딘은 신기한 듯 바라보다가 곧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사용하는 데 어떠냐?”


“아직까지는 괜찮은 거 같아요. 원래 제 몸과 많이 차이나지는 않아요. 찰칵찰칵 소리가 나는 것 빼고는.”


“좀 살펴봐도 될까?”


“물론이죠.”


레빈의 말이 끝나자 오마딘은 레빈 옆으로 와 그의 팔을 움직여보고 다리도 만져보았다. 눈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아 레빈이 직접 눈꺼풀을 들어 주었다.


다만 만지는 거로는 부족했는지 곧 작업실로 달려가 이런저런 계측기와 확대경을 가져와 대어 보았다. 레빈은 그가 관찰하기 쉽도록 이리저리 자세를 바꾸었다.


“어때요?”


“대단하구나. 대단하다는 말밖엔······. 일단 공화국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인공 신체를 만들 수 있는 곳은 내가 알기로는 없다. 자세히 보지 않았는데도 굉장히 정교하고 복잡한 기술들이 들어가 있구나.”


“아저씨가 보시기에도 그정도에요? 병원에 있던 의사 선생님도 그런 말씀하시던데.”


“물론. 게다가 네 생체조직과 완벽히 반응하도록 맞춤형으로 설계된 듯하구나. 아마 약만 잘 먹는다면 별 거부반응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로 원래 네 몸과 잘 짜 맞춰져 있어.”


“역시 아저씨세요. 슬쩍 보았는데도 그 정도까지 알아내시다니.”


“아스탈리아에서 만든 건가?”


“아니요. 벨리슈탈이라고 들었어요.”


“벨리슈탈이라고?”


오마딘이 놀란 얼굴을 하며 다시 물었다.


“네. 벨리슈탈이요. 병원에서 절 치료하던 의사 선생님이 그랬어요.”


“벨리슈탈······. 벨리슈탈이었구나. 이럴 수가, 이 정도까지 올라왔나?”


오마딘은 한동안 ‘벨리슈탈’이란 말을 중얼거렸다.


“뭔가 있는 건가요? 벨리슈탈이랑?”


“그게 말이다······. 사실은······.”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와!!!”


그때 문을 박차고 소녀 하나가 들어와 씩씩거렸다. 소녀는 신경질적으로 교복 외투를 벗더니 레빈이 앉아 있는 쪽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다.


“아린······.”


“그 이름 함부로 부르지 마! 우릴 버리고 도망갈 때는 언제고! 왜 여기 기어 들어온 거야?”


“······.미안해. 그때는 내가 철이 없었어.”


“미안하다면 다야?”


“아린, 잠시 내 얘기 좀 들어봐. 실은······.”


“듣기 싫어!”


아린이라 불리는 소녀는 테이블로 다가와 레빈의 팔을 잡아끌었다.


“얼른 나가! 당장 나가!”


아린이 낑낑대며 레빈의 팔을 잡아당겼지만, 레빈의 의수는 찰칵찰칵거리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나가라구! 나가!”


“아린······. 미안해. 그땐 내가 정말······.”


“듣기 싫으니까 나가라고!”


“아린, 레빈은 오늘 우리 손님이야.”


“손님? 아빠는 배알도 없어? 저 인간이 우리 싫다고 버리고 간 거 벌써 잊었냐구? 그 뒤로 재수 옴 붙어서 모두 뿔뿔이 흩어졌잖아. 엄마도 죽고, 크리스 오빠도 죽고, 리피도 도망가고, 루이 오빠는 행방불명 되었어. 전부! 전부! 전부!”


아린이 악을 쓰며 말했다.


“크리스랑 루이는 전쟁에 끌려간 거고, 리피는······. 그래 리피야말로 어디론가 가버렸지. 그때는 월급이 무려 3년이나 밀려있던 때니까. 글구 네 엄마는······.”


“듣기 싫어! 아빠는 지금 저 인간 편드는 거야?”


“그게 아니란다. 모두 레빈 탓이 아니란 얘기지.”


“잠시만요!”


두 부녀의 설전이 달아오르려 하자 레빈은 자신이 나서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무슨 낯짝으로 내 말을 막는 거야?”


