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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입니다.

이웃집 그 시인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작가돌
작품등록일 :
2021.10.23 23:47
최근연재일 :
2021.10.24 00:04
연재수 :
3 회
조회수 :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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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글자수 :
29,906

작성
21.10.23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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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9쪽

당신이 왜 이 시점에서 나오는 건데

DUMMY

부처님 하나님 염라대왕님

저 이대로 죽는 건가요.

이런 날이 올거라 예상했어요.

로또는 안되고 이런 거만 되네요.

그냥 얌전히 살걸.

엄마 나 죽어.

근데 후회 안해.

어쨌든 좋은 일 한 거니까.

무더운 여름날 밤

나사라, 그를 만나다.

***

한 시간 전

집 앞 데크.

사라는 친구들과 함께 무더위에 지친 몸을 맥주로 달래고 있었다.

출판사에서 걸려온 전화로 기석이 잠시 자리를 비우자 나래가 물었다.

(나래)“너 갑분모라고 알아?”

(사라)”갑분모?”

맥주 한 캔을 한 번에 비워낸 사라가 세 번째 맥주를 따며 물었다.

(사라)”갑자기 분위기 모텔?”

(나래)”어휴 음큼하긴. 제대로 좀 말해봐.”

두 시간 동안 나래의 얘기만 들어서였을까.

대답 대신 사라는 오징어 다리를 물었다.

따분함을 말해주기라도 하듯 질긴 오징어 다리가 영 씹히지 않는다.

사라는 인상을 잔뜩 지푸렸다.

(사라)”몰라. 뭔데?”

(나래)”갑자기 분위기 모델.”

(사라)”모델?”

(나래)”그래, 모델!”

나래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나래)”요즘 천재 시인 이시우가 그렇게 핫하잖아. 분명 이 세상 외모가 아닐 거야. 멋져 멋져. 아주 멋지다고.”

(사라)”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이시우 얼굴은 아무도 모르는데.”

(나래)”난 알 수 있어. 그의 시를 읽으면 그의 미모를 느낄 수 있거든.”

받자마자 쓰레기통에 쳐박은 카드고지서처럼 사라의 얼굴이 구겨졌다.

이 정도면 병이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미모에 반하다니.

맛보지 않았지만 맛있었어, 술 먹고 운전은 했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어, 뭐 이런 건가?

천재 시인 이시우.

시집 최초 온오프라인 베스트셀러 종합 1위

그리고 3대 시문학상 중 하나인 프랑스문학협회 월계시상 올해의 수상자.

시문학에선 노벨문학상에 버금가는 상이기에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시인.

그 모든 업적을 20대 초입에 이뤘기에 더 대단했다

하지만 대중이 이시우에 대해서 아는 건 없었다.

대중 앞에 서는 걸 극히 꺼려했기 때문이다.

이시우의 사진은 해커들조차 손에 넣을 수 없었다.

월계상 수상 당일, 시상대에 오르지 않은 것도 당연했다.

대리 시상을 한 출판사 사장이 대신 수상 소감을 전했다.

“저는 말렸는데 이 시인이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렇게 수상소감을 전했습니다. ‘이 나이의 청춘은 알바하느라 바쁜데 저도 알바 뛰느라 바빠서 못 나갑니다.”

곤혹스러워하던 출판사 사장과 달리 청중은 웃음바다였다.

문학적 성공에 버금가는 센스였다고 유럽 언론은 평했다.

제대로 뒤집어진 건 한국이었다.

문학시상식에 권위와 엄숙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한국에서 그야말로 센세이션.

그렇게 당돌한 청년이 도대체 누구인가.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이 미남이라고?

꼭 우주 대스타를 눈 앞에 두고 있다는 나래의 황홀경.

어이가 없다.

두 시간 가까이 나래의 미남 얘기만 들어서 그런가 이상하게 속이 베베 꼬인다.

