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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를 날로 먹는 쉐프님

웹소설 > 작가연재 > 판타지, 현대판타지

이한이™
작품등록일 :
2023.04.04 13:59
최근연재일 :
2023.04.17 08:0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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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6,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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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04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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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1화. 장사 시작합니다

DUMMY

“······.”


눈을 뜨자 처음 보는 방이었다.

그러니까, 말 그대로 진짜 처음 보는 방.


‘여긴 뭐지?’


천장은 나무로 깐 듯했으며, 내벽 마감도 나무, 마루도 나무.

방에 진열된 옷장이나 탁자, 의자 등도 모조리 나무였다. 어지간한 나무 매니아가 아니고서야 이 정도까지 할까.


‘대체 뭔데?’


하지만 더 놀라운 건 화장대에 놓인 거울에 시선이 닿았을 때였다.


“머리카락?”


갈색빛 머리카락이 풍성한 남자 한 명이 이쪽을 응시하고 있었다. 믿기지 않아 머리카락을 움켜쥐자, 분명했다.

뿌리에서부터 느껴지는 이 탄탄한 질감.

내 머리카락이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왜냐고?

나는 빡빡이였으니까.

서른 무렵부터 급격하게 진행된 탈모로 일해, 나는 대머리로 전락하지 않고 대머리를 받아들이겠다며 다 밀고 다녔으니까.

그게 나, 안태림이라는 요리사의 마스코트이기도 했고.


‘맞아, 나 안태림이었지. 스타 쉐프이자 세계 최고의 푸드 컨설턴트, 안태림.’


대학생 무렵 식당 알바를 계기로 요리를 시작해, 돈을 악착같이 긁어모아 졸업과 동시에 요리 사업에 뛰어들었다.

20대 후반이 되었을 때는 이미 모르는 사람이 없는 유명 인사가, 30대 들어서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해 전국에 내 이름을 단 프랜차이즈가 깔렸다.


-안스커피

-안스버거

-안스라멘

-안스 차이나 키친

-안씨네 한식 주방


프랜차이즈의 수장이 된 뒤로도 요리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푸드 컨설턴트로 활동하며 한국 요식업 문화 자체를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발로 뛰었지.

중년 무렵, 요식업계에서 안태림이라는 내 이름 석 자는 이미 전설이었다.

그러다가 뭐였더라.


‘아, 기억났다.’


쉰 즈음에 손목을 다쳤다.

손목이 덜덜 떨려 부엌칼을 못 쥐고, 프라이팬도 못 들었다.

하다못해 젓가락질조차, 숟가락질조차 제대로 못 해, 음식을 먹을 때마다 질질 흘리는 치욕을 겪어야만 했다.


‘거기에서 끝인 줄 알았는데.’


그렇게 평생 요리는 못할 줄 알았는데.

매스컴이 무어라 하든 은거하며 세상을 저주했는데.

의욕을 잃고 요리사로서 살아 있는 시체가 되어, 신을 원망하며 죽을 날만 기다려 왔는데.


‘이 몸은 대체? 이게 나라고?’


새로운 몸이 눈앞에 있었다.

눈앞의 갈색 머리 남자는 인상이 꽤 차가웠지만, 분명 잘생겼다.

얼굴만 봐도 비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던 나와는 다르다.

무엇보다도 모발이 풍성하고 가닥 하나하나의 질도 좋다.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원래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


‘이놈은 대체.’


그 순간이었다.


“윽!”


전기에 감전된 듯 짜릿한 통증과 함께 머릿속으로 생전 처음 보는 기억이 엄습했다.


‘이건.’


이름은 에밀 아마드.

홀몸으로 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님 아래에서 외동아들로 태어나, 어렸을 때는 성실하게 식당 일을 도왔지만······ 어머님이 돌아가신 뒤로 급격히 타락.

괴로움을 잊고 싶다는 명목하에 가게 문을 닫아두고 술만 마시고 다녔다.

