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야적장 서재

드래곤이 사는 집필실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퓨전

김동하
작품등록일 :
2021.04.10 02:21
최근연재일 :
2021.05.02 21:00
연재수 :
27 회
조회수 :
3,921
추천수 :
112
글자수 :
140,883

작성
21.04.10 09:00
조회
362
추천
6
글자
12쪽

#2_집필을 시작합니다 (1)

DUMMY

<#2_집필을 시작합니다 (1)>







‘문?’


수평선이 내다보이는 드넓은 바다.

그 바다를 낀 백사장에 문이 하나 있었다.

감싸고 있는 벽 없이 홀로 세워진 문.


나는 뭔가에 이끌리 듯 문으로 다가갔다.


[카테고리, ‘집필실’에 입장합니다.]


문을 통과한 순간 주위의 풍경이 백팔십도 바뀌었다.


‘밤인가.’


어둑한 풍경을 뚫고 끔찍한 괴성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주위의 온도가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강렬한 화염이 나를 덮쳐왔다.

나는 본능적으로 옆으로 몸을 굴려 피했다.


조금 전 내가 서있던 곳의 초목이 불타고 있었다.


‘이게 대체······.’


어둠 속에서 이글거리는 붉은 눈동자가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얼른 보기에도 집채만 한 크기를 지닌 존재였다.

위험을 감지한 나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어둠으로 인해 시야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

가시덤불이 몸을 할퀴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등 뒤로 쿵쿵 거리는 발소리와 나무가 부러지는 소리가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젠장. 집필실로 소환된다더니,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숨이 턱 끝에 차오르도록 전력으로 질주했지만 지면이 고르지 않은 탓에 좀처럼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 사이 해츨링으로 짐작되는 녀석의 거친 숨결이 바로 등 뒤에서 느껴졌다. 이대로는 놈에게서 벗어날 가망이 없었다.

나는 어둠 속 희미하게 보이는 비탈을 향해 몸을 던졌다.


“크윽!”


정신없이 비탈을 구르던 나는 커다란 나무둥치에 부딪혀서야 멈췄다.

순간적으로 숨이 턱 막혔다. 그러나 한가하게 숨이나 고를 시간은 없었다.

이내 엄청난 풍압이 느껴지더니 한 쌍의 붉은 눈동자가 내 앞에 착지했다.

붉은 눈동자의 사이에서 서서히 화염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이대로 영문도 모른 체 죽는 건가.’


강렬한 붉은 눈동자에 압도되어 얼어붙은 나는 재차 쏘아지는 브레스를 피할 생각조차 못했다.

꼼짝없이 죽는단 생각에 질끈 눈을 감았을 때였다. 뭔가가 잽싸게 나를 들쳐 업는 게 느껴졌다.

이어 세상이 흔들렸고 나를 안아든 존재의 가쁜 숨이 느껴졌다.


“얼빠진 놈. 죽을 작정이야?”


성인 남자를 거뜬히 들쳐 엎은 완력.

당연히 남자일 거란 짐작과 달리 여자 목소리였다.


그녀는 해츨링의 추격이 끝나자 나를 바닥에 패대기쳤다.


“윽!”

“성가시네.”

“살려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누구신지?”

“그러는 넌 누군데?”


복면을 쓴 여자가 되물었다.


“전······.”


이런 상황에 이름을 물은 건 아닐 테고 딱히 나를 설명할 길이 없었다.


“됐고 살고 싶으면 정신 똑똑히 차려!”


여자가 제 옷에 묻은 나뭇잎을 털어대며 말했다.


“여긴 어디죠?”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숲이잖아.”

“제 질문은 그런 게 아니라······.”

“됐고 이제 그쪽 갈길 가.”


여자는 귀찮다는 듯 자리를 이탈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녀를 뒤따랐다.


“아, 왜 따라와? 집 없어?”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집은 고사하고 여기가 어딘지조차 모르는 상황. 지금으로서는 눈앞의 여자만이 내 의문을 풀어줄 유일한 존재였다.

더군다나 여전히 숲 속이었고 앞서 들리던 괴성들이 간헐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멀리선 숲이 불에 타고 있었다.