의미싱장한 미소를 지으며 사라가 옆에 있던 빈캔을 움켜쥐었다.

사라의 손을 떠난 빈캔은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주인의 의지에 따라 목표물을 포착한 캔은 타겟을 향해 곤두박질쳤다.

정확한 착지.

쾡, 하는 소리와 함께 나래의 정수리에 정확히 명중했다.

그 모습을 보자 사라는 스트라잇,하며 허공에 어퍼컷을 날렸다.

(나래)”아 뭔데. 아프잖아.”

(사라)”야, 기자들도 모르는 이시우 얼굴을 네가 어떻게 알고 미남미남이야.

(나래)"내가 미남으로 생각하겠다는데 네가 뭔 상관인데?"

(사라)"상관있지. 지금까지 두 시간 하고도 5분 2초가 지나고 있어. 네 미남 얘기 내가 언제까지 들어야 하는데. 교통사고까지 당했으면 정신차려야지, 언제까지 그럴 거야.”

한심하다는 듯 사라가 혀를 쯧쯧찼다.

서른 전 나래는 교통사고를 당한 적 있었다.

운전 중 미남에게 정신을 뺏긴 게 화를 불렀다.

달려오는 트럭을 그냥 들이받고 상당 기간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나래)”아 뭔데! 누군 죽다 살아났는데 왜 그 얘길 꺼내!”

주먹 쥔 손에선 땅콩이 바드득 갈리고 있었다.

(사라)”정신 좀 차라고”

나래를 보지도 않은 채 사라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나래)“그러셔? 그러는 너는 그 맥주 지겹지도 않냐. 술 먹고 길에서 자빠져 자다가 경찰차에 구겨진 쓰레기처럼 실려갈거면 나는 상담 받았어. 이 알콜 중독자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아차 싶었다.

고이 갈린 땅콩을 사라의 얼굴에 뿌리려던 나래가 멈칫했다.

땅콩과 껍질이 8월의 눈송이처럼 힘없이 떨어졌다.

사라가 가장 싫어하는 말.

알콜 중독.

(사라)”너 지금 뭐라고 했냐.”

곱고 아름다운 용모였지만 인상을 잔뜩 지푸린 얼굴이 마치 짐승 같았다.

평소보다 덜 마시긴 했어도 사라 성격이면 술판 엎는다.

알콜 중독이라니.

홍나래 너.

살아있을 때 생긴 무덤은 보통 자기 스스로 판다고 했다.

(사라)”남들 좀 귀찮게 해도 알콜 중독은 아니란 말이다!"

용수철처럼 튀어나간 사라가 순식간에 나래를 덮쳤다.

뿔이라도 있으면 성난 황소와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투우장으로 변한 평상에서 나래가 피할 곳은 없었다.

(사라)”트럭에 받히나 나한테 받히나 똑같을 것이여.”

때마침 전화를 마치고 온 기석이 사라를 말렸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성난 사라에 의해 나래의 생존은 보장할 수 없었다.

평상에 올라선 기석을 보자 나래는 기석의 등뒤로 숨어버렸다.

(사라)”기석아 비켜라. 오늘 정말 저거 들이박게.”

(기석)”워워. 진정한다. 술 먹고 짐승되는 건 나쁘다.여기 꼴을 봐라. 이건 투우장이지 술자리 아니다.”

기석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사라 보라는 식으로 손짓했다.

과자는 뭉개져 가루가 됐고 오징어는 먼지에 뒤덮였다.

콸콸 쏟아지는 맥주에 모든 게 뒤범벅이었다.

기석의 만류에 사라가 가슴을 쳤다.

(사라)”아오 진짜 속터져. 아오!”

그 모습을 보며 나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내밀었다.

(나라)”먼저 미남 욕한 건 너다. 네가 뭔데 남의 취향을 욕해.”

