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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로팔백오십번길 우리 엄마 문방구엔 특별한 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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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1.10.24 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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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0.24 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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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0.24 0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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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DUMMY

(프롤로그) 정조로팔백오십번길 우리 엄마 문방구엔 특별한 게 있다


나는 백수다. 아빠 말대로 "놀고 먹고 팔자 좋은" 백수다.

좋아서 백수가 된 건 아니다. 그런 사람이 있을까. 있긴 있겠지. 그래도 일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대부분이다.

능력이 빠지는 건 아니다. 사고력이 뛰어나고, 공부도 잘했다. 대학교 성적도 상위권이다.

정치나 경제 사정 때문에 취업이 어려운 것도 있겠지. 나중에 얘기하자. 일단 표면적인 문제는 멘탈이다.

남들은 나약하다고 말한다. 맞을수도 있다. 이래저래 고민 많고 예민하다. 이래서 힘들어, 저건 나랑 안 맞아. 따질 게 많다.

사실 속사정이 있다. 나는 선천적으로 불안을 타고났다. 불안장애. 별 일 아닌데도 불안해하고 그게 심해지면 공황발작까지 간다. 숨이 빨라지고 맥박이 치솟다가 심장 마비가 올 것 같다. 뚜뚜뚜 젠장... 인생 끝났다...는 아니다. 그렇게 느낄 뿐 죽진 않는다. 그래서 아빠는

"저 새끼 저거 일 안하고 한량짓하려고 수작 부리는 거야."

라고 화를 낸다.

억울하다... 하지만... 반박할 수 없다. 반박하면 쫓겨난다.

며칠 전 엄마가 집을 나갔다. 출근하는 아빠와 마주치기 싫어 산책 갔다오니 엄마가 사라졌다.

솔직히 엄마가 사라진 건 당연했다.

엄마의 문방구는 매달 적자다. 통장을 보니 마이너스 이천사백오십만원이 찍혀있더라. 어른 되면 늘어나는 건 나이랑 빚 밖에 없다는 말은 사실이다.

거기에 나이들수록 점점 아빠는 괴팍해지고 난폭해졌다. 하루에 비우는 술병이 늘면서 막말을 지껄이고 술병을 던진다.

딱히 그럴만한 이유는 없다. 왜 음식맛은 이따구냐, 문방구는 왜 맨날 적자냐. 흠... 나를 향해 던진 적도 있는데 내가 백수라는 이유는 어느 정도 타당하니 넘어가자.

나이들수록 전두엽이 먼저 퇴화된다는데 그때문인지 아빠는 감정 조절을 못한다.

나는 그러려니 하는데 아빠가 던진 술병은 주로 엄마를 향한다. 집을 나간대도 이상하지 않다.

불안장애 때문에 일도 못하고 집을 벗어나지 않는 아들까지. 나라도 뛰쳐나간다.

어쨌든 엄마의 문방구에서 그걸 발견할 당시 내 상황은 그랬다.

엄마가 사라지고 아빠와 나는 엄마를 찾기 위해 애쓰지 않았다. 아빠는

"그 썩을년 이젠 아주 도망갔다 이거지 돌아오기만 해봐 아주 묵사발을 만들테니"

라고 했다.

나도 딱히 엄마를 찾을 생각이 없다. 엄마가 애도 아니고, 집 나가든 말든 자유다. 남은 여생 이렇게 사느니 도망가는 게 낫다.

엄마보단 나 자신이 걱정됐다. 이제 어떻게 사나.

감옥 같은 집에서 간수 같은 아빠와 지내야 한다.

막노동 하는 아빠는 일하는 날이 들쑥날쑥해 해봤자 백만원도 못 번다. 그 돈 다 술값으로 나간다.

용돈 줄 사람은 없고 당장 내일 먹을 밥부터 걱정이다.

하루도 편히 자지 못했다. 정신과 의사에게 처방받은 알프람정(약물 오남용은 위험하다)을 먹어야 그나마 몇 시간을 잔다.

