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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게임에 빙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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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월
그림/삽화
천사월
작품등록일 :
2023.12.12 13:21
최근연재일 :
2023.12.25 18:05
연재수 :
16 회
조회수 :
945
추천수 :
42
글자수 :
135,606

작성
23.12.21 14:35
조회
43
추천
1
글자
22쪽

12화. 비누 대량 공급 시작!

DUMMY

십이지가 망나니 대공자 11화.







십이지검법을 터득하다.






설향은 섬섬옥수와 같은 손으로 탄주를 시작하였다.


고즈넉한 분위기에 맞춰 여인의 마음을 알리는 첫 음은 낮고 깊은 여운을 남기고 지나갔다.


첫 음과 같이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은 절주節奏는 바래진 설향을 대변하듯 사위를 천천히 녹여내었다.


그 아래 추는 검무는 궁중 무희처럼 무척이나 가려 하니.


장성將星 가옥 아래 이처럼 닿은 인연이 화해和諧처럼 와닿지 않을 수 없으려나.


거센 물살에도 달그림자는 흐르지 않는 듯하나 하늘에 수 놓은 검선에 탄주 또한 베어가지 않으련다.


가채를 두른 산듬성이 맷새의 화답에 이어지는 탄주는 순풍이 되어 옛것을 회상하듯 그 도울陶鬱함에 미어지는 가슴이 묵화로 물들이니.


검무는 흐르는 저 하늘을 물어 채는 범처럼 이어졌다.


무릉계곡에 날아 숨어드는 꾀꼬리와 청조가 온 산에 풍물을 시작한다니,


검무는 멈출 길 없이 흐르는 풍월을 따르네.


은하수에 뜬 별빛은 아득하여 그믐밤을 수 놓아 검무에 피었다 지는 저 숨어 버린 허상은 신장을 보이네.


넋 없이 피고 지는 푸른 달빛만이 흐르는 강이 되고 시린 손을 떠난 허상만이 마음을 매었으니.


살아서는 갖지 못하는 매화의 가시로 남아 멀고 먼 세상 끝까지 따라가면 만날 수 있으려나.


세월을 헤며 현 뜯어 울던 탄주는 이즈음 절주를 멈추자 아름답게 사위를 달빛 검광으로 자수하던 검무 또한 멈추었다.


염절의 열풍은 저물었으나 따뜻할진대.


그 아래 아련함을 미처 달래지 못해 납검 않은 그가 애리도록 시린 한 낫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돌아선 가주는 천천히 검집에 납검 하며,


“...고맙소, 부인.”


여울진 한마디를 남긴 채 달빛을 등지어 가옥을 떠나갔다.


그런 가운데 좌선한 사월은 순간에 찾아든 깨달음을 음미하고 있었으니.


그 모습을 본 설향은 미소진 채 풍악을 울렸다.


달빛이 고요한 절강 아래 절주가 다시금 흘러내렸다.


저 먼 달님이 서해로 기웃거리니 푸르른 풍색이 산중에 떠올라 세상을 밝히었네.


백의 소매에 닿은 가냘픈 현 가락은 동산 초원을 뛰노는 작은 숨탄것을 불러오니 새벽녘에 풍랑은 몸을 뉘이더라.


한 구절 한 구절 곡조에 담은 애절함이 그의 참선을 어르며 장려했다.


몸을 뉘던 바람이 거센 풍파로 화해 결을 타고 백의 궁장을 펄럭였다.


이는 좌선한 사월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파로 여타 검술과는 궤를 달리하는 십이신장十二神將덕이라.


서쪽 산봉우리를 타고 넘어간 달빛을 대신해 볕이 들었으니.


감겨 떠질 줄 모르던 사월의 눈이 서서히 뜨이고 있었다.


밝은 정광을 내비친 사월은 도포를 정리하며 다소곳이 앉아 기다리던 설향에게 다가갔다.


“감사해요, 어머니.”

“좋은 가르침이 있었나 봅니다. 공자.”

“하하, 네. 다 어머님 덕입니다!”

“그게 어찌 아녀자의 덕일까요. 이게 다 공자님의 영특함 덕이지요.”


