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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LLGOGI
작품등록일 :
2022.04.03 22:22
최근연재일 :
2022.05.29 22:32
연재수 :
14 회
조회수 :
532
추천수 :
41
글자수 :
61,158

작성
22.04.05 07:30
조회
97
추천
5
글자
12쪽

예언

DUMMY

“넌 특별한 아이야”


광장에 아이들을 창문으로 내려다보는 한 쓸쓸한 그림자. 창문 틈새로 비치는 햇살이 그녀의 푸른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고 있었다.


“플랑, 이제 가야돼.”


절그럭 무거운 철 소리와 함께 한 소년이 말했다.


“응.”


대답은 했지만 시선은 떼지 못한 채 창문 앞에만 서있을 뿐이였다.


“다음은....”


“예절과 예법.”


소년은 투구로 가려진 자신의 머리통을 긁었다. 삑삑거리는 금속을 긁는 소리와 함께 창문을 바라보던 플랑의 입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후후, 시간표는 아직도 못 외웠네.”


플랑은 가볍게 뒤로 돌아 자신을 부른 소년을 바라보았다. 소년의 키는 플랑과 비슷했지만 그 또한 다른 아이들과는 다르게 꽤나 무거운 갑옷을 온 몸에 두르고 있었다.


“그래도 너가 좋아하는 건 알고 있는걸..”


소년은 머쓱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비록 얼굴은 철 뒤에 가려졌지만 느낌적으로 알 수 있었다.


“알아. 하지만 난 달라져야 하는걸.”


소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저 밖의 아이들과 같다는 걸.

하지만 같을 뿐 같지 않았다. 자신은 저 아이들처럼 평범해질 수 없었으니까.


따뜻한 햇살 아래 노는 아이들과 광장에서 장을 보는 평범한 일상을 등진 채 두 소년 소녀는 고풍스러운 저택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한편 여느 때나 평화로운 밖과 달리 왕궁은 엄숙한 분위기를 띄고 있었다. 거인, 인간, 드워프 등 여러 종족들이 모여있었고 그들은 각자 자신의 가문 깃발의 뒤에 서있었다.

그들은 자신의 가문의 복장을 입고 있었지만 수많은 인파 속, 한 깃발의 자리만이 비워져 귀족들의 사이를 갈라놓았다.


“왕께서는 언제나 어둠 속 한줄기 빛이 되어 저희를 이끌어주었습니다!”


노란 옷을 입은 사내가 왕궁에서 목 놓아 외치고 있었다. 그 뒤로는 자그마한 진혼곡이 흐르고 있었고 그 사내의 옆에는 거인같은 거구의 사내가 힘없이 앉아 있었다.


“힘을 위해 형제자매에게 칼을 치세웠던, 별들의 전쟁. 고룡들이 온 세상에 불을 뿜고 찬란하게 빛나던 우리들의 붉은 별을 부순 사슬의 밤!”


거구의 사내는 비석같은 얼굴에 수정구처럼 커다란 눈이 천천히 돌아가며 자신의 앞에 있는 여섯 개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0, 불, 나무, 별, 사자, 용 그리고 뱀의 문양을 한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이 모든 역경 속에서 우리를 지켜주신 칼라이도르 국왕이시여! 영원하소서!”


노란 옷의 사내가 왕을 칭송하자 귀족들이 복창했다.


“왕의 책과 칼을 우리의 가슴에”


거인의 눈에는 빛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푸르른 색의 빛이 귀족들 사이를 지나치며 열려있는 대문을 나가 사라져갔다.


“언제나 현명한 판단으로 왕을 보필한 붉은 별의 카에로 경.”


민머리에 턱수염을 한 남자가 고개를 숙여 답했다.


“그리고 용의 심장을 도려낸 예언자. 우리들의 발판이 되주었던 쇼텔.”


노란 옷의 사내는 뒤돌아 쇼텔을 바라보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깃발들을 쳐다보며 무언가를 읽어내려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쇼텔.”


중후한 목소리가 왕궁 전체에 울려퍼졌다.


“나의 오랜 벗이여.”


왕은 흩어져가는 거인의 푸른빛을 가르며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그의 옆으로는 그가 일궈낸 여러 업적들의 삽화가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왕이 나타나자 귀족들은 의자에서 내려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영원할 줄 알았던 시간은 흘러가 이렇게 흩어지는구나.”

왕은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는 거인의 빛을 붙잡을려 했지만 이내 손에서 알갱이로 흩어져 내렸다.


“태양이....지고....달이 차오르지만.....언제나 태양은 우릴 비추네....”


쇳소리같이 긁혀 나오는 굵고 큰 목소리 사이가 왕궁을 메웠다.


“그래. 우린 언제나 빛 안에 있었지.”