바닥에 침을 뱉거나 주위 사람들을 째려보는 건 일상. 그러다가 가볍게 주먹싸움을 벌이기도 하고.

영지에서 공인된 개망나니, 그게 에밀 아마드였다.


‘한심하군.’


말조차 섞기 싫은 부류다.

그의 기억이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눈살이 찌푸려졌다.

꼴에 식당 주인이라지만, 안타깝게도 기억에 의하면 물려받은 식당에는 손님 발길이 끊긴 지 오래다.


‘좋아, 대충 알겠다. 외딴 땅에서 밑바닥 인생으로 재시작. 이 말씀이지.’


웃긴 일이다.

어떤 연유로 일어난 일인지는 몰라도, 이 세상이 어떤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몸은 축복이다!’


손목이 자유롭게 움직였다.

한평생 그를 괴롭혔던 통증은 없었다. 한없이 통쾌한 개방감이 그를 감쌌다.

요리사로써 부활했다.

이 몸의 주인은 한심했지만, 이 몸에게는 한없이 감사하다.

당장이라도 부엌칼을 쥐고 싶어 심장이 터들 듯 쿵쾅쿵쾅 뛰었다.

당장이라도 요리해.

뭐가 됐든, 당장 요리해.

10년 넘게 참아야만 했던 충동이 그를 부추겼다.


‘좋아, 식당 주인이라고 했지? 시설부터 한번 볼까?’


기억에 따르면, 그가 사는 집은 2층 건물로서 2층을 주거지, 1층을 식당으로 활용하는 구조였다.

끼익.

침실을 나와 1층으로 내려가자, 곧바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일반적인 식당이라기보다는, 주점. 그중에서도 펍에 가깝군.’


판타지에서 보던 그것이었다.

매의 눈으로 식당 홀부터 주방까지 꼼꼼히 살피며 걷기를 잠시. 안태림, 아니, 에밀의 입에서 의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썩어도 식당 집 아들이라는 건가?”


바닥부터 찬장까지 먼지 하나 없이 깔끔했다. 하루 이틀만 방치해도 금방 더러운 티가 나는 주방마저도 광택이 흘렀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꼼꼼하게 쓸고 닦은 결과물이리라.


‘망나니라고는 하나, 어머님에게 물려받은 가르침까지 잊어버릴 정도로 전락하진 않았다는 거군.’


그래도 상황이 나쁘긴 마찬가지다.

일단 손님이 없으니까.

쟁여놓은 생활비는······ 한 달 치가 채 남지 않았군. 이대로면 빚을 지든 가게를 팔든 해야하리라.

가진 재료는 기본적인 수준.

사실상 맨바닥이다. 어쩌면 최악의 상황이라고 봐도 좋았다.

하지만.


‘내 대학 시절에 비하면 월등히 나아.’


안태림의 눈에는 오르막길만이 보였다.

자기 명의로 된 업장이 있다. 요리도구도 대강 갖춰져 있다.

부족한 건 쉐프의 자질뿐.

하지만 이제 됐다. 이 몸에 깃든 건 한국 최고의 스타 쉐프이자 또 최고의 푸드 컨설턴트인 안태림이니까!

망해가는 가게도 조언 한두 마디로 인파행렬을 세웠던 게 그다.

자기 손으로 자기 가게를 못 고치겠나? 어떻게든 손님만 끌어오면 된다.


‘손님들이 망해가는 가게에 제 발로 오진 않겠고.’


요리하고 싶다는, 요리를 먹이고 싶다는 충동을 더는 참을 수 없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이쪽에서 손님들에게 한발 다가가 볼까. 조금 폭력적인 방식으로.


*


기억을 거슬러 가 보면, 안태림이 처음으로 프로로서 요리를 접했던 건 대학생 시절부터였다.


-태림아, 학교 축제 때 요리해서 팔 건데, 너도 좀 도와라.


축제에서 과 주점 주방을 운영했던 것.

재료는 열악하고 시설도 허접했지만, 대학생들에게는 다 방법이 있었다.


