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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소 님의 서재입니다.

저격병과 장미와 늑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전쟁·밀리터리

완결

비르소
작품등록일 :
2020.11.27 23:39
최근연재일 :
2021.02.13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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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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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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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11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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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임시 휴전 회담 - 1

DUMMY

발디르 가도는 트란잠 제국이 아직 왕국이던 시절에는 하부 대륙과 상부 대륙을 연결해주는 유일한 통로로 각지의 상선들이 왕래하던 곳이었다. 지금은 기뢰와 부서진 비공함의 파편들로 채워져 있지만, 언젠가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면 다시 그런 날이 올 것이지만, 아직 그런 날이 오기에는 요원해 보였다.


개척자라 불리는 하부 대륙의 초기 정착민들은 하부 대륙의 산물을 상부 대륙의 왕국들에 팔고 상부 대륙의 생필품을 사 오는 무역업으로 연명하였다. 현재 발디르 가도의 사령관인 토크란 공화국 공군 중장 샬 리더로우는 그런 개척자의 후예였다.


조상의 강인한 정신력과 머뭇거리지 않는 행동력을 이어받은 그였지만, 문제는 건강이었다. 장시간의 파병은 가뜩이나 허약했던 그의 몸을 악화시켰고, 처절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벌어진 포말하우트의 패배와 그로 인해 벌어진 성공적인 후퇴는 그의 수명을 족히 10년은 단축시켰을 지도 모를 만큼 처참한 것이었다.


포말하우트 이후 버나드 라인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그는 정부에 제대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민주 공화정이 아닌 이 강직한 노장에게 개인적인 충성을 바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정부에서도 알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샬 리더로우가 군을 떠나면, 버나드 라인 자체가 무너질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젤린은 공화국 공군의 살아있는 전설을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것은 페란테 릿츠와 첫 데이트를 할 때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으로, 설레임을 떠나 경외감이 드는 정도였다.


“어때? 나 이 정도면 괜찮아?”


“네, 함장님. 근데 함장님은 본 얼굴이 예쁘셔서 색조 화장까지는 하지 않으셔도......”


“아니야, 코헤르. 리더로우 장군님을 만나는데 예쁘게 보이고 싶어서 그래.”


“누가 들으면 오해를 살 말이네요.”


“그 사람이라면 허허 웃고 말겠지. 오히려 용돈을 쥐여 줄지도?”


“곧 지휘통제소에 도착합니다.”


커다란 진동과 함께 아벨라르가 공중에 멈춰 섰다. 잠시 후 공화국 헌병대의 비공함이 다가오자, 세리가 해치를 열었다.


“저희는 토크란 공화국 헌병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검색을 해야 하니, 모두 중요 소지품과 무기를 꺼내주시고 손을 머리에 얹어주시기 바랍니다.


“수고 많으십니다.”


이젤린은 외투에서 방문 허가증을 꺼내어 헌병에게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사령장관 욜 크니우스의 직인과 더불어 이젤린 그린필드 소령을 포함한 승조원 전원의 신상이 적혀있었다. 헌병들은 아벨라르의 이곳저곳을 돌아본 후, 검색이 완료되자 이젤린에게 절도 있는 경례를 붙였다.


“그린필드 소령님 외 12명. 통과를 허가합니다. 버나드 라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지휘소에 아벨라르를 주기 한 이젤린은 각 부의 선임을 데리고 샬 리더로우 중장의 숙소로 향했다. 함교의 세리 중위, 기관포반의 리아 하사, 저격반의 레빈, 그리고 간호장교인 마리온이었다.


“여기라고?”


“그렇습니다. 소령님.”


이젤린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공화국 영웅의 거처가 바람이 술술 들어오는 허름한 천막 하나가 전부였던 것이다. 건너편의 제국의 아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런 곳에서 오랫동안 바깥바람을 맞으며 생활하면 아무리 건강하던 사람도 환자가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서 오게, 이젤린 그린필드 소령. 콜록콜록.”


“장군님, 앉아 계십시오.”


이젤린은 샬 리더로우가 일어서려던 것을 사양하고 그대로 앉도록 했다. 샬은 안락의자에서 담요를 덮은 채 차를 마시던 중이었다.


“오시느라 고생이 많았소.”


“제가 좀 봐드려도 될까요?”


“아니, 괜찮소만.”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 저희쪽 신입 간호 장교인데 이래봬도 공화국 공제병원에서 일해서 실력 하나는 믿으셔도 될 겁니다.”


“좋소, 그럼 부탁하오.”


샬이 고개를 끄덕이자, 마리온이 가져온 구급상자를 열어 맥박이며 혈압 등을 체크하였다. 그녀는 청진기로 노병의 여기저기를 관찰하더니 이젤린에게 말했다.