왕은 그의 말에 회답했지만 거인은 여전히 자신의 앞에 있는 커다란 수수께끼를 풀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없었다. 그는 눈을 돌려 왕을 쳐다보았다.


“칼린...자네는 큰 탑을 올렸지만....그대의 주변은 미로처럼 얽혀있구나....”


“원래 삶이 다 그렇지 않은가...”


쇼텔은 다시 눈을 돌려 마지막 수수께끼를 찾아내고 있었다.


“잘가게..내 오랜 벗이여.”


거인의 눈은 점점 생기를 잃어 회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뱀의...아이가....”


거인의 눈은 끝내 생기를 잃고 회색을 띄웠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여전히 왕을 쳐다보고 있었다.


“빛이 그대를 품어 줄 걸세.”


왕은 고개를 숙이며 검을 바닥에 꽂았다. 육중한 검은 꽤 오래도보였지만 칼날은 날카롭게 갈려있었다. 그런 왕의 모습 뒤로 진혼곡이 막바지에 달아 구슬픈 소리를 내며 막을 내렸다.


왕은 다시 고개를 들어 아직 감지 못한 자신의 친구의 눈을 감겨주기 위해 그의 앞으로 다가섰다.




“달이 몰락한다.”


“!?”


죽은 거인의 시체는 왕의 팔을 잡았다.

왕궁의 잔잔한 장례식은 순식간에 혼란에 휩쌓였다. 되살아난 거인의 눈은 붉게 차올라 모든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일곱 개의 시체는 영원으로 가는 문을 여리라.”


거인의 손아귀는 점점 강해져 왕의 옷이 점점 찢어지고 있었고 왕 또한 고통에 일그러졌다.

병사들이 무장한 채 달려오자 왕은 손짓으로 병사들을 제지했고 쇼텔의 눈을 마주 보았다.


“뱀의 혀를 가진 아이가 우리의 죄를 기억한다. 그가 우리를 찾을 것이다.”


그리곤 마지막 말을 남긴 채 천천히 손아귀를 풀고 끝내 고개를 숙였다.

혼란스런 왕궁의 귀족들은 웅성대며 거인의 말을 이야기 하고 있었다.


“쇼텔이 마지막 예언을 남겼군.”


황금나무의 거인이 중얼거렸다.


“혼돈을 야기하던 자가 사라졌다.”


0. 오메가의 귀족들이 서로에게 끄덕였다.


그들은 예언을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했지만 눈빛은 모두 한 곳을 바라보았다.


“플랑...”


슈베르트의 부인인 플람이 말했다. 슈베르트는 그런 아내를 감싸 안고 죄인이 된마냥 왕궁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혼란스런 상황 속 왕은 자신의 왼팔을 보았다. 찢겨진 옷 속 자신의 팔에는 상처는 없었지만 뼈를 짓누르는 고통이 계속 그의 팔을 짓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모든 상황을 보던 이가 있었다. 새부리모양의 가면을 쓴 남자. 그가 주머니에 있는 금가루를 꺼내 바닥에 뿌리자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스파타”


“응?”


산더미같이 쌓인 책들 사이 소녀가 다소곳이 말했다. 그녀가 읽고 있는 책은 빽빽한 글자들이 써져 있었고 그 밑에 앉아있던 소년은 보고 있던 그림책을 보고 있었다.


“특별한 건 뭘까?”


“특별한 거?”


스파타는 하늘을 보며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우리?”


“우리...”


“응, 확실히 우리는 저 밖에 애들처럼 매일 친구들을 만나 햇살 아래서 놀진 않으니까.”


스파타는 순진하게 대답했다. 정확하지만 무심하게 던진 말이였다.

플랑도 이 말을 원했지만 한 편으론 이 말이 듣기 싫었다.

공감 받고 싶었지만 이게 진실이지 원치 않았다.


“그럼 평범한 건?”


“평범한 거?”


스파타는 다시 한 번 생각 해 보았다.


“우리.”


스파타는 능글능글하게 대답했다. 보이진 않지만 분명 웃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 왜?”


“친구들을 많이 만나서 놀진 않지만 우리도 지금 같이 있잖아. 난 지금도 재밌는 걸?”


플랑은 잠시 벙 찐 채 답하지 못했다.


“플랑도 좋지 않아?”


“...하하”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끝내 웃음을 터뜨렸다.


“응, 나도 지금이 좋아.”


“그럴 줄 알았다니까.”

스파타도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많은 사람은 있지 않았지만

그들은 그 둘만 있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럼 우리도 놀러가지 않을래?”


“수녀님한테?”


그 둘은 잠시 쳐다보다 얼른 밖으로 나갔다. 저물어가는 태양빛 아래 다른 아이들과 같은 모습으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매시여.”


어두운 방, 촛불에만 의지한 자그마한 방에서 환자들을 치유하고 있는 수녀의 뒤로 거구의 여성이 다가와 말했다.


