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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개.미

드루이드 마왕님은 평화로운 삶을 꿈꾼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일하는개미
작품등록일 :
2020.05.11 11:18
최근연재일 :
2020.05.19 19:06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1,936
추천수 :
111
글자수 :
68,742

작성
20.05.13 19:07
조회
132
추천
8
글자
9쪽

숲속의 마왕님(5)

DUMMY

다 무너진 폐허 위에서 한 여인이 하늘을 바라보며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당신은. 항상 이런 밤하늘을 보고 있었나요?”


어두운 피부에 뾰족한 귀, 새하얀 머리카락은 달빛을 머금은 듯,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달의 요정이라고도 불리는 흑요정. 아인족이었다.


“저는...밤하늘을 보는 게 태어나서 처음이에요. 제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당신은 모르실거에요.”


거의 헐벗은 거나 다름없는 누더기 옷을 걸친 탓에 그녀의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지만 결코 천박한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안쓰러웠다.

상처투성이에 고름이 흐르고 있는 몸. 오랫동안 족쇄를 차고 다니던 손에는 흉터가 남아있었다.


“이제는 역겨운 인간들도, 갑갑한 천장도 없어요. 그저 끝없는 하늘에 펼처진 구름과 달님, 별님들.....”


그녀가 나를 바라보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지만 추하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웠다.


잠시 숨을 고르고, 눈물을 닦아낸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어두운 밤마저도 대낮처럼 환하게 만들 것만 같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고마워요. 나의 마왕님.”


깊은 어둠속에서 의식이 깨어났다.


눈을 뜨자 캄캄한 어둠속에서 나무로 이루어진 천장이 희미하게 보였다.

주위가 어두운 것으로 보아 아직 깊은 새벽이었다.


“으으으....흑..흐윽”


뭐 때문에 깨어난 것인지 곰곰이 생각하던 찰나, 2층에서 울음 섞인 신음이 들려왔다.

나는 놀란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층으로 올라갔다.


그곳에는 설아가 바짝 몸을 웅크린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가까이 가져가자 그녀의 얼굴이 온통 땀으로 흥건하게 젖은 것이 보였고 동시에 톡 쏘는 듯한 시큼한 냄새가 풍겨져 왔다.


‘토를 했구나...’


이마를 어루만져 보니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상당히 심각한 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추운 듯 몸을 떨었다.

흔한 식중독 증상, 무언가 먹어선 안 될 걸 먹었던 걸까?


“추워..아파아...”


바싹 마른 입술로 연신 중얼거리는 그녀의 모습은 살짝 위태로워 보였다.

당장에 쓸 수 있는 약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나는 그녀를 안아들고 1층으로 내려갔다.


“하룬.”

“우웅?”


하룬을 부르자 녀석은 잠에 취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았다.


“설아가 아파. 나는 불을 피워야 하니까 잠깐 데리고 있어”


나는 설아를 하룬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갔다.

만약을 대비해 호수 근처에 심어두었던 시스투스를 꺾어와 불을 지폈다


그 사이, 하룬이 눈치껏 설아를 입에 물고 밖으로 나와 불가에 내려놓았다.


“추워...”

“괜찮아, 조금만 참아.”


연신 헛소리를 중얼거리는 설아를 달래며 허리춤에 차고있던 철갑나무 껍질로 만든 물주머니를 꺼내들었다.


열이 심하지만 추위를 느낀다는 것은 몸에 있는 열이 빠져나간다는 소리였다.

때문에 열을 내리기 보다는 몸을 따뜻하게 해주고 수분을 보충해주며 그녀가 버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했다.


“이거 마셔.”


입에 대고 물을 흘려 넣자 그녀는 의식이 흐릿한 상황에서도 본능적으로 그것을 받아 마셨다.


“...저...왜.........한 걸까요..?..”


무엇을 말 하고 싶은 것일까? 이따금씩 중얼거리는 말이 신경 쓰였지만 도무지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나는 그저, 그녀가 잘 이겨내길 바라며, 이따금씩 아파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그녀의 곁에 앉아서 동이 틀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



“으음..”


설아가 눈을 뜨자 커다란 아치모양의 입구가 보였다.

그녀의 몸에는 어디서 구한 것인지 모를 짐승의 털가죽이 덮여 있었고

옆에는 다 타버린 모닥불이 약간의 온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신의 이마를 매만졌다.


커다란 쿠샨의 손,

아파서 신음을 흘릴 때마다 조심스럽게 어루만져주던 그의 손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상냥했다.


설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손길에 기분이 좋다고 느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인간들의 손에서 노예로 길러졌다.

철저하게 짓밟혀, 가축으로서 훈련받아왔다.

단순한 노리개로 실컷 희롱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다가,

질리면 다른 곳을 팔려나갔다.


그런 지독한 삶 속에서. 설아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음에 벽을 세웠다.


그 누구도 믿을 수 없어. 어차피 모두들 나를 짓밟으며 쾌락을 느끼는 괴물들이야.


비참한 삶은 돌고 돌아, 어떤 어리숙한 주인에게 팔려간 날. 설아는 주인이 방심한 틈을 타 도망쳤다.


그때 그녀는 다짐했다.

다시는 붙잡히지 않겠다고, 오직 스스로의 힘만으로, 새롭게 살아보겠다고.


하지만 이 험한 세상에서 무기력한 수인족이 홀로 살아가기란 너무나도 벅찬 이야기였다.

굶주림에 지쳐, 마물들을 피해서, 인간에게 쫓겨... 숱한 위기를 겪은 끝에. 그녀는 결국 어떤 이상한 인간에게 붙잡혔다.