“잠시만······. 아린, 잠시만······.”


“그래, 얘야 조금 진정하고 레빈 말도 좀 들어보렴.”


“아린.”


레빈은 식어버린 차를 단숨에 들이켜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철없던 시절 저지른 나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하진 않을게. 이건 진심이야. 앞으로 내가 가지고 갈 업보이기도 하고······. 사실 난 지금 나락까지 와 버렸어. 정부에서 은폐하려던 포말하우트 전투의 사상자에 대해 사실대로 얘기했다가 완전 찍혀 버렸거든.


12만명 중 13명만 살아서 돌아왔어. 나는 그중 한 명이고. 억세게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난······. 난 지금 너무 괴로워. 너무 괴로워서 스스로 뒈져버릴까 하고 생각한 적도 많았어. 하지만 그만두었어. 왜냐면 갚아야 할 빚이 있었으니까. 그게 바로 아저씨하고 아주머니, 그리고 너야.”


레빈의 호소에 아린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다음 주면 다시 입대해야 돼. 그래도 다시 1년 6개월만 버티면 제대할 수 있고, 제대하면 연금과 드브리 분양권을 받을 수 있어. 그걸로 용서는 안 되겠지만······. 난 내가 받는 연금을 모두 이 알디우스 공방 앞으로 돌릴 거야.”


“그러지 마라 레빈. 네가 정당하게 얻은 보상을 왜 우리한테······.”


“제가 정당하게 번 거니까 아저씨한테 드리는 겁니다. 아저씨가 저 여태 키워주셨는데 그걸 배반했으니······. 그걸로라도 조금씩 갚아나가려고요.”


레빈이 단호한 얼굴로 말하자 오마딘은 한숨을 크게 쉬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여러 가지로 답답한 마음을 추스르기 위함이리라.


“돈으로 해결하시겠단 말이지?”


“미안하지만 아린, 그런데 지금은 돈도 없어. 제대해야 돈이 들어올 거야.”


“레빈, 이번에도 아빠 속이는 거면 너 죽여버릴 거야.”


“약속해. 아린. 이번에는 거짓말 아니야.”


레빈의 말에 아린은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위층에 있는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버렸다. 레빈도 더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괜히 돌아온 게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렸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터지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아니 진작에 터트렸어야 했다. 자신이 만든 응어리를, 고름을, 이렇게 해야 마음의 상처가 나을 수 있었다.


레빈은 생각했다. 시간이 결국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거라고.




딱 재입대까지만 머물기로 했다.


이는 오마딘도 알고 있는 내용이어서 레빈도 더 말하지 않았다. 레빈은 입대 전까지 공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대신 공방 일을 돕기로 했고, 처음에는 입대 전까지 아무 일 말고 푹 쉬다가 가라던 오마딘도 레빈의 고집에 못 이겨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돕도록 허락했다.


베네타의 경제가 안 좋았던 시기에도 이곳에는 일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꽤 있었다. 공화국 내에서, 베네타만큼 마성석공학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그나마 베네타에 남아있던 젊은이들조차 징병되거나, 전투 비공함 공장이 있는 웨스크나 사우세폴로 떠나도록 만들었다.


상용차만 만드는 제품군은 많은 이윤을 남길 수 없었고, 전통적인 장인-도제식 제작방식은 노하우를 배우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어찌 보면 전시 상황의 대량생산체제와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베네타가 아예 무너져버린 가장 중요한 이유는 역시 너무 많은 젊은이들이 죽었다는 거였다.


대부분의 베네타 사람들은 자신의 대에서 공방 일이 끝날 거라는 걸 기정사실화 하고 있었다. 설령 내일 당장 전쟁이 끝나더라도 말이다.


레빈은 베네타에 오랜만에 찾아온 젊은이였다.


어제 상인들의 환대도 아마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레빈이 머물기로 한 후 가끔 다른 공방의 장인이 레빈이 일하는 모습을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레빈은 자신이 일을 잘해서 보러 오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주로 어떤 거 하세요? 비공함 쪽으로는 일이 없을 텐데.”


“그냥 마을 사람들이 가끔 가져오는 텔레튜브나 진공관 전축 등을 수리하거나 하지. 제값 받기는 어렵고, 그냥 식료품이나 푼돈 정도 받고 있어.”