“무슨 일이시죠?”


“결정이 부셔졌다고 합니다.”


수녀는 잠시 멈칫했지만 그녀는 다시 자신의 환자를 치유했다.


“이제 괜찮을 겁니다.”


“정말 안아파..!”


방금까지 살점이 썩어가던 환자의 몸은 금세 멀쩡해져 다시 걸을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정말 감사합니다!”


환자는 눈물을 글썽이며 수녀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아니에요. 남겨진 자가 남지 않을 때까지. 그것이 빛의 뜻이니까요.”


수녀는 환자를 안아주었다.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감사하다는 말만 반복하였다.

수녀는 거구의 여자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럼 이쪽으로 오시지요.”


“네...넵...정말이지 감사드립니다.”


여자는 환자를 문 밖으로 인도하였다.


“그래서, 그가 정말로 빛으로 돌아간 겁니까?”


수녀는 알고 있다는 듯이 물었다. 그러자 불이 미처 밝히지 못한 그림자 속에서 새부리모양의 가면이 나타났다.


“그들은 빛에서 빚어지지 않았다. 그는 그가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우리는 그것을 빛의 품으로 돌아갔다 하죠. 아직도 그 불살라진 나무를 믿는 우매한 자들이 있나요?”


“그들은 양면성에서 태어났다. 빛은 하나이자 둘이다.”


중후한 목소리의 남자는 태연하게 말했다.


“그래서 빛은 어둠을 지우기 위해 우리를 빚으셨고 우리는 그 교리를 어겨선 안돼죠.”


“...”


“그럼 곧 있으면 시곗바늘이 움직이겠군요.”


수녀는 자신에 손목에 있는 시계를 보았다. 그녀의 시간은 멈춰져 있었다.


12:59


“시곗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날. 누가 뭐라하든. 저는 모두를 구해낼 겁니다.”


“빛이 언제나 옳은 곳을 비추는 것은 아니다.”


남자는 말을 남긴 채 다시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똑똑


“들어오렴”


방금까지 진지했던 수녀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상한 수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수녀님!”


플랑이 수녀에게 안겼다.


“안녕하세요!”


스파타가 해맑게 인사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나, 자매님은 오늘따라 유독 활기차네.”


“네! 오늘은 책도 다 읽고 약속도 지켰는걸요?”


플랑은 수녀에게서 내려와 당당하게 말했다.


“그럼 수녀님이랑 한 약속도 지켰겠네?”


“네!”


“그럼 내가 다음에 무슨 말을 할지 맞혀볼까?”


수녀는 분위기에 맞춰 활기차게 묻자 플랑이 고개를 끄덕이곤 기도를 영창했다.


“어둠 속의 진실이여.”


플랑의 검은 눈동자가 금색으로 물들었고 주위에 있던 어둠이 지워질 정도로 강력한 빛이 흘러나왔다. 스파타는 계속 이 상황을 봐왔지만 언제나 신기했다.


“다음에 하실 말씀은 ‘연습 많이 했구나’예요!”


플랑은 큰소리로 말했다.


“땡!”


수녀는 손가락을 세웠다.


“수녀님은 약속을 안지켰네라 말할거에요~”


“네?”


플랑은 자신이 본 답과 달라 어리둥절했다. 수녀는 로브 밑에 숨어있던 플랑의 손을 잡았다. 로브를 치우자 플랑의 손가락마다 붕대가 감겨 있었다.

“수녀님은 ‘다치지 않고 연습 많이 해와’라고 했잖아~”


수녀는 손을 잡은 채 눈을 감았다. 두 손에 가려진 손에서 약간의 빛이 흘러나오더니 플랑의 손가락에 생채기 하나 남지 않았다.


“우우..”


“속상해 하지마렴. 연습하다 보면 언젠가 분명 될 거야.”


“하지만 저는 수녀님처럼 남들을 돕고 싶은 걸요? 맨날 틀리는 앞날만 보는게 아니라요...”


플랑은 기가 죽은 채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냐, 사람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인걸. 우리 자매님두 자매님만의 방법으로 남들을 도와주면 되는거에요. 알겠죠?”


“네!”


기가 죽은 플랑을 달래주자 플랑은 다시 활기차게 대답했다.








“이게 무슨 소리지?”


예언자가 죽었다.


수녀는 그 종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그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다. 그리고 그녀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시곗바늘이 움직였음을.


“형제자매님들, 조금만 이따가 갈까요?”


수녀는 미소를 지으며 플랑과 스파타를 돌아보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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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단의 숲 +3 22.04.24 42 3 9쪽
5 독립 +2 22.04.19 40 3 11쪽
4 악재 +2 22.04.14 50 4 9쪽
3 균열 +2 22.04.12 53 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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