붉게 물든 머리에 보기만 해도 섬뜩한 뿔을 지닌 그 놈은 사악한 인간들의 본 모습은 이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모습이었다.


설아는 그가 너무나도 무서웠다.

다른 인간들처럼 자신을 가두고 짓밟을 것만 같아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그는, 조금 특별했다.


“약속할게 해코지하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겁먹지 마”


“가는 동안 잘 부탁해.”


설아는 그런 상냥한 말을 처음 들어봤다.

분명 무섭게 생겼고, 곁에는 험악한 곰을 데리고 다녔지만...그래도 그동안 봐 왔던 인간들과는 달랐다.


솔직히 기뻤다.

하지만... 마음의 벽은 두터웠다.

오랫동안 인간에게 당해온 기억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좀처럼 경계를 풀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약한 모습을 보이면 잡아먹힐까 봐,...버려질까 봐 무서웠다.


그날 밤, 설아는 극심한 복통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살고 싶어서 이것저것 주워 먹었던 게 문제였다.


온 몸이 추웠다, 아무리 몸을 웅크려 봐도 뼈 속까지 덜덜 떨려 견딜 수가 없었다. 열도 심했다. 머리가 너무 아파 쪼개질 것만 같았다.


그녀는 너무 억울했다.


‘그럼 어쩌라고, 안 먹으면 굶어죽고 먹으면 아파서 죽고 나보고 어쩌란 말이야...’


운면이 어떻게든 죽으라고 등을 떠미는 것만 같아, 서러웠다.

그런 생각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때, 그녀의 이마 위로 누군가의 손이 닿았다.


흐릿한 의식 속에서 그녀는 분명이 느꼈다.

걱정스레 이마를 어루만지고

아파서 외마디 신음을 흘릴 때 마다, 괜찮다며 다독여주는 그 손길을...


그녀는 쿠샨이 자신을 보살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설아는 혼란스러웠다.

타인은 믿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쿠샨의 손길은 따뜻했다.....





***


“좋아, 다 얻었네.”


나는 마지막으로 수확한 씨앗을 주머니에 집어넣고 집으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가자 잠에서 깨어난 설아가 보였다.


나는 그녀의 곁에 앉아, 말을 건넸다.


“잘 잤어? 몸은 좀 어때?”

“많이 좋아졌어요.”


설아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살짝 웃어보였다.


뭐랄까, 그녀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어제는 살짝 흥분한 것처럼 예민하고 틱틱거리는 모습이었다면 오늘은 살짝 누그러진 듯한 모습이었다.


‘기운이 없어서 그런가?’


몸이 좀 나았다고 하니 한시름 놓았지만 뭔가 어제의 설아와는 다른 모습에 마음 한 켠에 자리 잡은 걱정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럴 때는 밥을 먹는 것이 최고다. 자고로 모든 생명체는 먹어야 사는 법.

뒤집어 속을 가라앉히고 다시 기운을 차리게 하려면 뭐라도 조금 먹어야 한다.


“설아야, 밥 먹을 수 있겠어? 열매로 수프를 끓어놨는데 조금이라도 먹었으면 좋겠어.”

“네.”


설아는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좀처럼 몸을 일으키지 못했다.

저 상태로는 일어나더라도 금방 넘어질 것만 같아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얼른 그녀에게 다가가 살며시 안아 들었다.


“아..”


당황해 하며 나를 올려다보더니 이내 나에게 머리를 기대고는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픈 애한테 실례지만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자꾸만 미소가 지어졌다.


그녀를 안아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설아가 잠든 사이 이것저것 많이 해 놓았다.

밤새 다 자란 식물들을 수확했으며 통발을 만들어 물고기 몇 마리를 잡았다.

무엇보다도 하룬이 잡아온 멧돼지가 가장 큰 수확이었다.


고기가 생겼으니 수프를 끓일 때 조금 넣어볼까 생각했었지만 기름진 음식이 아픈 설아에게는 해로울 것 같아서 포기했다.

그래도 푹 익은 과육과 담백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나는 수프는 나쁘지 않은 아침식사가 될 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그릇에 수프를 푸짐하게 담아주자 설아는 그릇을 받아들고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한 모금, 두 모금. 어느새 그릇을 깔끔히 비운 설아는 그릇을 내려놓고 나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왜? 더 줄까?”

“아니요...저기 쿠샨.”

“응?”

“고마워요.”


잔잔한 목소리로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그녀는 누군가의 모습과 닮았다.

나는 묘한 두근거림을 애써 숨기며 덤덤하게 대답했다.


“고맙다니, 새삼스럽게 뭘..”

“아뇨.. 정말, 고마워요.”


수줍게 미소를 지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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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요정들의 요새(3) 20.05.18 72 3 12쪽
12 요정들의 요새(2) +1 20.05.17 80 3 9쪽
11 요정들의 요새(1) 20.05.17 95 2 12쪽
10 숲 너머로(4) +1 20.05.16 96 5 17쪽
9 숲 너머로(3) +3 20.05.15 95 4 9쪽
8 숲 너머로(2) +1 20.05.15 106 5 12쪽
7 숲 너머로(1) +1 20.05.14 108 6 10쪽
» 숲속의 마왕님(5) +2 20.05.13 133 8 9쪽
5 숲속의 마왕님(4) +1 20.05.13 165 5 12쪽
4 숲속의 마왕님(3) 20.05.12 178 9 12쪽
3 숲속의 마왕님(2) 20.05.12 203 12 14쪽
2 숲속의 마왕님(1) 20.05.11 262 17 14쪽
1 프롤로그 깨어난 마왕님 +1 20.05.11 341 3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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