제 칭찬에 사월의 입이 귀에까지 찢어졌으나 그는 사리 분별이 뚜렷한 자였다.


“어머니 덕이 맞아요. 한 여인의 얼과 한이 담긴 그 곡주는 소자로 하여 크나큰 영감을 주었거든요. 다시 한번 감사해요.”

“그리 말씀하신다면 이 어미는 더할 나위 없겠지요.”


설향이 섧게 핀 꽃처럼 화사하게 미소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신이 왔다.

자신의 경지가 절정 초입에 다다랐다고.


‘내공이 4년 정도 불었어. 반 갑자까지 얼마 안 남았다.’


이번 상행 때 삼양객잔 뒷터 노 그루에서 꼭 영약을 찾을 필요가 있었다.


사월은 잠시 암 무사가 말해주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저 역시 공자님 때 그리 생각했던 적도 있습니다.

-결국 심기체가 같은 선상에 있어야만 한다는 이야기군요.

-그렇죠. 사실 내공의 양도 양이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결국 정순함이거든요. 이번에 십이지신공을 익힌 덕에 내공이 꽤 정순해지셨지만,


절정이라는 경지를 놓고 보자면 그간 수련도 안 했거니와 술에 절어 흥청망청 산 덕에 영... 불순하거든요.

-......

-그래도 이리 성취가 빠르시니 곧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큼큼. 아무튼, 그뿐이 아니라 무공, 즉 체에 관련된 것 역시 당장은 괜찮다지만 지금 공자님의 몸뚱이로는 칼질 몇 번 하면 고꾸라지실 겁니다.


흐흐. 그러니 체력단련과 검법에 맞는 근육을 필히 기르셔야 합니다.

-그건 알고 있어요. 초절정. 다음 단계를 밟기 위해선 육체 또한 게을리해선 안 되겠죠.

-암요, 그렇고 말고요!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계시다니 이놈 여한이 없습니다, 하하하!



현재 사월의 경우 그 오성이 뛰어나 심과 육체를 사용하는 무공의 요체는 같은 경지를 이룩했지만,


기. 즉 내공의 순도가 그에 못 미쳤다는 이야기였다.


이리저리 금세 상념을 깬 사월이 어머니를 돌아보았다.


“근데, 정말 아름다우세요. 백의 궁장이 참으로 어울리시네요.”

“그런가요? 고마워요. 이렇게 칭찬을 또 해주시다니요. 뭇 낭자들께도 그리하시나요?”

“에? 아, 아뇨. 그럴 리가요, 하.하.하!”

“어머, 그렇겠죠? 그나저나 우리 아드님은 시장하시진 않으세요?”


꼬르륵.

그러고 보니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마침 배꼽시계가 울리네요!”


머쓱했던지 사월이 제 배를 통통 두들겼다.


“안에서 잠시 기다리시지요. 상을 차릴 테니.”

“핫핫, 넵! 아차차, 잠시 가서 호치도 데려올게요!”

“호치... 요?”

“그 왜 저번에 있잖아요? 알!”

“아... 부화했던가요?”

“맞아요. 아주 귀여운 백호가 태어났죠.”


흐흐.


“보고 싶네요. 어서 다녀오세요.”

“옙.”


사월이 장난스레 경례를 올려붙였다.


“다녀올게요, 어머니!”


설향 역시 무슨 의미가 있는 동작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마주 경례하여 주었다.


사월이 호치를 데려오기 위해 제 거처로 향했다.


“어엿하게 성장하셨네요. 고마워요, 공자님. 잘 커 줘서.”


설향에게 있어 일전의 사월이든 지금의 사월이든.

제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싫어할 수 있을까.


다만 지금 보이는 저 모습은 유쾌하며 자신감 넘쳤다.


덩달아 자신 역시 좋은 기분이니 이게 꿈이라면 차라리 깨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돌아온 사월이 호치를 내밀었다.


“왔어요, 어머니. 요놈이 호치예요.”

“뀨!”


호치 역시 설향이 가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사월의 품을 박차고 나가 폭삭 안겼다.


“야!”

“괜찮아요, 공자님. 엄청 귀엽네요?”