“혹시 기억상실증 같은 건가? 뭐라도 생각나는 거 없어?”


나는 이곳에 오기 전 마지막 상황을 떠올렸다.

분명 집필 장소로 강제 소환한다는 안내를 받았었다.

막연히 노트북과 책상이 있는 집필실을 상상했지만 도착하고 보니 여기였다.


“혹시 집필실이 어디 있는지 아십니까?”

“집필실? 당신 작가야?”

“아뇨. 아니 그게······.”

“맞단 거야, 아니란 거야?”


미완성 웹소설 한 편을 쓴 게 전부니 작가라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조금 전에 출판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어떤 의미에선 작가일 수도 있지 않을까?


“아마도 작가가 맞는 거 같습니다만.”


막상 작가란 말을 내 입으로 내뱉고 보니 어딘가 쑥스러웠다.


“뭐야. 빌어먹을 글쟁이였어? 작가인 줄 알았으면 타죽게 나두는 건데. 젠장!”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었다.

나는 갑자기 적의를 비치는 여자의 모습에 당황했다.

달가워하길 기대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적의를 내비칠 줄은 미처 몰랐다.

전생에 작가랑 원수진 일이라도 있는 걸까?


“죄송합니다. 그런데 제가 뭘 잘못한 건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상대가 화를 내니 습관적으로 사과가 나왔다.

뭘 사과해야 하는 건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작가란 놈이 그것도 몰라? 더 열 받네.”

“다시 한 번 사과드리죠.”

“됐고. 뭘 썼는데?”

“그게 현대판타지라고 현실세계에 판타지 세계관이 겹치는 장르인데요······.”


여자가 멍하니 내 눈을 바라만 보았다.

이해를 못하는 건가 싶어 나는 설명을 덧붙였다.

“그러니까 막 마법도 쓰고 괴물들이 출몰하는 그런 소설······.”


퍽!


나는 갑자기 날아든 주먹에 말을 끝내지 조차 못했다.

작지만 매서운 주먹이었다.


“컥!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건 내가 따질 말이야.”


나는 여자의 떨리는 주먹을 보며 그녀가 재차 주먹을 휘두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움찔했다.

다행히 그녀는 주먹을 휘두르는 대신 노여움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소설 쓰다 말고 지금껏 뭘 하고 다닌 거야?”

“그게 그쪽과 무슨 상관이죠?”

“상관이 없다고?”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나는 내 소설을 출간한 적도 연재한 적도 없었다. 하다못해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도 없었다.

그러니 절대 내 소설을 봤을 리 없는 여자가 왜 소설을 문제 삼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말로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자꾸 알 수 없는 소리만 늘어놓는 군요.”

“좋아. 따라와.”


얼굴이 복면에 가려져 있었지만 눈빛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화가 난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여전히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여자는 한참을 앞서 가더니 엄청난 크기의 나무 아래 섰다.

여자가 나뭇가지에서 지면까지 드리운 덩굴을 잡아당기자 판자들을 줄로 엮은 사다리가 차르륵 내려왔다.


“올라가.”


나는 영문도 모른 체 사다리를 올랐다.

나무가 어찌나 높은지 다리에 쥐가 날 정도로 올랐을 때서야 우듬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무의 우듬지에는 감시초소처럼 생긴 작은 오두막이 지어져 있었다.


“곧 날이 밝을 거야. 그때까지 눈이라도 부치든지 말든지.”


차갑게 쏘아붙인 여자는 오두막의 벽에 기대 눈을 감았다.

그녀와 달리 나는 잠이 오질 않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세계에서, 조금 전 브레스에 타죽을 뻔한 하고도 잠을 취할 수 있을 만큼 강심장은 아니니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이윽고 동이 터오기 시작했다.


“어때? 볼만해?”


언제 잠에서 깼는지 모를 여자가 바깥 경치를 바라보던 내게 물었다.

숲 곳곳에 산불로 인해 검게 변한 걸 제외하고는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었다.

물론 평범한 사람의 시선이었다면 말이다.


나는 수목으로 빽빽한 대자연의 풍경에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그럴 수밖에. 십 년 만에 시력을 회복한 내 앞에 이런 대자연이 펼쳐져 있는데 벅차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름답네요.”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나를 보는 여자의 눈빛에 경멸이 담기기 시작했다.


