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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호아 님의 서재입니다.

Six Bu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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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1723X
작품등록일 :
2019.08.14 23:21
최근연재일 :
2019.11.23 20:01
연재수 :
6 회
조회수 :
103
추천수 :
3
글자수 :
25,346

작성
19.11.21 02:41
조회
15
추천
2
글자
9쪽

1

DUMMY

런던의 자욱하고 지독한 안개가 낀 밤거리 사이로 한 사내가 걸어갔다. 무릎 아래까지 오는 트렌치코트에 철 지난 쓰리 버튼 정장을 입고 검은 장우산을 들고 중절모까지 받쳐 쓴, 19세기 소설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사내였다. 그렇게 눈에 띄는 복장을 하고 가로등 불빛에 그늘이 지는 어두운 길만 골라 다닌다는 것이 또 특이한 점이었다. 어느 한 골목에 이르러, 그는 바닥을 한번 내려다보고는 단숨에 옆의 낮은 담을 뛰어넘어 어떤 집 안으로 들어갔다. 꽤나 큰 저택이었다. 고딕 풍으로 지어진, 집이라고 부르기에는 크고 성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작은, 그야말로 영국스러운 저택이었다. 그는 능숙하게 안뜰을 지나 저택의 옆, 담과 벽 사이로 들어가서 수풀에 가려진 쪽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문 안쪽은 회색 벽돌로 된 차가운 복도였다. 발소리가 조그맣게 울리는 복도를 한참 걸어가자 조그마한 나무 벽이 나왔다. 그는 우산을 바닥에 살짝 짚은 채로 벽을 두 번 똑똑 두드렸다. 그러자 덜컥 하는 소리가 나더니 벽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 뒤에서 드러난 것은 까만 벽에 촛불이 두어 개 밝혀진, 조그마한 방이었다. 방의 중앙에는 2인용의 원형 테이블이 있었고, 그 건너편에 그를 기다린 듯 노년의 귀부인이 앉아있었다.


“왔나. 앉지.”


부인은 테이블 건너편의 빈 의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사내는 코트와 우산을 의자 등받이에 걸쳐 두고는 의자에 앉았다. 와인 빛의 이브닝 드레스에 푸른 실크 가디건을 걸쳐 입고, 한껏 곱슬 진 흰 단발에 곱게 주름진 얼굴을 한 손등으로 괸 채 자신을 바라보는 노부인에게 사내는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입니다 누님- 한창 현장에서 뛰시던 누님과 사사건건 부딪힌 게 엊그제 같은데, 많이 늙으셨네요.”

“버릇없는 건 여전하군 그래.”

“현역에서 은퇴하신 지 한참 된 '공작'님을 뵙는 데 이정도 예는 갖춰야 하지 않겠습니까-"


능청스럽게 말끝을 늘이며 말한 그는 정장 안주머니에서 시가를 두 대 꺼내 한 대를 공작에게 내밀었다.


“누님도 한 대 태우시죠.”

“···늙은이에게 담배를 권하다니, 이 나쁜 사람아.”


공작은 시가를 받고는 어깨에 걸치고 있던 실크 가디건 안에서 가스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시가를 받아 익숙하게 양 끝을 물어 뜯어내 입에 문 뒤 불을 붙이고 사내에게 불을 내밀었다. 사내는 시가에 불을 붙인 뒤 입에 물고는, 깊게 한 모금을 빨아들였다.


“그래서,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빨아들인 연기를 내뱉고서, 아까와는 사뭇 달라진 진지한 목소리로 그가 물었다. 공작은 대답을 피하는 듯 오래도록 시가를 물고 있었다.


“분명히 말해두지만, 스코틀랜드 영역에 대한 협상을 바라시는 거라면 거절하겠습니다. 우리 애들과 정면으로 맞붙기를 원하시는 게 아니라면요.”

“···스코틀랜드에는, 왕가와 스코티 사이에 먼저 해결할 문제가 있기 때문에 개입을 늦추고 있을 뿐이네. 고작 그거 가지고 자네들이 이긴 것처럼 말하면 안 되지.”

“그러면 대체 뭡니까. 그 사안 외에 우리 사이에 거래할 거리가 있다고 생각하긴 어려운데요.”


공작은 입 안 가득 든 연기를 길게 뱉어내고는, 테이블에 양 팔꿈치를 대고 양 손을 마주잡아 입을 가리곤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지. 자네가 얻어다 줬으면 하는 정보가 있어.”

“웬만한 정보는 왕실에서 제공해주지 않습니까?”

“···왕실이 알면 안 되는 일이야.”

“공작님 밑에서 부리던 아이는 어쩌시고.”

“···그 아이는 죽었네. 며칠 전에.”

“저런···공작님의 심기를 거슬렀나 보군요. 두 분 큰어르신처-“


사내의 입에서 큰어르신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공작은 테이블 밑에서 지팡이를 꺼내들어 그의 이마에 겨누었다. 순간 팽팽한 정적이 방 안에 감돌았다. 사내는 입꼬리를 말아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양 팔을 위로 들었다.


