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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로팔백오십번길 우리 엄마 문방구엔 특별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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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1.10.24 02:21
최근연재일 :
2021.10.24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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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4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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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기도 하고

DUMMY

(제2화 재밌기도 하고, 하는 행동이 귀여워서) 정조로팔백오십번길 우리 엄마 문방구엔 특별한 게 있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눈 앞에 아무리 많은 사람이 있어도 눈길이 가는 사람. 몇 번이고 다시 보게 되는 사람.

내게 사나라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간이침대에 누워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여전히 회랑 안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순간 무언가 떠올랐다. 덮고 있던 이불을 들췄다. 바지가 뽀송뽀송했다.

나는 얼굴을 붉혔다.

"걱정 말아요. 내 손으로 하진 않았으니까."

칸막이 뒤로 여자가 나타났다.

뽀얀 피부. 옅지만 긴 눈썹. 매력적인 홑꺼플의 눈. 도톰한 입술과 균형잡힌 코. 장난끼 가득하면서 어딘지 선선한 인상.

사나라. 맞다. 나라다. 마지막으로 본 게 졸업식 때였다. 변한 게 없었다. 여전히 예쁘다.

"바지는 우리 오빠 거에요. 가끔 여기서 자고 갈 때가 있었거든요."

나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기는 나라가 운영하는 갤러리다.

나는 분명 살아있고, 그 녀석에게서 도망쳤다.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엄마는 사라졌고 이상한 공책을 얻었고 능력이 생겼고 어떤 놈이 내게 찾아왔다. 그놈은 날 죽이려했다. 그녀석이 엄마를 언급했다.

날 죽이려했던 것처럼 엄마도 죽였을까. 뭔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졸업하고 오랜만이네요. 아니다, 최근에 몇 번 봤죠."

나라가 재밌다는 듯 웃었다. 나는 어쩔 줄 몰라 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내가 세어본 것만 열 번은 넘어요."

"알고 있었어?..."

"오빠 바보죠? 열 번 씩이나 온 사람이 그림은 안 보고 제 얼굴만 쳐다보면 당연히 누굴까 궁금해지죠."

나라가 내게 차를 건넸다.

"처음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인상이었는데 자꾸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근데 오빠는 오히려 모르는 사람인 척 하더라고요. 재밌기도 하고, 하는 행동이 귀여워서 그냥 속아주기로 했죠."

사실 대학교 때 난 나라와 친하지 않았다. 그냥 수업 몇 번 같이 들은 것과 복도에서 지나치며 인사한 정도?

'안녕하세요.' '어어, 안녕.'

'선배 오늘도 사진 찍느라 바쁘시네요.' '어 그렇지 뭐.

이 정도.

"미안... 다른 의도가 있던 건 아니야. 그냥 회랑을 열었다길래 궁금해서. 그림 보는 것도 좋아하고..."

"걱정말아요. 스토커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스토커란 말에 나는 손을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그런 거 아니야. 진짜 그냥 순수하게..."

"알아요. 별 뜻 없었다는 거. 그보다..."

사라가 얼굴을 찡그렸다.

"그 사람이 오빠 찾아갔죠?"

"그 사람?"

나는 미간을 지푸렸다.

나라가 안주머니에서 작은 공책 하나를 꺼냈다. 그녀의 공책도 잿빛이었다.

"그럼 너도?"

"네, 맞아요."

그녀는 탁상에 있던 공책을 들어 내게 건넸다. 그것은 내 것이었다.

"어? 분명 빼앗겼는데."

"혹시 오빠 죽을 지경까지 갔었어요?"

"어. 맞아. 목이 조였고... 그 다음은 기억이 안나. 분명 죽었다고 생각했어."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금씩 쫄깃해지는 심장. 숨이 차오르고 공포는 극에 달한다. 공황 발작 때와 똑같았다. 다른 게 있다면 정말 죽는다는 것.

"그리고 빛이 났죠? 펜에 손도 안됐는데?"

"맞아."

나라는 위기에 빠질 때면 그러곤 한다고 했다. 공책에 무언가를 적지 않아도 마법이 사용된다고.

"난 우리 오빠와 이걸 처음 발견했어요. 어느 날은 오빠가 장난을 치다가 내가 죽을 뻔 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게 날 구해줬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위기에 처할 때면 매번 그랬어요."

'위기에 처할 때면이라... 죽을 뻔한 적이 몇 번 더 있었다는 건가?'

질문을 하려는 순간 나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녀의 몸에서 향긋한 향이 풍겼다.

"이제 움직일 수 있는 거 같은데 이제 그만 가자고요."

그러면서 내 어깨를 찰싹 쳤다. 기분 좋은 스킨십이었다. 친해진 것도 같고.