“......”


그 꽁냥한 아양에 못 이긴 설향이 백화처럼 환하게 웃었다.


“뀨우!”


저 똥개 놈한테 어머님을 빼앗긴 기분은 무얼까?

작게 한숨을 내쉰 사월이 말했다.


“저... 어머니. 드릴 말씀이 있어요.”


그녀의 과거를 모조리 알고 있기에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약란이 문젠데요.”

“아, 약란이. 영특한 아이죠.”

“네. 그래서 말인데요. 그 아이를 차기 내무각주로 키우고 싶어서요. 혹시, 어머니께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이 어미는 아시겠지만 더는 내무각주가 아니랍니다.”

“괜찮아요. 결국 내무각주를 하시게 될 거니까요. 그러니 향란을 잘 키워 놓으셔야 나중에 덜 힘드실 겁니다.”

“.....공자께서 부탁하시니 가르칠 수는 있으나 내무각주를 다시 하게 될 거라는 말은 금시초문이네요.


그래도 우리 공자님께서 이 어미에게 처음 하는 명이시니 소녀는 받들어야지요.”


싱긋.


“며, 명이라뇨?! 가당치도 않습니다. 하하하! 아무튼 감사합니다, 어머니!”


**


다음 날. 약란은 완성된 비누를 갖고 백화요에서 수련 중인 사월을 찾았다.


“대공자님.”

“음? 약란이구나. 다 만들었어?”

“네. 지시하신 대로 연단했어요.”

“뭘 거창하게 연단까지. 아무튼 수고했고. 어디보자...”


오호.


목초 향도 수더분하게 묻어있고.

봉밀 특유의 단내도 은은하게 피어오른다.


“잘 만들었는데? 이쪽에 재능이 있나 봐?”

“저, 정말요?!”


향란이 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사월 역시 폭소하였는데 그 웃음의 의미가 달랐다.


“푸하핫!”

“왜, 왜 그러세요? 제 얼굴에 뭐 묻었나요?”


어, 묻었어. 숯 검댕이.


“난 또 분칠이라도 한 줄 알았네. 저번처럼 상 봐와서 홀딱 벗으려고!”

“아, 아니 그건!”

“어허. 하지 마. 내 정조는 내가 지킬 거니까.”


그 말을 오해한 약란의 얼굴에 홍조가 떠올랐다.

킥킥거리며 얄궂게 웃은 사월이 약란을 백화요 대청마루에 불러 앉혔다.


“이리 와.”


탕탕!


약란이 쭈뼛대며 다가섰고 호치는 저를 불렀나 싶어 대청마루에 폴짝 뛰어올라 사방을 헥헥대며 뛰어다녔다.


“앉아. 잘 봐. 한 번만 보여줄 거야.”


그러더니 비누 하나를 집어 약란이 가져온 야들야들한 지물에 다소곳이 쌓았다.


“이렇게 해서.”


지물 꼬투리를 깔끔하게 접어 봉랍을 부었다.


“...생각해보니 봉랍에 표식할 도장이 없네. 쓰읍. 이러면 좀 밋밋한데?”

“앗! 잠시만요.”


주섬주섬 제 가슴께에서 무언 갈 꺼냈다.


...왜 거기서 나오는데?


“이, 일단 이거라도...?”


도장은 아니고 철편으로 만들어진 작은 강아지였다.


“엉? 강아지네? 개 좋아해?”

“아, 아니요! 호, 호치에요.”

“호, 호치라고?”


이게? 어딜 봐서?


나름 조잡한 게 귀엽긴 했는데 자세히 보니 닮은 구석이 있었다.


“크흠. 뭐, 좋아. 란이가 만든 거야?”

“라, 란! 네, 공자님.”


주억거린 사월이 그걸로 봉랍을 콩! 찍었다.

그렇게 연신 입바람을 불어 굳혀냈다.


두 사람은 쉴 새 없이 비누 서른 개를 전부 포장했다.


사월은 한 번만 보여준다더니 약란과 신경전이라도 하듯 쉴 새 없이 밀봉했다.


