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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말이

개같은 날의 오후.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별목성
작품등록일 :
2022.10.27 23:40
최근연재일 :
2022.11.10 23:20
연재수 :
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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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93

작성
22.11.09 2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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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8화. 도시민과 식육.

DUMMY

어떤 세상은 정제되어있기에 비옥하다.

지금은 꽤나 방랑자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제자의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제자? 우선 명칭부터가 애매하기 시작하네.

그는 나보다 나이가 많았고, 힘이 강했으나, 살아남기에는 약했을 따름이었다.

태어나길 뉴욕, 살이오길 강남에서 살았으니 그 뭐 왜 그런 말 있지않은가

‘검은머리 미국인’

그래, 딱 그러한 종류의 사람이었다.


제자가 되기 전에 나를 줄곧 따라오며 어떤 사람이 좋냐고 묻기에 개같은 사람이 좋다고 했더니 그때부터 자신을 개라고 말하며 그리 대해달라고 하고는 독립한 이제까지도 나를 스승이 아닌 주인이라 표현하면서 자신은 제자가 아니고 개라며 내 얼굴에 똥칠을 해대고 다니는, 그런 사람이다.


처음 만났을때의 기억이 난다.

이런 세상에서 통성명이란 썩 꺼림직한 일이었기에 이름을 묻지 않았었다.

누군가 기억해 줬으면 싶은것이 인간이지만 빨리가냐 늦게가냐의 차이만이 남아있었던 첫째 해때는 문명의 잔재가 남아 유예의 시간을 가지리라고 상상하기 어려웠다.


가는 길이 같았을 뿐인데 하도 제자로 받아달라고 징징거리기에 어쩔 수 없이 받아줬건만 그때서야 이름을 물으니 바르톨로메오라고 했다.

개소리말고 이름이 뭐냐고 하니 바르톨로메오라며 허허 웃던 자식이다.

누가 들어도 양놈 이름인데 대가리 검정색인 새끼가 그러면 잘도 믿겠다.

차라리 미국식으로 샘이며 존이며 밥이나 잔이라면, 그런거라면 속아주기라도 하지.


어쨋거나 변변치않게 살아왔던 나와는 정 반대로 정말 상류층이여서 세상살이에 걱정 없이 살아왔던 제자에게 뭘 알려주자니, 아니꼬운 마음이 잔뜩 들었었다.

그래서 정말 변이나 치우게 했었지.


방랑자라고 하는 직업은 상당히 애매모호하다.

막말로 지가 방랑자다 하면 방랑자인거지 뭐.

이전에 어나니머스라는 해커집단이 있다던데 그런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냥 어나니머스, 즉 익명이라는 보통명사다.


동일하게 집단에서 쫒겨난 밥벌레도 방랑자고 걸인도 방랑자며 살인한 무법자도 방랑자다.

그렇기에 나는 그냥 내가 하는 방법을 가르쳤다.


똥 치우는 일은 그 일환이였다.


방랑자란 직업은 기본적으로 외유하는 직업이다.

집단으로 움직이며 자동차며 마차며 수레며 사용하는 이들은 좀 다르겠지만 소수나 개인이 옮길 수 있는 짐의 양은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집단을 이루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집단을 이루면 어느정도 소리를 내도, 그걸로 인해서 무언가 접근해도 대처가 가능하니까.


솔찍하게 말하자면 이 말세에 1년차 넘었고 스스로 방랑자라 칭할정도면 좀비 한두마리 죽이는건 일도 아니었다.

생존자들은 다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과거라 뭐 기술이니 뭐라고 하기도 부끄러울 정도의 당연한 소양일 뿐이다.

각자의 방법과 경험과 지식으로 서로가 다른 생존방법을 찾는다.

수렴되어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과정은 다르다.


나는 기본적으로 장비를 나눴다.

정말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장비는 조끼에 넣어 걸치고, 잠을 잘때도 벗지 않는다.

혁대에 연결된 여러 부가장비는 삶을 편리하게 해주고 전투에도 도움이 된다.

배낭에 있는것들은 부피가 크고 상대적으로 가벼운것들, 식료품이나 의복, 구급낭이나 침낭같은것들이 있다.


나누는것은 장비만이 아니였다.

장소도 나눠야 한다.

넓은 범위를 이동하는 만큼 중간중간 쉴곳이 필요했다.

그냥 아무곳이나 들어가서 쉬는것이 아니라 정말 안심하고 쉬고, 재보급을 할 수 있는장소.

마을 혹은 숨겨진 거점.


그러나 아포칼립스의 큰 문제점중 하나는 괜찮은 장소라는것이 인류 보편이기때문에 다른 생존자 집단이 사용하고있거나 사용했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그 흔적이 남았다.