“이걸로. 다시 봐봐.”


여자가 쌍안경을 건넸다. 쌍안경에는 만 배율이라고 적혀있었다.


‘무슨 천체망원경도 아니고.’


나는 황당해하며 쌍안경의 접안부를 눈에 가져다 댔다.


‘이건!’


만 배율로 당겨진 광경에 내 눈을 의심했다.


‘저건 창살인가?’


세상의 끝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지점. 그 곳에 셀 수 없이 많은 창살들이 벽을 이루고 있었다. 창살은 360도 반경으로 끊긴 곳 없이 이어졌다.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새장, 내지는 감옥이었다.


나는 계속해서 창살 안 쪽의 풍경들을 살폈다.

비교적 평화로워 보이던 숲과는 사정이 달랐다.


하늘과 지상을 점령한 괴수들.

얼른 보기에도 무질서한 사람들의 행동들.

치안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 듯 사람들은 괴수들에게 짓밟히는 동시에 같은 인간을 살육했다.

여러 명의 사내에 의해 끌려가는 젊은 여자도 있었고 살아있는 사람을 화형에 처하는 모습도 보였다.


“오디오까지 들려주지 못해 아쉽네.”

“도대체 이게 다 뭐죠?”

“작가라고 했지? 이래도 너랑 상관없다고 할 거야?”


다시금 집필실로 강제 소환한다는 안내 문구가 상기됐다.

설마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내가 쓴 소설 속이란 말인가?

그럴 리 없었다. 내 기억에 이런 풍경을 묘사한 적은 없었다.

물론 <지옥문의 열쇠를 구합니다> 또한 전반적으로 참혹한 배경이긴 하다. 그러나 내가 보고 있는 것과는 전반적으로 결이 달랐다.


“맹세코 전 이런 세계를 쓴 적이 없습니다.”

“그렇겠지. 바로 그게 문제야. 그 무책임이 문제라고!”


여자는 팔짱을 낀 체 나를 경멸했다.


“저쪽을 봐봐.”

“거기라면 이미 봤습니다.”

“보라면 봐.”


여자가 직접 쌍안경의 각도를 조정해주며 말했다.

쌍안경의 렌즈를 통해 이미 보았던 거대한 창살이 보였다.

여자가 쌍안경을 살짝 누르자 창살과 지상이 맞닿는 지점이 보였다.

그곳에 뭔가가 있었다. 거대한 무언가가.


“저, 저건!”


뱀처럼 긴 두 개의 머리, 거북이 형태의 몸통에 긴 다리.


“북문의 수호신이야.”


내가 보고 있는 건 사방위신(四方衛神)중 북쪽을 담당하는 현무였다.

이제 보니 현무의 뒤로 있는 창살에는 거대한 문이 나 있었다.


“어디까지나 옛날 얘기지만. 지금은 북문의 사신(死神)으로 불리고 있지.”


현무는 군대와 싸우고 있었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요괴들이 현무와 맞서 싸우고 있었다.


‘서, 설마 여긴······.’


“원래대로라면 바깥으로부터 안을 지키는 신수였지만 지금은 반대가 됐지. 지금의 우리에게는 재앙적인 존재야.”


어떻게 이런 일이······.

믿을 수 없었다.


“이제야 알겠어? 이 모든 원흉이 바로 당신이라고!”


여자는 도저히 분노를 참을 수 없었는지 나를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앞서와 달리 살의가 담긴 주먹.


퍽!


“이 무슨 무례인가!”


복면 여인의 주먹은 갑자기 출현한 거대한 체구의 사내의 손바닥에 가로막혀 있었다.


“주군이시어.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번쩍이는 갑옷으로 무장한 사내가 내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서, 설마 넌······.’


서서히 고개를 드는 사내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그의 정체를 떠올리고 말았다.


감무율.


<지옥문의 열쇠를 구합니다>를 구상할 당시만 해도 중요인물로 등장시키고자 만들어낸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는 끝내 등장시키지는 못했지만.