-음식이란 건 기름이랑 볶으면 대충 다 맛있어지는 법이거든.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기름과 소스에 대충 볶는 것.

대학생들이니만큼 손재주도 턱없이 모자라지만, 축제 분위기에 힘입어 하루 장사 팔아먹을 정도는 되었다.


“영차.”


안태림이 재료가 든 봉투를 들고 가게 바깥으로 나왔다.

시설은 당연히 주방이 더 좋지만, 오늘만큼은 이쪽에서 손님들에게 한발 다가갈 필요가 있으니까.

막상 가게 바깥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지만.

그보다는, 사람들이 에밀에게 시선도 주지 않는다에 가까웠고.


“저 새끼. 살아 있었나?”

“콱 죽어버리지.”

“뭐야, 지 꼴에 요리를 한다고? 관둔 거 아니었어?”


들리라는 듯 경멸의 시선을 흘리는 이들도 간간히 존재했다.

안태림은 신경 쓰지 않았다. 몇십 분만 지나도 저들에게 군침을 질질 흘리게 할 자신이 있으니까.


‘재료는 이 정도면 충분하고.’


주재료는 크게 셋이었다.

대충 손질해서 덩어리감이 느껴지는 생채소들을 버무려 둔 믹스.

그리고 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방에 있었던 소스. 적당히 달달하면서도 감칠맛이 나는 검은색 소스가 찬장에 있었다.


‘간장이나 굴소스가 없는 건 아쉽지만,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주재료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번 장사의 핵심이 될 비장의 재료도 챙겼다. 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리는 병 하나. 이게 오늘 장사의 성패를 가르리라.


“너만 믿는다.”


조리 도구는 철판이었다. 가게 주방에 있던 걸 대충 집어 왔다.

마지막으로 버너.

당연하지만 이쪽 세계에서 그런 정교한 기계를 기대하긴 어렵고, 괜찮은 대체재를 찾았다.


“점화석이라.”


평평하니 넓적한 돌덩어리인데, 위에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판타지네.”


자체적으로 화염을 내뿜는 술식과 마나를 머금고 있어서, 한번 가동하면 몇 시간은 족히 타오른다고 했던가?

점화석과는 반대로 냉기를 뿜어내는 물건도 존재하는 모양.

이쪽 세계에서는 마법과 생활용품을 접목한 마도구가 흔하다고 하는데, 마치 판타지 부탄가스 같은 느낌.

용의 숨결······ 이 아니라, 토치도 존재했다.

당연히 기계장치가 아닌 마법의 힘으로 작동하는 토치.

탕!

버튼을 누르자, 점화석에서 순식간에 열이 뿜어져 나오더니 철판을 달군 열감이 에밀의 안면까지 화끈하게 올라왔다.


‘화력은 딱 적당하군.’


불이 올랐다면 지금부터는 요리 시작이다.

쪼륵.

살짝 달아오른 철판 위로 식용유를 가볍게 두르자, 이내 가열된 기름이 고소한 향기를 풍겼다.

땅콩기름의 향을 품고 있으면서도 맛은 무겁지 않고 가볍다.

기름이 살짝 달궈진 것 같다면,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가 볼까.’


에밀은 무자비하게 야채를 때려 박았다.

치이이이이이익!

볶는다기보다는 튀김 소리에 가까운 청각적 폭력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땅콩 향기가 한층 더 폭증했다.


“저거 뭐야?”

“에밀, 저 주정뱅이가 요리를 다 하나?”

“냄새는 좋은데.”


지나가던 행인들의 시선이 순간적으로 가게 앞에 집중됐다.

1차 목표는 달성했다.

일단 주의를 사로잡았다면, 지금부터는 한번 모인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끌어야 할 순간이다.

스릉.

칼날 두 자루를 꺼낸 안태림이 휙휙 서커스 묘기를 부리듯 돌렸다.


“뭐야?”


식겁하는 눈길이 보였지만, 그게 안태림에게는 오히려 기분 좋았다.


‘이걸 다시 하게 될 줄이야.’