부비트랩이며 함정은 오히려 이용할 수 있다.

울타리 쳐놓고 시설 예쁘게 꾸며놓으면 오히려 좋다.

그런데 현대인의 감성으로 아포칼립스를 살아가던 사람들이 무슨 마법의 구멍인줄 알고 화장실에 똥을 산처럼 쌓아놓으면 그것만큼 골치 아픈게 없었다.


그 썩는 냄새는 여름철 좀비에 비견될 정도로 엄청났기때문에 똥냄새 때문에 쉘터를 버리고 이주한 집단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오래되서 수분이 다 빠지면 어떻냐고 생각 할 수도 있다.

그러면 그만큼 농축되고 농후한 똥냄새가 난다.

대기중에 습도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사막이라면 좀 다를까 생각해봤지만 한국에서 무슨···


특히 도심에 있는 쉘터들은 콘크리트의 숲에서 어디 버릴곳도 없었기에 한곳을 정해 처박아 놓는 경우가 많았다.

구하기도 쉽고 부피도 작은 비닐봉투에 한번씩 싸서 묶어 던져놓는것이다.


그렇게 적절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비닐봉투안에서 알아서 생태계를 형성한 배설물들은 옹골차게 숙성되어서 이윽고 폭발하고 그 똥독이 옆에 아직 덜터진 봉투를 자극해 또다시 폭발하여 마치 연쇄 핵폭발같이 연쇄똥폭발이 일어난다.


그러면 정말 장난아니고 좀비들도 근처에 안간다.

애들도 동물적 본능이 좀 남아있어서 그런지 후각이 남아 있는건지 모르겠지만 코가 썩어서 연골까지 떨어진 좀비들도 아주 근처를 가지 않는다.


필요에 따라서 그런곳도 이용할 줄 알아야 하는데···

덕분에 쉘터 몇개 더 만들었다.

솔찍히 나보다 개가 더 많이 만들었다.


떨구려고 개지랄한건데 진짜 말 잘듣는 개처럼 배 까고 헥헥대며 하라는 거 다 할줄이야···


따사로운 한낮의 햇살을 즐기며 낮잠자는 강아지를 괜시리 쿡 찔러서 깨운듯한 죄책감으로 인하여 그 다음부터는 내가 생각하는 꿀팁들을 모두 전수했었다.


물론 사서를 통해서 도서관 집단쪽으로 흘러간 정보들과 크게 차이나는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글로 묘사하기 힘든 현장감과 감각이 있었기 때문에 교육의 질 차이가 나는건 어쩔 수 없었다.


가르칠걸 다 가르쳤으니 하산하라는 말에도 아직 배울것이 남아있다며 옆에 붙어있는게 반년정도 됬지 아마?

그제서야


“그동안 빌어먹게 감사했습니다!”


라며 그랜절을 보여주고 떠난 제자는 무슨 이유에서인가 내 평판을 마구 망가트리며 개장수라는 악명을 떨쳤다.

지금에서야 잘 써먹지만 말이다.



***



“하···”


나는 떠나간 제자 생각에 잠시 잠겼었다.


어떤 이유에서 일까?

내리앉은 어둠에속에 타닥타닥 타오르는 모닥불을 앞에 두어서?

아니면 정체불명의 사람에게 받은 품 안에 있는 편지가 제자가 가끔씩 보내는 편지를 떠올리게 해서?


아니.

보리가 잡아온 쥐가 모닥불 위에서 구워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쓱쓱


괜히 보리의 머리를 몇번 긁으니 엎드려있던것을 그만두고 발라당 누워 배를 만지라고 아우성이다.


톡톡 몇번 두드려주고 다시 모닥불 옆에 타오르는 쥐고기를 보며 제자를 떠올렸다.


지금에서야 어느정도 삶의 안정화가 이루어졌다.

급강하해서 충돌 후 폭발할 비행기가 극적으로 경착륙에 성공한 정도다.

그런데 수면 위에.


어떻게든 지면에 닿아 당장의 죽음은 회피한 삶이고 문명이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먹을거 가지고 서로 죽이는게 이상한 일이 아니였으니.


나는 구태여 먹을것으로 사람을 죽으느니 사람들이 기피하는 식품을 먹었다.


쥐, 비둘기같은것을.


잡으면 뭔가 이상한 두드러기나 비듬같은것들이 있긴 했지만 적당히 씻고나서 가죽을 벗기고 털을 뽑고 손질하고 후추좀 뿌려 구우면 어느정도 먹을만 했었다.


그러나 검머외로 도시에서 살던 제자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였을 것이다.

처음 만났을때를 제외하고는 살인에도 헛구역질 몇번으로 넘어갈 정도로 비위가 올랐었던 제자는 내가 쥐를 잡아서 가죽을 벗기자 곧장 토악질을 했었다.


