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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님의 서재입니다.

이세계를 날로 먹는 쉐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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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이™
작품등록일 :
2023.04.04 13:59
최근연재일 :
2023.04.17 08:05
연재수 :
1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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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6,0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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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4.12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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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10화. 고기에 무슨 장난을 치는 거야

DUMMY

“요리 경연 대회의 참가자들은 호령에 따라 앞으로 나오십시오!”


진행자가 마이크(마법으로 만든)를 쥐고 쇳가루 끓는 목소리로 외치자, 이내 네 명의 남자가 단상 위로 올라섰다.


“빈스 영지의 가장 명예롭고 큰 여관, 라비긴의 대표 조리사, 리우칸 와퍼!”


처음으로 올라선 남자는 덩치가 크고 후덕한 사람이었다.

고급 보디 그 자체.

단순히 뚱뚱할 뿐만 아니라 부푼 옷감 아래로 탄탄한 근육이 느껴지는데, 턱수염이 잘 발달해서 그런지 멀리서 봐도 인상이 탁 박혔다.


“지금까지 먹어온 음식의 양으로 승부의 행방을 가른다면, 우승자는 단연 이 남자다! 리우칸 와퍼!”


마을 광장에 나열한 천 명이 넘는 관중들에게서 거센 환호성이 터졌다.


“리우칸!”

“네 요리는 빈스 영지 최고다!”


인망도 좋은지 호응이 굉장하다.

그다음으로 올라온 이는 이디아와는 정반대로 말라깽이였으며, 체격에 걸맞게 존재감이 유령같이 흐릿했다.

이름도 잘 들리지 않을 정도.

그리고.


“수도의 명문 하르스타 요리 학교를 아는가!”


다음으로 가장 거센 목소리와 함께 올라선 이는, 에밀의 눈에도 썩 선명한 코를 달고 있었다.


“최고의 요리사를 연달아 배출한 하르스타가 배출한 또 다른 자랑! 나아가 빈스 영지의 식문화를 책임질 남자! 잡화상 조제프의 아들!”


그 화려하기 짝이 없는 호명 뒤에 이어진 이름은.


“아르노! 베-르디에!”


그 녀석이었다.

놈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개선장군처럼 팔을 휘저었다. 마치 우승이 확정되어 있기라도 한 것처럼.


‘신나셨군.’


유력한 우승후보라고 했던가?

이번 감사절 요리 대회에는 이례적으로 적은 수의 참가자만 신청했다고 하였다.


[아르노 때문일 거예요.]


미리암의 해설이 있었다.


[전문적으로 배운 사람과 안 배운 사람, 그것도 수도의 유명 학교를 거친 사람은 차원이 다르거든요. 그쪽 띄워줄 카펫이 되고 싶지 않은 거죠.]


이 영지 사람들, 생각보다 근성이 없군.

그 순간, 아르노가 에밀과 시선을 마주치더니 혀를 쯧 찼다. 마치 격이 안 맞는 자가 같은 선에 서 있다는 게 한없이 불쾌하다는 듯.


“주시죠.”

“어? 어. 이러시면.”


그리고는 진행자에게 걸어가서 마이크를 빼앗고는 말했다.


“전 오늘, 이 자리에 우승하기 위해서 나온 게 아닙니다.”

“······!”


아르노 베르디에의 시작부터 오만한 한마디에 군중이 긴장에 빠졌다. 다음으로 무슨 말을 하려나 집중한 찰나였다.


‘나?’


그가 에밀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


“이 자리에 설 자격이 없는 한 사람을 짓밟기 위해서 왔지요. 우리 품격 있는 공동체와 함께하기에는 너무나도 추악한 한 모지리를, 제 손으로 직접 떨어뜨리기 위해서 말입니다.”


아하, 왜 거창하게 나서나 했더니.

에밀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이유란 말이지?’


이 애송이의 자만심은 마음에 들지 않지만, 쇼맨쉽은 잘 해줬다.

자못 요리 경연 대회에서 이 정도는 해 줘야지. 잘못하면 심심할 뻔했는데. 봐라, 벌써 관객들의 몰입이 달라지지 않았나.

가만, 나도 이렇게 주목을 받아먹기만 할 게 아니라.


“저, 이러시면 안 되는데.”

“내놔.”


안절부절 못 하던 진행자를 밀치고 난입한 에밀이, 이번에는 아르노의 마이크를 빼앗듯 가로채며 말했다.


“하르스타인지 부루스타인지, 그 고매한 학교에서 신입생들 인성 교육은 생략했나 봅니다.”