“특별히 이상이 있는 부분은 없으신 것 같지만, 한시라도 빨리 휴식이 필요해 보입니다.”


“고맙소, 나야 그러고 싶지만, 보시다시피 딸린 식구들이 많아서. 나도 저기 있는 저 청년처럼 인공 신체로 갈았으면 좋겠군. 콜록콜록.”


“레빈 바르카슈 병장이라고 합니다.”


레빈이 꾸벅 인사를 하려다가, 자세를 바꾸어 절도있게 경례를 붙였다. 그런 레빈에게 샬은 악수로 화답하였다.


“한때 텔레튜브에 잘 나오지 않았나요? 지금은 뜸한 것 같소만. 근데,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제대하지 않았나요?”


“레빈 병장은 재입대했으니 말씀 놓으셔도 됩니다.”


“네, 원래 제대할 예정이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습니다.


레빈이 길고 긴 그의 여정에 대해 말하려 하자, 세리가 그러지 않아도 된다며 레빈에게 고개를 저었다.


“그랬군. 모리스에게 잘못 보인 탓이겠지. 그때의 행동은 어떻든지 간에, 만일 레빈 바르카슈. 당신을 본다면 내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소.”


샬이 마리온의 부축을 받으며 안락의자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순간 레빈은 눈을 질끔 감았다. 호전론자들에게 맞는 것보다는 그래도 전쟁 영웅에게 맞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쩌면 레빈은 많은 사람들이 피와 땀과 눈물로 지켜온 무언가를 공개적으로 부정해버린 꼴이었으니까. 그러나 그의 우악스러운 손이 향한 곳은 그의 얼굴이 아니라, 그의 손이었다.


“고맙소, 레빈 병장.”


“네? 하오나 리더로우 중장님...... 제가 무슨 고마운 일을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날, 포말하우트에서의 레빈 병장과 같은 이들의 숭고한 희생 덕분에 우리는 최소한의 병력이나마 보전한 채 후퇴할 수 있었다오.”


“무슨 말씀이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자 옆에 있던 마리온이 샬에게 레빈이 8개월이나 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그 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모를 수 있다고 귀띔하였다.


“그랬었군. 포말하우트의 15,400대 18만 5천의 병력 중, 2,000대 2만 5천의 병력은 예비대였소. 바로 우리 사단이었지. 제국의 비공함들이 끊임없이 투입되는 와중에, 공화국 수뇌부는 예비대의 투입을 고심하고 있었는데, 만일 그때 투입되었다면 나와 내 부하들은 이미 저세상에 가 있었을 것이오. 그러나 결국 남은 병력이 어떻게 했는지, 제국의 마지막 투입마저 막아내었소. 그 다음은 알다시피 고작 13명만이 살아남았지. 레빈 병장을 포함해서 말이오.”


“과찬이십니다. 저는 그때 한 게 별로 없었습니다.”


레빈의 눈시울이 갑자기 붉어졌다. 그랬다. 어쩌면 레빈이 가장 듣고 싶던 말은 이 한마디였는지도 모른다.


덕분에 고맙다는 말.


“사람들은 내게 기적의 퇴각을 이끌어 냈다고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다닌다오. 그날 우리 뒤에 남은 16만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기적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낸 것이오. 만약 만난다면 꼭 전해주고 싶었소. 고맙다고. 덕분에 살았다고.”


레빈은 어쩔 수 없이 막사 밖으로 나갔다. 고맙다는 말을 들은 기쁨도 그렇거니와, 2만 5천 명이나 더 살았다는 안도감에서였다. 군에 입대한 뒤 처음으로 살아나서 고맙다고 생각되는 하루였다. 모두 죽은 게 아니라니!


레빈은 자신이 이렇게 눈물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요즘 들어 눈물을 흘리는 일이 많았다. 아마도 벤조트리아젬 때문에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자아, 장군님, 그러지 말고 우리 차나 같이 할까요?”


역시나 살짝 눈시울이 붉어졌던 이젤린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고 박수를 치며 말했다.



“제국에서 장군님과 회담을 하자고 했다고요?”


차를 마시던 이젤린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콜록콜록. 그렇다네. 기사단장에 재신임 된 걸 축하하는 의미로 2주간 휴전하고 싶다나?“


”휴전이요?“


”뭐, 고양이가 쥐를 걱정해주는 것 같지만, 그래도 발디르 가도의 사령관인 데칼트는 상대해보니 괜찮은 사람이야. 기사도 정신을 아는 사람이지.“


이젤린은 포말하우트 전투가 터지기 전부터 제국의 정예인 임모탈파티즈가 발디르 가도 방변 진공을 맡은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가장 넓은 가도이다 보니 가장 강한 카드를 내놓아야 했을 테니.