“휘유. 끝났다. 다음에 혹시라도 주문이 들어오면 이렇게 하면 돼.”


끄덕, 끄덕, 끄덕, 끄덕!


목 빠지것소 아가씨. 그렇게 자리를 뜨려는 약란을 사월이 불렀다.


“아, 약란아.”

“네?”

“이따가 일과 이후 어... 술시쯤? 어머님께 가 봐.”

“작은... 마님이요?”


끄덕.


약란의 표정이 울상졌다.


“뭐, 뭐야? 왜 울라 그러냐?”

“제, 제가 뭘 잘못했나요? 차라리 공자님이 혼을 내어주세요!”


사실 내무각주 시절 설향은 시무始務에 있어 철두철미했던 만큼 설빙백화雪氷白花로 불렸다.


아랫것들이 자못 잘못이라도 하는 날엔 조곤조곤 종일 정신교육을 받았더랬다.


“...잘못해서 보내는 거 아니야. 가서 내무각 업무를 배우도록 해.”


약란이 제 가슴을 쓸어내리며 숨을 뱉어냈다.


“그런데 내무각이라뇨?”

“어. 내 긴히 너를 아끼는 바이니 후에 톡톡히 굴려 먹을 생각이야.”

“아, 아낀다니요.”

“또또 음란 마귀가 낀 것이냐?”

“아, 아니거든요!”

“가서 설프게 배우지 말고 철두철미하게 배우도록.”

“네! 기회를 주셔서 감사해요, 공자님!”


그렇게 작별을 고한 약란이 힐끔힐끔 뒤를 돌아보면서 가자 사월이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놀림거리가 사라져 허함을 느낀 사월이 가부좌를 틀고 일전의 깨달음을 다시금 정리했다.


‘...확실히, 어려워.’


기실 지금까지의 깨달음은 가주가 보여준 깨달음이다.


고뇌에 고뇌를 거듭했고.


받아온 검법서에서 작성된 무결을 계속해서 되뇌었다.


사월은 문득 암 무사가 해준 이야기를 떠올렸다.


‘십이신장의 형상이라 했다.’


그건 마치 집채만큼 거대한 무언가가 사용자의 등 뒤에 형상화 하여 검을 휘둘렀다고 말했다.


사월은 그 힌트를 따라 계속해서 명상하며 공부했고.


검법서에 이르길 보법이 요체라 했다.


해서 십이신왕경공十二神王經功을 펼쳐 대청마루 여기저기 호치와 함께 연신 휘젓고 다녔다.


**


그날 유시 어간.

지난 사흘간 세 가에 묵었던 단금보가 비누 연단이 끝났음을 알리자마자 곧바로 떠나겠다며 채비를 갖췄다.


“사월이 많이도 변했어. 자넨 좋겠구만?”

“하하! 나도 느끼고 있네. 아무렴, 좋다 말다 할 게 있는가?”

“쯧. 자네 표정에 전부 드러나 있네.”

“그랬나? 그나저나 바로 사천으로 간다지?”


세가 산문山門에서 오매불망 사월을 기다리던 단금보가 끄덕였다.


“따라가고 싶지만 가문을 비울 수 없는 처지를 이해하세.”

“뭘, 언제는 안 그랬다고?”

“허, 허헛.”

“됐네. 마음 쓰지 말게. 오, 저기 오는구만.”


단금보의 가리킴에 가주 역시 돌아봤다.


사월 등 뒤로 희부연 먼지가 일어났는데 그걸 본 가주 천무광의 턱주가리가 떡 벌어졌다.


십이신왕경공이 아닌가!


“저, 저, 저!”

“하여간 자네는 음흉한 구석이 있구만? 사월을 언제 저리도 가르쳤나. 경지도 꽤 되어 보이는데, 하루 이틀 수련한 게 아니야.”

“크, 크흠.”


말하기 부끄러웠다. 그저 비급서 하나 덜렁 주고 한 번 보여준 것 말고는 알려준 게 없었으니.

그런데 지금 사월의 경신보는 수준급으로 보였다.


“대관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비누 같은 기품을 만들지 않나. 하룻저녁에 무공을 저리도 사용한다니.”