“······!”


다시 한번 관중들 사이로 놀란 기색이 번져나갔다.

눈앞으로 아르노가 이를 뿌득 갈았다. 마음에 드는 반응이다. 에밀이 킥킥 웃으며 덧붙였다.


“명문 학교 학생이고 부잣집 도련님이고 유망주고 나발이고, 요리는 잘하는 사람이 잘하는 거죠.”


다음 순간, 아르노를 빤히 응시한 에밀이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자기 목을 그었다.


“허접.”


그 순간이었다.


“에밀!”

“신성한 감사절에 무슨 짓이냐!!”

“우우우우우!”


관중들 사이에서 야유가 번져나갔다. 마치 선제 도발한 아르노를 선역으로, 받아친 에밀을 악역으로 간주한 것처럼.

그리고 이는.


‘이 분위기지.’


정확하게 에밀이 바라는 바였다.

원래 티켓 파워는 악역이 다 끌어들이는 거다.

선역이 팔리려면 악역이 필요하고, 절대적인 악역을 쓰러뜨리려면 선역이 필요하지.

그리도 또, 악역이 주목을 받으려면.


‘제물이 필요하다.’


안태림 시절, 그의 첫 방송 데뷔도 그러했다.


[합정의 악동!]


선배 요리사들에 대한 존중이라고는 일절 없는 후배 컨셉으로 나왔었지.

처음에는 방송국에서 쥐여 준 각본이었지만, 안태림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꼭 경력 몇 년을 강조하는 선배님들이 계시는데, 부엌에 오래 살았다고 해서 꼭 요리를 잘하는 건 아니잖아요? 요리는 과학입니다. 레시피와 테크닉이죠. 그 사실을 제가 이 자리에서 증명하겠습니다.]


악역으로 시작했지.

그렇게 방송이 3화가 지났을 무렵에는?


-안태림 밉지만 잘하긴 잘한다


시청자들은 그의 편이 되어주었다.


-짜증나지만 어차피 우승은 안태림

-방송 보고 식당 웨이팅 시도했는데 2시간 전부터 꽉 차서 재료 소진 뜸

-요리에 진지하긴 함


결국, 쇼는 쇼다.

주목받는 만큼 홍보가 되는 것이고, 일단 입안에 요리가 들어가고 나면 그때부터는 맛으로 평가를 받을 것.

이 생리 구조를 아는 에밀에게 이 전초전은 기회였다.


“내 요리를 비웃던 이들에게 굳이 반박하지 않겠다. 누가 허접한지는 결과가 말해줄······.”

“이 새끼가!”

“도련님께서 욕도 하실 줄 아십니까?”


아르노의 반격에 에밀이 낄낄 웃으며 추가로 장작을 넣으려는 찰나였다.


“잠시 소동이 있었습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에밀의 마이크를 걷어가더니 혼절할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


“두 분 모두 경고입니다! 같은 일이 또 일어난다면, 그때는 실격입니다!”

“예이.”

“큭!”


아르노가 이를 갈았다.

또다. 또 한 번 이 자식과 같은 평가를 받았다.

자못 말싸움에서는 마지막으로 한마디 던진 놈이 후련한 법. 아르노는 비할 데 없는 굴욕감을 느끼고 있었다.


“심사위원 입장입니다!”


진행자는 그러든 말든 진행을 서둘렀고.


“상인 조합의 조합장, 에드바드 마누스!”

“왕실 출신 요리사! 루벤 메키넨!”

“맛으로는 이 남자보다 유명할 자 없다! 소드마스터 헤르만 마이어 경!”


심사위원은 셋.

행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암에게 소개받은 헤르만 마이어 외 두 사람이었다.


“이번 대회의 주제는 앞서 공표했던 대로 빈스 영지의 특산품을 한껏 살리는 것! 그 재료를 공개하겠습니다!”


다음 순간이었다.

뚜벅, 뚜벅.

두 장정이 천에 쌓인 거대한 무언가를 어깨에 들춰 맨 채 무대 위로 걸어 올라왔다.


“주제는 이것입니다!”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고기?’


한가득 쌓인 가금류의 고기였다.

내장과 뼈를 깔끔하게 발라낸 채, 부위별로 고기만 남긴 것. 그게 거대한 나무 쟁반 위에 쌓여 있었다.


“빈스 영지의 특산품! 레치워스 흑계입니다!”

“호오.”