안태림은 쉐프다. 하지만 그의 이름 앞에는 다른 수식어가 하나 더 따랐으니.


-퍼포먼스가 대단한 쉐프

-요리를 쇼로 승화시킨 남자


엔터테이너가 그것이었다.

사람 눈길 사로잡는 데 있어서 그를 넘어서는 사람은 한반도에 없었다.

철판요리용 뒤집개가 있으면 좋겠지만, 일단은 없는대로 진짜 칼을 챙겼다.


‘이거면 일단은 충분하지.’


안태림의 시선이 번뜩인 찰나였다.

타다다다다다다다다닥!

칼질이 폭발했다.

공장 기계처럼 정교한 손질로 재빠르게 썰어낸 야채들이 한입 사이즈로 잘게 토막 나며 허공을 날았다.

하지만 무엇 하나 철판 바깥으로는 튀어 나가지는 않았다.

그 위로 쏟아지는 검은색 소스!

치이이익!

한순간에 쏟아진 묘기와도 같은 광경에 작게 감탄이 들려왔다.


“에밀 저 새끼가 저런 걸 할 줄 알았나?”


이목 자체는 충분히 끌었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다.

여기까지는 아무나 할 수 있는 거고, 임팩트를 선사할 비장의 한 수를 쟁여놨다.


‘돈이 조금 아깝긴 하지만, 아낄 때가 아니지.’


에밀이 투명한 액체가 든 병을 꺼내들더니, 음식 위로 가볍게 둘렀다.

그 위로 마법 토치를 기울인 찰나였다.

화르르르륵!

철판에서 하늘을 뚫을 듯 폭발적인 화염이 터져 나왔다.


“꺄아아아!”

“사고 났나?”

“저 새끼가 뭘 하나 했더니 기어코!”


어느새 이쪽을 구경하는 몇몇 행인들 사이에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비친 에밀의 표정은 태연하기 짝이 없었다. 오히려 작게나마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면 모를까.


“어, 어? 괜찮은 거 맞지?”


마치 마술이라도 본 것처럼 두근두근 심장을 죄는 관객들.

그것을 슬쩍 떠본 에밀이 미소 지었다.


‘역시. 기억이 맞았어. 플람베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다.’


플람베.

철판요리의 꽃이라고 불리는 그 기법이었다.

알콜에 불을 붙여 요리의 잡내를 제거하며, 동시에 불맛을 입히는 기법.

하지만 조리법으로서의 기능 이상으로 포포먼스로써 시각적인 임팩트가 강렬한 그것.


‘지구였다면 이 정도는 흔한 퍼포먼스이겠거니 하고 넘겼겠지만, 이 판타지 세계에서는 다르지.’


그의 오리지널이 된다.

철판요리로 장사했던 20대 시절, 수도 없이 시전하며 그의 트레이드마크로 자리잡았던 이 플람베가 말이다.

자, 대충 밑밥이 깔렸다.

태생이 볶음요리답게 냄새는 강렬하다.

재료는 부실했지만, 국가 단위로 먹히는 스타쉐프의 손맛에 지구 단위로 먹히는 레시피답게 요리의 맛도 충실.

시각적인 효과? 말해 뭐하나. 이런 건 평생 못 봤을 거다!

챙챙!

칼을 신호탄처럼 두드린 에밀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장사 시작합니다!”


꿀꺽.

군침 넘어가는 모양새가 저 멀리서 눈에 들어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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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이런 변경 영지에서 이 정도 수준의 요리 23.04.14 341 9 12쪽
11 11화. 질긴 고기와 육즙의 역학관계 +2 23.04.13 358 8 15쪽
10 10화. 고기에 무슨 장난을 치는 거야 +3 23.04.12 365 9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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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8화. 호부 밑에 견자 +1 23.04.10 399 7 12쪽
7 7화. 썩기 직전의 과일 +1 23.04.08 41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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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2화. 아직 안 죽었구나 +1 23.04.04 521 11 12쪽
» 1화. 장사 시작합니다 +1 23.04.04 670 1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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