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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ULLGOGI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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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LGOGI
작품등록일 :
2022.04.03 22:22
최근연재일 :
2022.05.29 22:32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534
추천수 :
41
글자수 :
61,158

작성
22.05.05 23:00
조회
24
추천
2
글자
10쪽

거래

DUMMY

"뭘 해야하죠?"


플랑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족장의 크게 뜬 빨간 눈에 압박감을 받긴 했지만

항구로 가는 게 우선이였다.


플랑의 대답에 족장은 환한 웃음을 지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자신들을 투기장 노예로 쓰는

인간들로부터 자유롭게 해달라는 것이였다.


"너희는 그 투기장에 가서 레버를 당겨주면 된단다."


투기장은 꽤나 단순하게 생겼다. 동그랗게 말린

좌석들의 가운데에서 싸움을 벌이고 지하에선

노예들이 대기한다는 뻔하다면 뻔한 투기장이였다.


"이렇게 단순한데 저희가 해야돼나요?"


스파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설계도도 다 알고 누가 언제 보초를 서는지

심지어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데 굳이 자신들을

이용하는 것이냐였다.


"...저긴 결계가 쳐져있단다. 형제들의 피로 이루어진."


투기장이 지어지던 날, 인간들로만으로는 유흥이 부족했던

흑마법사는 인간보다 더 박력 넘치고 돈이 될만한

판을 벌이고 싶었고 때문에 오우거들을 납치하여

투기장 노예로 만들었다는 거였다.


"우리는 우리의 피 냄새에 이끌려 형제를 구하려 했지만

그건 함정이였어. 그는 우리가 올 줄 알았던 거야."


오우거들은 둔하지만 동족에 대한

애착이 강해 형제들을 데리고 갇힌 이들을 구하려 했지만

함정에 걸려 같이 간 형제들 중 자신만이 빠져나오고

다른 이들은 투기장에서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이였다.


"아저씬 어떻게 살아남은 거죠?"


"이상하게도 놈들은 계속 날 돌려보냈어.

내가...내가 그들을 구하려고 돌아올 거라고

알았던 거야...더 많은 유흥 거리를 데리고."


그는 자신의 손을 보며 자책했다.


처음에는 서른 명이 넘게 기습을 했다.

다음에는 열 둘, 그다음에는 일곱

그리고 지금은 셋.


자신이 좀 더 빨리 이 사실을 알았더라면

이 이상의 희생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진정.해라."


"난 할 수 있는게 없었어. 내가..내가 좀 더 빨리

알아차렸더라면!"


"우리에게. 방법은. 없었다."


"알아! 안다고! 하지만 내가..내가 틀렸었어.

모두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지만

그 어리석음때문에 모두를 잃은거야."


다른 오우거 둘이 그를 위로해주었다.

오우거가 운다는 생각을 해본적은 없지만

막상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오우거를 보니

동정심이 생겼다.


"그럼 언제 출발하면 돼죠?"


플랑은 단호하게 말했다.

도와주기로 말한 이상 무를 순 없었다.

족장은 슬픈 마음을 달랜 뒤 히끅대며 말했다.


"오늘 밤, 달이 뜨는 밤에 출발하면 될꺼다."


오우거가 옆에서 건빵을 건네주고

문 옆에 기대어 둘을 쳐다보았다.

일단은 기다리는게 최선인 것 같았다.


"난 저 말에 믿음이 안가."


플랑은 받은 건빵을 품에 안고

가죽 의자에 풀썩 앉았다.

오우거의 말대로라면 충분히 그들을 도와줘야할

이유는 맞지만 이상하게 뭔가 찜찜했다.


"난 잘 모르겠던데? 당한 게 있으니

갚아주고 싶은 건 당연하지."


하지만 스파타는 별생각이 없어 보였다.

플랑은 스파타의 이런 모습에 약간 화가 났다.

눈치가 없는 건지 순진한 건지.


스파타의 직감은 가끔 보면 놀랄 때가 있지만

그 뒤에 나오는 멍한 모습에 답답할 때가 있다.


"하 내 말은 그게 아니라..."


"?"


"아니야. 됐어."


"화났어?"


"아니."


"그럼 다행이고."


그래. 이럴때.

플랑은 건빵을 더 쎄게 씹으며 화를 달랬다.

이 이상 말을 섞는다면 진짜로 화가 날 것 같았다.


'주사위님.'


새로운 대화 상대가 필요했다.

말을 들어주고 자신을 보듬어주는

엄마같은 존재 말이다.


'주사위님?'


되는 게 없는 날이다.


시간이 흘러 해가 저물어 가고 있었다.

플랑은 밤이 올때까지 지루할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재미있는 경험이였다.


"산. 난쟁이. 죽고 만들어진. 거대한 산."


자신들이 알고 있던 세상과는 다른 세상을 보았다.

오우거들은 용이 태어나기도 이전 세상에는

현재 우리들보다 훨씬 작은 난쟁이들이

이 세계를 지배했다고 믿는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만들 수 있는 권능이 있었다고한다.

하지만 그 권능을 잘 알고 있던 난쟁이들은

점차 오만해져 갔고 자신들을 창조해낸

신들과 전쟁을 벌였다고 한다.


이에 태초의 신을 제외한 모두가 죽어

각종 역병과 시기질투, 죽음이 탄생해

난쟁이들은 하나 둘 쓰러져 갔다.


그러자 자신들의 오만함을 후회하며

형제 자매가 쓰러져 죽은 곳에서 최후를 맞이해

돌이 되었고 점차 시간이 지나 그곳은

산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돌을 믿는다.