(사라)”누가 미남 욕을 했어. 나도 미남 좋아해 사랑해 존엄해. 근데 두 시간 내내 혼자 떠드는 건 너무하지 않냐.”

대치 상태가 풀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열대야의 불쾌한 습기만 팽팽한 둘 사이로 비집고 들어왔다.

작은 움직임에도 태풍이 몰아칠 것 같았다.

싸움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않자 잠자코 있던 기석이 나섰다.

(기석)”어쨌든 폭력은 나쁘다.”

(사라)”그걸 누가 몰라서 그래. 근데 저게 나더러 알콜중독자라잖아.”

이를 바드득 갈며 사라가 나래를 노려봤다.

(사라)”알콜중독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보건소에서 아니라고 했다고!”

(나래)”웃기시네. 술버릇은 고쳐야 한다고 했다면서.”

(사라)”저게 곧 죽어도 입만 살아가지고.”

일촉즉발의 상황.

기석이 양팔을 벌려 둘의 입을 틀어막았다.

(기석)”워워. 미남이든 술이든 취향과 개성은 서로 존중해줘야지.”

그 말을 끝으로 숨막히던 열기가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대신 서늘한 시선이 둘을 얼려버렸다.

기석의 표정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

원래 좀 이상한 애라서 문어체로 말하는 버릇이 있다.

근데 정색까지 하니 묘하게 드는 위압감.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알지?

기석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눈치 빠른 사라는 알겠다는 뜻으로 주저앉아 버렸다.

(사라)”너는 생긴 건 맹한 애가 이럴 땐 무섭더라. 야 홍나래. 내가 지나쳤다. 취향 건드릴 생각은 없었고 그냥 얘기를 오래 듣고 있다보니까 지쳐서 그랬어. 기분 나빴으면 미안하다.”

사라가 사과의 뜻으로 맥주캔을 내밀었다.

나래도 뾰루퉁한 얼굴로 마지못해 맥주캔을 부딪혔다.

***

엉망이었던 평상이 어느 정도 정리되자 사라가 기석에게 물었다.

왼손으론 맥주 일곱캔째를 들이마시는 동시에 오른손으론 여덟캔째 맥주를 따면서였다.

(사라)”근데 무슨 통화를 그렇게 오래해? 모처럼 시간내서 모였는데.”

대답 대신 기석은 주머니를 뒤졌다.

기석의 주머니에서 나온 건 스마트폰이었다.

몇 번 터치를 하자 단체 사진 하나가 떠올랐다.

빽빽한 백발의 노인, 여자 한 명과 아이 둘, 그리고 기석과 키가 훤칠한 남자 한 명.

그냥 화목한 가족 사진이라고 말하면 될까.

(사라)"이게 뭐야?"

(기석)"일단 한 번 자세히 봐."

무슨 꿍꿍이인지 기석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노인은 나이에 비해 혈기왕성해보였고 여자와 아이들은 다정하고 사랑스웠다.

원래 사진을 로봇처럼 찍는 기석은 그렇다치고 이 남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사진을 보기 무섭게 그 남자가 사라의 시선을 압도했다.

왠만해선 오싹한 기분도 느끼지 않는데 사라의 등줄기가 서늘했다.

왜냐하면 그의 외모가 거의 저세상급이었기 때문이었다.

천국에서 떨어진 천사가 아니라 천국의 천사들이 질투해 지옥으로 끌어내릴 정도의 미모였다.

경이로운 광경을 보면 오히려 숨이 멎는다 했던가.

사라의 오싹함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나래)”야아아아,”

사라와의 싸움으로 분이 풀리지 않았던 나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언제 그랬냐는 듯 웃음꽃이 피어있었다.

(나래) “기석아 이 남자 느무으 멋있다. 이 기럭지에 비주얼. 누구야 이사람? 친구?”

(기석)”너희 아까 이시우 때문에 싸운 거지 그치?”

(나래)”어어.

기석이 다시 한번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의 뜻.