“입 조심하게. 살아서 나가고 싶으면.”

“설마 제가 공작님의 땅 안에 혼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죠.”

“내가 손가락만 움직이면 자네 목숨은 끝이야.”

“제가 무기 하나도 없이 이 저택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것도 안 되실 텐데요.”


그러면서 사내는 한 손으로 정장 자켓의 단추를 풀어내렸다. 자켓이 벌어진 틈 사이로, 그의 목덜미에 걸쳐져 있는 육중한 금속 사슬 두 가닥이 촛불의 빨간 빛으로 번쩍였다.


“원하신다면야 제 사슬과 공작님의 손가락 중에 뭐가 빠른지 겨뤄보는 것도 나쁘진 않습니다만.”


다시, 정적이 흘렀다. 공작은 천천히 지팡이를 거두었다. 동시에, 사내도 손을 내리고는 다시금 자켓의 단추를 잠갔다.


“···그 아이는 살해당했네. 처형이 아니라.”

“이런···감히 이 영국 땅에서 제블린 가를 건드리다니, 어떤 놈이..”

“···루드비히, 그 꼬맹이에게 말일세.”

“루드비히라,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요···그, 실···뭐였는데.”

“실링스배셔···독일에서 설치는 마피아 말일세. 자네들과도 몇 번 부딪힌 걸로 아는데.”

“아, 그놈들 말입니까···최근에는 활동이 뜸해서 잠시 잊고 있었네요. 그나저나, 그놈들 제블린 가만큼은 안 건드리는 게 원칙인 걸로 알고 있는···아하.”


말을 하다 말고 그는 무언가 깨달은 듯 공작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공작은 시선을 피하려는 듯 눈을 감았다.


“···용병 일도 하는 놈들이니 말일세.”

“그래서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영국 왕실과 실링스배셔를 동시에 적으로 돌릴지도 모르는 일을 시키시겠다···얘기는 여기까지군요.”


사내는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와 우산을 집어 들고 돌아가려는 듯 들어온 복도 쪽으로 향했다.


“···거절할 수 없는 대가를 주지.”


공작이 사내의 등에 대고 나직이 말했다. 사내는 나가려던 몸짓을 멈추고는, 테이블 쪽으로 반쯤 몸을 돌려 여전히 앉아있는 공작을 내려다보았다. 공작은 말을 이었다.


“···네덜란드에, 가문 소유의 물류 회사가 있네. 네덜란드에서는 가장 크게 무역을 하는 회사 중 하나지.”

“고작 그 정도로 우리 애들을-“

“말을 끝까지 듣게. 회사가 가진 항구가 있어. 단언컨대, 본토에서 ‘물건’을 가장 많이, 가장 안전하게 내돌릴 수 있는 곳이야. 신원이 확실한 사장을 붙여 자네에게 넘겨주지. 지금 자네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아닌가? 추적당하지 않는 안전한 돈.”

“······”

“최근에는 바티칸도 자네들에게서 시선을 거둔 걸로 아는데 말일세. 자네가 그···인형 쓰는 애송이를 빼돌린 후에 말이야.”

“어떻게 그걸···”

“우리 정보력을 얕보면 안 되지. 바티칸이 자네들 자금을 세탁해주고 있었다는 것도 이미 한참 전부터 알고 있었어. 자네와 굳이 날을 세울 필요가 없어서 가만히 있었을 뿐이지. 마음만 먹으면 그 애송이도 찾아서 내 앞으로 데려올 수 있네.”

“···그건 안 되실 겁니다. 이 유럽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숨겨뒀으니까요.”

“그거야 두고 볼 일이지. 여튼···그래서, 받을 텐가 말 텐가?”


미소를 띤 공작의 말에 사내는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는 되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공작은 만족스레 웃고는 얘기를 이어나갔다.


“얻어다 줬으면 하는 정보는, 유럽 전역의 수도, 배선, 가스관···본토의 지하에 지나가는 모든 것들의 설계도면이야. 각국 정보기관의 편집과 검열을 거치지 않은 본토 지하의 도면 말이지.”

“그건 갑자기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거지요.”

“거기까진 자네가 알 것 없어. 일을 확실히 처리해주면 대가를 지불하지. 그것뿐이야.”


거래의 내막을 알 수 없는 상황에 사내는 불만족스러운지 입술을 깨물었으나, 그런 이유로 거절하기에는 대가가 너무 컸다. 한참이나 침묵을 지키다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필요하십니까.”

“다음 달, 같은 날짜.”

“···보름은 더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털어내야 할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좋아. 거기서 딱 보름 더 주지. 한 달 보름이 넘어가는 자정에서 1분이라도 지나면, 거래는 없는 걸세.”


다분히 협박하는 듯한 공작의 말투에 사내는 빈정이 상한 듯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코트와 우산을 챙겨 들었다. 복도로 나가기 직전에, 그는 잠시 뒤를 돌아 공작에게 말했다.


“···다음 달에 다시 뵙지요, 샬럿 공작님.”

“그러도록 하지. 잘 가게나, 파엘로.”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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