“레치워스 흑계는 빈스 영지 근처에서 자생하는 야생닭으로써, 그 육질이 탄탄하면서도 쫄깃하고, 육즙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네 명의 요리사는 과연 어떤 요리를 선보일 것인가?”


가금류 요리라 그 말이지.

그 정체를 확인한 에밀이 빙긋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지.’


빈스 영지의 특산품이라고 하여서, 그중 무엇이 걸릴지 추측해 봤다.

축제 분위기를 한껏 살릴 수 있는 고기류, 그중에서도 닭이 나오리라고 짐작했지.

이 마을에서만 나오는 특산품이라면 역시 저거니까.

예상대로다.


‘며칠 동안 미리암을 통해 공수한 가금류 요리만 실컷 한 보람이 있네.’


가게 정규 메뉴로도 쓰려고 연구하던 참이었는데, 겸사겸사 운이 좋군.

또 이런 축제의 특성이 하나.


“재료는 각자 가져온 것을 자유롭게 사용하면 됩니다! 단, 조리 시설은 이곳에 비축된 것을 쓸 것!”


조리에 긴 시간이 필요한 요리는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축제가 끝나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한 시간 가량.

그 안에 할 수 있는 요리는 한정되어 있겠지.

그나마 주최 측에서 오븐(비슷한 마도구)은 미리 달궈 두었다는 게 다행일까.


‘쉽네.’


에밀이 팔을 걷어붙이고 칼을 집어 들었다. 한편, 재료를 살피는 짬짬이 고개를 돌려 다른 경쟁자들을 살피는 것도 있지 않았다.


‘리우칸이라고 했나? 저 덩치는 예상대로 스테이크 비슷한 걸 만들려는 모양이고. 그 유령 같던 사람은······ 화장실이라도 갔나?’


그 둘은 예상대로라면 경쟁자가 되지 못할 터. 이 자리에서 확실하게 제쳐야 할 사람은 한 명이었다.


‘아르노, 뭔가를 만들고 있군.’


그는 가져온 닭고기를 조각조각 토막 내더니, 그 껍질을 발라내고는 안쪽으로 무언가를 비밀스레 집어넣고 있었다.

또 겉으로는 뭔가를 바르기도.


“풋.”


에밀이 무심코 웃고야 말았다.

저 녀석, 비밀스럽게 뭘 챙겨왔기에 어떤 대단한 요리를 하려나 기대했더니. 그렇단 말이지.

저런 방식의 조리를 추구한다라.


‘뻔하네.’


무슨 요리를 만들려는 건지 안 봐도 훤하게 들여다보이는 듯했다.

자기 과시가 심한 타입답게, 천재성이 돋보일 수 있는 요리를 하려 드는군.

그렇다면 뭘 하면 좋을까.

당연하지만, 에밀의 방식은 늘 같았다.


‘쇼에서는 쇼를 보여줘야지.’


닭에 재료를 집어넣겠다고?

이쪽도 비슷하게 상대해 주마. 조금 더 과감하고 튀는 방식으로.

스륵.

에밀이 냄비 안에 무언가 곡물을 붓고 뚝딱뚝딱 조리하는 듯하더니, 이어서 정형조차 안 된 닭을 부위별로 잘라내지도 않고 통째로 집어 든 순간이었다.


“저, 저 새끼!”


한 군중이 놀란 표정으로 외쳤다.


“고기에 무슨 장난을 치는 거야?”


에밀은 지금, 닭을 비집고는 그 안으로 주저 없이 손을 집어넣었다.


“에밀, 음식으로 장난치는 버릇을 못 버렸구나!”

“닭이 불쌍해.”

“요리를 요리답게 해야지.”

“튀면 장땡인 줄 아나? 엉뚱하면 참신하다고 가산점이라도 줄 것 같아서?”


실로 잔악무도한 광경에 군중이 경악에 물들어 한마디씩 던지는 찰나.

이 자리에서 흥미롭다는 듯 눈빛을 빛내는 자가 있었으니.


‘저건 설마?’


소드마스터 헤르만 경이 그러했다.


‘이런 변경에서 저렇게 수준 높은 조리법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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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12화. 이런 변경 영지에서 이 정도 수준의 요리 23.04.14 341 9 12쪽
11 11화. 질긴 고기와 육즙의 역학관계 +2 23.04.13 358 8 15쪽
» 10화. 고기에 무슨 장난을 치는 거야 +3 23.04.12 365 9 10쪽
9 9화. 내 알 바는 아니지만 +1 23.04.11 380 8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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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썩기 직전의 과일 +1 23.04.08 415 7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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