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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적장 서재

드래곤이 사는 집필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김동하
작품등록일 :
2021.04.10 02:21
최근연재일 :
2021.05.0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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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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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4.1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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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3_하멜른의 쥐잡이 (7)

DUMMY

<#3_하멜른의 쥐잡이 (7)>







“너 혹시 도토리월드라고 알아?”


나는 창공의 포털 밖으로 빠져나오는 중인 구도자를 보며 박주은에게 물었다.


“도토리월드? 그게 뭔데?”


역시 등장인물인 박주은은 도토리월드에 대해 모르고 있었다.


“모르면 됐어.”

“너 진짜 기분 나쁜 거 알지?”

“아무래도 저 자식을 족쳐야겠군.”

“설마 지금 저승사자 보고 하는 소리야?”


박주은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앞서 구도자와 대면했을 때도 그렇고 박주은으로서는 구도자를 대하는 내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구도자라면 다들 꺼려하는 존재이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녀석을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으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박주은. 넌 저 자식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너 만큼이나 기분 나쁜 놈이지.”

“내가 저 자식 진짜 정체 까발려줄까?”

“뭔지는 몰라도 됐거든.”

“저 자식 알고 보면 호구야.”

“호구? 그게 뭔데?”


박주은의 반응을 보니 내가 지열구를 쓸 때 호구란 단어는 사용하지 않았나 보다.


“뭐 그런 게 있어. 궁금하면 따라오던가.”


나는 구도자가 있는 방향으로 앞서 걸으며 말했다.

그 사이 구도자는 조금 전 시나리오로 인해 사망한 이들의 혼백을 수거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시나리오가 발생하기 전에도 사망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 이미 구도자의 저 행위를 본 사람들도 있었을 거다. 그런 목격자들의 입에서 저승사자란 말이 퍼지기 시작했을 테고.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구도자의 주 임무가 혼백 수거니까.

다만 혼백 수거는 녀석의 수많은 일들 중에 하나일 뿐이었다. 모르긴 몰라도 구도자는 지열구에서 가장 바쁜 존재 중 하나일 거다.


구도자와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대량의 혼백을 흡입해 입안에 머금고 혀로 굴리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얼른 보면 커다란 알사탕을 입안에서 굴리는 듯한 모습.

녀석은 혼백들을 입안에서 오물거리다 뱉어내기를 반복했다. 놈이 내 혼백의 맛이 궁금하다고 했던 걸 저걸 두고 한 소리였다.


입안에 삼켜질 때만 해도 반투명한 빛의 형태이던 혼백들이 다시 모습을 보였을 때는 구슬 형태로 정제되어 있었다.

대량 발생한 혼백들을 수거하기 좋은 형태로 다듬는 과정이었다.

얼른 보면 고양이가 헤어볼을 토하는 것 같다고나 할까.

마구잡이식으로 하는 작업 갖지만 혼백의 생전 업보에 따라 1차 분류를 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따라서 어떤 혼백 구슬은 영롱한 빛을 띠었고 어떤 건 탁한 빛을 띠기도 했다.


“아, 비위 상해.”


아마도 박주은은 구도자의 혼백 수거를 직접 본 게 처음인 듯했다.


“너무 대놓고 싫은 티내는 거 아냐? 저놈한테 찍혀서 좋을 건 없는데.”

“쳇.”


나는 박주은에게 슬쩍 웃어 보인 뒤 구도자가 떠있는 상공 밑으로 걸어 나갔다.

막 새까만 혼백 구슬을 토해내던 구도자의 시선이 나를 포착했다. 단단한 비늘에 뒤덮인 눈이 가늘어졌다.


“또 네 놈인가. 나를 자주 봐서 좋을 건 없을 텐데.”

“글쎄. 그건 두고 봐야지.”


옆에 있던 박주은이 슬쩍 내 옆구리를 꼬집었다.


“어쩌려고 그래.”


그 당당하던 박주은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슬쩍 박주은을 돌아보며 말했다.


“저 놈과 협상할 게 좀 있거든.”


나는 이후로는 전음을 사용했다. 지금부터 나눌 대화는 박주은이 모르는 편이 나았다.


「대화 좀 하지.」

「혼백으로 볼 줄 알았는데 용케 살아남았군.」

「나 목 아픈데.」


자고로 협상은 대등한 입장일 때 이뤄지는 법···은 개소리고. 결국엔 기세싸움이다.


「구도자의 공무를 훼방하는 행위가 어떤 의미인지 모르나 보군.」


‘공무 같은 소리 하네. 네가 이 나라 고시생들의 고됨을 알고서도 그딴 소리를 할 수 있을까.’ 라고 따지고 싶었으나 녀석과 잡담이나 나눌 생각은 없었다. 계속 거만하게 내려 보겠다면 강제로라도 끌어내리는 수밖에.


