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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번 생은 폭군 개혁 군주가 되겠습니다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퓨전

윤관(允寬)
작품등록일 :
2020.05.24 11:54
최근연재일 :
-
연재수 :
2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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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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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91
글자수 :
142,153

작성
20.07.22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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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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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글자
11쪽

14. 이제 와서 아버지인 척 (4)

DUMMY

“전하. 부디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이는 너무 과한 처사이옵니다.”


벌써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자정이 지나기 전부터 줄곧 희정전을 향하여 부디 재고해 달라고 간청해보지만 벌써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 지금, 이 순간까지 그는 안에서 아무런 대답도 해오지 않고 있었다.


“저하. 날이 춥사옵니다. 이만 일어나시옵소서.”

“되었다.”


눈만 안 내렸지, 입으로 한숨을 내쉬면 새하얀 입김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매우 추웠다.

얼마나 오랫동안 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는지 지금 무릎엔 아무런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임금에게 청하듯이 김 내관도 내 뒤에 서서 청했다. 어차피 이는 저들의 인과응보이니 그만 일어나 달라고.

따뜻한 동궁으로 돌아가 몸을 돌보라는 말을 해왔지만 나는 그의 말을 곱씹은 체 자리를 지켰다.


“저하. 그만···.”

“이제 와 잘못을 바로잡겠는 건 도대체 무슨 심보란 말이냐.”


이 모든 게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이의 죽음을 가지고는 더러 피의 보복을 일삼는다. 도대체 누가 원해 하였던 일이란 말인가.

피는 다른 피를 불러오기 마련, 절대 어느 한 쪽이 먼저 끊으려 하지 않으면 다음번에 흘리게 될 피의 양은 더욱 많아지게 될 일이다.

했기에 나는 비록 내 생모를 죽인 그들이지만 그만 용서해주고자 했다. 앞서 피의 보복을 해본 결과가 어떠했는지는 나는 안다.


‘결국, 남는 건 허무함 뿐이다.’


피의 보복을 단행하여 어머니의 묘 위에 그들의 피를 흩뿌렸다.

나를 깔보던 이들을 모조리 죽여 없애고 나니, 자연스레 왕권은 강력해졌고, 그 누구도 나를 무시하거나 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분명 일평생의 숙원이자, 어머니의 복수를 다 끝마친 순간에는 후련해지고, 성취감을 느끼며, 만족감까지 얻을 줄 알았다.

물론 그것들을 전부 얻은 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 외의 것들까지 덩달아 느꼈으니.


그것은 바로 허무함이었다.


무엇을 해야 하지? 이제 나는 이 강력해진 왕권을 토대로 무엇을 해야 할까. 그저 살아남기에 급급했고, 저들의 피를 마시고 싶다는 욕망에 갈망했다.

당장 피해자와 가해자의 위치 역시 달라졌다.

그들을 모두 죽임으로써 수많은 노론 인사가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분노로 가득해져, 가해자가 되어버린 소론 일당을 향하여 날 선 모습을 마지막으로 예견했다.

연잉군이 집권하게 된 이상, 노론의 복귀는 필연적인 일. 그렇게 되면 소론을 향하여 다시 피의 보복이 단행이 단행되지 않겠는가.

피는 피를 부른다.

그렇기에 나는 이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하여 이 고리를 끊고자 했으나 이런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임금이 직접 개입하여 나의 일을 방해하려 들고 있다.


“전하! 부디 뜻을 재고하여 주시옵소서!”


그렇기에 나는 임금이 내 말을 들어줄 때까지 간청한다. 부디 재고하여 달라고. 간절한 내 목소리가 과연 닿기는 했는지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문이 열렸다.


“상선.”

“전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길을 비켜주었다. 나는 문 안으로 들어섰다. 항상 문안 인사를 올리고자 오는 길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어딘가 낯설게만 느껴졌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무릎이 저려서 거동하기가 불편하여 똑바로 걷기가 어려웠다. 김 내관이 내게 다가와 이런 나를 부축해주려 하였지만.


“나 혼자 걸을 수 있다.”


김 내관의 손길을 거부한 나는 그렇게 안으로 들어가 임금이 있는 방 안으로 향했다.

내가 다가감에 기다렸다는 듯 궁인들이 천천히 문을 연다.


“전하. 소자 전하를 뵙사옵니다.”

“.....”


문 안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은 상투를 풀어헤쳐 산발이 되어있는 그였다.

방 안에는 호롱불 하나 밝히지 않아서 어두웠다. 하여 그가 어떤 표정으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저 안이 호랑이굴인 줄 알면서도 방 안으로 들어섰다.

방 안으로 들어선 직후엔 무릎을 꿇고는 다시 간청했다.