한번의 시범 후에 실습을 시키니 역시나 토악질을 했다.


그렇게 몇번의 토악질을 거쳐서 곧 쥐를 잘 먹을 수 있게 된 제자의 앞에 비둘기를 잡아가니 또다시 토악질.


나는 구태여 옛날 이야기를 꺼내면서 네가 뱉었던 쥐고기와 비둘기고기가 그때에 얼마나 값진것이였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꼰대같았기 때문이었다.


열댓번 박복하고 그것만 먹으니 처음에는 거부감인지 뭔지 입만 대던 시늉을 하던 제자는 배가 고파서 눈이 돌아가고 나서는 가느다란 쥐 갈비뼈를 씹어먹으며 꼭꼭 씹으면 고소하다는 말을 하기도 했었지···


“어웅”


다른사람 생각을 해서인가

보리가 질투를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만난 제자는 은근히 보리를 싫어하는 티를 냈었다.


이유는 암컷이라고.

미친년이 따로 없었다.


깨앵꺠앵 하고 네발로 기면서 다리에 머리를 문대는 인간을 처음봤던 보리는 그 다음부터 제자를 암캐로 인식했는지 되게 경계 했었다.


“알겠어”


나는 앞발로 제 머리를 긁고 나를 쳐다보기를 반복하는 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을 다시 바로잡았다.


품 안의 편지지.


이건 아마 그 정체불명의 운구자에게서 온것임이 분명했다.

이 편지를 열면 그가 날 찾았던, 그리고 유도했던 목적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나는 보리를 만지던 기름진 손으로 다 구워진 쥐구이를 뺴내어 보리에게 던져줬다.


아드득거리면서 뼈까지 잘 씹어먹는 소리를 들으며 품안의 편지지를 꺼냈다.


“존나 두껍네”


아니 이렇게 많이써?


편지지을 열어 남은 봉투는 대충 손에 묻은 기름을 닦아 모닥불에 던졌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편지를 다섯장이나 쓰는 미친놈이 어딨어

연애편지야?


“아···”


미친새끼.

연애편지였다.


아니, 차라리 나에게 쓰면 좀 나았을것이다.


네장은 보리를 향한 사랑의 세레나데와 같았다.


털이 얼마나 폭신해 보이는지, 귀는 얼마나 쫑긋거리는지.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얼마나 흥겨운지등을 장황하게 써놨다.


이건 뭐 미친놈이였다.


다행스러운건지 아닌건지, 비정상적인 성애나 성욕은 아니였고 다만 친교에 대한 욕망이였다.


아포칼립스에 들어와 동물이란게 수가 많이 적어지긴 했다.

살아남은 들개들은 충분히 야생화가 되었고, 고양이들도 사라졌으니, 친교를 나눌 동물은 더욱이 적다.


그런 와중에 ‘정상적’인 동물의 희귀함은 당연한 일이다.


나머지 한장의 편지는 나에게 온것이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자면 분노의 5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1단계. 부정

각 생명체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필요가 있다로 시작하는 장황설.


2단계. 분노

이 위험한 세상에서 같이 밖을 나다니는건 너무한 처사라는 욕설.


3단계. 타협

그러나 보리를 지금까지 잘 키워줬으니 용서해주겠다는 내용.


4단계 우울

제발 한번만 만지게 해달라며 산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죽은사람 소원도 좀 들어달라는 부탁.


5단계 수용

한번 만나자며 장소와 시간을 간략히 적어놓은 마지막 줄.


이것을 끝으로 나에게 할당된 한장의 편지지가 끝났다.

나는 나머지 네장의 편지를 보리에게 읽어주며 제깟놈이 그토록 극찬했던 검붉은 코며 발바닥을 마구 만지고 털을 부볐으며 배방구를 하는 사치를 느꼈다.


그러나 마음 한켠에서는 위치와 시각을 잊지 않도록 기억하며 다음을 준비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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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같은 날의 오후.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9화. 운구자들. 22.11.10 13 1 12쪽
» 8화. 도시민과 식육. 22.11.09 16 1 11쪽
8 7화. 개새끼 22.11.08 18 1 11쪽
7 6화. 설사약과 지사제 (2) 22.11.07 52 2 11쪽
6 5화. 설사약과 지사제 (1) 22.11.05 76 0 10쪽
5 4화. 회상과 누군가 (2) 22.11.04 24 0 11쪽
4 3화. 회상과 누군가(1) 22.11.03 29 0 11쪽
3 2화. 활동시간. 22.11.02 31 3 11쪽
2 1화. 이동시간 22.11.01 40 3 10쪽
1 프롤로그. 헤멤 22.11.01 61 6 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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