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g931님의 서재입니다.

모범 죄수 용사님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SF

완결

기하학
작품등록일 :
2022.01.08 22:22
최근연재일 :
2022.06.23 02:12
연재수 :
152 회
조회수 :
16,957
추천수 :
493
글자수 :
517,793

작성
22.01.18 22:29
조회
239
추천
6
글자
10쪽

4 협력하겠습니다 용사님

DUMMY

1.


요새는 군사 목적으로 지어졌음에도 드넓은 북부의 방어선을 총괄하기 위해 세워진 만큼 그 규모가 상당했기에 나와 예린은 생각한 것보다 편안한 숙소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게다가 요새 내에 대피하고 있던 몇몇 주민들 역시 도시를 구해준 나에게 감사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해 준 덕분에 식사 역시도 다른 기사들과 같은 짬밥이 아닌 제대로 된 요리를 먹을 수 있었다.


수십 일 간 이어진 목숨을 건 쫓고 쫓기는 추격전이 마침내 끝나자 팽팽했던 긴장의 끈이 풀린 예린은 푹신한 침대 위에서 금방 잠이 들었다.


나의 동행으로 온 그녀를 제정신이 박힌 이상 털끝이라도 건드릴 인간은 없을 것 같았으나, 인간이라는 족속들은 워낙에 비이성적이었기 때문에 나는 방에 위험에 대비할 마법과 주술 몇 가지를 건 후 요새에 있다던 도서관으로 향했다.


지금껏 방 안에서 어머니가 가져다준 책들만 읽어왔던 나에게 있어서 수백, 수천 권의 책들이 비치된 거대한 도서관은 로망 속 장소였다. 그리고 마침내 처음으로 방문해 본 도서관, 정확히는 장교용 서재는 내 예상과는 다른 의미로 마음에 들었다.


요새 내의 서재였기에 장서량도 그리 많지는 않았고, 서재의 크기 역시 그리 크지 않았으나 방 한가운데 위치한 벽난로와 주위의 소파는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과연 장교들을 위한 휴식공간도 겸한다고 하더니 안내하던 그 장교가 자신감을 보일만하군.‘


장교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서재의 상당수가 병법서와 괴물에 대한 도감이었고, 그 책들의 수준은 이천년 가까이를 수많은 세상의 책만 읽어온 내 기대에 미치기에는 부족했다. 그렇지만 간간이 섞여있는 역사서들과 통속소설들은 내 흥미를 끌기에 충분했다.


어느덧 해가 지고, 별들이 빛나는 새벽, 가속화된 사고로 책을 읽던 나한테 성주의 부관이라고 했던 남자가 다가와 소식을 알렸다.


“사도님, 부기사단장 알랭 경이 방금 막 요새에 도착해 사도님께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다만 워낙 늦은 시간이니 사도님께서 피곤하시다면 다음날 아침에 찾아뵙겠다고 하였는데 어떻게 전달하면 되겠습니까?”


“나야 문제없다네. 알랭 경이 괜찮다면 지금 바로 얘기를 시작하지.”


“예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알랭 경에게 서재로 오라고 전달하겠습니다.”


승천의 경지에 도달한 순간부터 나에게 있어 잠은 필수적인 요소가 아니었다. 이 새벽에 요새에 도착했다는 걸 보면 알렝 역시도 일정 수준 경지에 올라 몸이 피로를 거의 느끼지 않는 수준까지 도달했다는 거겠지.


장교들의 안내를 받으며 서재로 들어온 알랭 경이라는 노년의 사내는 얼굴에서부터 연륜이 드러나는 노련한 전사이자 기품이 느껴지는 기사이자 정치인이었다.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사도각하. 저는 프로방스 출신 알랭이라고 합니다. 부족한 몸이나마 부 기사단장을 맡아 기사단원들의 후방 지원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반갑군. 알랭. 내 소개야 오면서 이미 들었겠지? 그럼 바로 이번 신명에 관해 얘기해 볼까?”


생산자 없이 오직 소비자만이 존재하는 심연 수호 기사단이 그 기형적이고 비대한 규모에도 불과하고 아직까지 내부 분열이나 외국과의 갈등으로 무너지지 않은 건 눈앞의 중후한 인상의 노인의 공이 크겠지.


그렇다는 건 아무리 내가 수천 년에 걸쳐 학습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 한들, 알랭과의 대화를 빙자한 협상에서 그를 논리적으로 리드하는 건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나 역시 이런 경우를 대비해 준비한 플랜b로 갈 수밖에.


“서로 피차 바쁜 몸 아닌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예린이 받은 신명과 그에 대한 기사단의 대응은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예. 신의 사도께 구차하게 변명을 대봐야 의미가 없겠죠. 다만 이건 저희들 전체의 의견이 아니라 일부의..”