「그런 거라면 잘 알고 있지. 그런데 공무수행자가 삥땅치는 것도 쇠고랑 찰일 아닌가?」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이는군.」


구도자는 모르는 일인 척 짐짓 내 시선을 회피했다.


‘시치미 떼시긴. 호구는 몰라도 삥땅이란 낱말이라면 확실히 쓴 기억이 있거든.’


「그래? 그럼 너네 상관한테 찔러봐?」

「목숨이 아깝지 않나 보군. 감히 사자 주제 구도자를 협박하다니.」


순간 구도자를 둘러싼 오라가 부풀며 사위로 강풍이 휘몰아쳤다. 녀석의 길게 찢어진 눈이 나를 노려보며 타올랐다.


「협박이 아니라 협상을 하자는 거야. 구도자 방구석.」

「어, 어떻게 네놈이 내 이름을······.」


예상치 못한 호명에 놀랐는지 일순 놈의 오라가 축소됐다.


[구도자 방구석은 혼백을 수거할 때마다 일정량을 삥땅쳤다.]


지열구에서 지금의 장면을 두고 쓴 문장이었다.

구도자는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다.

사후 생전에 게으른 자들을 대상으로 구도자가 임명되는데 임관 후로는 생전의 이름을 거꾸로 부여하는 게 저 세계의 규칙이었다.

그러니까 구도자 방구석의 생전 이름은 방석구였던 셈이다.


「어떻게. 협상할 마음은 생기셨나?」


서서히 하강한다 싶던 구도자는 순식간에 내 앞으로 순간이동을 했다.


“윽!”


구도자의 길고 억센 손가락이 내 목을 움켜쥐었다. 놈이 마음만 먹는다며 이대로 목을 부러트릴 수도, 칼날 같은 손톱으로 댕강 목을 자를 수도 있다.

위기임을 느낀 박주은이 버프를 넣어주는 게 느껴졌다. 나는 숨이 막히는 가운데도 괜찮다는 표시로 손을 들어보였다.


「허튼 수작 부렸다간 네 혼백을 빼돌려 죽어서도 괴롭게 해주마. 그러니 지금부턴 말을 신중하게 골라야 할 게다.」

「그런 짓이나 하니 스캐빈저 소리를 듣지.」

「너, 너 이 자식. 도대체 정체가 뭐냐?」


스캐빈저란 호칭만큼은 들먹이지 않으려고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사실 구도자 놈도 불쌍한 구석이 있는 놈이니까.

내 목적을 위해 남의 약점을 이용하는 악취미는 없었다. 그러나 신념도 일단 살아야 지킬 수 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온 10년의 세월. 나는 늘 목숨을 걸고 살았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출퇴근길조차도 내게는 목숨이 오가는 위험천만한 길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또 다시 목숨을 걸고 있다.


이렇게 함부로 목숨을 걸다가는 천벌을 받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곳 지열구에서 살아남으려면 어중간한 태도로는 어림없다.

매 순간 목숨을 건다는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다.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자들은 이미 구도자의 입안에 들어가 있을 것이다.


목숨도 살아있을 때에야 걸 수 있는 거니까.


「내 정체라. 네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무리 구도자라고 해도 자신은 없을 거다. 지열구의 세계에서 많이 안다는 건 좋은 것만은 아니니까. 분에 넘친 정보는 오히려 칼날이 되어 돌아올 수 있었다. 구도자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는 존재다.


「내 요구는 간단해.」

「일단 들어나 보지. 하지만 허튼 소리를 했다간 각오해야 할 거다.」


구도자가 내 목에서 손을 거두며 으르렁거렸다.


「첫 번째 요구조건은 환전이야.」

「알 수 없는 소리군.」

「아니지. 잘 생각해보면 알 거야.」

「네놈 설마······.」

「맞을 걸. 그 설마가.」


이 세계로 소환되면서 가장 의문이었던 점이 있다면 그건 도토리월드와 지열구의 관련성이었다. 앞서 박주은에게 도토리월드에 대해 아느냐고 물어본 건 그런 이유였다.

내가 쓴 소설이 현실이 된 상황. 그 소설이 저장된 도토리월드 또한 이 세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내가 이 세계로 소환되기 전에 받았던 메시지가 그 증거였다.


[도토리월드의 시스템이 구도자의 요청에 의해 계약사항을 검토합니다.]


줄곧 의문이었다. 출판권 설정 계약서에 출판사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도 계약상황을 검토한 게 도토리월드의 시스템이란 것도.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가정은 이랬다.

도토리월드는 기본적으로 블로그 형태의 SNS다. 동시에 내가 지열구의 파일을 올려둔 일종의 저장소이기도 했다. 몇 년 전 서비스가 중단된 도토리월드지만 사용자들의 파일은 보관중이라 들었다.