오마딘이 낡은 텔레튜브를 뜯으며 말했다. 길 건너 앙페르씨가 맡긴 거라고 했는데 워낙 낡아서 고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부품 조달도 어려워 보이는데······.”


“예전에 사둔 걸 까먹고 있지. 그래도 없으면 공방끼리 서로 돌려가며 쓰고 있어. 상부상조하는 거지. 그렇지만······. 아니다.”


“아니에요. 아저씨, 말씀해보세요.”


“이 도시는 뭐랄까······. 마치 의사에게 죽을 날짜만 받아 놓은 중병환자 같다고나 할까? 더는 희망이 없다고 봐.”


오마딘은 그렇게 말하고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앙페르씨의 텔레튜브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엔 어떤 표정도 보이지 않았다.


단지 깊게 파인 주름들과 새하얀 머리카락만이 있을 뿐이었다. 오마딘이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알고 있는 레빈은 그런 그가 충분히 이해되었다.


오마딘은 열두 살 때 도제로 들어와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엄청난 노력과 끈기와 열정으로 마흔이라는 늦은 나이에 수석 장인이 되었다.


그 뒤 베네타에서 결혼도 했고, 자녀를 낳았고, 공방도 물려받았다. 그런데 자신의 대가 끝나기도 전에 물려받은 모든 유산이 허물어지고 있는 것을 그는 지켜보고 있어야만 했다.


“아저씨, 아무래도 칼리번 메니플레이터가 필요할 거 같아요.”


“그렇구나, 우리 공방에는 그 공구가 없는데······. 아마 브레스크가 가지고 있을 거다. 거기서 좀 빌려오겠니?”


“네, 다녀올게요.”


레빈은 잠시 그에게 혼자 있는 시간을 선물해주기로 하고, 숲속의 공방을 나왔다.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선작, 댓글 및 추천 부탁드립니다


작가의말

어제 개인사정으로 업로드하지 못해서 오늘 2편 연속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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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연극의 막이 오르면 - 2 +1 21.01.05 183 4 11쪽
36 연극의 막이 오르면 - 1 21.01.04 188 5 12쪽
35 아스탈리아의 바텐더 - 2 21.01.02 215 4 13쪽
34 아스탈리아의 바텐더 - 1 21.01.01 203 6 11쪽
33 세 사람 - 2 +2 20.12.30 209 7 16쪽
32 세 사람 - 1 20.12.29 206 4 11쪽
31 저격수업 - 2 +2 20.12.28 216 7 10쪽
30 저격수업 - 1 +2 20.12.26 223 8 11쪽
29 악몽병 +1 20.12.25 218 6 13쪽
28 랑가르드 교전 - 2 20.12.24 217 7 11쪽
27 랑가르드 교전 - 1 20.12.23 247 6 12쪽
26 시험 20.12.22 230 7 11쪽
25 재시작 - 2 20.12.21 242 9 11쪽
24 재시작 - 1 20.12.19 257 10 10쪽
23 천공용 사그누스 - 2 20.12.18 255 6 10쪽
22 천공용 사그누스 - 1 +1 20.12.17 286 6 12쪽
21 의뢰 +2 20.12.16 316 9 13쪽
20 기사단장 임명식 - 2 +4 20.12.15 331 12 12쪽
19 기사단장 임명식 - 1 +2 20.12.14 365 7 14쪽
18 과거는 미래를 향해 - 2 +2 20.12.13 376 16 13쪽
17 과거는 미래를 향해 - 1 +4 20.12.12 421 9 12쪽
16 아린 - 2 +2 20.12.11 425 15 12쪽
» 아린 - 1 20.12.10 439 12 12쪽
14 귀향 +1 20.12.10 465 12 9쪽
13 카펠라 공역 회전 +3 20.12.08 476 13 15쪽
12 최후의 만찬 - 2 20.12.05 481 13 11쪽
11 최후의 만찬 - 1 20.12.04 492 10 9쪽
10 백은의 장미 - 2 +6 20.12.03 556 15 13쪽
9 백은의 장미 - 1 20.12.02 579 1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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