며칠 뒤 나는 정조로 팔백오십 번길에 있는 엄마의 문방구를 찾았다.

셔터를 열고 불을 켠 뒤 카운터에 앉아 생각에 잠겼다.

'아씨. 졸라 불안하네. 용돈 받으러는 와봤지 이딴 걸로 올 줄 몰랐네.'

막노동하는 아빠가 가게를 운영할 리 만무하고 당장 가게는 팔 수 없고... 결국 장사는 계속해야 하는데 맡을 사람은 나뿐이다.

찬찬히 가게를 살폈다. 모든 게 잘 정돈됐다. 엄마가 죽으러 간 게 아닐까 생각했다. 대학교 수업 때 들었다. 죽으러 가기 전 자리를 정리하는 사람이 있다고.

빠짐없이 돌아봤는데 모두 칼 같이 정리된 상태였다. 분명 집 나가기 전에 정리한 것이리라.

그러다 이상한 걸 발견했다. 뒤쪽에 처음 보는 문이 하나 있었다. 거기까지 가본 적이 없으니 처음 보는 게 당연했다.

문을 열자 지하로 가는 계단이 나왔다. 전등 스위치를 켰다. 탁탁거리며 전등 몇 개가 켜졌다.

처음엔 뭔가 대단한 물건을 숨겨뒀거나 아니면 아지트라고 생각했다. 엄마가 주부도박단 두목이고 이번에 경찰에 발각돼 도망자 신세가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엄마가 그정도의 거물이었다니 그것도 나름 괜찮군. 요리조리 남편 술병 피하는 아줌마보단 낫네'

하지만 무엇도 아니었다. 1층 매장과 똑같았다. 진열된 물건의 양이 두 배 정도 많았다. 도소매를 겸했으니 물건을 저장해둔 장소일 것이다.

1층과 똑같이 물건은 깔끔하게 진열됐다.

나는 1층에서 한 것처럼 지하실도 둘러봤다. 이상한 점이 하나 있었다. 구석진 곳에 노트를 진열하는 공간이 있는데 거기만 엉망이다. 마치 도망가기 급급한 도둑의 소행 같았다. 노트 수십개는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왠지 정리해야 할 것 같았다. 진열장에 있는 노트를 바로 세우고 바닥에 떨어진 것들을 꽂았다.

공책 하나가 눈에 띠었다. 누군가 포장을 뜯고 펼쳐본 흔적이 있다. 하나 살펴보았다. A4용지 사이즈에 백색 커버를 가진 노트. 커버를 넘기자 무어라 적혀있다. 반 정도 뜯겨 나간 첫 장은 이랬다.

당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이 현실이 된다.

무지한 창작자를 위한 친절한 사용 설명

1. 상상을 책에 표현하면 현실이 된다.

2. 상상력이 뛰어날수록 더 많은 상상을 현실로 만든다.

3. 생명의 마음을 조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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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 개소리,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별 같잖은 노트구만. 규칙은 또 엿같이 많네.'

이렇게 아이들 코묻은 돈 갈취하는 노트는 쌔고 쌨다. 일본 유명 만화인 데스노트를 따라한 노트가 바로 옆에 진열돼 있다. 그런데 나는 좀 진지해졌다.

데스노트의 야가미 라이토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다. 애들 장난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규칙이 정교하다. 그렇다고 어른 상대로 이런 책을 팔 사람은 있나. 뭔가 있다 이건.

사실 뭣 같은 생각이다. 하지만 몇 년째 이어진 백수생활과 엄마의 가출 때문인지 왠지 이성적일 수 없다. 아니면 사회활동도 못하고 극심한 불안으로 신경 이상이 생겨 아빠처럼 뇌가 퇴화됐거나.