한 마디로 도토리월드와 지열구 간에 모종의 관련성이 있을지 모른다는 거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도토리월드의 시스템은 나와 일대일 관계일 가능성이 크다.

지열구가 저장된 건 내 개인 계정이니까.

위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나는 도토리월드의 시스템을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어떤 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잘 모르나 일단 가장 먼저 생각난 것부터 시도해 볼 생각이었다.


「앞으로 내가 주는 코인을 토리로 환전해주면 돼.」


토리는 도토리월드에서 사용하는 가상화폐 개념이었다.

내가 코인을 토리로 환전하고자 하는 건 토리로 환전할 경우 토리를 불릴 만한 방법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분간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


「그런 게 가능할 턱이 없지.」

「아니. 너라면 가능해. 내 추측이 맞다면 넌 도토리월드에도 접속할 수 있을 테니까.」


확실치는 않았다. 도토리월드의 시스템이 구도자의 요청상황을 확인했다고 받았던 메시지를 염두하고 떠본 말이었다.

그런데 구도자의 침묵이 길어졌다.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최소한 내 제안이 고민거리는 되는 문제란 거니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네게 무슨 이득이지?」

「그건 네가 알 바 아니고. 아무튼 된다는 거지? 그럼 두 번째 요구조건도 마저 말하지. 나중에 혼백 하나마 빼돌려줘.」

「그건 안 될 소리다!」


구도자 녀석, 얼마나 감정이 격앙됐는지 전음에 마력을 실어 보냈다. 덕분에 나는 휘청거렸다.


「왜 안 되지? 조금 전에도 혼백 여러 개 빼돌렸잖아.」

「그건 내가 그런 게 아니다.」

「그럼 내가 본 건 누구지?」


조금 전 구도자의 말에 담긴 속뜻이라면 알고 있었다. 혼백을 빼돌린 게 자신의 의도가 아니란 의미였다.


「아니··· 그러니까, 내 말은······.」


당황하는 게 여실하게 느껴졌다. 나는 내친 김에 압박 수위를 높였다.


「내가 잘못 들었나? 마치 누가 혼백을 빼돌리라고 시켰다는 것처럼 들리는데.」

「시키긴 누가 시켰다는 것이냐. 단순히 말이 헛나온 거다.」

「그럼 역시 네 의지로 빼돌린 거란 말이네.」

「그, 그건.」


이로서 구도자는 완전히 내 페이스에 말려들었다. 이제 방점을 찍을 때였다.


「아무튼 그딴 건 관심 없고 요구조건 들어줄 거야 말거야. 이 두 가지만 들어주면 난 아무 것도 못 본 거라니까. 내가 젤 잘하는 게 못 보는 거 알지?」

「네 말을 어떻게 믿지?」

「그거야 애 공증 받으면 되는 거고.」


내가 굳이 박주은을 데리고 온 이유였다.


「네 말대로 할 때 내가 얻는 건 뭐지?」

「말했잖아. 네 비리를 눈감아주겠다고.」

「지금 날 협박하는 건가? 분명 협상이라고 했을 텐데.」


다시금 구도자의 전음에 마력이 실리기 시작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이대로 협상에 응해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구도자가 그 정도로 바보일리는 없었다.

나는 못이기는 척 말했다.


「좋아. 환전수수료를 내지.」

「사자여. 장난의 도가 지나치구나. 내가 네놈 푼돈에 넘어갈 거라 생각하는 건가.」

「일단은 이것뿐이긴 한데.」


나는 전 재산 1825코인중 1800코인을 꺼내보였다. 내 코인뭉치를 본 구도자의 길쭉한 눈이 동그래졌다.


「이럴 수가. 어떻게 이 만한 코인이 있는 거지?」

「그건 내 프라이버시고 할 거야 말 거야.」


사실 1800코인이라고 해봐야 큰돈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 막 1번 시나리오가 끝났다는 걸 감안해야 한다.

시나리오를 클리어 한 다른 참가자들의 경우라면 대부분 시나리오 보상인 5코인이 전부일 테니까.

각성자들의 경우라면 각성권을 판 돈에 가시생쥐 몇 마리 잡은 걸로 추가보상을 받았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봐야 200코인을 넘기기가 쉽지 않았을 거다.

내가 아는 한 1번 시나리오를 마친 시점에서 나보다 많은 코인을 번 사자는 3명뿐이다.


「분명 위조일 테지.」


코인 하나를 깨물어본 방구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정녕 진짜 코인이란 말인가.」

「물론이지. 이제 환전수수료를 정해볼까? 섭섭지는 않게 할게.」


나는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방구석과의 이번 협상만 체결된다면 앞으로 돈 걱정은 안 해도 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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