“응? 하룻저녁에 말인가?”

“아, 아닐세. 하하.”

“음. 그나저나 저 정도면 다음 상행 때 크게 신경 쓰이진 않겠군, 그래.”


사실 사월을 상행에 끼어 보낸다는 소리를 듣고 단금보는 무공의 무 자도 모르는 무지렁이인 사월을 크게 걱정했으나.


“저 경신법이면 뭔 일이 나도 도망은 잘 가겠군! 허허허!”

“자, 자네 말이 옳네. 도망은 잘 가겠어! 하하하!”


두 남정네는 사월을 입이 닳도록 칭찬했다.


도착한 사월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지만, 저질 체력인지라 연신 가쁜 숨을 내뱉었다.


“허허. 왔는가? 그나저나 우리 사월 공자는 체력 단련 좀 해야겠어. 아니면 내 기력에 좋은 약초를 좀 보내줄까?”

“휴우. 주시면 좋죠. 저도 이 저질 체력이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번 장천을 찾아 나선답시고 가파른 마귀령을 탔을 때도 느꼈으나,


이번 경신법을 사용하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다른 건 다 좋은데 체력이 문제란 말이지.’


그도 그럴 게 매 기루에 가서 술이나 처먹었으니 어디 체력이 좋을 수가 없었다.


이번에 검법을 연마하면서 느낀 건데 배불뚝이처럼 툭 튀어나온 복부 덕에 여간 불편한 게 아녔다.


“여기요. 약속드렸던 물건요.”


비단보에 쌓인 상자를 받아든 단금보의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이, 이게 그 비누 님이신가!”


뭘 거창하게 비누 님까지.


헤벌쭉 웃은 사월이 제 뒷머리를 긁었다.


“바로 사천으로 가신다고요?”

“아무렴! 이 귀한 것을 안고 내 어찌 잠들 수 있겠는가? 행여 잃어버리기도 한다면 그날은 초상 치르는 날일세!”

“초상까지야... 다시 와서 받아서 가면 될 것을요.”

“아니 될 말일세! 이 귀한걸. 한 톨도 버려선 안 될 것이야.”

“아, 예. 뭐, 그렇군요. 하, 하하.”


아마... 저분 눈에는 비누가 황금으로 보이겠지?


“내 사천으로 가 귀물을 전달해 드리고 향방을 지켜보겠네. 홍진에 차도가 보이면 바로 연통하겠네.”

“그러게. 조심해서 가게.”

“살펴 가세요.”


꾸벅.


“확실히 사월이가 많이 바뀌긴 했어. 음... 지금이면 혼인도 괜찮겠지.”


사월이 잘못 들었나 싶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예?”

“아닐세, 가네!”

“아, 예. 살펴 가세요.”


그러더니 봇짐 매듯 자기 몸에 보자기를 꽁꽁 둘러맨 그가 이 더운 염절에 피풍의까지 걸치고 세가를 나섰다.


“수고했다.”


가주가 사월의 노고를 치하했으나 사월은 그저 으쓱일 뿐이었다.


“먼저 가 볼게요. 하던 수련 마저 해야 하거든요.”

“...열심히 구나. 그나저나 십이신왕경공은 언제 배운 적이 있더냐?”

“설마요. 새벽닭 울기도 전에 놓고 가신 게 본인 아니시던가요?”


...뭐지. 정녕 내 아들이 맞나?


말투는 또 누굴 닮아 저리 소갈머리가 없는지.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기이에 가주는 그저 입맛을 다셨다.


“...나는 그 정도 펼치는데 꼬박 두 해가 걸렸다.”

“오... 자랑인가요?”

“어... 아, 아니. 그건 아닌데.”

“아무렴요. 아버지는 재능이 없지만 전 있거든요. 아무튼 바빠서 이만 가 볼게요.”


꾸벅.


사월은 외려 저 자신이 축객령을 내리듯 인사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그 내면엔,


‘이거 경공 겁나 재밌네?’


그랬다. 단순히 제 아버지를 놀리는 것보다 경공을 펼쳐 맞바람을 맞는 것이 더욱 즐거웠던 것이니.