이시우.

나래는 기석의 말이 믿기지 않는다며 기석과 사진을 번갈아 보았다.

그러곤 놀라 뒤로 자빠졌다.

그 바람에 공중에 뜬 자신의 폰을 잡느라 기석도 덩달아 나자빠졌다.

(기석)”아니 놀랄 거면 혼자 놀라지 왜 내 폰까지 놀래키나.”

(나래)”정말이야? 이 사람이 이시우냐고. 맞아?”

오뚜기처럼 일어난 나래가 발을 동동 굴렀다.

평상이 두동강날 듯 쿵쾅거렸다.

나래가 신나서 기석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사이 사라는 맥주를 입에 들이부었다.

애초에 이시우한테 관심도 없었다.

뭐 시를 아는 것도 아니고, 잘생기긴 했는데 그게 나랑 뭔 상관이야. 내 남친 돼줄 것도 아니고.

빈 캔은 계속 늘어만 갔다.

사라의 혈중알콜농도가 이미 한계치를 넘어서고 있었다.

그나마 또박또박 들리던 둘의 대화가 희미해져갔다.

뭐라고 하는 것 같은데 대게 엥엥거리네.

빙글빙글

엥엥

그 엥엥거림은 결국 우웩...

***

배에 채워진 내용물을 뿜어내며 사라가 전봇대로 달려갔다.

우웩

주변을 둘러보니 친구들이 없었다.

밤의 어둠이 내려 앉은 골목길에 가로등만 쓸쓸하게 길을 밝히고 있었다.

(사라)”아무리 그래도 아가씨를 평상에 버려두고 가냐. 그것도 배 까고 누웠는데. 나쁜 자식들.”

분노 때문에 피가 거꾸로 솟는다.

그리고 거꾸로 솟은 피를 따라 음식도 거꾸로 솟는다.

우웩.

아니 근데 어디서 잠든 거지.

분명 이시우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기석이 이시우랑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낸다고 했고, 그래서 안면도 있다고 했다.

근데 기석이가 다니던 출판사 이 근처였는데?

그래 이 근처, 바로 여기가 빙글 도네···

우웩

이시우든 뭐든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니다.

속을 비울 만큼 비우자 뒤이어 아린 두통이 찾아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몸이 예전 같지 않다.

몸은 술이 아니라 해독제를 찾는다.

편의점, 편의점으로 가야해.

***

선선하고 상쾌한 공기.

문틈으로 새어나올 때부터 날 유혹해.

컵라면 사, 도시락 사.

테이블에 죽치고 앉아서 날 느껴줘.

밖은 덥잖아. 여기 공짜 에어컨, 바로 내가 있어

사라는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두 팔 벌려 신선한 공기를 흡입했다.

당장이라도 자리 깔고 눕고 싶을 만큼 좋았다.

아 잠 온다, 잠이.

아아, 안되지 또 길바닥에서 잠들면 정말 집에서 쫓겨난다.

비틀거리며 몸을 옮긴 사라가 숙취해소제를 카운터에 올려놨다.

(사라)”여기 계산 좀 해주세요.”

두어번 불러도 점원은 대답이 없었다.

카운터로 오는 움직임도.

몇 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다.

술 좀 먹었겠다 슬슬 짜증이 올라오는데 인기척은 엉뚱한 곳에서 느껴졌다.

뭔가 수상하고 찜찜한 기운이었다.

사라의 눈에 들어온 건 한 중년 남성과 젊은 여성이었다.

영 불쾌하고 더러운 그림을 남자는 여자를 상대로 그리려 하고 있었다.

(여자)”왜 이러세요. 그만하세요. 경찰에 신고할 거에요.”

여자가 입은 흰 블라우스 위에 검게 그을린 손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쓰다듬는다

불쾌하고 더럽게

어깨부터 목까지.

여자가 완강하게 거부함에도 남자는 멈추지 않는다.