어쨌든 나는 한 번 써보기로 했다. 음표 그리는 건 서툴고 그림은 손이 많이 간다. 그래도 나름 소설을 써본 경험이 있다.(근데 소설 써본 경험이랑 무슨 상관?)

나는 머리 속에 신사임당과 오만원권이 담긴 직사각형 모양의 검정 플라스틱 가방을 생각했다. 졸라 구체적으로. 그리고 글을 썼다. 말은 왜 했는지 모르지만 말도 같이 했다.

"돈 나와, 돈가방 나와."

그런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시도해보자. 이번엔 좀 쉬운 거.

내가 날아오르는 상상을 했다. 책에 썼다.

날자.

그러자 진짜 날아올랐다!!!!!!!!!!!!!!!!!!!!

오오미로ㅓㅇ지ㅏ;ㄹ험;ㅣㅏ팍 쉣더이다빡허ㅏㅣ;ㅁㄴ이ㅏ흐;

오 진짜였다. 볼 꼬집는 전형적인 짓은 안했다. 내가 날고 있는데 그럴 필요있나.

몇 가지 더 해봤다. 돌주먹을 상상하고 적었다. 주먹을 내질렀는데 콘크리트 벽이 산산조각 났다.

투명해지는 모습을 상상하고 쓰자 그렇게 됐고 순간이동을 상상하고 그렇게 쓰자 1층으로 이동했다.

이상한 점도 있었다. 불, 물은 소환되는데 이상하게 돈이나 금 같은 건 안 나온다. 물질을 나누는 기준이 따로 있나? 아니면 내 상상력이 딸리나?... 하지만 상관없다. 이정도면 백수는 끝이다. 아니, 슈퍼 초 울트라 한량이 될 수 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건, 투명인간이 되는 거다. 왜? 아침마다 출근하는 아빠랑 마주치기 싫어서. 밖에 나가는 것도 귀찮고 이젠 능력이 있다.

그냥 투명인간 돼서 거실 소파에 얌전히 있었다. 엿 같은 아빠는 아무것도 모르더라.

다음으로 한 건 고양이한테 먹이주기.

우리 아파트엔 캣맘이 많다. 한 달 전 주민회의에서 먹이주기를 금지했다. 개체수가 늘어난 고양이들이 단지를 활보한다는 게 이유였다. 겨울철, 따뜻한 보닛 위에 올라가 흠짓을 내는 게 가장 큰 이유였지만. 그렇게 급식을 잃은 고양이가 불쌍한 차였다.

몇 가지 방법을 고민했다. 간단하게 고양이 말을 쓰기로 했다.

근데 고양이말을 상상할 수 없는데 어쩌지. 대충 고양이랑 대화하는 장면을 떠올리고 책에 썼다. 대박. 된다. 고양이들이 야옹야옹해서 그들의 언어가 야옹일 것 같지만 아니다. 그들의 말은 이렇다. 번역도 같이 붙인다.

나: 야옹옹야야야오오옹야옹옹야옹야옹(내가 저기 주차장 끝에 먹이 뒀으니까 들키지 않게 먹어)

고양이: 야옹야옹이야옹(그래)

나: 야옹옹야옹오옹야야야야야오옹옹옹옹야야야옹야놀자오옹(주민들이 자동차 보닛에 올라가는 거 싫어하니까 올라가지 말고)

고양이:야옹옹옹오야오옹야야?(거기 따뜻한데 안돼?)

나:야옹옹야오옹양야양야옹야야야오옹야옹오옹오야옹야옹야(응 안돼. 그럼 밥 못줘. 밥을 선택할래? 보닛 선택할래?)

고양이:야......(흠.....)

나:양옹양양야야야야야오오오오오옹옹 양야야야옹오애오오애옹(잠자리는 내가 단지 옆에 마련해줄테니 밥 먹어)

고양이:양야양오옹야옹옹(고마워)

거짓말 같지만 정말이다.

그런데 왜 능력자가 됐는데 이런 일들만 했을까.