감무율은 역사 속 가상 인물이었다. 나는 집필을 시작하면서 당초 구상했던 것과는 달리 감무율이 등장할 개연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렇게 서서히 감무율은 내 기억에서 멀어져갔다.

그런데 그 감무율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이다.


감무율을 알아보자 복면을 쓴 여인의 정체도 알 것 같았다.

원래대로라면 무려 주인공이 될 뻔했던 인물.

거칠게 표현하자면 낙하산 캐릭터에 밀려 조연도 아닌 소설 바깥으로 밀려난 인물, ‘아랑’이었다.


비로소 녀석의 적의가 이해됐다.

동시에 지금 내가 있는 세계가 어떤 곳인지도 말이다.


나는 <지옥문의 열쇠를 구합니다>를 집필하면서 파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 블로그용 SNS인 도토리월드를 백업용 저장소로 사용했었다. 당시 도토리월드에서 사용한 카테고리가 바로 <집필실>이었다.


그러다 소설 집필이 결말을 향해 가면서 소설 본문은 살펴보기 용이한 PC의 하드로 옮겼다.

그러면서 구상 단계에 머물러 쓰이지 못한 자료들만 <집필실>에 남게 된 것이다.


“신. 감무율. 백만의 군세를 대신해 인사드립니다. 강산이 바뀌었어도 주군을 섬기는 마음만은 변치 않았사옵니다.”


한 쪽 무릎을 세우고 앉은 감무율이 단단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그런데 왜 나는 소설도 아니고 자투리 자료들을 모아둔 <집필실> 안에 들어오고 만 걸까.


“주군! 부디 신을 버리지 말아주십······.”


분명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말한 것 같은데 내게는 희미하게 들렸다.

동시에 내 몸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드래곤이 사는 집필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리메이크작 안내 <이계군단 소환술사> 21.06.15 21 0 -
공지 연재중단 안내 +4 21.05.04 35 0 -
공지 프롤로그 추가 안내 21.04.17 82 0 -
공지 연재일정 안내 21.04.10 58 0 -
27 #6_카테고리 집필실 (3) +2 21.05.02 37 2 12쪽
26 #6_카테고리 집필실 (2) 21.04.29 37 2 13쪽
25 #6_카테고리 집필실 (1) 21.04.28 34 1 12쪽
24 #5_거점을 확보하라 (6) +2 21.04.27 51 3 12쪽
23 #5_거점을 확보하라 (5) 21.04.26 53 2 12쪽
22 #5_거점을 확보하라 (4) +2 21.04.25 66 4 11쪽
21 #5_거점을 확보하라 (3) 21.04.22 56 2 12쪽
20 #5_거점을 확보하라 (2) 21.04.21 56 4 13쪽
19 #5_거점을 확보하라 (1) 21.04.20 76 4 12쪽
18 #4_무법천지 (6) 21.04.19 66 5 11쪽
17 #4_무법천지 (5) 21.04.18 100 4 11쪽
16 #4_무법천지 (4) 21.04.17 78 4 11쪽
15 #4_무법천지 (3) 21.04.15 74 4 12쪽
14 #4_무법천지 (2) 21.04.14 71 5 13쪽
13 #4_무법천지 (1) 21.04.13 87 4 12쪽
12 #3_하멜른의 쥐잡이 (7) 21.04.12 110 4 13쪽
11 #3_하멜른의 쥐잡이 (6) 21.04.11 105 4 12쪽
10 #3_하멜른의 쥐잡이 (5) 21.04.10 92 4 12쪽
9 #3_하멜른의 쥐잡이 (4) 21.04.10 119 4 12쪽
8 #3_하멜른의 쥐잡이 (3) 21.04.10 165 4 13쪽
7 #3_하멜른의 쥐잡이 (2) +1 21.04.10 182 5 12쪽
6 #3_하멜른의 쥐잡이 (1) 21.04.10 186 5 12쪽
5 #2_집필을 시작합니다 (3) 21.04.10 211 5 11쪽
4 #2_집필을 시작합니다 (2) +1 21.04.10 320 5 10쪽
» #2_집필을 시작합니다 (1) 21.04.10 363 6 12쪽
2 #1_맹인 안마사 21.04.10 496 6 11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