“소자가 직접 이 일을 맡을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가만히만 있던 그가 내게 다가오더니 어깨 위에 제 손을 올리고는.


“과인을······.”

“.....”

“과인을 용서할 수가 없느냐.”

“전하.”


그의 목소리 속엔 서운함으로 가득 찼다. 화를 내는 줄 알았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가만히 있기만 하더라도 주변에 위압감을 느꼈던 나로서는 제 말을 끝내 들으려 하지 않는 자식 때문에 화가 단단히 나 있는 줄 알았던 것도 잠시.

그는 그저 슬퍼하고 있었다. 아무 불빛도 없는 이곳 방 안에서 창문 틈새로 세어들어오는 달빛에 의존하여 그의 얼굴을 살폈다.

눈물을 흘리면서 어쩔 줄 모르는 그의 모습을 보고는 그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그의 이런 얼굴을 보고 있기 때문일까, 얼마 전에 내가 그 앞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이제 와, 아버지인 척하지 마세요-


왜 그런 말을 했을까. 후회가 막막하다. 아무리 제 미래를 아는 나라 할지라도 정작 나는 내 아버지에 대해서는 잘 몰랐다.


“전하께서 잘못한 게 무엇이 있사옵니까.”

“네 모친을 죽였다.”

“어머니께선 마지막까지 전하를 용서하라 하시었습니다.”


그녀에겐 미안했지만, 지금은 없는 말도 지어내어야 한다고 생각한 나는 그녀의 입을 빌렸다. 어머니께선 전하를 그리 원망하지 말라고 하였다고.

이에 그는 몸을 한번 떨면서 한순간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였지만 그뿐. 다시 그는 흐느껴 울었다.


“너의 어미가 그리 말하였다 한들,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그리고 너 역시 이런 내가 밉지······.”

“전하. 소자는 전하를 미워하지 않사옵니다.”


그 어떠한 감정을 섞지 않고서 그에게 말을 꺼내었다. 단 한 번도 원망이 없었느냐고? 그걸 말이라고 하나.

제 어미를 죽이고, 홀로 남겨진 자신을 방치 했던 임금이다.

그런 것도 모자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차 나를 폐세자 시키려고 까지 하였는데 미워하지 않는다면 그건 거짓말이겠지.

그러나 지금은 그의 마음에 상처를 안겨주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이 사단을 만들어 놓은 것을 빨리 수습하라고 말하는 게 그보다 더 먼저일지도.


“너와 네 모친이 나를 용서한다 해도,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다.”


이 양반을 어떻게 달래야 할까. 한참을 바라보고 나니, 드는 생각은 과연 그도 늙긴 늙었다는 점이다.

내가 어린 시절에는 가정 사 하나 때문에 이렇게 나약하게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아니었는데, 그는 제 아들의 품에 안겨서는 눈물을 계속 흘리고 있었다.


“하면 지금부터 바뀌시면 되옵니다.”

“지금부터라 하면.”

“오래 살아남아, 제 어미를 위하여 그보다 더 오래 살아계시옵소서. 오래 사시어 제 어미가 소자를 그토록 살리고자 한 이유를 바라봐주시옵소서.”

“....그게 진실한 너의 뜻이냐.”

“소자 바라는 일은 그것 외엔 없사옵니다.”


그 말을 끝으로 서로가 약속하기라도 한 듯 아무런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음에 침묵으로 가득했지만. 그렇다고 그가 날 끌어안고서 놓아주지 않음에 동궁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서 우린 뜬 눈으로 희정전을 보내어야 했다.



***



“으윽···. 허리야.”


화창한 햇살이 문풍지를 밀고 들어와서 눈가를 괴롭힘에 마지못해 단잠에서 눈을 뜬 그는 주변을 살펴보았다.

제 근처에는 익숙한 사람들이 관직을 풀어헤치지도 못하고서 불편한 자세로 잠을 청하고 있었으니.


“일어나보십시오, 언제까지 주무시고만 있으실 겁니까.”

“아이고, 내 허리.”

“아, 왜 깨워! 아직 화창한 낮···. 음?”


한둘씩 깨어난 인사들은 자신들이 깨어난 장소가 안방이 아님에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불현듯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헐레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고 있을 게 아니다. 어젯밤에는 경황이 없어서 가만히 있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난 그들은 서둘러 희정전으로 향하여 부디 용서해 달라고 청하고자 자리를 뜨려 했다.


단 한 사람의 말소리를 듣기 전까지는.


“세···. 세자 저하!”

“저하라니. 헉!”


자리에 없어야 할 인사가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들은 망연자실했다. 세자라면 어젯밤, 임금의 뜻을 돌리기 위하여 희정전까지 따라갔지 않았는가.

