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헤멤
표류하는 초상의 나날이다.
지는 해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하루가 지남을 안다.
이렇게 멀리서 바라보면, 세상은 지난날과 다름이 없는 것만 같은데.
“안그래??”
내 옆에 바싹 붙어 앉아 체온을 전해주는 작은 털뭉치를 향해 이야기한다.
“킁”
무릇 시골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개들이 다 그러하듯 이것저것 피가 섞인 이 녀석은 잡종의 강인함 이외에도 장점으로 똑똑한 목양견인 보더콜리의 피가 섞여 있었다.
그 와중에 꽤 많이 발현되었는지 약간의 훈련으로도 현재 상황을 이해하여 조용하게 의사소통을 하는 녀석.
“영리하고 똑똑한 자식”
사랑스러운 것을 대할 때의 약간은 괴롭혀주고 싶은 감정을 억제한 체 투박하게 쓰다듬자 기쁘다는 듯이 제 머리를 손에 부볐다.
“합”
맘껏 아양을 부리다가 한순간 주의를 집중하듯 약간의 소리를 내며 저 뒤편을 바라보았던 보리의 귀가 쫑긋 솟아올랐다.
“합합”
-짖으면 안된다는 걸 잘 알지만 위험해!
그렇게 말하는듯한 소리와 함께 뒤편과 나를 자꾸 번갈아 바라보며 몸짓으로 불안을 표현하는 보리의 모습에 나는 앉아있던 바위에서 일어나 그쪽을 쳐다보았다.
“아직 안 보이네?”
보리가 나보다 먼저 찾았다.
“내가 졌으면 간식을 줘야지?”
“헥헥”
작은 내기에 승리하고 이미 앉은 채로 손을 모아 달라는 시늉을 하는 귀여운 보리의 모습에 웃음을 지으며 주머니에 담아놓은 육포를 하나 물려준다.
“걸어가면서 먹자”
좀비가 있는 방향에서 반대로, 그러나 도심으로는 들어가지 않은 채 또다시 걷기 시작했다.
좀비 아포칼립스 3년 차.
방랑자로 3년 차.
보리는 세살.
그리고 서른세살.
···언제까지 살아가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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