“변명 아닌 변명은 됐네. 자네들 사정이 어쨌든 일은 벌어져 예린과 함께하던 제국 측 인원과 교단 측 인원 모두가 죽었으며 내가 아니었으면 그녀 역시 죽었겠지. 다만 예린이 복수를 원하지 않는다고 하니 내가 그녀의 원한을 핑계로 자네들을 징치하는 일은 없을 거라네. 다만.”


“..”


“어차피 자네들도 내가 가호하는 예린의 앞길을 막는다는 게 불가능하다는 건 알지 않나. 이렇게 된 이상 괜히 서로 힘 빼지 말고 자네들도 우리를 따라 신명을 받드는 게 어떻겠는가?”


“물론 각하의 말씀이 맞습니다만, 그게 저희 측 입장이 쉽사리 ..”


몇십 년간 거대한 조직을 직접 관리해오던 인간이다. 그의 교활한 입이 침착하게 논리적으로 접근하게 둬서는 안됐다. 지금 나는 7요새를 구해준 은혜와 현실적인 양측의 전력 차이라는 결정적인 협상자료를 가지고 있는 이상 지금이 내 억지를 밀어 붙어야 될 타이밍이었다.


“어차피 그쪽에서 생각하고 있던 단 한 번뿐인 반격의 기회 역시 완전히 날아갔겠지.”


“!.. 그걸 각하가 어떻게 아시는지,”


‘좋아 거의 다 넘어왔군.’


“뻔하지, 제국이나 다른 왕국에서는 너희들이 괴물이 가져다주는 힘을 독점하기 위해 심연의 통로를 못 끊도록 막고 있다고 하지만 심연 근처에 와보지도 않은 것들이 할 수 있는 소리지. 애초에 사익을 위해서였다면 이런 곳에서 괴물이나 잡으며 인생을 썩히지 않았을 거고, 자네들이 진실로 우려하는 바는 심연을 닫는 순간, 닫힌 통로에서 끝도 없이 튀어나올 괴물들 때문 아닌가?“


“맞습니다. 저희 쪽 순찰자들이 가져온 정보들을 지금까지 분석한 결과 자연재해급만 4마리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승천의 경지에 이른 전사들과 비슷한 수준의 마수가 4마리라니..”


“ 그렇다고 이대로 통로를 열어 둘 수도 없는 노릇이지. 아마 자네들이 노린 건 적들이 더 늘어나기 전, [경험치]라는 걸 이용해 기사단의 초월자들을 승천의 경지에 끌어올려 마지막 일전을 준비하겠다는 거겠지? 문제는 그 누구도 더 높은 상승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거겠지.”


“거의 다 맞추셨군요. 예. 각하의 말 그대로입니다.”


승천의 경지라는 건 단순히 신체능력이 강해진다 해서 오를 수 있는 게 아니다. 깨달음을 얻느냐, 못 얻느냐 이 단 한 가지의 차이점이 초월자와 승천자 사이의 넘볼 수 없는 절대적인 격차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도달하지 못한 자들이 그 깨달음을 알 리가 없지,’


“자네들의 꿈은 안타깝게도 이룰 수 없다. 그러니 나라는 희망에 몸을 맡기게.”


“저 역시도 세상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강림하신 사도님의 뜻을 따르고 싶으나, 저희 기사단 쪽 상황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최근 기사단의 내부가 두 개의 파벌로 갈라진 건 알고 계십니까?”


“아니. 나한테 포로로 잡혔던 두 친구는 일절 모르고 있던데.”


“다행히 아직 거기까지 퍼지지는 않았군요. 현재 기사단 본부, 그중에서도 고위기사 이상의 장교들 사이에서 저와 기사단장을 따르며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유화파와 젊은 초월자들을 중심으로 뭉친 과격파의 갈등이 점차 깊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습격 역시도 그쪽 파벌의 일원들이 주도한 일이었고요.”


“자네와 기사단장 간의 알력 다툼도 아니고 젊은 애송이들과 자네들이?”


“그것이 그 치들이 그 방법은 모르겠습니다만, 천상의 집정관들에게 직접 가르침을 사사했다고 하더군요. [경험치]로 부족한 신체적 자질을 만족시키고 위대한 집정관들의 인도로 승천의 경지에 올라 스스로의 힘으로 세상을 구하겠다는 그들의 말에 상당히 많은 고위기사들이 긍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빌어먹을 집정관 놈들은 어떻게 내 인생에 단 한 번도 도움이 된 적이 없냐.’


내가 알랭을 말로 밀어붙이는 동안에도 별다른 말없이 묵묵히 듣고 있다 이런 폭탄을 터뜨리다니 과연 늙은 여우는 만만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망할 집정관 놈들은 침식 때문에 아래 세상에 제대로 강림하지도 못하는 것들이 이미 내가 단독으로 맡기로 한 일에 함부로 간섭하는 것도 모자라 여신이 직접 고른 순례자를 무슨 이유로 건드렸는지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젊은 기사들 사이에서 아무런 대처도 하지 않고 방관만 하고 있는 천상에 대한 적대감이 꽤 크다고 하지 않았나?”