그랬던 그가 지금은 이곳에 있다는 것은.

그들은 세자가 이곳에 있음을 보고는 결국 설득에 실패했다는 생각에 자신들의 목숨은 죽은 목숨이라고 여겼다.

하여 자리 안에 있던 이들은 울음으로 앞날을 걱정하고 있던 차에.


“무엇을 하는가. 오늘 들어온 안건을 말하지 않고.”


누구야, 누가 초상집 분위기에 일거리를 꺼내는 거야.

도끼눈으로 다들 누가 그런 말을 꺼내었나 하고 둘러보니 과연 가장 상석에 앉아서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가만히 있던 세자가 꺼낸 말이었다.

이에 대신들은 자신들은 어차피 곧 죽을 목숨인데 일이 손에 잡히겠느냐고 말한 가운데 세자는 그들 앞에 무언가를 내던졌다.


“이것은···. 교지가 아니옵니까!”


임금이 직접 적어 내린 교지를 내던진 세자에 발끈하다가도 그들은 그 안에 적힌 내용을 살폈다.


-신사년의 일을 언젠가 바로잡아야겠다고 생각했었으나, 조정이 이를 공론화하여 때마침 시기적절하다 여기어 과인 또한 이에 동조하여 바로잡고자 하였다.


인현왕후의 죽음 속에는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았으나, 그렇다고 이 일에는 결코 희빈 장씨가 관여되어 있지 않다.

그녀는 세자의 건강을 위하여 민간에서 행하는 굿을 해보고자 했을 뿐. 저주를 내렸거나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를 갖다가 인현왕후를 저주했다고 엮은 숙빈 최씨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니, 숙빈 최씨가 묻힌 소령원의 묘를 파헤쳐 능지처참할 수 있게 하고.

그녀의 아들 연잉군은 비록 지은 죄가 없다고 하나, 제 어미의 행한 짓을 묵인하여 여러 사람에게 해를 끼쳤으니, 연잉군에게 내린 재산들을 모두 국고로 환수하도록 하라.

또한, 이 일에 관여하여 세자의 생모를 자결하는데 이바지한 관료들을 모두 조사하여 국문케 해야 함이 옳은 일이나, 이는 세자가 자신의 모친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또다시 옥사가 벌어지는 것을 싫어함에 내 이에 대한 전적인 결정권은 세자에게 내리겠다-


“저하.”

“왜 부르지.”


영상 김창집이 세자를 부르더니, 내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그가 무릎을 꿇음에 주위 사람들은 당황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이들 역시 그를 따라서 모두 무릎을 꿇어왔다.


“소신들을 죽여주시옵소서!”

“하하? 살고 싶던 것 아니었나.”

“신들이 감히 주상전하와 저하께 행한 일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짓들이옵니다!”


그들이 먼저 꼬리를 내려온다. 하지만 세자는 그런 그들을 향해 입가에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고 있었다.

이런 세자의 모습에 그들은 그저 눈물만 흘리며, 자신들을 죽여 달라 청하기만 하였다.


작가의말

재밌게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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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 선위하겠다 +6 20.07.25 2,210 47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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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18. 처음부터 차근차근 +8 20.07.24 2,772 59 11쪽
17 17. 권좌를 넘본 자의 신세 +6 20.07.23 2,747 53 11쪽
16 16. 길들여 내다 (2) +2 20.07.23 2,724 46 12쪽
15 15. 길들여 내다 +8 20.07.22 2,941 43 12쪽
» 14. 이제 와서 아버지인 척 (4) +13 20.07.22 2,967 57 11쪽
13 13. 이제 와서 아버지인 척 (3) +6 20.07.21 2,972 69 11쪽
12 12. 이제 와서 아버지인 척 (2) +6 20.07.21 3,084 59 12쪽
11 11. 이제 와서 아버지인 척 +6 20.07.20 3,180 56 12쪽
10 10. 말 안 듣는 놈들 길들이기 (5) +3 20.07.20 3,370 60 12쪽
9 9. 말 안 듣는 놈들 길들이기 (4) +6 20.07.19 3,563 64 12쪽
8 8. 말 안 듣는 놈들 길들이기 (3) +1 20.07.19 3,706 73 12쪽
7 7. 말 안 듣는 놈들 길들이기 (2) +4 20.07.19 3,711 64 12쪽
6 6. 말 안 듣는 놈들 길들이기 +1 20.07.18 3,848 73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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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4. 그의 변화 (2) +6 20.07.17 4,232 81 11쪽
3 3. 그의 변화 +11 20.07.17 4,427 96 12쪽
2 2. 다시 돌아오다 (2) +5 20.07.16 4,779 91 12쪽
1 1. 다시 돌아오다 +12 20.07.16 6,014 79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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