(남자)”왜 그래 좋으면서.”

저 새끼가 정신 나갔나.

저런 건 손목을 비틀어버려야 돼.

사라가 테이블 쪽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말처럼 쉽지 않았다.

술은 항상 마음 대신 몸을 뺏어가고 몸보다 마음을 앞서게 한다.

이 상태에서 섣불리 끼어들면 뭐 하나 장담할 수 없었다.

이건 어여쁜 꽃사슴이 아메리칸불곰을 들이받는 격이다.

잘못 건드리면 사망.

술에 취한 와중에도 사라의 남다른 본능 만큼은 살아있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도 없고.

아 이럴 때 알바는 어디 간 거야.

일단 신고부터 해야 겠단 생각에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손에 잡힌 건 이번 주말에 추첨하는 로또 복권 한 장.

젠장 꼭 이럴 때.

꿈에 오늘 날짜가 나오길래 샀는데 그냥 제삿날이었던가.

사라가 망설이는 동안 남자의 손은 옷 안으로 미끄러지고 있었다.

몰라.

모른다고. 언제는 내가 알고서 덤볐어.

(사라)“야, 그 손 안 치워?”

순간 정적.

남자가 놀란 눈으로 사라를 본다.

여자도 놀랐는지 덩달아 사라를 돌아본다.

여러분만 놀란 건 아니에요.

저도 지금 제 자신한테 무척 놀랐답니다.

(남자)”넌 또 뭐야.”

남자가 돌아본다.

그러곤 뭔가 익숙하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뜬다.

(남자)”너 술 먹었지? 더운 날 술 좀 자셨으면 곱게 갈 것이지 왜 남일에 참견이야?”

남자가 살짝 휘청였다.

꼬부라진 혀, 어눌한 말투.

저쪽도 상당히 취했다.

중요한 건 저쪽은 불물 안 가리고 달려들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

(사라)”뭐 하는 짓이야. 더럽게”

하지만 이런 놈들만 보면 사라는 불에는 기름을 붓고 물에는 독을 타고 싶어진다.

(남자)”너 지금 뭐라고 했냐?”

(사라)”더, 럽, 다, 고.”

또박또박 한자한자

남자가 얼마나 더럽고 역겨운지를 얼굴 전체에 드러내며 읊었다.

누가 보더라도 모욕과 수치를 느낄만한 표정이었다.

정말 기름이나 다름없었다.

아주 활활 타오르는 휘발유.

기름 좀 먹는 엔진이라도 되는 듯 남자가 사라에게 다가갔다.

살벌한 걸음걸이였다.

곰발바닥 같은 남자의 손이 머리 위로 올라간다.

죽는 척 하면 그냥 가지 않을까.

곰이잖아.

제 정신이 아니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도망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도망갈 곳도, 도망갈 힘도 없었다.

부처님 하나님 염라대왕님

저 이대로 죽는 건가요.

그냥 얌전히 살걸.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죠.

예상은 했는데 로또는 안되고 이런 거만 되네요.

엄마 나 죽어.

근데 후회 안해, 어쨌든 좋은 일 한 거니까.

퍽.

남자의 손이 사라의 뺨을 사정없이 내려쳤다.

이대로 사망인가.

새하얘진 눈 앞엔 무엇도 보이지 않고 중심을 잃은 몸은 어디론가 낙하한다.

이게 지옥인건가.

좀 더 착하게 살 걸.

사라의 머리는 위태롭게 계산대의 날카로운 모서리로 곤두박질쳤다.

짧디 짧은 0.1초가 길게만 느껴졌다.

‘살고 싶어. 아직 죽고 싶지 않아’

아무 의미도 없고 상대도 없는 sos.

중력을 따라 고꾸라지는 사라의 의식을 누군가 부둥켜 앉아 건져올렸다.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다.

아카시아향.

인위적이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달콤함이 온몸을 휘감는다.

