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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3샷추가 님의 서재입니다.

아포칼립스에 사는 용병의 고유번호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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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3샷추가
작품등록일 :
2022.10.30 09:33
최근연재일 :
2023.04.24 04:25
연재수 :
10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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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558,503

작성
23.03.31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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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8화

DUMMY

그 순간, 노인의 어깨에 낯선 손이 턱, 얹혔다.


손의 주인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것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큰 덩치를 가진 사내였다. 진심으로 놀란 릴스는 무의식중에 검집으로 손을 올렸다가 그의 시선이 자신의 손끝에 닿아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천천히 내렸다.


태연자약하게 돌린 사내가 계단을 내려오며 노신사를 타박했다.


“영감, 남의 서점에서 주인인 척하지 말고 빨리 가. 용건은 끝났잖아.”


“쯧쯧, 노인한테 아주 야멸차구나. 말세야, 말세!”


“뭐, 말세 맞잖아.”


노인은 보란 듯이 혀를 차다가 릴스에게 모자를 살짝 올려 인사하고는 건물을 빠져나갔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끝까지 보던 릴스는 그제야 사내와 온전히 시선을 마주했다.


‘와······. 이렇게 큰 사람은 오랜만에 보는데.’


릴스는 뼈대 자체는 굵고 이 시대에서는 키도 꽤 큰 편이었으나, 능력 탓에 에너지 소모가 빨라 호리호리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근육도 꽤 많이 붙은 데다가 키까지 컸다. 동등한 시야를 가지기 위해서는 저의 위로 머리 두 개는 더 붙어야 할 듯했다.


스승님을 제외한 사람 중 이렇게 큰 사람은 처음이다.


야생 짐승마냥 말없이 서로를 훑어보던 중, 서점 주인으로 추정되는 사내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유명인사로군, 그래. 용병 릴스지?”


“맞아.”


“난 이 서점의 주인, 에녹. 누구한테나 공평하게 반말하니까, 그쪽도 편하게 해.”


“······그러지.”


망설이다 내민 손을 힘차게 사내는 힘차게 두어 번 위아래로 흔들고는 깔쌈하게 회수했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분명히 사내가 자신을 내려보고 있음에도, 그리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릴스는 그제야 사내가 가진 색을 인식했다.


채도 높은 보라색, 아이시어와 같은 색의 머리카락을 지닌 사내는 그와 대비되는 노란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


“오호, 꽤 희귀본이 많은데?”


인벤토리에서 빼 가방에 넣어뒀던 책을 보여주자 에녹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본래도 밝은색이었기에 광망이 돌자 흡사 별 같이 보였다.


흉터 가득한 두툼한 손이 섬세하게 책장을 넘길 때마다 사내의 입가가 벌려졌다.


이 사람, 정말로 책을 좋아하는군.


아무리 봐도 책과는 영 관련이 없어 보이는 신체인데 말이다.


대답하지 않는 릴스의 반응에도 불구하고 에녹은 감상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무척 여러 지역을 돈 모양이네. 필체도 그렇고, 언어도 조금 섞여 있고. 무엇보다 종류가 다양해. 절반 이상이 서점에도 없는 책들이야. 가능하면 다 매입하고 싶은데······.”


“무슨 문제라도?”


“으음······.”


어차피 릴스에게는 필요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문장이 이어질수록 에녹의 음성이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고민하는 사내의 낯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잠시 시간을 달라던 에녹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뭐가 문젠데? 둘 자리가 없어? 나도 어차피 그만큼 사갈 생각인데.”


“그게 아니야. 아, 너는 외지인이지. 이 불에 대해 모르는구나.”


“이 불?”


“그래. 페이퍼 파이어(Paper Fire)말이야. 다들 페이파이어라고 부르긴 하는데······.”


주저하던 에녹은 더 말하라는 듯이 빤히 보는 릴스의 시선에 뒤를 이었다.


“나는 기염이라고 불러. 기록할 기, 화염 염.”