평야부터 산까지 널려있는 돌멩이는

후회이고 돌을 사라질 때까지 쓰다듬어

자신들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상당히

재미 있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를 재밌게 들어줘서인지

플랑과 스파타에게 자신들의 친구인

돌멩이들도 잔뜩 소개시켜 주었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 화를 버린 자는

다른 이의 화를 입어 이렇게 비참하게 사는구나.."


한편, 족장은 무릎을 꿇은 채 형제들이 갇혀있는

투기장쪽을 바라보며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그의 눈은 감고있었지만 목소리에서 슬픔이

묻어 나왔다.


그리고 잠시 뒤, 그는 무릎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뭐하고 계셨어요?"


스파타가 나머지 돌멩이를 소개해준다는 말에

화장실을 핑계로 나왔다. 나와서 뭐하지라는 생각으로

가죽문을 들자 앞에서 근엄하게 기도를 올리는

족장을 보고 이때까지 기다렸던 것이다.


"고통 받고 있는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단다."


"아, 궁금한게 있는데 물어봐도 될까요?"


"그럼, 무엇이든 물어보렴."


족장은 침울했던 기분을 덜어내고 차분하게

대답해주었다.


"저희보고 선택 받은 자라 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그래, 우리는 전에 예언자 한 분을 섬겼단다.

그 분의 예언은 틀린 적이 없어 우린 그를 믿고 따랐지.

하지만 그는 우리의 남아달라는 말에도 불구하고

그만의 여행을 찾아 떠났어."


족장은 그날의 기억이 떠오르는지 잠시 멈췄지만

이내 묵묵하게 말을 이었다.


"그 분이 떠나시던 날 나에게 말했지.

우리의 부족에게 큰 어둠이 온다고

하지만 선택받은 이들이 오면

우리에게 닥쳐온 어둠을 물리칠 수 있다고."


그가 예언자가 남기고 간 말을 할 땐

눈에서 빛이 났다. 마치 자기의 사명처럼

느끼는 듯 자신은 아이들을 찾아야 된다고

전대 족장에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들은 내 말을 듣질 않았어."


족장이 있던 부족은 특이한 문화가 있었다.

남들이 자신에게 말한 것을

누구에게도 전하지 말 것.


족장은 이를 어겨 부족에게 이 말을 전한 뒤

무시받고 천대받으며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

몸부림치며 살았다고 한다.


"나도 규칙을 어긴다는 건 알아!

하지만..하지만 방법이 없었다고."


해는 꺼지고 어둠이 들이웠다.

점심까지는 맑았지만 밤이되자 구름이 끼고

천둥이 몰았쳤다. 마치 족장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같았다.


그는 갑자기 머리를 부여잡고 고통에 찬

신음했다. 과거의 기억이 마음 속

응어리가 되어 그를 괴롭혀왔다.


"나는 이런 자리에 있을 수 없어.

나처럼 무능하고 약속도 못 지키는 배신자에게

족장이란 직책은 너무나도 무겁구나"


그는 자신의 목걸이를 손에 올려놓고 원망스런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커다란 손바닥에 있는 돌 목걸이는

작지만 지난날의 고통에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왜요? 하지만 저기 갇혀있는 형제분들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계시잖아요?"


"..노력하고 있지만 성과가 없어..."


"그래도 노력이 중요한 거 아닌가요?"


스파타는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슈베르트의 생일날 자신이 열심히

만들었지만 생크림 범벅이 된 케이크를 보고

실망했다.


하지만 슈베르트는 오히려

기특하다며 노력이 중요한 것이라 말한 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노력한 사실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꼬마야. 세상은 노력을 본다고 하지만

성과가 좋지 않으면 그들은 너를 무시한단다."


그는 자신의 상체를 두르고 있던 가죽을 벗어

자신의 등을 보여주었다.


"!!!"


등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새겨져 있었다.

몇 개는 주먹으로 멍이 든 자국이였고

또 다른 건 채찍, 돌 심지어 칼로 새긴

이름도 있었다.


"무능하면 도움이 안돼."


"왜 이런.."


"난 사실..저들이 저 곳에서 죽었으면 한단다."


족장은 스파타에게 속마음을 들어냈다.

자신이 받아왔던 고통, 무시받았던 기억

저들 또한 그 고통을 똑같이 받았으면 했다.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남들보다 더

심하게 굴고, 더 잔인하게 대하지."


족장은 가족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에게서 받은 고통과 멸시를 전부 받아내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저들을 구원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은 그를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들의 행복을 위한 도구이며

주인을 배신한 배신자이다.


"그래도..가족인데.."


"...가족..."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전에는 행복했던 그 기억, 하나의 목소리에

모두가 귀 기울이며 행복했던 기억.


다신 돌아오지 못할 추억.


"그래..가족이니까 구해야지."


그는 손에 올려논 목걸이를 다시 찼다.


"고맙구나 꼬마야. 저들은 날 사랑하지 않지만

내가 저들을 사랑하니 구할 수 밖에 없겠지."


족장은 어느샌가 자기 옆에 앉아있는 스파타를

쓰다듬었다. 철 투구때문에 삐걱거리는

쇳소리만 났지만 그리 싫지만은 않았다.


"꼬마야. 가족이라고 언제나 사랑만 주는 게 아니란다.

어떨 때는 현실보다 더 아픈 상처를 남겨줄 수도 있으니

그들에게 잘해다오."


"네!"


족장은 스파타를 바라보았다.

얼굴은 보이지 않지만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

지금은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럼 가자꾸나. 가족을 구해야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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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48 스톰브링어
    작성일
    22.05.13 17:20
    No. 1

    가족은 항상 나에게 그리고 상호간에 도움을 주지는 앟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그런게 다 용서된다는 주사위의 뜻인 거 같아 감동이 느껴지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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