역시 착하게 살 길 잘 한 거야.

계속 이대로 이 품에서 살 수 있다면.

품이라고?

누구의?

겁에 질려 질끈 감았던 눈을 뜨자 눈이 부셨다.

눈 앞 10센티, 편의점 유니폼을 입은 남자가 몸을 웅크려 사라를 감싸고 있었다.

혼란과 당황이 잠시 남자의 눈에 머물다가, 이내 분노가 깃든 눈빛으로 성추행범을 쳐다본다.

그 모습을 계속 지켜보고 싶었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사라의 눈꺼풀이 무거워졌다.

그럼에도 사라는 남자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그 모습에 빠져들 것만 같았다.

근데 왜인지 익숙하다.

신조차 이 남자를 조각하다 질투했다는 수려한 콧날

어디서 봤더라

미소 지으면 시원하게 밀려올라갈 것 같은 마스크,

최근인데

짙은 눈썹을 가졌고,

어디서 봤지?

외꺼풀에 똘망한 눈매,

천재 시인···

아름답지만 예리한 만큼 위태롭고 위험한 남자,

이시우?

뭐야, 당신이 왜 이 시점에 나오는 건데.



<에필로그>

사라가 평상에서 일어나기 몇 분 전.

사라의 부모인 엄마 지덕애 여사와 아빠 나한준씨는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지 여사)”여보, 쟤 언제 일어날까?”

(나 씨)”때 되면 일어나겠지. 근데 배 까고 누웠는데 이불이라도 덮어줘야 하지 않을까?”

(지 여사)”아니야 저기 봐바.”

지여사가 가리킨 곳은 사라의 배였다.

시원하게 까진 배 위로 고양이 한마리가 앉아 있었다.

그 주변을 개며 고양이가 보초를 서듯이 지키고 있었다.

(나 씨)”오늘도 열렸구만. 술만 마시면 열리는 주(酒 술 주)주(zoo 동물원)클럽. 배 위에 있는 건 사라의 만담 친구 고양이 고영희씨고.”

(지 여사)”누구 닮아서 그럴까. 술 먹는 건 날 닮았는데··· 어떻게 된 애가 술만 먹으면 동물하고 대화를 나눠. 요즘 쟤만 보면 동네 수

캐들이 쫓아다녀. 아까 봤잖아. 나래랑 싸울 때 쟤가 울부짖으니까 개들이 따라 우는 거.”

(나 씨)”뭐 그런 건 동물 좋아하는 날 닮은 거지.”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반려견 시로(포메라니안)을 나한준이 껴안았다.

(지 여사)”그게 그렇게 되는 거구나. 술 좋아하는 엄마, 동물 좋아하는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면 술 먹고 동물 친구들과 삼삼오오 좋네, 좋아.”

지덕애 여사는 모든 걸 내려놓은 듯했다.

얼빠진 표정엔 있는 거라곤 초점 잃은 웃음뿐이었다.

우웩.

그런 지여사에게 사라가 오바이트 소리를 울려댔다.

그 소리가 거슬렸던 건 지여사만이 아니었다.

(옆집 한 씨)”야이 X친 사라X아. 제발 거기다 토 좀 하지마. 비만 오면 우리집 앞마당에 밀려온다고. 아침이면 네 년 뭐 먹었는지도 알아. 부탁 좀 하자 제발!”

(사라)”에이 아저씨 새삼스럽게 왜 그래요. 내일 날씨 맑음, 아저씨 집 깨끗, 지금 내 위도 깨끄읏!”

저 세상 텐션, 저 세상 라임이었다.

지덕애 여사에겐 그냥 저 세상 보내고 싶은 딸이었고.

지 여사는 귀를 막고 집으로 달려갔다.

(지여사)”내 딸 아냐 아니야!!! 아 미친년 미친년!!!!!”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그 날 새벽 지여사는 딸로 인해 경찰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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