"아 가자고 그래... 근데 어디를?"

"일단 설명은 가면서 해요."

나라가 내게 겉옷을 던졌다. 그녀는 칸막이를 걷으며 홀 쪽으로 걸어갔다. 윤기나는 단발머리가 찰랑였다.

지붕에 나있는 창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가게에 있을 때 밤이었지... 하루가 지났구나.'

난 몸을 추스르며 일어났다.

나라는 날 기다리며 기지개를 폈다.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그녀의 하늘색 원피스가 시원하게 빛났다. 원피스 밖으로 나온 하얀 피부가 싱그러웠다.

정신이 맑아지는 게 느껴졌다.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밖으로 나가자 대형을 이룬 관광객들이 줄지어 이동하고 있었다.

여름의 강렬한 햇빛으로 눈이 부셨다.

대학생으로 보이는 연인들도 꽤 보였다. 눈부시게... 부러웠다.

'젠장 좋겠다.'

나는 앞장서고 있는 나라의 뒷모습을 보았다.

'이걸... 데이트라고 치면 맞는 거지? 아니면 위기에 빠진 두 남녀가 위험을 헤쳐나가며 사랑에 빠지는, 뭐 그런 거?'

이상하게 가슴이 설랬다. 아 봄은 좋은 거지. 오랜만이다.

하지만 아차 싶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엄마가 그자식한테 뭔지 모를 엄청난 일을 당했는데 감상에나 빠져있다니...

목적지도 모른 채 그녀에게 이끌려 주차장으로 갔다. 그곳엔 그녀의 볼보 XC40이 있었다. 동창들에게서 그녀가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들었는데 진짜 그런가보다.

"네 차야?"

의미를 알 수 없는 웃음으로 나라가 대답을 대신했다.

난 뭔가 잘못 말했나 싶었다. 차에 탄 뒤 불필요한 설명을 남발했다.

"아니... 저기 그냥 넌 화랑도 운영하고 네 그림도 파니까 왠지 성공해서 차 산 거 아닌가 하고 물어봤어..."

"성공은요 무슨. 다 부모님 돈으로 한 거에요. 그렇다고 부모님이 녹록한 분들은 아니에요. 화랑이야 제가 재능이 있으니까 도와 준 거지 차까지 사줄 분들은 아니죠."

언젠가 나라의 집이 꽤 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거기서 말을 끝냈다. 부가적인 설명이 뒤따라야 자연스러웠다. 날 배려하는 것 같았다.

그녀의 의도가 어찌됐든 그말은 듣자 그녀가 조금 부러웠다. 예전에 엄마가 한 말이 떠올라서였다.

"넌 똑똑하고 재능도 있어서 부잣집에서 태어나야 하는 건데... 엄마는 항상 미안했어."

우리 엄마가 가난해서 부러웠던 건 아니다. 난 재능과 돈, 그 관계가 부러웠다. 재능도 있는데 돈도 있다.

하지만 엄마와 난 그런 관계가 아니다. 엄마를 원망한다는 건 절대 아니다. 엄마는 돈이 없었다. 그랬다면 내가 재능을 타고 나지 말았어야 했다.

재능을 타고 나지 않았다면...섬세하지도, 예민하지도 않았을 거고 그럼 어디 가든 잘 적응했을 거다. 불안장애도 없었을 테고 상담 받느라 몇 백을 쓰지도 않았을 테고 백수에서 탈출해서 조금이나마 가게 사정에 도움이 됐을테지.

"만들었어요." 나라가 말했다.

"만들었다고?"

"네."

차는 부드럽게 주차장을 빠져 나갔다. 외제차는 처음이라 그런가, 승차감이 좋다.

"그럼 공책으로 만들었단 말이야?"

"네."

"그치만 난 해도 안됐는데? 그래서..."

능력자 되고도 찌질하게 노가다를 뛰었고 모닝부터 시작해서 포르쉐까지 갔단 말은 못한다.

나라가 먼저 말했다.

"선배는 아직 노트에 대해 잘 모르죠?"

"어. 난 아직 이주 밖에 안됐거든. 게다가 노트 규칙의 절반이 찢어져 있었어."

"알아요. 선배 잠들어 있을 때 잠깐 봤어요. 써져 있는 거 보니까 정말 별 거 없던데요?"

운전하는 옆모습으로 눈웃음을 짓는 게 보였다.

'아씨... 노트에 쓴 거 안 지웠다.'

날자, 투명인간ㄱㄱ, '손'이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효신형 뺨치는 목소리ㄱㄱ, 이영호급 손놀림+정신력, 주식 한 주당 삼백 가즈아!!!!!

이딴 걸 써놨다... 거기에...

"저기 그 고양이말 있잖아... 그거 진짜야. 정말이라고 당장이라도 보여줄 수 있어."