타고난 불안 때문이다.

스파이더맨의 명대사 '엄청난 힘엔 그만한 책임이 따른다.'

투명해진 내가 은행을 털고 겁나 튼튼하게 신체를 강화해 UFC 챔피언을 먹으면 세상이 이상하게 보지 않을까.

그러다 한국 정부나 미 정보부의 눈에 띠면?(사실 한국 정부나 나나 수준이 비슷해서 한국은 걱정하지 않는다) 그럼 공공의 적이 될 것이다. 붙잡히면 실험 대상이 되는 거고.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데스노트, 테드창의 소설. 범상치 않은 존재는 너무 쉽게 발각된다.

그런데 나중에 나오겠지만 무서운 건 따로 있다. 데스노트의 L, 테드창 소설 속 다른 초능력자 같은.

어쨌든 그래도 능력자가 되었는데 뭐라도 한 건 해야 속시원하지 않나.

'뭔가 통쾌하고 즐거운 거 없을까. 이를테면 복수'

예전에 담배 사달라던 고딩들의 부탁을 거절한 적이 있다. 신분증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자 고딩 여자애가 말했다.

"얼굴이 신분증인데요?"

화가 나서 쏘아봤더니 세 네명의 남자 고딩들이 살벌하게 내게 다가왔다.

"아 씨발 뭘 꼬라봐. 담배 안 사줄거면 꺼지던가."

그래. 나는 꺼져줬다. 그녀석들에게 복수할까. 그건 차차 하자. 만날 날은 많다.

나는 나를 괴롭혔던 전 직장 사장에게 복수하기로 했다.

나는 기계 설비에 전선을 까는 일을 했다. 나름 실력도 좋고 손도 빨랐다.

그런데 사장놈은 뭐가 마음에 안들었는지 느려텨졌다며 닥달했다. 동료와 비교하고 틈만나면 성질냈다.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그만뒀다. 알고보니 일부러 그런거다. 더 빨리 일하게 만들려고 채찍질했단다.

다시 일하고 싶다고 찾아갔다. 사장은 너스레를 떨면서 이제와서 너 같은 새끼 다시 쓸 거 같냐고 훈계질을 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날 반드시 뽑는다.

어차피 사장도 일용직이나 다름 없는 하청업체 사장이다. 본청에서 물량을 주면 일하고 없으면 논다.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최대한 빨리 끝낼수록 돈을 많이 번다. 손이 빠른 난 그에게 좋은 일꾼이다.

사장은 날 다시 고용했다.

다시 나간 첫날. 뇌의 사고능력과 손의 운동능력을 강화했다. 기계설비 10대분의 전기 배선을 모두 끝냈다. 3주는 걸릴 일이다. 머저리 같은 사장은 입을 떡벌리고 아무 말도 못했다. 사장을 비웃으며 내가 말했다.

"일 다 했는데 가도 되죠? 돈은 안 주셔도 돼요. 그냥 오랜만에 놀러 온 거니. 오늘까지만 일할 거니까 연락하지 마시고요. 사장님 느려터져서 같이 일하기 짜증나거든요."

그날 내가 회사 정문을 나갈 때까지 사장은 나를 쫓아왔다.

"정석군. 같이 일하자. 돈 같이 반으로 나눠서. 너랑 나랑 같이 뭉치면 장난 아닐거야.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미안해 이렇게 싹싹 빌게."

물론 나는 거절했다. 50통에 가까운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이게 내가 그 책을 소유한 뒤 일주일 동안 벌인 일이다.

난 앞날이 창창하다고 느꼈다. 눈에 띄는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신체를 강화해서 노가다를 뛰면 된다. 일이 없으면 9팡 같은 곳에서 택배 상하차를 하면 되고. 매일 10만원씩 벌면 워라벨하면서 이백은 넘게 번다. 더 욕심낼 것도 없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그 새끼가 엄마 문방구에 찾아오기 전까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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