그렇게 제 처소 어간에 도착했을 때.


“지금 뭐라고 했느냐.”


차분하지만 낯선 목소리가 산중에 들렸다.


“고, 공자님은 지금 자리에 안 계신다 하였습니다.”

“요망한 것이 끝까지 말대꾸하는구나.”


약란의 따귀를 올려붙이려 손을 들었으나 그 뜻은 이행되지 않았다.


제 팔목이 우악스럽게 잡혀있었기 때문인데.

고개를 돌려 보니 독교련 그녀가 찾던 사월이었다.


“쓰읍. 어.머.님? 어째서 제 시비한테 손찌검하시려는 걸까요?”


그녀가 사월로부터 가장 듣기 싫어하는 단어였다.


어머니를 내뱉으며 능글맞게 웃자 독교련의 아미가 접혔다.


“...어머니라. 언제부터 절 그리 부르셨던가요.”

“호칭을 어찌 부르든 그건 제 자유이니 신경끄시고요. 이곳까지 행차하신 이유나 말씀하시지요. 서로 상면하여 덕담이나 나눌 사이도 아닌 듯하니.”


인상을 굳힌 사월의 눈빛은 실로 번들거렸다.


“많이 변하셨다더니 정말이군요.”


제가 생각하던 사월이 아녔다. 제 아들 천추삼이 와서 울며불며 소상히 밝힐 때도 헛소리라 호통했다.


왜? 천사월 이놈은 자신이 고함 한 번 치면 주눅 들어 오체투지를 하던 놈이었으니까.


그런데,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이 들어선 것 같군요.”

“뭔 헛소리야. 왜 왔냐니까요, 어머니?”

“듣기 싫은 말만 골라서 하는군요. 공자. 일부로 제 신경을 긁는 걸까요.”


싱긋.


사월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서열상 어머니시니 어머니라 부르지, 소자가 뭐라 부르겠습니까.”


사월이 연신 이죽거렸다. 정말이지 격조 높은 이죽거림이 아닐 수 없었다.


“제 아들 얼굴을 그리 만들었다죠.”

“아, 된장 바르면 나을 겁니다.”


일전 봉침에 쏘여 몰골이 퉁퉁 부어 못 알아볼 정도로 흉측해졌더랬다.


“......된장?”

“있어요, 그런 게.”


힐끗 내려보니 사월에게 그악스레 붙들린 팔목이 피가 통하지 않아 노랗게 익어갔다.


힘을 줘 봤지만 망부석처럼 꿈쩍도 하지 않자 내공까지 사용해 뿌리쳤다.


제 손목을 어루만진 독교련이 사월을 깔보듯 보며 말했다.


“대공자가 변했다 세가에 떠들썩하기에 뵈러 왔을 뿐. 별 뜻은 없답니다.”


사월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에휴. 또 딴 얘기하시네. 정말 별 뜻이 없어요? 찾아오라 기별을 넣으셨던데. 제가 잘못 본 것은 아닐 테고. 호출하였으나 소자로부터 소식이 달리 없으니 이리 행차하신 듯한데요.”

“그 대공자가...... 믿기 어려우나 믿어야겠지요. 직접 이리 보았으니.


공자의 변한 모습이 참으로 당차고 보기 좋군요.


차후에 좋은 자리에 초대할 터이니 거부 마시고 다도를 나누심이 어떨는지요.”

“뭐, 초대해 주신다면야.”


갈 생각은 없지만.


“그러지요.”


그녀가 서늘한 눈빛으로 사월을 일별한 뒤 자리를 떠났다.


“괜찮아?”

“가, 감사합니다, 공자님. 죽을 뻔했어요. 저 독사 같은... 헙.”


약란이 속에 품었던 말을 잘못 뱉어 제 입을 두 손으로 막았다.


사이가 좋든 아니든 대공자의 어머님.


한 낫 하녀 따위가 입에 올려서는 아니 될 말이었다.


“죄송...”

“씁. 어허.”

“에?”

“잘했다. 내 앞에선 언제든지 욕 하라고. 너무 듣기 좋으니까, 흐흐.”

“에엡?”