“왜?”


잠시 답을 늦춘 사내가 훌쩍 점프해 벽에서 타고 있는 불을 내렸다. 주황색 불은 특이하게도 종이를 매개로 타고 있었다. 배경과 불의 경계에 금빛이 물들어져 있어 붉은 불과는 확연히 달랐다.


잠시 관찰하던 릴스는 그게 일반 종이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거, 책이잖아.”


“맞아.”


“그래서 페이퍼 파이어라고 하는 건가.”


“단순히 책을 태우는 게 아니야.”


“······?”


릴스는 그의 이해할 수 없는 말에 인상을 찡그렸다. 에녹은 이내 그 옆에 비죽 튀어나와 있던 종이를 집어 뭔가를 휘갈겨 쓰고는 불에 가져다 댔다. 불길이 종이 모서리를 야금야금 파먹는 장면을 지켜보던 중 릴스가 눈을 크게 떴다.


“-이거, 뭐야.”


“······종이는 그대로지.”


종이는 불에 타지 않았다. 다만, 그 위에 적힌 글씨의 끝이 가장자리에서 서서히 옅어지기 시작하다 온전히 사라졌다. 언제 글이 쓰여 있었냐는 듯, 종이는 다시 백지가 되어있었다.


“‘기록’이 탈 뿐이야.”


“······한 번도 책을 태워볼 생각을 하질 않았어. 사방이 얼음이니까 그냥 아이시어를 피면 되거든.”


“도시에서 책은 ‘읽는 것’이 아니라, ‘태우는 것’에 더 가까워.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에는 아이시어보다 페이파이어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거든. 어차피 기록이야 다시 하면 된다고 하면서.”


“······.”


“아이시어보다 더 밝기도 하고.”


에녹이 씁쓸한 얼굴을 하며 책장에 꽂힌 책들을 쓸어내렸다. 공간을 가득 채운 주홍빛 불에 먼지가 점점히 빛이 되어 떨어져 내렸다.


“처음에는 그 약속이 지켜졌어.”


“약속?”


“태운 만큼, 똑같이 기록하겠다는.”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말이겠군.”


“사용되는 양에 비해 기록하는 양은 턱없이 부족해. ······최대한 나도 기록하고 있지만, 가내수공업에는 한계가 있어서.”


“그게 왜 내 책을 매입하지 못할 이유가 되는 건데?”


“그들이 가진 책이 떨어지면, 이 서점에 있는 책들을 압수당할 테니까.”


불을 제자리에 돌려 두고 온 사내의 눈이 묘하게 빛났다.


“언젠가 이 책들이 모두 글자를 잃고 새하얀 종이가 된다는 걸 생각해 봐. 내게는 그만한 비극이 없어.”


“······.”

“아, 참. 손님을 맞아놓고도 계속 서서 얘기하고 있었네. 올라와.”


머쓱하게 웃은 사내가 먼저 계단을 올랐다. 릴스는 사내의 넓지만 무겁게 느껴지는 등을 보며 그 뒤를 따랐다.



*



“난 원래 용병이었어. 길드 소속이었고. 지금은 연락을 끊은 지 오래됐지만 말이야.”


“어쩐지 몸이 범상치 않던데.”


“하하! 지금도 계속 움직이고는 있거든. 눈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니 말이야.”


신체 스펙이 범상치 않아 보이더라니, 역시나였다. 에녹은 용병으로 활동하며 떠돌던 중, 페이파이어의 진실에 대해 알게 되고 일부러 이 도시에 자리를 잡았다고 얘기했다.


보글보글, 기록으로 피운 주황빛 불 위에서 주전자가 끓었다. 릴스는 그의 잔잔한 인생사를 들으며 얼음에서 녹아가는 물을 구경했다. 바깥의 얼음은 아이시어로 데우면 그저 연기가 될 뿐, 이렇게 액체가 되지 않았다. 목마름을 채울 때도 그저 얼음을 입안에서 녹일 뿐이니.