”그래서 회담 제안을 받아들이기로 하셨어요?“


”그렇다네. 콜록콜록. 콜록콜록.“


샬의 기침이 더욱 심해져 대화를 나누기 어려울 정도였다. 샬의 기침은 마리온이 건네준 포션을 마시고 나서야 조금 완화되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우리 아이들이 고향에 못 돌아간지 꽤 되었어. 2주면 고향에 다녀오기 충분한 시간이지.“


”그렇게 말하고 녀석들 우리 뒤통수를 치는 게 아닐까요?“


”그랬으면 이런 고민도 안 했겠지. 하지만, 이번만큼은 데칼트를 믿고 싶네. 물론, 나도 완전히 믿는다는 것은 아니고, 휴가 지원자를 받은 다음, 그중 장기 근무자를 추려내어 그들을 우선적으로 보내줄 생각이네.“


이젤린은 샬이 자신의 병사들을 ‘아이들’이라 칭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그렇다 해도 병력의 1/4 정도는 빠지게 될 거야. 내가 사령부에 호위부대를 요청한 이유기도 하고.“


”사령부에서도 이를 알고 있나요?“


”입이 무거운 몇몇만 알고 있지. 그놈의 언론 때문에.“


샬이 레빈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서 저희가 여기에 온 것이로군요.“


”맞네. 사령부에서 자네를 적극 추천하더군. 나 역시 흔쾌히 동의했고. 이 늙은이 역시 일과가 끝나면 하는 일이 텔레튜브를 보는 것뿐이라 자네들의 활약상은 잘 알고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책임이 막중하네요.“


”최악의 경우, 교전해야 할 수도 있네만, 그런 일이 오지 말기를 빌어야지.“


”회담은 어디서 열리나요?“


”발디르 가도의 비무장지대. 뒤에 비공함 전단이 잔뜩 있는 상태에서 상대의 대장선만 앞으로 나와 1:1로 하게될거야. 모든 통신채널을 닫은 상태에서 둘만 통신을 열고서 말이지.“


이젤린은 그것이 과거 전설로만 전해지던, 장수들의 단기접전(單騎接戰, 일기토) 같다고 생각했다. 뒤에는 병사들이 만약에 있을 전투에 대비한 채 잔뜩 사열해있고, 장수 둘만이 나와 자신들의 무용을 겨루는 것. 회담하는 방법에서도 제국 기사의 특성이 묻어나온다고 생각했다.


”정확한 표현이군. 한데 그거 아나? 장수들끼리 붙다가 이쪽이 밀린다 싶으면 다른 장수가 나와 그를 돕기도 한다는 거. 나는 이젤린 자네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싶네.“


”그러니까 만에 하나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저희들이 재빨리 튀어 나와서......“


”역시 스마트하군. 콜록콜록. 맞아. 자네들이 나와서 저들의 기사단장을 구워 먹든 삶아 먹든 하란 얘기지.“


”알겠습니다.“


”콜록콜록. 콜록콜록. 평소보다 말을 많이 했더니 기침이 멈추질 않는군. 루나!“


샬이 참모장인 루나 벨루크 대령을 불렀다.


”네 중장님.“


”여기 이젤린 소령과 그의 식구들에게 가도를 구경시켜주게. 시찰이 끝난 후에는 쉬어도 좋아. 콜록콜록.“


”네 알겠습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넵, 그럼 가보겠습니다.“


이젤린과 그녀의 일행은 샬에게 경례를 하고 천막을 나왔다. 이젤린은 쉽지 않은 미션을 맡았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평소 이렇게 변수가 많은 상황을 좋아하지 않았다. 물론 그녀가 임기응변의 달인이긴 해도, 그녀는 될 수 있다면 예측되고 이기는 싸움만을 하되 만일 그것이 여의치 않다면 최대한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이젤린 그린필드와 아벨라르의 승조원들이 이 치열한 전장에서 살아남는 방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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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멕시즐 공국 - 2 21.01.25 131 4 11쪽
51 멕시즐 공국 - 1 21.01.22 148 4 12쪽
50 제국의회 21.01.21 148 4 11쪽
49 제국 쪽 상황 +1 21.01.20 159 4 12쪽
48 교전 후 공화국 쪽 상황 21.01.19 153 4 14쪽
47 제35차 발디르 교전 - 3 21.01.18 155 4 13쪽
46 제35차 발디르 교전 - 2 +1 21.01.15 156 5 12쪽
45 제35차 발디르 교전 - 1 21.01.14 164 5 12쪽
44 임시 휴전 회담 - 3 21.01.13 154 5 11쪽
43 임시 휴전 회담 - 2 21.01.12 146 3 11쪽
» 임시 휴전 회담 - 1 21.01.11 164 3 12쪽
41 발디르 가도 +2 21.01.09 191 4 11쪽
40 새 출발 21.01.08 181 5 9쪽
39 다시, 전선으로 - 2 21.01.07 18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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