“에엡은 무슨. 다 알아들어 놓고. 쯔쯔. 다친 덴 없고?”


약란이 도리질 쳤다.


“괜찮아요.”

“그럼 됐어. 가던 길 가 봐.”

“아, 둘째 마님을 찾아뵙던 길이었는데. 다녀와서 인사드릴게요, 공자님.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닷!”


꾸벅.


“그려, 어여 가.”


사월은 멀어지는 그녀를 일별한 뒤 체 처소로 돌아갔다.


**


“...아무래도 사월 그놈이 무공을 배운 것 같더군요.”

“네, 부인. 지켜본 바론 암위천에게 몇 수 배우더군요.”


독교련이 밀실에서 암중에 제 가솔과 밀약 중이었다.


“그래봤자 고작 며칠이지요. 망둥어가 뛴다하여 금린어錦鱗魚가 될까요. 그래봤자 망둥어죠. 계획은?”

“맞습니다. 분부하신 대로 준비는 끝났습니다.”

“수고하셨어요. 허나 이 일은 그 누구도 알아선 안 됩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암습에 가장 꺼려지는 것은 대공자 곁에서 한 시도 떨어지지 않는 암위천이다.


그래서 암위천을 암살하기 위해 진즉 암계는 꾸렸으나.


“모든 일은 쉽게 가야 하는 법.”


독교련은 돌아보지 않은 채 상에 깐 지도 위 병정 말을 집었다 놨다 하며 뒤쪽 시립해 있던 죽립의 사내에게 물었다.


“암위천하고의 비무. 당신이 이길 수 있겠어요?”


비무는 명분상 비무일 뿐 그녀의 의도는 상대를 죽이는 생사결이다.


“......”


그는 말없이 기세를 피웠다.


피부를 애는 살기에 독교련이 사과했다.


“미안... 하군요. 의심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는 암천대 소속 무인이었던 만큼 계획에 차질을 빚을까, 노심초사함에 드린 말씀이니 너무 개의치 않아 주셨으면 하네요.”


독교련이 이렇게 까지 나오자 죽립을 쓴 그가 기세를 거뒀다.


“후우. 잘 부탁드려요.”


끄덕인 죽립의 사내가 밀실을 나갔다.


그를 주시한 독교련이 이를 꽉 깨물었다.


늘 죽립을 눌러썼고 명포를 덧대어 제 얼굴을 가렸다.


해서 그가 누구인지 본 성명이 무언지 별호가 무언지 아무것도 아는 게 없었다.


그저 외가에서 보내온 사냥개라는 것만 알 뿐이니.


“...이놈이고 저놈이고 마음에 드는 인간이 없구나.”


그렇게 밤은 깊어졌고.

때가 되어 죽립의 사내는 암위천의 거처를 찾았다.


**


같은 시각.


명상하던 암 무사는 감았던 눈을 스르륵 풀자 맑은 정광의 빛무리가 어둑한 사위를 밝히었다.


‘아래께 사월 공자님 덕에 얻은 심득을 깨닫고 체화를 끝냈다.’


미소진 그는 때마침 도착한 죽립의 사내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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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협 게임에 빙의하다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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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화. 비누 대량 공급 시작! 23.12.21 44 1 22쪽
11 11화. 십이지검법을 터득하다. 23.12.20 46 1 21쪽
10 10화. 내, 이 비누 갖고 당장 사천으로 가리다! 23.12.19 41 1 21쪽
9 9화. 게임 속 주인공 장천. 그리고 귀령문. 23.12.18 51 2 22쪽
8 8화. 호위무사의 무공을 상승 무학으로! 23.12.17 57 3 15쪽
7 7화. 비누 좀 나누어다오. +1 23.12.16 56 4 15쪽
6 6화. 분봉 수확! +1 23.12.15 59 4 18쪽
5 5화. 비누, 그리고 단목 상단 주 단금보! 23.12.14 65 4 20쪽
4 4화. 그러고 보니, 비누가 없잖아?! 23.12.13 78 4 16쪽
3 3화. 임맥타통이요? +1 23.12.12 86 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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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화. 게임 속으로 빨려들다. +1 23.12.12 142 4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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