첫 번째로 넣은 종이의 글씨가 모두 사라질 무렵, 계속 말을 빙빙 돌리던 에녹이 본론을 얘기했다.


“네 책들, 그 가방에서 험하게 굴려졌다고 보기에는 상태가 무척 양호해. 보관하는 능력이 있는 거지? 아니면, 그런 용도로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나.”


“······.”


-아, 그게 티가 난 건가.


릴스가 저도 모르게 손을 까딱이자, 에녹이 재빠르게 양손을 올렸다.


“뭔지 알려주지 않아도 돼. 다만, 그게 맞는다면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부탁?”


“잠시만.”


덜컥, 책장 중간에 달린 서랍에서 주머니를 꺼낸 에녹이 뜨거운 물을 부은 컵에 뭔가를 넣었다. 곡식 낟알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물의 색이 누르스름하게 변하더니 고소한 향이 올라왔다.


차를 만든 에녹은 납작하게 가공한 아이시어 조각을 들어 부채질했다. 냉기가 깃든 바람이 퍼지며 불을 잠재웠다.


“식사는 먹고 왔는데.”


“식사는 아니야. 다과지.”


식사 외에 먹을 걸 입에 넣는다니, 사치스럽기 그지없는 행위다. 도시는 확실히 전체적으로 사람들의 상황이 여유로운 듯했다.


짤막하게 대답한 에녹이 먼저 찻잔을 들어 올렸고, 릴스도 한 모금 머금었다. 고소하니 맛이 괜찮았다.


“용병 릴스는 가속 능력자로 유명하지. 처음에는 염력이나 바람이 아니냐고 주장하던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한계가 명확해.”


“······그렇기는 하다만.”


“-라는 사실이 모두에게 퍼져 있다는 건, 누군가 널 공략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거야. 왜 숨길 걸 숨기지 않지? 긴장하고 경계해.”


“지금도 하고 있었는데.”


“아니. 너무 약해. 거기다 그 보관, 내가 언급했을 때 아니면 아니라고 바로 부정하던가. 바로 모른 척했어야지 그 태도는 뭐야? 아이템은 누구나 강탈할 수 있는 걸 모르는 건 아닐 테고.”


“······.”


가속 능력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인벤토리는······


릴스는 갑자기 쏟아져 내리는 에녹의 잔소리를 들으며 흘낏 인벤토리를 쳐다봤다.


‘글쎄.’


이걸 누가 가져갈 수 있긴 할까. 능력인지 아닌지, 제 것인지 아닌지도 확신이 들지 않는 마당에.


“그 태도를 보면, 마치 누군가 강탈하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 느껴져. 혹시 그게 능력인가, 싶기도 해.”


“-!”


그걸 거기까지 생각한다고?


느릿느릿하게 이어지는 문장의 나열, 조금 끊어지는 듯한 이음새를 미묘하게 늘리는 사내의 눈이 지성에 잠겨 예리하게 빛났다.


왠지 모르게 진실을 말해야 할 것만 같았다.


“······능력이라고 보기는 힘들어.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아이템이 가깝지.”


“그렇다면 아니마인가?”


“-뭐?”


그걸 어떻게 알아?


릴스는 눈을 크게 떴다. 고글 안의 표정을 볼 수 없을 텐데도, 사내는 확신한 듯이 씩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한 권 꺼내왔다.


“내 친구가 아니마 소유자였어. 지금은 부탁을 받아서 내가 보관하고 있지만.”

-였다는 건 죽었다는 뜻인가?


사신이 과다 노동하는 시대이니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었지만, 허울 좋은 위로를 입에 담기 싫었다. 애초에 친구를 입에 담은 에녹은 애도와 추억어린 눈빛은 개뿔, 옅은 미소를 띠고 있었으니.


그는 보란 듯이 턱짓하며 책을 내밀었다.


릴스는 만지기 전, 우선 육안으로 확인했다.