“한창 힘에 미쳐있을 나이에 전설 속 승천자들이 나서서 직접 무술을 가르쳐 준다고 하니, 금방 넘어갔겠죠. 저라도 그랬을 겁니다.”


기사단이라는 든든한 조력자를 얻으려다가 이유를 알 수 없으나 순례자에게 적의를 가진 미지의 집정관들이란 혹만 붙은 상황. 그나마 사전에 이런 중대한 위협이 있다는 정보를 알아차린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러면 일단 자네와 나, 서로가 개인적으로나마 협력하는 걸로 하는 게 났겠군.”


“정말 송구스럽군요. 제 7요새를 구해주신 은혜와 저희가 끼친 피해를 겨우 이 정도로 밖에 돌려드릴 수 없다니.”


“됐다. 어차피 요새를 구한 건 무언가 이익을 얻기 위해 한 일도 아니었고, 피해는 내가 아닌 예린에게 직접 갚아라.”


물론 내가 가진 명분과 힘의 차이를 생각하면 좀 더 얻어낼 수 있을 것이고, 상대도 그 정도는 용납하겠지만 어차피 본래 목표는 기사단과의 연을 맺고 극비 정보를 수집하는 거였으니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그런 의미에서 제국과 시간의 교단에 대한 정보를 좀 알 수 있을까?”


“어떤 정보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봐도 둘 다 수상하단 말이야. 혹시 이들이 심연에 넘어간 건 아닌가 해서 말이야.”


내 말에 알랭이 정색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여기서 말할 수 있는 주제는 아니군요. 자리를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작가의말

오늘은 설명충 + 떡밥 밖에 없는 회차였네요..


다음 화 부터는 다시 열심히 내용전개로 들어가겠습니다!


오늘도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모범 죄수 용사님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35 12. 빛이 있으리 - 3 22.02.16 111 6 10쪽
34 12. 빛이 있으리 - 2 22.02.15 114 5 10쪽
33 12. 빛이 있으리 - 1 22.02.14 114 4 12쪽
32 11. 버리지 않겠습니다. 용사님 - 3 (수정완료) 22.02.12 117 5 10쪽
31 11. 버리지 않겠습니다. 용사님 - 2 22.02.11 112 5 11쪽
30 11. 버리지 않겠습니다. 용사님 - 1 22.02.10 112 5 11쪽
29 10. 믿고있습니다 용사님 - 4 22.02.09 116 4 10쪽
28 10. 믿고있습니다 용사님 - 3 (오타수정) 22.02.08 121 6 10쪽
27 10. 믿고있습니다 용사님 - 2 22.02.07 115 4 10쪽
26 10. 믿고있습니다 용사님 - 1 22.02.05 131 4 11쪽
25 9. 오랜만입니다 용사님 - 2 22.02.04 150 4 10쪽
24 9. 오랜만입니다 용사님 - 1 22.02.03 147 4 11쪽
23 8. 폭풍 속으로 - 4 22.02.02 138 4 10쪽
22 8. 폭풍 속으로 - 3 +1 22.02.01 143 4 11쪽
21 8. 폭풍 속으로 - 2 22.01.31 139 4 10쪽
20 8. 폭풍 속으로 - 1 +2 22.01.29 157 4 11쪽
19 7. 용사님 나가신다 - 3 22.01.28 152 4 9쪽
18 7. 용사님 나가신다 - 2 22.01.28 157 5 7쪽
17 7. 용사님 나가신다 - 1 22.01.26 170 4 11쪽
16 6. 예의를 가르쳐주세요 용사님 - 3 22.01.25 179 4 10쪽
15 6. 예의를 가르쳐주세요 용사님 - 2 22.01.24 176 5 9쪽
14 6. 예의를 가르쳐주세요 용사님 - 1 22.01.23 179 5 10쪽
13 5 오른팔은 어디가셨나요 용사님? - 4 22.01.22 183 5 9쪽
12 5 오른팔은 어디가셨나요 용사님? - 3 22.01.21 192 5 10쪽
11 5 오른팔은 어디가셨나요 용사님? -2 22.01.20 191 5 11쪽
10 5. 오른팔은 어디가셨나요 용사님? - 1 22.01.19 219 5 9쪽
» 4 협력하겠습니다 용사님 22.01.18 240 6 10쪽
8 3 시정하겠습니다 용사님 - 1 22.01.17 271 5 11쪽
7 2. 살려주실 수 있나요 용사님? - 3 22.01.14 283 5 9쪽
6 2. 살려주실 수 있나요 용사님? - 2 22.01.13 335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