정말인데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게 얼마나 개멍청이처럼 보일까.

노트엔 고양이 말이 적나라하게 적혀있었다.

왠지 모르겠는데 일종의 번역기처럼 고양이가 하는 말이 거기에 적히고 내가 할 말이 고양이 말로 변역됐다.

그걸로 내가 고양이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나라가

"야옹야오오옹옹야옹옹야놀자야옹야옹"

이러는 거다

나는 푸하, 하고 웃었다. 그럴 거 같지 않은 얼굴로 그러고 있어서였다.

"왜 웃어요? 나 진지한데. 저도 안다고요. 고양이말. 자취방에 고양이 키워서 알아요."

정말 진지해보였다.

"그냥... 뭔가 안 그럴 거 같은데 그럼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해요."

"뭐 이런 거요? 웨브라다이히댜츄ㅜ가ㅏ차도츄ㅗㅠ"

오만상을 다 지어가며 나라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내가 다시 웃었다.

"저 생각보다 그렇게 차가운 사람 아니에요."

그러고 보니 학교사람들은 나라를 굉장히 차가운 여자로 보고 있었다.

"자기들이 지레 겁먹고 나한테 못 다가온 주제에 이상한 소문들 퍼트리더라고요. 할튼 남자들이란."

그런 소문을 낸 적은 없지만 괜히 찔린다. 아닌가? 냈던가? 기억 안 난다. 어른이 되면 나이 많아지고 빚 늘고 기억력은 감퇴된다. 나쁜 건 많아지고 좋은 건 적어진다.

"어쨌든 선배는 글로 썼죠?"

"어."

"그래서 안됐을 거에요. 대충 돈 나와라 뭐 이정도였을 테니."

"맞아..."

"전 그림을 그렸어요. 돈 그림을 자세하게 그렸죠. 그랬더니 나왔어요. 우리 오빠도 글 쓰는 걸 좋아해서 엄청 자세히 썼는대도 안 나왔어요. 그림으로 거의 똑같이 그리지 않는 이상 물건은 웬만하면 소환되지 않아요."

돈이라는 건 그냥 개념이지 실물이 아니다. 오만원권에 대해 신사임당 말고 내가 아는 게 무엇이 있던가.

"전 예전부터 자동차 그리는 걸 좋아했어요. 외관, 실내, 구동장치까지 자세히. 자동차 디자이너가 꿈이었거든요."

자동차 디자이너? 그것도 꽤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런데 왜 화가가 됐을까.

차가 멈추자 나라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볼보는 아주 쉽게 소환할 수 있죠. 의외로 간단했어요. 외관만 그리면 됐거든요. 물론 상상은 속까지 훤히 들여다보이게 했지만. 선배는 모르는 게 많을 거에요. 아까 규칙이 반 장 정도 찢어졌다고 했죠? 잠깐만요."

다시 차가 멈추자 나라는 자신의 노트를 꺼냈다. 손도 되지 않았는데 노트가 펼쳐지더니 먹물 같은 검정 액체가 책에서 나와 나라의 손으로 옮겨졌다.

내 공책으로 향한 손이 액체를 내 노트에 집어넣었다. 책장 넘어가듯 휘리릭 소리가 났다가 잠잠해졌다.

"펼쳐봐요."

노트를 펼치자 찢어진 첫 장이 온전하게 돌아와 있었다. 거기에 규칙 몇 가지가 추가됐다.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무지한 창작자를 위한 친절한 사용 설명

1. 상상을 책에 표현하면 현실이 된다.

2. 상상력이 뛰어날수록 더 많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3. 생명의 마음을 조종할 수 없다..

4. 질량보존의 법칙, 등가교환의 법칙을 위배할 수 없다.

5. 4번 법칙을 깰 방법이 있다.

6. 맨입으로 알 수 없다. 힌트를 얻어라.

나는 신기하다는 듯 규칙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런데 4번 법칙을 깬다는 게 뭐야? 질량보존의 법칙을 깨버리면 엄청난 거 아니야?"

"그렇죠. 뒷장도 봐요."

뒷장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게임이다.

1. 거대한 힘은 분산이 아니라 집중에서 나온다.

머리 속이 혼란스러웠다. 법칙을 깬다는 건 뭐고, 갑은 또 무엇인가.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도대체 이게 다 뭐야.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나라가 핸들을 꼭 쥐었다.

"저도 한 달 전까진 그랬어요. 그 자식이 나타나기 전까진."

나라의 얼굴이 지금까지와 달리 심각해보였다. 마치 전장에서 돌아온 듯 공포와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 핸들을 움켜진 손등 위로 눈물 한방울이 떨어진 건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차는 빠르게 터널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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