책의 제목이 요상했다. 그리고 보기 드물게 분리되는 겉표지가 따로 있었다.


“이게 아니마?”


“하하, 아니야. 이건 그 친구가 아니마를 아는 사람을 보게 되면 전해달라고 부탁한 책이지. 그 아니마는 이 서점 어딘가에 있을 거야. 당신도 알다시피, 아니마란 것들은 의지를 가지고 있어서 주인이 아닌 이상 뜻대로 다룰 수 없는 것들이니 말이야.”


광대를 끌어올리며 크게 웃은 사내는 여길 다 뒤져서 찾을 수 있으면 가져가도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릴스는 빨리 포기했다. 서점의 규모가 생각보다 컸다.


8층 건물인데 1층부터 꼭대기 층까지 모든 계단에 책이 쌓여 있었다. 이걸 언제 찾는단 말인가.


“······됐어. 그래서 부탁하고 싶은 건 뭐지?”


“내 책들을 보관해 줘.”


“책들을?”


“정확히는, 이 서점의 모든 것을.”



*



숙소에 돌아온 릴스는 가지고 온 책을 든 채로 침대에 누웠다. 아직 경계 시간이 되지 않아 밖의 기척이 꽤 활발했다. 무심결에 인원을 세던 릴스는 고개를 거세게 저으며 정신을 차렸다.


경계를 남에게 맡긴 생활은 분명 편안했으나, 익숙해지면 안 된다.


밖에서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던 릴스는 덕분에 저 멀리에서부터 달음박질쳐 달려오는 누군가의 기척을 눈치챘다. 든 책을 뒤집어 탁상에 내려놓음과 동시에 똑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릴스, 계십니까?”


장장 며칠 동안 그를 내버려 둔 에이아크의 방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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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7.5_2(2) 23.04.23 28 0 12쪽
103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7.5_1(2) + 7.5_2(1) 23.04.21 22 0 12쪽
102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에필로그(2) + 7.5_1(1) 23.04.17 20 0 12쪽
101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15화 + 에필로그(1) 23.04.15 32 0 12쪽
100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14화 23.04.15 31 1 12쪽
99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13화 23.04.10 29 0 12쪽
98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12화 23.04.08 21 0 11쪽
97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11화 23.04.07 19 0 12쪽
96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10화 23.04.02 22 0 12쪽
95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9화 23.04.01 24 0 12쪽
»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8화 23.03.31 22 0 12쪽
93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7화 23.03.26 29 0 11쪽
92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6화 23.03.25 24 0 12쪽
91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5화 23.03.24 24 0 11쪽
90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4화 23.03.19 27 0 12쪽
89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3화 23.03.18 30 0 11쪽
88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2화 23.03.17 34 0 12쪽
87 Chapter 7. 미래가 흐르는 방향 _프롤로그 + 1화 23.03.12 84 0 12쪽
86 Chapter 6.5_4_생존확인 23.03.11 40 0 15쪽
85 Chapter 6.5_3_Uncompleted, Loading... (1) 23.03.10 35 0 12쪽
84 Chapter 6.5_2_ All is well that ends well(3) 23.03.05 26 0 13쪽
83 Chapter 6.5_1_ 藏頭露尾(장두노미) 23.03.04 26 1 12쪽
82 Chapter 6. 죽은 것에게 경의를_8화 + 에필로그 23.03.04 27 1 12쪽
81 Chapter 6. 죽은 것에게 경의를_7화 23.02.28 34 0 11쪽
80 Chapter 6. 죽은 것에게 경의를_6화 23.02.26 30 0 12쪽
79 Chapter 6. 죽은 것에게 경의를_5화 23.02.24 44 0 11쪽
78 Chapter 6. 죽은 것에게 경의를_4화 23.02.20 38 0 12쪽
77 Chapter 6. 죽은 것에게 경의를_3화 23.02.19 29 0 11쪽
76 Chapter 6. 죽은 것에게 경의를_3화 23.02.18 31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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